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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때 점령군인 독일인과 프랑스 여인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났다'
<저주받은 아이들>의 책 표지에 쓰인 문구이다. 제목과 이 부제는 이 책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어떤 내용을 다룰지도 시사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이고, 부제 그대로이다.
저주받은 아이들. 그 아이들은 태어난 것이 죄악이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편들어주어야 할 가족에게서 맨 먼저 외면받았고, 가족은 때때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아이들을 저주하고는 했다.
세계 1차 대전 때, 독일인에게 강간당해 가진 아이를 낳고는 살해한 혐의로 한 여성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여인은 '더러운 피'가 흐르는 아이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고, 재판부는 이 여성에게 무죄 선고를 내렸다. 영아살해에다 비속살해가 아니라, 무죄라고 판결한 것이다. 여기서 중점이 된 것은 강간당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아버지가 '독일 점령군'이라는 것이었다.
<저주받은 아이들>의 아이들은 세계 2차 대전을 즈음하여 태어났다. 그 시기의 상황은 세계 1차 대전 당시의 인식과 나을 것이 없었다. 때로는 자신을 따뜻하에 맞아주는 이웃을 만나거나, 이웃이 냉대해도 가족이 보듬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행운이 찾아온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행운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을, 때로는 그보다 더욱 심한 일들을 겪으며 자랐다. 아버지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기고, 언급하는 것을 금기처럼 여기며 자란 아이들은 가족관과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것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축이었다. 때로는 얼굴도 잘 모르는 아버지의 핏줄이라는 것 떄문에, 아이들은 무슨 유전병 보균자라도 되는 것처럼 손가락질받고 냉대받으면서도 항변조차 못하고 숨죽이고 지내야 했다. 점령군에 대한 원한과 응어리를 애꿎은 아이들에게 퍼붓는 사람들과, 그런 인식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은연중에 혹은 대놓고 이야기하는 분위기 한가운데서 말이다.
이 아이들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대우를 받아야 했을까. 부모를 골라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태어날 시기와 장소를 골라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세계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여인과 독일인 군인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나마 프랑스인과 독일인은 혼혈도 많고 인종적으로도 가까워서, 외모만 놓고 보면 독일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출생을 짐작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도 그렇다. 그런데도 이 정도였으니, '점령군 군인 아버지'가 피부색이나 얼굴형에서 자국인과 뚜렷이 차이나기라도 했다면 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나로서는 차마 상상할 수도 없고, 도저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책 표지를 보고 문득 라이따이한을 떠올린 후, 나도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그냥 읽게 된 책이다. 읽으면서 먹먹하기 그지없었다. 전쟁에 아무런 잘못도 책임도 없는 민간인과 그 소생에게 일어난 일이라 그랬고,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그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는 일어날 일이라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