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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알려진 것과 진정한 과학 사이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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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다 보면 종종 느끼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확실히 실패하는 방법은 있어도 확실히 성공하는 방법은 없다거나,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 진실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거나 하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비단 역사에서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과학'과 정말 부합하는 건 과연 얼마나 될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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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다 보면 종종 느끼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확실히 실패하는 방법은 있어도 확실히 성공하는 방법은 없다거나,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 진실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거나 하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비단 역사에서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과학'과 정말 부합하는 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가 위대한 과학자로 추앙하거나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그 통념에 부합하는 경우는 과연 또 얼마나 될까. 아니,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과학에 대해 막연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는 막연히 엄밀하고 정밀할 것이라고 지레 생각하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과학 이야기는 대개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중 과학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전혀 모르고 있는 것. 후자의 경우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과학 통념의 오류 중 많은 부분은 과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정확히 말하면, 피상적으로 접한 과학적 요소를 필요에 따라 적당히 가공하여 일화 등으로 원용하는 곳에서 비롯된다. 가장 단적인 예를 하나만 들라면, 아마 플레밍일 것이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는 경위는 극적인 에피소드로서도, 감동적인 교훈극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유일한 문제는 그 '경위'가 조작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류는 끈질기다. 하기야, 아인슈타인이 어릴 때 낙제아였다는 이야기도 아직껏 살아남았을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에 써먹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금만 조사하면 밝혀질 수 있는 오류가 버젓이 통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답은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너무나도 순진해서 오류나 사실왜곡은 상상조차 못하거나, 실상은 그 오류를 구명할 만큼의 관심조차도 없는 것이거나. 아, 한 가지가 더 있겠다. 이미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며, 그냥 유명한 레퍼토리만을 주워섬기는 것.

p*******1 2009.10.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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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를 고백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열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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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과학사가인‘에른스트 피셔’의 인류에게 어떠한 형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과학적 발견과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는 일종의 과학시론(時論)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디벨트>라는 독일 신문에 연재된 글들이라는 점에서 대중을 향한 글쓰기이고, 따라서 다분히 계몽적이고 과학에 대한 친화력을 염두에 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3개의 장으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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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과학사가인‘에른스트 피셔’의 인류에게 어떠한 형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과학적 발견과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는 일종의 과학시론(時論)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디벨트>라는 독일 신문에 연재된 글들이라는 점에서 대중을 향한 글쓰기이고, 따라서 다분히 계몽적이고 과학에 대한 친화력을 염두에 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3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잘못된 상식에 대한 정정, 문화적, 종교적 일상에 침투해 있는 과학이론의 비판, 그리고 교양으로서 인지하여야 할 과학의 의미를 다룸으로서 20세기 이후 자칫‘불안을 조장’하는 과학, 악마의 학문으로 소외되는 과학을 지양(止揚)하고, 진정한 인류를 위한 진보로서의 과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저술의 논조는 빛의 본성에 대한‘궁극적 무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듯이 다분히 회의적이고 겸양의 미덕을 보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양자역학을 기조로 하는 물리학 기반의‘불확정성’의 관념에 철저한 주관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 장인“상식과는 다른 과학을 포착한다.”는 제목처럼 이 저술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리 또는 옳다고 알고 있는 것들이 무수히 전복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플레밍’은 실제 어떠한 것도 발견한 적이 없었다는 진실이나, 아인슈타인의 학업성적이 열등했다는 엉터리 소문도 그의 탁월한 성적표를 오독한 사람과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자기위로 의식이 결합한 거짓이었다는 가벼운 전복에서부터 빛과 색깔의 관계에서 붉은 색과 파란색에 갖는 선입견이 실제의 온도를 반대로 인식하는 오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즉 과학이 인간을 모욕했다는 몰지각에 대한 반론, 분광학으로 인한 우주 물질의 규명, 혁신은 기존의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명제의 거짓까지 역사적, 사상적 사유의 전복에까지 이른다.

