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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언론인의 고백
저널리스트(journalist) 또는 언론인(言論人)은 저널리즘을 수행하여, 뉴스를 취급하는 사람이다. 신문에서는 뉴스를 보도하는 사람을 기자, 뉴스를 논평하는 사람을 논설위원이나 논평위원, 뉴스를 편집하는 사람을 편집자 또는 데스크라고 한다.(위키 백과) 한동안 정국은 미디어 법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논란을 야기시켜 왔다. 언론이라 하면 곧이 곧 믿는 사람들도 많은데 언론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 깊은 사람들도 상당하다. 과거 우리의 언론은 청와대의 선봉장 역할을 담당해 왔다. 언론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치명적인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고 자신들을 방어하는 방패로 사용하기도 한다. 언론이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면 그 나라는 정치적 후진국에서 벗어 날 수 없는 딜레마를 가지게 된다. 톰 플레이트. 그는 저널리스트다. 우리말로 언론인이라 하는데 그의 경력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유명한 메이저 언론인 뉴스데이, 뉴욕, 타임, LA타임스등 미국과 영국의 언론계를 휩쓴 장본인이다. 또한 논설위원과 편집장을 지내면서 그가 만난 사람은 그야 말로 유명인 일색이다. 김영삼,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그만의 노하우.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꿈꾸는 특종의 저널리스트가 바로 톰 플레이트인 것이다. 톰 플레이트의 어느 언론의 고백은 자신이 걸어 왔던 저널리스트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다. 또한 시대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진정한 저널리스트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또한 기자가 걸어가야 하는 어려운 이 길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만이 걸어 왔던 저널리스트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톰 플레이트는 온 몸의 유전자가 마치 기자이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이 보인다. 그의 학창시절과 기자로 걸어 왔던 글들을 읽어 보면 이 사람이 기자를 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떠한 사람이 되었을까?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언론과 정치계의 심각한 뒷이야기가 어떠할지 무척이나 궁금해서 읽은 책이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심각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을 기대하고 읽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실망감을 안겨 줄지 모른다. 하지만 언론인이 되고자 꿈꾸는 많은 이들, 그리고 현역에서 종사하고 있는 언론인 그리고 손에 꼽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이 읽어 봐야 하는 책이라 이야기 하고 싶다. 기자의 고단한 인생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져야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최고의 자리 최고의 선배로써 조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톰 플레이트가 이야기 하는 오늘날 저널리즘의 10대 죄악이 있다. 그 중 나를 의미심장하게 만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저널리즘의 당파성이다. 미국 내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사이의 당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날 한국 언론이 가지고 있는 당파성과 너무 흡사하다는 점이다. 결국 결론은 한국 언론은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중도의 길을 지키는 것은 과연 어려운 일인가? 왜 한쪽은 정부를 두둔하는 글 일색이고 왜 한쪽은 정부를 비판하는 글 일색인가? 저널리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싶은 많은 이들이 톰 플레이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판단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인인 가져야 하는 정체성의 확립 없이는 고작 특종만 찾고 돈만 밝히게 되는 그저 그런 언론이 되고 말 것이다. 어느 언론인의 고백은 그 자신만의 고백이 아닌 위선이 가득한 현 언론계의 자성의 목소리가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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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 속의 물고기가 물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막상 뉴스란 무엇인지에 대해선 그다지 깊이 있게 성찰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라고 생각하고 아침에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한 잔처럼 신문을 펼치고 뉴스를 본다. 