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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억류자! 일제시대 징병으로 만주군에 끌려가, 해방후 소련군 포로가 되었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강제노역을 당한후, 국군의 총알세례를 받으면서 고국의 38선을 넘는다. 그후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 이제 그들은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해방전후의 현대사를 다룬책을 읽을라치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삼키기가 힘들다. 거기에 일제의 만행과 뒤이은 6.25동란의 와중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행태를 보면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알지 못하고 있던 사실을 재구성해 알려주고 있다. 일제시대 정신대 문제가 뒤늦게라도 세상에 알려질수 있었던 것은 증언자가 용기를 내고, 자료로써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자료 자체가 없고 –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밝히려고 하지를 않을 뿐 – 시베리아에서 강제노역을 한 사람들도 하나, 둘 이생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있는 이때, 그나마 밝혀진 사실만이라도 알리고 싶어서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제는 조선청년들에게 징병제를 실시한다. 1945년 8월 해방이 내일, 모레인 시기, 징병된 조선청년들은 대부분 만주지역에 주둔하던 일본군에 배속 되었다. 그리고 며칠후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난다. 조국이 해방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징병되었던 조선청년들에겐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던 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각지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연합국의 관할아래 지역별로 무장해제를 당한다. 중국 본토에서 중국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한 일본군은 곧바로 일본으로 귀환하였으나, 만주지역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때마침 진주한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한후 모두 포로신세가 되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스탈린은 포로처우에 관한 제네바협정을 무시하고, 포로수용소에 수감 중이던 일본군 포로 50만명을 소련내 강제수용소에 보내 사역에 종사 시키기로 결정한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일본군의 무장해제후 가정으로 돌려 보낸다는 포츠담 선언의 규정과는 어긋나는 이 결정의 배경에는 미소의 전후주도권 장악을 위한 대립의 산물, 일본의 자발적인 노동력 배상 제안 혹은 소련의 강제노동 활용이라는 세가지 시각이 있는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이렇게 소련내 각지로 보내어진 일본군 포로들은 – 물론 강제 징집된 조선청년들도 마찬가지 이다 – 첫해에 혹한, 기아, 중노동을 뜻하는 시베리아 3중주에 약 10% 가량이 숨졌다고 한다. 그 후 미소 냉전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소련의 인권을 공격하는데 이들 억류자 문제를 들고 나왔고 마침내 소련은 몇 차례에 걸쳐 이들 일본군 포로들을 귀환 시킨다. 이들의 시베리아 에서의 생활상은 일본인 귀환자들에 의해 밝혀졌다고 한다. 억류된 사람들 대부분이 일본인 이기도 했지만, 귀국후 회고록 등을 통해 시베리아 강제노동의 실상등을 남긴 사람도 많았고, 일본의 언론매체들도 이들의 실상을 계속해서 취재하고 진실을 밝히려 했기 때문 이라고 한다. 일본군 포로들이 귀환을 하기 시작 하면서 조선인 징병자들도 귀환을 하게 된다. 반동이나 다른 꼬투리가 잡힌 60여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선인 억류자들은 1948년 10월 흥남항을 통해 귀환한다. 북한 당국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이들은 흥남여고에서 머무르다, 만주 연변출신들이 먼저 풀려나 만주등지로 돌아가고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도 곧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남한 출신들은 기차로 연천까지 북한당국의 안내로 왔다고 한다. 약 480여명의 사람들은 출신지별로 나뉘어서 38선을 넘어 왔다고 한다. 이미 남과 북엔 별도의 정부가 수립되어 수시로 총격전이 벌어지던 상황에서 북에서 내려온 이들은 모두 초소근무를 하던 경찰들에게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3-4일 정도 사찰계 경찰들에게 조사를 받고 나서 모두 인천의 전재민수용소에 수감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이들이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에서 왔다는 이유로 국내 수사기관뿐만 아니라 미군, 미 극동군사령부 소속 군인들까지 수사에 참여 하는건 그 당시로는 어쩔수 없었으리라… 약 50여일간 수사끝에 460여명이 고향으로 귀향조치가 내려졌고, 또한 소련에서 반동으로 찍혀 남아있던 60여명은 1년후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송환 되어 약 2주일간 북한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고 귀향조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을 다시 한번 요동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으니, 바로 한국전쟁 이었다. 북한에 남은 사람들은 인민군으로,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국군으로, 한번 갔다온 군대 다시는 안가겠다고 숨어산 사람, 미군에 차출되어 카튜사로 근무한 사람, 북에서 남파 되었다가 자수한 사람… 바람앞에 갈대처럼 이들은 남북의 대립속에 자신들의 운명을 떠 맡길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을 부지한 귀환자들… 이들은 다시한번 호구지책이 급선무가 되었고,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이따금씩 터지는 간첩단 사건등을 생각하며 침묵을 지킬수 밖에 없었단다. 그러다가 1990년 한소수교후 억류자들 사이에서 기막힌 사연을 호소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침목모임 ‘시베리아 삭풍회’를 만들게 되었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삭풍회라 지었다고 했다. 한때 56명까지 불어났던 회원이 노환이나 질병으로 하나 둘 세상을 떠나, 지금은 20여명이 남았다고 한다. 