 

한편, “현실 속의 과학 비판”이라는 둘째 장은, 그의 균형적, 중도적으로 보이는 시각이 오히려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들이라 할 수 있는데, “지식이 증가하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더 잘 말할 수 있게 된다.”는 미래학의 엉터리 지식을 힐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대니얼 데닛’이 ‘가망 없는 관념’이라 표현한 ‘신(God)'의 묘사와 영혼은“뉴런들의 집단”일 뿐이라 한 인터뷰 글을 인용하면서, “오히려 가망 없는 관념은 바로 그 생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또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창조론자인 ‘데니스 노블’의 반론에 기대어, “갇힌 유전자”라 조롱하는가 하면,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을 엉뚱하게도 “가설의 신”이란 자신의 논리로 둔갑시켜 이 가설의 신이 유의미한 말인가. 하고 힐난한다.

그리곤 “종교와 과학은 싸우는 상대가 아니라 인간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벌이는 두 활동으로서 서로 의지해야 한다.”고 모호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미래학이란 실체는 사실 사라졌으나, 무슨 무슨 전문가라는 표현으로 이름만을 바꾼 채 행세하는 소위 전문가 300명에게 던진 “인터넷의 미래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예견해달라고 한 주문”의 설문 결과가 “원숭이들도 할 수 있을 만한 순전한 추측”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조소 섞인 비난에서부터, “멍청한 전문가들이 우리 앞에서 발언할 기회를 가장 많이 얻는다. 고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은 미래를 망친다.”는 혹평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이에 더해 미국의 생명윤리학자라는 ‘조너선 모레노’의 검증되지 않은 약물로 인간의 각성 실험을 자행하는 행위에서 “윤리학자와 군인이 나란히 앉아 있으면 더 폭력적인 사람은 윤리학자”라고 오늘의 과학 현주소를 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칸트 안에 머물러 있다면 칸트를 알 수 없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 주위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지적하면서, 또한 “이해되었다고 여겨지는 사안에 대하여 적어도 한 번 그 반대를 생각하라.”하는,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조언은 이 저술의 중요한 저작 의도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표현을 서구인의 시각이 아닌 ‘아메리카 원주민’의 시각에서 표현한다면, 다시 말해서 반대로 표현한다면 어떤 표현이 될까? “콜럼버스를 처음 발견한 아메리카인은 불길한 발견을 했다.” 이처럼 어떤 사안을 그 반대로 보았을 경우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도 있을 것이다.

 

끝으로 “교양으로서의 과학”은 오늘의 과학은 진보적이긴 하지만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반성을 담고 있다. 근대과학을 출발시킨 서구의 이상은 본원적으로 통일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해왔다고 자성하면서, 법칙의 개념에 경도된 과학의 지향점을, 열린 대화, 확정 된 것이 없다는 동양의 사상과의 접목으로 웅변한다. 여기서 교양에 대한 그의 강론은 독특한 관점을 제공한다.“사람이 교양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치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교양 있는 놈이 사람이냐 아니냐죠. 어떤 교양이 인간성을 동반할까? 어떤 교양이 도덕을 담보할까?”하는 질문은 분명 오늘의 과학,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유의미한 질문이 된다. “교양이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과 결합될 때, 교양은 사람을 도덕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사기를 치는 과학연구자들, 그리고 의사(疑似)과학, 오류를 반복하는 매스미디어, 등등 과학을 배반하는 가짜 과학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이다. 과학적 지혜가 아닌, ‘상식’의 바탕에 놓인 어리석음과 일상에서 만족스럽게 작동하는 믿음에 들어 맞추려는 오류와 무지를 벗어나야 한다. 또한 연구의 질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과학 비평가가 일천한 우리의 과학현장은 더 없이 과학과 소원하다. 이러한 현실이‘황우석’류의 기만적인 현상을 낳게 한다. 이 저술은 그 질적 비판과 관심을 통해 실존하는 인간의 삶을 개선하자는 전제를 가졌던 인간 중심의 과학에 대한 나름의 사유 시간을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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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박한, 그러나 깊이는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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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간에 수학자 '가우스'의 일화가 잠깐 나온다. 그는 70세가 되어서 재미와 휴식을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우스와 같은 대 수학자에 자신을 빗댈 생각은 언감생심이지만, 내가 가끔 과학이나 수학 관련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가 그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인문학적 내용이 주를 이루는 내 독서 경향의 편중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고. 영양의 불균형은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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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간에 수학자 '가우스'의 일화가 잠깐 나온다.