그러나 누구나 뉴스가 단순히 새로운 소식이 아니라 실은 가위질과 색칠이 가능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신문기사가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조만간 역사박물관에게서 연락을 받을 것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이제 매우 식상한 표현이다. 1978년 게이 터크만(Gaye Tuchman)은 자신의 걸작 《메이킹 뉴스》에서 뉴스의 이모저모를 지적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뉴스는 조작된 현실세계를 재현하는 인지틀이자, 소비상품이자, 이데올로기이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진실이자, 권력을 동반한 지식이다. 아울러 기자와 소유주의 시각과 이익이 반영된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이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이다. 이론교육에 치중하면 보통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자연스레 습득하게 된다. 이런 비판적 관점은 이 책에서도 '오늘날 저널리즘의 10대 죄악'이란 제목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반대로 실무위주의 학과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나 현장에서 뼈가 굵은 '도제공'들은 취재대상과 직업의식에 대해 좀더 나이브한 입장을 취할 수 있고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편이다. 이에 대한 경험적인 뒷바침을 UCLA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인 저자 톰 플레이트가 제공한다. 그의 교육 배경은 저널리스트로서 사실 그다지 특출한 점은 없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교내신문사에서 일한 바 있고, 대학 3학년 때 <워싱턴 포스트>의 여름 인턴십을 거쳐 직업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질을 다소 보여준다. 졸업 후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관계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고, <뉴스데이> 사설부에서 '전문' 저널리스트로 첫 발을 내딛는다. 저자는 안목을 갖춘 진정한 기자가 되려면 실질적인 분야(가령, 경제학, 공공정책, 국제관계 등)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모든 중요한 형태의 진지한 저널리즘(즉, 마돈나나 브래드 피트 얘기를 하는 저널리즘이 아닌)을 하려는 사람들은 최소한 석사학위를 따놓는 것이 좋다」. 이름 덕분에 때때로 '플라톤'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저자는 자신의 성장기나 취재기와 더불어 30년간 몸담아 온 미국 언론계의 뒷마당을 공개한다. 섹스, 유명인사, 스포츠, 범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에게는 그리 큰 매력이 없겠지만, 기자 지망생들과 현역 칼럼니스트들은 이 책에서 선배의 유익하고 유머스런 조언을 기대해도 좋다. 국제관계 칼럼니스트로서 그가 인터뷰한 정치인물 리스트만해도 거창하다: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리콴유, 도널드 창, 첸치천, 둥젠화 같은 수뇌들을 취재한 베테랑이다. 저자는 책에서 소위 '기자근성'의 ABC를 제대로 보여준다. 기자로서의 기본자세는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베짱이다. 취재는 기사를 따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공부가 취재의 우선이다: 언론계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이 취재하고자 하는 정치가와 그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알아야한다. 여기에 청렴과 윤리가 함께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기자들이 방어해야 할 윤리적 원칙의 마지노선은 무엇인지, 미디어 산업의 본질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강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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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권력이어서는 안되는 언론이 권력으로 자리잡을 때 그 국가는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수호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체제로 전락하고 만다. 오용이나 남용을 절대 몰라야 하는 언론이 필수적인 것 마냥 권력으로 작용할 때 그 국가는 이미 자본주의의 노예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처럼 언론을 신용할 수 없는 사회에 차라리 [어느 언론인의 고백]류의 출간은 반가웠다. 그 고백이 단지 사탕발림에 그치더라도, 진실 아닌 거짓이어도, 특별론 아닌 일반론이어도, 그저그런 뻔한 얘기라도 좋을 것 같았다. 한 번 생각해볼만 한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언제 미디어 윤리, 그런 말이 있기나 했었나. 세상은 밝아졌는데 옳은 것은 묻혀버릴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우린 이미 언론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쩌면 언론인 개인이 아니라 언론 자체를 신용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를만큼 언론은 신뢰와 넓고 크게 벌어져 있다.