책에는 또 귀환 당시 남과 북의 분단에 실망하여 소련에 남은 사람들, 흥남에서 연변으로 돌아가 중국현대사와 함께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간 조선족들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일본은 정부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배상을 해주고, 소련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삭풍회는 그 동안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우리정부에 대책을 호소하고, 일본이나 소련에 배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 하였으나, 그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소련에서는 포로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조국 한국에서 마저 버림받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이들이 버림받았다 할지라도 이들의 이야기마저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옳은 일이든, 그릇된 일이든, 잘못된 역사이든 지를 막론하고 우리는 우리 현대사의 모든 이면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식민지 지배와 전쟁, 조국분단으로 이어지는 가혹한 짐을 짊어져야 했던 이들의 역사, 곧 우리들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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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제의 식민지 침략과 약탈, 그 과정에서 자행된 강제노동, 징용, 학살 등을 다룬 <역사가에게 묻다>의 저자인 김효순씨의 또 다른 기록작품이다. '시베리아 억류'가 벌어진지 70여년이 지났다, 시간이 오래된 것을 관련 사실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만, 당시의 책임을 추궁당할까 두려워하는 이들이 현실에 없기에 시작하기에 좋은 여건이라는 장점도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의지와 노력 뿐이라고 생각한다. 국립대학이나 연구소라도 나서서, 개인적인 학자, 교수라도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그 사실을 알게된 이들은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부모임에서 <역사가에게 묻다>와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를 교재로 선택한 이유가 김효순씨의 활동을 알고자 함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인세를 보태어 그분의 활동에 도움이 되고자하는 마음도 있었다.
[ 2012년 3월 2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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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용의 소설 중에 '꺼삐딴 리'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일제시대에는 철저한 친일파였다가, 소련군이 진주하자 그에 아부하고 휴전선이 그어지자 미군에게 아부하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색깔을 바꾸며 살아가는 카멜레온적인 인물을 풍자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꺼삐딴 리'와는 다르게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신분과 국적이 바뀌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꺼삐딴 리' 처럼 영달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조국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그것조차 되지 않아 해외에서 살았던 불운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김효순 지음, 서해문집)는 조국이 식민지화 되고 해방이 되었지만 6.25라는 큰 전쟁을 겪으며 원치 않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에 기술되어 있는 사람들의 인생은 매우 다양한 모습이다. '일본군-국군', '일본군-카투사-국군', '일본군-인민군-국군', '일본군-인민군-미군 군속', '일본군-빨치산', '일본군-국군 정보국 군속', '일본군- 북파 공작원'(본문 발췌) 등으로 혼란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러한 비극의 시작은 어디서 부터 왔던 것일까? 저자는 여러 사건과 사례중에 시베리아에 억류된 사람들을 주목했다.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는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강제징용되어 한반도 이외의 지역으로 파견된 병사들-만주, 쿠릴열도, 사할린-은 소련군에 포로가 된다.
일제 패망후 소련의 스탈린은 피폐해진 국가 경제를 재건한다는 이유로 앞서 이야기한 지역의 포로들의 노동력을 활용키로 하고 시베리아 각지로 이송하라는 극비 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약 60여만 명이 강제로 끌려갔고 약 6만여명이 억류 기간에 사망했다고 한다.
자신이 원치도 않는 일본군에 소속되어 3~4년간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조선인 청년들. 이들은 억류가 풀리자 소련의 화물선을 타고 북한을 거쳐서 남쪽이 고향인 사람들은 남한으로 내려오게 된다. 일본군대와 소련 억류생활을 버티고 돌아온 조선 청년들에겐 또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련'에서 '북'을 거쳐왔기에 38선 경비 부대의 발포와 대공수사기관의 따가운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의 험난한 여정은 몇십년이나 계속 되었기에.
저자 김효순은 한겨레 신문의 창간에 간여해 도교특파원, 편집국장, 편집인을 지낸 기자이다. 지난 2007년부터 현장으로 돌아가 활동하고 있으며, '포럼 진실과 정의'의 공동대표를 맏고 있다. 저자는 2008년 6, 7월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과 유족, 관련 단체 관계자, 학자, 국가기록원 등 정부기관 관료, 정치인 등 한국과 일본 인사 수십명을 만나 취재한 뒤 그해 8월 15일치 한겨 신문에 취재 내용을 광복절 특집기사로 실었다고 한다. 이는 종합 일간지로서 '시베리아 억류'에 대한 문제를 다룬 최초의 것이라고 한다.
일제 때 징병을 끌려가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소련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고국에 돌아와 38선을 넘을때는 총알 세례를 받고 엄격한 심문을 받은 사람들. 이들의 삶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대 피해자의 하나로 꼽아도 지나치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은 그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치않게 '꺼삐딴 리'를 강요받은 사람들.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혹은 가르치지 않아서 잘 모르는 한국의 현대사. 최근 여러가지 책들이 출간되면서 부끄럽고, 어두웠던 아주 가까운 지난 날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우리의 가까운 과거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고 지금 우리의 상황이 어떠한지 알았으면 좋겠다. 또한 이 책에 나온 이야기 처럼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되세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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