그는 70세가 되어서 재미와 휴식을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우스와 같은 대 수학자에 자신을 빗댈 생각은 언감생심이지만,

내가 가끔 과학이나 수학 관련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가 그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인문학적 내용이 주를 이루는 내 독서 경향의 편중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고.

영양의 불균형은 식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런 식의 심심파적 유희에 가까운 독서이다보니 본격적으로 심도있고

전문적인 내용은 이해할 깜냥도 되지 못하거니와 일단 피곤한 일이 되겠기에

시도조차 안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내용 정도가 맞춤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신문 칼럼으로 씌어졌다는 이 책은 그 형식에 걸맞게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과학사적 내용이 뼈대를 이루는데 그중에서도 생물학적,물리학적 史實이 주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 수학과 철학, 인류학 때로는 신학적 내용들이 얼개를 이루어 꽤 다양한 문양을 이루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런 류의 책들이 의례 그렇듯이 깊이있는 분석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불과 두 세 페이지 분량의 칼럼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성적에 대한 오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대한 오해, 미래학이란 학문의 연약한 존립 근거, 여러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가지는 비과학적(사실은 이 단어의 정확한 함의에 대한 정리부터가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보여진다)이고 사기적이기까지 한 행태, 천사와 광자를 연결한 상징적 해석...

 

머리가 피곤한 휴일의 한 나절. 굳이 줄거리와 맥락을 따질 것 없이 책의 어느 한 페이지라도 펴서 가볍게 읽다 보면 그럭저럭 정신에 가벼운 마사지를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j***1 2009.11.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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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는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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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우연히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이름을 보게되었다. 내가 알고있는 에른스트 페터 피셔?? 2009년 초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그를 처음으로 알게되 나에게 과학이란 딱딱한 장르를 정말 재미있는 분야로 만들어준 묘사의 달인?^^ 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100가지... 그의 글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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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우연히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이름을 보게되었다.

내가 알고있는 에른스트 페터 피셔?? 2009년 초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그를 처음으로 알게되 나에게 과학이란 딱딱한 장르를 정말 재미있는 분야로 만들어준 묘사의 달인?^^ 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100가지... 그의 글을 읽음으로써 나는 불편한 과학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알아가는 과학을 느꼈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에 대해 앎의 기쁨을 준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고, 과학을 불편하고 딱딱하게 알고있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싶다.

 

마지막으로 동양의 지혜를 높이 평가해준 에른스트 페터 피셔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y**********4 2009.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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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과학을 배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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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편, 정확히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면 102편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다. 대부분은 2-3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글들이다. 과학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책은 드물다. 언뜻 생각하면 꽤 있을 것 같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그 이유는 과학 교양서라고 했을 때, 과학 자체나 과학사를 설명하는 책인 경우, 혹은 과학 비판인 경우가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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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정확히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면 102편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다. 대부분은 2-3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글들이다. 과학 비평이라고 있다. 이런 류의 책은 드물다. 언뜻 생각하면 있을 같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이유는 과학 교양서라고 했을 , 과학 자체나 과학사를 설명하는 책인 경우, 혹은 과학 비판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과학의 이면을 비평하는 글을 그렇게 흔하지가 않다.

 

여기의 글들이 신문에 실렸던 짧은 글이라 호흡은 짧고, 상세한 증명이나 설명은 없지만, 비슷한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그래도 논지는 분명하다. 과학사의 잘못 알려진 것들과 과학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을 바로 잡고, 과학과 다른 분야와의 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편안함 때문에 받아들이는 과학사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과학이 상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상식을 깨는 것이라는, 과학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과학한다는 것』에서 길게 쓰고 있듯이 과학이 교양이 되는 사회를 꿈꾼다. 예술과 화해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사회를 꿈꾼다.