나는 스무 살 신방과 입학과 동시에 교내 신문사에 지원했다. 내가 특별히 언론인을 꿈꿨다거나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다거나 그런 이유로는 당연히 아니다.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낯가림이 심하고 겁도 많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도 아니다. 어려서 아는 게 적었고 그래서 용감했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의지가 컸던 것 같다. 그즈음 교내 신문사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애들이 소속감을 느끼려 하는 곳은 적어도 '잘 아니면 즐겁게 놀 수 있는' 몇몇 동아리 뿐이었다. 강의시간도 고역인데 굳이 힘들어보이는 수습기자 같은 거 될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신문사는 사람이 적었고 기자가 부족했다. 보통은 담당 교수님과 간사를 제외하고도 최소 편집장, 취재부, 편집부, 사진담당 등으로 나누어 진행해야 할 신문 만들기를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 넷과 분열되어 있는 선배 넷이서 해야 했다. 나는 야간강의를 듣고 낮에 취재했다. 그게 아닌 날엔 낮에 수업을 듣고 저녁에 회의를 하고 밤에 근처 호프나 소주방 또는 칵테일바에서 친한 선배와 동기들과 친목을 도모했다. 분열되었으므로 매일 다퉜고, 일은 많았고, 마음은 서로 엇나가기만 했다. 하지만 반드시 신문은 한 달에 한 번 발행되어야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통제할 수 있다면 취재하고 기사쓰는 건 오히려 쉬웠다. 기사작성이 끝나면 부산일보 대학부 편집팀에 들어가서 편집과 판짜기까지 직접 했다. 낮강의와 신문편집, 발행 그리고 배부까지 하면 그 날은 집에가서 끙끙 앓았다. 서로 일을 적게 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또 다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수습기자를 제외하고 활동비는 지급되었다.) 왜 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되물으며 살았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여름, 정몽준 위원장이 학교를 방문했다. 우린 교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응원열기를 전했고, 가을축제를 다뤘다. 학교 안 창업센터를 찾아가 인터뷰했고, 적십자사 회원 아주머니를 만나기 위해 주말을 반납하기도 했다. 문화면을 채우기 위해 영화와 연극을 보러갔고, 등록금 파업이 일어나면 학교와 학생의 중간입장에서 취재했다. 총장 비서실을 줄기차게 드나들어야 했고, 발행된 신문을 외부로 배송하기도 했다. 신문 접으면서 먹는 자장면이 이삿짐 옮기며 먹는 자장면만큼이나 맛있다는 걸 그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밤샘하면서 일의 즐거움에 새삼 뿌듯했던 것도 그 즈음이다.
신문은 늘 총장의 검열을 받았다. 학교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내용이 있으면 킬 당했다. 아니면 지원금이 줄었다. 학교는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외 이미지를 위해 교내신문을 이용하고 있었다. 활동비와 발간비를 지원하고 있었으니 마냥 고집을 피울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묻혔고, 타국의 대학과 체결하는 행사는 1면에만 실렸다. 스무 살, 철없던 나도 일련의 사정에 분노했지만 곧 신문사를 떠나고 말았다. 편집장이 되어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러웠고, 동기들이 모두 떠난 상태에서 선배들과의 대립은 견디기 힘들었다. 선배들이 없는 신문사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시 고민했던 저널리스트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 만나는 것, 사람으로부터 목적이 뚜렷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위치에서 글을 쓰는 것,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일련의 문제 등 무엇하나 간단한 것이 없다. 본문에서 특히 어렵다고 생각한 부분은 미국인 저널리스트 톰 플레이트가 들려주는 경험담 중 미국, 유럽, 아시아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상황에 대한 것들이다.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쉽게 연결되지 않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차라리 미디어 윤리와 언론인의 자질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게 된다.
