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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일과 읽는 일을 한 줄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읽는 것에 비해 무엇인가를 쓴다는 행위는 쓰는 이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품이 여간 많이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시로 책을 읽는 이는 많아도 책을 쓰겠노라 감히 엄두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책 읽기는 독자들의 관심사가 되곤 한다. 그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방식으로, 심지어 어느 시간대에 등 모든 게 궁금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한다 뿐이지 일반인의 책 읽기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데 말이다.
고종석의 <쓰고 읽다> 역시 독자들의 궁금증을 충족하기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시사주간지 '시사IN'에 2015년 10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연재한 [독서한담]과 2015년 8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한 [고정석의 편지]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이 책은 작가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구어체 문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기자로 단련되었던 그가 익숙지도 않은 구어체 문장으로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았을 터, 작가도 그런 사실이 몹시 신경 쓰였던지 [독서한담]의 끝머리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 됐네. 이 난에서 나는,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구어체의 글쓰기를 시도해봤어. 내 말투, 내 글투가 불편했던 독자들도 있었을 거야. 이 구어체 글쓰기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판단하는 건 독자들의 몫이지. 지난 여름이 유독 뜨거웠으니, 이 가을은 풍성한 결실의 철이 됐으면 좋겠어. 모두들 강건하시길!" (p.152)
이 책에서 작가가 소개하는 많은 책들 중에 유독 나의 기억에 남았던 책은 김욱이라는 법학자가 쓴 <아주 낯선 상식>이었다. 그것은 작가의 최근 행보와도 무관치 않아 보였다.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사실이지만 작가는 잘 알려진 '반노인사'일 뿐만 아니라 절필 선언 후 트위터에 남긴 수많은 단문들을 볼 때 그의 정치적 색채는 '극력 반노'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다고 박정희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반쯤 눈이 먼 '극력 우파'라고 할 수도 없다. 그는 박정희 노무현의 영남패권주의를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는, 말하자면 지역에 기반을 둔 한국적 민주주의 체제에 반기를 든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사실 시쳇말로 스펙이 화려한 사람이다.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언어학 석사,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을 뿐만 아니라,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출발하여 한겨레와 시사저널 등을 거치며 논설위원 편집위원을 지냈고, 이후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으로 신문사 근무를 마쳤으니 말이다. 언론인들의 정치권 영입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는 마당에 그도 일찌기 정치에 뜻을 뒀더라면 오래전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시대 '글쟁이'로써 한 획을 그었던 그는 2012년 9월 돌연 절필을 선언했었다. '글은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전남 여수가 고향인 그에게 깨지지 않는 영남패권주의 신화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에 분명하게 작동하고 있는 영남패권주의를 지식인들조차 모른 체해. 그것을 절대 변경할 수 없는 디폴트값으로 정하고, 그 위에서 보수니,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얘기를 하는 거지. 그렇지만 개혁이나 진보라는 것이 차별과 양립할 수 없다면, 나는 영남패권주의를 우회하는 개혁담론이나 진보담론은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가짜 개혁담론이자, 가짜 진보담론이라는 뜻이지." (p.54)
그랬던 그가 이제는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다. 그 스스로 무소속으로 대통령 출마를 하겠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에 관심을 갖고 온전히 빠져들었던 소년은 자라 어른이 된 후 자신의 글로 세상을 바꿔보자 결심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던가. 누구에게나 마음의 상처는 한이 되고 결국에는 저승으로 가는 노자인 양 쓰이는 게 다반사이지만 작가는 그마저도 싫었던 모양이다. 이제 흰머리 희끗희끗한 노인이 되어 자신의 쌓인 한을 대통령으로 풀려 하니 말이다. 노작가의 헛된 꿈이 왠지 짠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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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제목부터 좀 이상하다. 우리, 아니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읽고 쓰다’가 시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맞을
것 같은데, 제목이 ‘쓰고 읽다’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고 있지 않으며
본문도 별로 단서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쓰’자가 길게 늘여져 있는 걸 보면서 이 책의 중심은 아무래도 ‘쓴다’는 행위에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을 해 볼 뿐이다. 그러니까 책읽기에
관한 많은 책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표식 정도?
그리고 이 제목을 보면서 김윤식을 생각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참 전의 글에서 ‘읽다’와 ‘쓰다’의 주어로 김윤식을
지목한 이가 바로 고종석이다. 그리고 본문에도 그 김윤식에 관해서 쓰고 있는 글이 있다. 김윤식에 관한 추문에 대한 비판은 없다. 다른 글에서라면 모를까, 글을 읽고, 쓴다는 걸 쓴 글에서 그런 것까지 들출 필요는 없을
듯하긴 하다.
2. 고종석은 절필(絶筆)을 선언(?)했었다. 5,6년 전의 일일 것이다. 그 때 내 느낌은, 왜? 그런 것이었다. 좀
난데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더
이상에 쓸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는데, 그게 과연 이유가 될까 싶었다. 고종석이라는 글쟁이의 글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뭇 사람들은 저 글쟁이가 더 쓸 글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갖지
않을 텐데, 스스로 그렇게 가두는 다짐(선언이라는 표현이
아무래도 아닌 듯 싶어)이 과연 어떤 반향이라도 가질까 싶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고종석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책들… 절필이라는 게 그리
심각한 선언, 혹은 다짐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부터 이런 글을 써왔던 것이다.