 

과학은 과학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과학은 교양이 되어야 하고, 교양이 되기 위해선 과학하는 사람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과학자가 아닌 이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과학을 무시하면서 교양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무식하다. 과학에 대해서 모르면서 과학 윤리를 얘기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과학자들도 과학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과학을 하는 이들이라고 과학이 무엇인지,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과학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르고 있더라도 과학 활동을 있겠지만, 그건 과학의 본질에 접근하는 태도는 아니다. 무책임한 과학자가 밖에 없다.

 

과학사의 이면을 읽으면 재미있고, 과학의 역할에 대해서 읽으면 의미 있는, 그런 책이다.



(2015. 5)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n*****m 2015.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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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오류와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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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어감이 가져다 주는 묵직함은 성인들에겐 더욱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정규 교육과정인 초중고등학교에서 만난 과학 관련 서적들은 왜이리 딱딱하기만 하고 어려웠던지. 또 호기심이나 흥미에 의한 발로에서 과학을 공부하고 들여다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오직 중간, 기말고사나 대학입학 점수를 높이기 위한 측면에서만 공부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관심을 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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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어감이 가져다 주는 묵직함은 성인들에겐 더욱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정규 교육과정인 초중고등학교에서 만난 과학 관련 서적들은 왜이리 딱딱하기만 하고 어려웠던지. 또 호기심이나 흥미에 의한 발로에서 과학을 공부하고 들여다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오직 중간, 기말고사나 대학입학 점수를 높이기 위한 측면에서만 공부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관심을 쏟아 읽을 만한 책들은 왜이리 없는 것인지.

 

그렇게 세월은 흘러서 우리들은 21세기 초입에 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잡아끄는 과학, 수학, 한자 등등의 학습만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사회적 인프라 수준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끔 구성되어 있어 과학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좀 밖으로 겉돌았지만 여전히 성인들에게 '과학'이란 어렵고 딱딱한 느낌마저 지울 수 없는 존재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뉴스나 신문의 과학관련 뉴스를 될 수 있으면 건너 띄려고 하고 또 보거나 읽어도 그저 의심없이 진리인양 여기기 일쑤다.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에서는 그런 과학들 중에서 오류와 편견에 감싸여져 있는 것들을 하나 둘 들추어 내면서 우리들의 시선을 좀 더 과학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근래들어 읽은 과학 관련서 중에서 제법 잘 만든 책으로 과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들여다 보아도 좋을 듯 싶다.

 

  



w***y 2009.10.14.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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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절대성을 명쾌하게 꼬집는 책^^
"과학의 절대성을 명쾌하게 꼬집는 책^^" 내용보기
제목부터 마음을 끌었다.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이라니...대놓고 과학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속시원한 직언을 서슴지 않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어린 시절부터 읽어오던 과학만화에서도 분명, '언제나 과학은 가설에 의해 정의되어지고 발전해간다'고 했다. 가설이라함은 언제나 그 의미에 절대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의미인데, 왜 우리는 그동안 '과학'이란 이름을 '절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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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마음을 끌었다.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이라니...대놓고 과학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속시원한 직언을 서슴지 않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어린 시절부터 읽어오던 과학만화에서도 분명, '언제나 과학은 가설에 의해 정의되어지고 발전해간다'고 했다. 가설이라함은 언제나 그 의미에 절대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의미인데, 왜 우리는 그동안 '과학'이란 이름을 '절대적인 사실'이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아하, 그렇구나'라고 일관되던 과학의 뻔한 증명이 아닌, '정말이야?'라도 반문할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기록 그 점은 현대의 과학맹신 시대, 특히나 과학의 재빠른 발전만을 믿고 앞으로 달려나가기에 급급했던 한국을 살아온 내게 꽤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감성적인 예술이나, 철학에만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것이 아니라, 가장 객관적이라 일컬어지는 과학에 있어서도 분면 사실을 반문하고 다시한번 고찰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배운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역시 꼬집고 풍자하는 글은 짧을수록 좋다는 진리도 함께^^

k*******n 2009.10.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