원칙을 모두 지켜가면서 좋은 기사를 쓸 수는 없다. 기사와 보도에 경쟁이 도입된 만큼 이유를 불문한 상황에서도 특종은 필수다. 하지만 먼저 언론의 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이 뿌리를 내린 후에 특종도 있고 성공도 있는 것이다. 거짓된 정보가 죄없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음을 우린 이미 한차례 경험한 바 있기에 톰 플레이트의 고백이 속시원하지만은 않다. 어쨌거나 그는 언론인이기 때문이다. 언론인이 언론인을 까발려봐야 수위가 어느 정도 되겠는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어쩌면 언론과 언론인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언론이 권력의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언론이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서도 안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모든 딜레마와 아이러니는 결국 언론이 풀지 못하는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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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막연하게 너무나 멋진 직업의 세계가 아닌가하는 부러움이 태산을 이루기도 한다. 뉴스를 보면서, 신문을 펼쳐 읽으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장래희망으로 언론인의 모습을 꿈 꾸어보지 않았을까. 어린시절 한번쯤 꾸어보는 선생님 혹은 대통령처럼이라도 그렇게 흔하게 가지게 되는 장래희망들 중의 하나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널리스트로 살아왔다는 이 책의 저자, 톰 플레이트의 책이 눈길을 끌었다. 언론인의 고백이라, 궁금했던 언론인의 세계, 그것에 대해 톰 플레이트를 통해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인가, 살짝꿍 기대감을 가져본다.
톰 플레이트는 고등학생때 학교신문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대학교에서는 편집국장을 지냈다고 한다. 결국 그런 인연이 자신을 언론인으로 이끈 것이 아니겠는가. 여하튼, 언론인이라는 참 부러운 직업을 그는 가지게 되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그 중에서 우리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어서인가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일본을 거쳐 모스크바를 순방하는 길에 한국을 경유해 가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글을 신문 칼럼에 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일로 결국 빌 클린턴이 한국을 경유해서 모스크바를 가게 되는 결실을 만들었다.
그는 스물네 살에 뉴스데이 기명 논평란을 맡으면서 다양한 수법들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이직을 하게 될 때의 조언들도 들려준다. 또한 평범한 저널리즘은 수준 높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음으로 훌륭하고 생생한 저널리즘으로 마음을 움직여야 하며 그것이 곧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라며 자신이 언론인으로 살아온 삶의 순간들 속에서 들려주고 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저널리즘은 부적절함이라는 위험을 안게 된다. 사람들을 즐겁게만 하는 저널리즘은 진지한 목적이라는 가치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균형 잡힌 시각은 책임감 있는 저널리즘의 미학이다. 하지만, 제발 주목하라, 그런 노력은 과학자들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몫이다. 그것은 본능보다 측정을 통해서 이루기가 더 어렵다./179쪽]
이 책은 저널리스트로 생활해온 톰 플레이트의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자 수첩이다. 그가 저널리스트로 살아온 발자취들의 기록이고, 그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는 맺음말에서 오늘날 저널리즘의 10대 죄악에 대해서 실어놓기도 했는데, 언론인이 되고싶어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 목마름을 축일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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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권력 언론의 힘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사실은 취재되고 보호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영향력이 있기에 기자에 대한 취재원들의 감춤과 포장은 교묘해진다. 뿐만 아니라 어렵게 확보한 사실에 대한 평론의 기준은 저널리스트의 생명과도 같기에 신중하고 또 신중을 기하는 어려운 작업이 된다. 기자들의 취재이야기는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더욱 궁금하고 신비의 영역으로 다가온다. 어느 언론인의 고백의 저자 톰플레이트를 통해 알게되는 저널리스트의 고민과 취재의 어려움 그리고 기발한 발상의 전환들은 그동안 또다른 영역으로 존재하던 기자의 생활을 단편적이나마 살펴보게 되었다. 무엇보디 특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엄한 경쟁에서도 기자의 양심을 지켰기에 더 많고 더 깊은 취재가 가능했던 저자를 만날 수 있다. 