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리틀 부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리틀 부다]" 내용보기
며칠 전 본 영화 <리틀 부다>(Little buddha)의 리뷰를 쓰려고 노트북을 켰다. 그때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순위를 보니 ‘키에누 리브스 누명’이 6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의 아들을 낳아 이십여년 간 키워왔다며 웬 여자가 친자확인 소송을 냈던가 본데, DNA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소식이었다. 기사 위에 달린 최근 그의 사진을-아마 근래에 한국을 방문했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리틀 부다]" 내용보기

 

 

 

며칠 전 본 영화 <리틀 부다>(Little buddha)의 리뷰를 쓰려고 노트북을 켰다. 그때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순위를 보니 ‘키에누 리브스 누명’이 6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의 아들을 낳아 이십여년 간 키워왔다며 웬 여자가 친자확인 소송을 냈던가 본데, DNA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소식이었다. 기사 위에 달린 최근 그의 사진을-아마 근래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진인 듯- 보는데 세월의 무상함이 끝도 없이 느껴졌다.

 

리뷰 초안(?)을 완성해 놓고 블로그에 올리지 않고 며칠을 보냈다. 그 사이 또 그는 검색 순위에 올라왔는데, 이번엔 다름 아닌 ‘불멸설’이다. 어느 외국 블로거가 중세 유럽을 통일한 샤를마뉴대제와 알렉산드로 파라오 원시시대의 벽화를 예로 들면서 ‘그는 단순한 동안이 아닌 불멸의 존재’라는 설(?)을 내놓았다. 아래 그림을 보면 그럴 듯한 설이지만 재미로 보고 말 일이지 싶다.

 

 

고교때였던가? 명절이었을 거다. 아니면 공휴일이었던지. 텔레비전에서 <액설런트 어드벤쳐>(Bill & Ted's Excellent Adventure)가 방영됐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무료한 낮시간을 때우기 위한 패전처리용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잊지못할 첫만남이 되었다. 키에누 리브스는 약간 어벙한(?) 역할이었는데, 귀엽고 동양적인 생김새에 마음을 송두리째 뺏겼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어떤 이들에게 전설이 된 영화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는 방황하던 스무살 전후 무렵의 나에게도 청춘의 한 조각이 된다. 영화잡지의 해외통신원 리포트를 통해 크랭크인 소식에서부터 감독, 배우, 줄거리, 스틸컷 등의 정보를 접하고 이제나 저네나 개봉 시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어찌보면 더 애타면서도 즐거웠던 것 같다. <허공에의 질주>로 이미 어린 나이에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은 리버 피닉스와 한 눈에 반한 키에누 리브스, 두 청춘의 만남은 아찔하다 못해 악, 소리나게 서프라이즈 한 것이었다.

 

열등감에 시달리던, 무엇도 아니던, 스무살이란 이렇게 괜히 그렇게 자기 비하에 열을 올리고 싶어하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아무것도 아니던 나에게 두 주인공은 위로가 되었다. 뭐 거창한 이유는 없었을 테다. 철학 따위는 사유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그런 심오한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있을리가 없었다. 좋아하는 배우의 잘 생긴 얼굴, 세련된 몸짓과 차림새, 적당히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모습, 그런 것 때문에 나는 그 영화가 좋아 어쩔 줄 몰랐다. 잡지에 나온 스틸 것을 있는 대로 오려서 가방이고, 필통이고, 책이고 할 것없이 덕지덕지 붙이고 다녔다. 정작 영화는 보지 못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키에누 리브스는 스타이자 이상형이었다. 이십대 초반에 <리틀 부다>를 봤을 때 역시 그 속의 키에누 리브스는 키에누 리브스 그 자체이지, 싯달타의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화장을 한 그의 모습에서 동양적 이미지는 더욱 도드라졌고, 그 신비한 분위기에 마음은 더욱 설렜다. 싯달타가 키에누 리브스이고, 키에누 리브스가 싯달타다. 진짜 싯달타의 모습은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결혼 생활 7년에 접어들자 우리 부부는 그때 그때 임시로 땜질해 둔 감정의 고름이 여기저기서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갈등은 극에 달하고, 이제는 더는 안돼,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남편을 향한 분노를 터뜨렸고,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매일이 ‘화’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세토우치 자쿠초가 쓴 소설 <석가모니>를 발견했다. 책장을 펴니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라고 써있다. 누가 뭐랬나, 나는 그 글귀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십수년 전에 보았던 <리틀 부다>를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덮자마자 영화를 구해 다시 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키에누 리브스, 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싯달타가 키에누고, 키에누가 싯달타처럼 보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싯달타의 생애나 가르침, 혹은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고통의 여정 따위는 관심없었던 이십대 때와는 달리 그것이 몹시도 내 안에서 간절해졌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싯달타의 생애는 ‘액자 형식’으로 제시가 읽는 ‘싯달타 왕자 이야기’를 통해서 잠깐씩 등장한다.

 

건축가 딘 부부에게 티벳 승려들이 찾아온다. 그들의 아들, 제시가 그들의 스승인 ‘라마 도제’가 환생한 것일지도 모르니 부탄으로 가서 확인해보자는 제의를 받는다. 환생을 믿지 않는 부부는 거절한다. 그리고 어느 날 딘의 친구가 파산한 뒤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자 충격을 받고, 마음을 정리하고자 이들은 승려들과 함께 부탄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다른 두 명의 라마 도제 환생 후보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들은 모두 라마 도제의 환생으로 육신, 영혼, 말씀이 각각 현신한 것으로 밝혀진다. 제시를 부탄으로 데리고 온 노승은 이들 발치에 절을 올린다. 스승이 환생을 확인하고, 노승은 참선에 들어간다. 얼마뒤 그는 참선에 들던 그 자세로 입적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많이 울었다.

 

절 안에 울려퍼지는 반야바라밀다심경은 공허한 내 마음에 크나 큰 종소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한참 동안을 울었다. 왜 울었니, 하고 누가 물어도 잘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는 원망과 분노로 가득차있던 남편을 향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미물이기에 아직 남편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테다. 허나 이전에 극한으로 치닫던 감정은 유보된 상태이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다.

 

6년의 고행 끝에 싯달타가 깨달은 것은 ‘중도’의 진리였다.  결혼 7년, 그 고행이라면 고행인 길 속에서 드디어 나도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것일까?

 


h*****a 2009.12.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