권력은 최소한의 보편타당한 기준과 누구나 인정할 만한 상식적인 판단의 잣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기에 야합하는 특종 또는 저널리스트의 지나친 주관은 스스로 힘을 잃게 하는 올가민가 된다. 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부문이다. 그렇게 원칙을 지켰기에 더 맣은 사람을 만날 수있었고 더 많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 정론에 대한 바른 가치를 위해 때론 포기도 하고 때론 덮기도 하는 기자의 생생한 취재수첩을 만날 수 있다. 권력자로 부터의 압력도 있을 것이고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 포기하고 싶은 것도 있었겠지만 바른 판단의 기준에 의한 공정한 표현은 결국 최후 승리를 가져오게 됨을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보여주고 있다. 언론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이다. 기자의 삶도 인생이고 기자의 취재도 역사의 한 부분이다. 아울러 기자의 관심에서 멀어진 진부한 범인의 삶도 역사의 한순간을 채워가는 숨은 주인공임을 기억한다면 언론은 삶에 대한 자기반성과 고백의 솔직한 표현이 된다. 언론인의 힘은 우너칙을 지켜나갈 때 세워지는 것이다. 사실의 왜곡없이 전달되게 하는 힘이 바로 기자의 힘이 되다고 톰 플레이트는 주장한다. 사실 앞에 당당하고 할 말을 하는 것이 저널리스트의 삶이고 우리가 살아가야할 가치인 것을 언론인의 시각을 통해 증명해주는 그런 책이 바로 톰 프레이트의 어느 언론인의 고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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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중재는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주는 것인만큼 사실을 알리고, 여론을 형성하는 힘을 가진 언론인은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언론이나 언론인에 대한 책을 접해본 적이 없는 내가 이 책을 망설임없이 선택했던 이유는 어느 언론인의 고백이란 책의 제목과 함께 특종이 난무하는 시대에 저널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소갯말이 이 시대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산증인을 만나볼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을 갖게 했던 것 같다. 특종을 만난것처럼 그만큼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을 책이 아닐까하는 기대에 부풀었던 것도 같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자 역시 자신의 직업에 있어서 가장 불안하고, 암울했던 시기는 바로 스스로의 청렴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을 때라고 말하고 있다. 언론인으로서의 막중한 사명감은 특히나 언론의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만으로는 그치지 않는다. 언론 플레이만 보더라도 새로운 사실을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여론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다. 여론으로 인해 개인의 생각과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고,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언론인의 삶은 곧 대중의 삶이라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언제부터인가 매일 접하는 새로운 뉴스들에 대한 믿음이 점차 깨어지고 있는것 같다. 물론 언론계 모두들 싸잡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언론인은 그 누구보다 윤리적인 가치관과 도덕성, 그리고 현실앞에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용감하게 맞설 수 있는 프로 근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 것 같다. 그들은 말그대로 미디어 현상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이며, 대중을 이끌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여러 이유로 책을 읽어갈수록 언론인만큼 공정하고,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직업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에 언론이 정당화되려면 의견과 사실을 제대로 수용할 줄 아는 언론인이 꼭 필요하단 사실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언론계와 저널리스트의 삶을 새롭게 알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은 미국일 뿐 한국의 언론인에 대한 이야기도 더욱 궁금해졌다. 저자가 30여 년동안 직접 몸으로 부딪힌 미국과 영국의 언론계를 알게 될수록, 또 저널리스트의 일과 그들의 세상을 알아갈수록 최고의 저널리스트는 한 국가의 대통령이나 수상보다도 오히려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더 큰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는데 저자가 말하는 오늘날 저널리즘의 10대 죄악을 읽으며 대한민국판 어느 언론인의 고백의 출간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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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톰 플레이드라는 저널리스트가 일했던 40여 년간의 경험을 오롯이 끓여낸 결정체라고 표현한다면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만족스러움을 내비칠까? <어느 언론인의 고백>이라는 책은 그것이 가진 제목처럼 우리가 잘 알지 못했고, 어쩌면 동경하고 있을지도 모를 저널리스트의 어두운 세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디어법의 논란과 관련해서 나름대로의 논리를 찾으려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어나갔지만 아쉽게도 이 책의 핵심은 그것과는 약간 어긋나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 내용은 우리가 어떻게 ‘난쟁이를 넘길 수 있을까?’라고 할 수 있고, 그리고 부수적으로 ‘바람직한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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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essions of an American Media Man : 마지막 책장을 덮고 표지에 쓰인 원제를 보니 책을 읽는 내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언론인의 고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책의 지은이는 언론인이 아니었던 것! 언론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영어 단어어는 저널리스트(journalist)다. 다른 말로는 리포터(reporter) 정도랄까. 그런데 media man은 대체 뭘까. 사전을 찾아보니 대중매체, 매체라는 뜻이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매스미디어, 의 그 미디어 맞다. 여기서부터 사알짝 속은 기분이 든다. [어느 언론인의 고백]이라는 책은 제목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사뭇 진지한 저널리즘을 상상하게 했으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맞겠다. 아무래도 내 머릿속에 든 언론인의 범주가 너무 좁은 탓일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언론인은 누구인가. 알리는 사람이다. 무엇을? 세상의 진실을. 전쟁터를 누비고, 기아의 참혹함을 전달하고, 폭력의 현상을 고발하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언론인의 모습이다. 이 책에도 나오는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들-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해 미국의 정치 지형을 바꾼-, 1980년 광주에서 군홧발에 처참히 짓밟히는 민중의 모습을 담은 몇몇 외신 기자들, 삼성왕국의 추악한 뒷모습을 집요하게 쫓은 MBC 이상호 기자, 죽음의 현장을 넘나들며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전문기자와 프리랜서들...내게 떠오르는 '언론인'의 모습이다. 톰 플레이트가 살아온 30년은, 분명 이들 기자들과는 다른 삶이다. 취재하고 캐내는 기자로서보다는, 일찌감치 '고위직'에 올라 편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지은이는 미국의 주류 언론들을 여러 군데 거치면서 편집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착실히 경력을 쌓았다. (이쯤에서 '상업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미국 언론이 어디 언론이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애머스트와 프린스턴(책에는 학벌 이야이가 왜이리 많이 나오는지! 자신의 학벌을 왜이리 강조하는지! 이 아저씨, 조금 속물스럽다는 느낌도 받았다. 잘난 체와 있는 체도 어쩌면 미국인의 하나의 특성 아닐까...;;)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오가며 살아온 이 사람, 전형적인 주류 백인 남성이다. 그것은 곧, 그의 시각이 '미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미국 언론은 자신들만의 시각에서 벗어나기 싫어하고, 또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어리석은 미국 백성들이 기독교와 물질만능에 빠져 부시 같은 대통령을 뽑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듯이!) 톰 플레이트는, 일찌감치 미국 언론의 '미국적 사고에 치우친 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하나의 방법으로 '아시아'에 눈을 돌렸다. 그리하여 자타가 인정하는, 미국 내 아시아통이 되었다는데. 불행히도 그의 칼럼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스스로가 자부하듯 '아주 오래 전부터 아시아에 관심 갖고, 아시아를 좋아하며, 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해온' 몇 안 되는 미국 언론인인 그가 쓴 아시아의 칼럼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글을 재미나게 잘 써서인지 술술 잘 읽히는 반면에, '내가 읽은 내용이 뭐였더라?' 하는 느낌도 든다. 서문에 밝혔듯 교훈이나 훈계를 늘어놓으려 하지 않아서일까. 그냥 자기가 살아온 삶. 병아리 언론인이었던 중고딩 시절부터 대학언론, 인턴 시절을 겪으며 칼럼니스트로서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런저런 언론사를 거치며 경험한 이야기들이 가볍게 펼쳐진다. 목숨 걸고 취재하지 않으니 인생의 큰 위기가 없고,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모양인지라 깊은 반성이나 깨달음도 그닥 없다. 모르고 있던, 세계 언론의 중심이라는 미국 언론-언저리-의 모습을 대충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제목이 주는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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