3. 그가 읽을 만한 주간지와 일간지로 꼽은 사사IN과 경향신문에 쓴 글을 모았다. 그가 싣는 매체라 그렇게 꼽은 것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그의 행적과 글들을 보건대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나도 이 주간지와 신문에 꽤 높은 평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주간지와 신문에 올려진 글이라는 얘기는 그 글의 성격을 나름대로 규정짓는다. 그의 판단에 따라면, 또한 나의 판단에 따르면 적어도 반공 논리나 신자유주의 질서를 옹호하는 그런 글들은 아니란 얘기다. 물론 고종석의 이 글들이, 이 글들이 실린 매체의 성격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주간지와 신문의 기사가 아주 획일화된 논조가 아닌 것도 그 이유이며, 또한 여기의 글도 그렇지 않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4. 여기에 실린 글들은 고종석이 어떤 인물인지를 상당히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자유주의자이며(전체주의를 반대하며, 또한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 국제주의자이며(국수주의뿐만 아니라 민족주의도 반대한다), 반마르크스주의자이다(그는 용케도 마르크스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 이유를 포퍼 와 롤스의
예방주사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영남패권주의를 매우 반대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책은, 김욱의 『아주 낯선 상식』이다. 바로 영남패권주의를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글에서 이 책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그
가치의 실천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 영남패권주의는 새누리당, 혹은
박근혜로 이어지는 그 줄기의 것만이 아니다. 물론 다른 장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노무현에게도 그 혐의가 주어지며, 당연히 문재인에게도 더 큰 혐의가(그럼에도 지난 대선에서 그는 문재인을 찍을 수 밖에 없었으며, 박근혜의
당선에 울분을 토할 수 밖에 없었다. 어이없음과 함께), 그리고
정동영에게도 그 죄목이 빗겨가지 않는다.
5. 이 책에 실린 정치 상황은 모두 과거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한반도 남쪽의 정치 상황은 물론이고, 태평양 건너 큰 나라의 정치 상황까지도. 둘 다, 아니 어느 한쪽이라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여기의 글들의
논조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마디의 덧붙임 없이 그대로 실었다.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최선의 상식이었다는 판단일 것이다. 지금 보았을
때 잘못된 판단도 그대로 의미가 있다. 읽어보면 그게 의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보지 못하면 이 글을 읽을 이유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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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둔 작가들의 글을 보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곤 한다. 자신이 읽은 책을 온전히 소화시키는 자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열등감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고종석의 <쓰고 읽다> 역시 그랬다. 책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게 자신의 기억상자에 온전히 정리해 둔 느낌을 받았다. 그가 꺼내는 모든 말에 내 자신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소신이 책은 독서한담과 편지 이렇게 두 꼭지로 되어 있다. 독서한담은 대화체로 서술하고 있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책이 나의 독서수준과는 평이하게 다른 탓(수준차이가 어마무시하다.)에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는 참으로 친절하고 부드러운 어투로 이야기하고 그의 하는 이야기들이 내게 피가 되고 살이되는 고마운 글임을 잘 앎에도 불구하고 글에 쏙 빠져드는 느낌은 덜했다. 내가 읽은 책은 하나없고 그의 소개에 따라 읽어야할 숙제만 잔뜩 받은 기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그가 이오덕선생님의 문체를 따라 썼다는 대화체도 나는 어색했다. 이오덕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요즘 작가의 이런 글은 나를 난감하게 하는 듯 하다. 저번에 읽은 <고흐씨, 시 읽어줄까요?> 역시 읽는 내내 그랬다. 내가 커버려 존중받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독서한담은 대학생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싶다.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그가 여러 인물들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은 정말 쏙 빨려 읽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박정희, 이정희 등의 정치가들에서부터 프란치스코 교황, 촘스키, 엘밀 시오랑 등 사회 저명인사, 고3수험생, is전사를 꿈꾸는 젊은이들, 미국시민, 파리신민등 불특정 다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글을 올렸다. 이 중 가장 마음이 쓰이고 또한 쓰렸던 편지는 역시 세살박이 난민 아일란 쿠르디에게 보낸 편지였다. 쓰는 그만큼이나 읽는 이의 가슴도 따끔거린 편지였다. 터키 보드륨 해안에 시체로 떠밀려온 시리아 난민 아이다. 세월호 때도 그랬지만 뜻하지 않는 아이들의 죽음은 우리의 마음을 깊은 수렁으로 집어 넣는다. 내가 그와 정치적 색깔을 같이 하진 않기 때문에-그러나 거의 비슷하다- 모든 것을 다 수긍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향후 그들의 방향을 고민할 때 한 번 더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기를 바랐다. 물론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건대 딱히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대신 대학을 졸업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눈 닫고 귀막고 살았던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해보라는 속삭임은 들렸다. 이 한 권의 책이 나를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되지 못하는 것은 맞지만 그저 무관심만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한 거슨 사실이니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조금은 귀도 귀울이고 긍 대한 나의 생각과 관점을 정리하고 있어야 감정적인 대처를 하지 않겠구나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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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한담 : 2015.10.07 ~ 2016.09.12(시사IN) 고종석의 편지 : 2015.08.17 ~ 2016.02.15(경향신문) 이제는 (정확하게 말한다면 두 번째) 절필해 더는 새로운 글을 쓰지 않는 저자의 (아마도) 가장 최근 글을 모은 ‘쓰고 읽다’는 읽고 쓰다 라고 제목을 지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순간 들지만 그게 무슨 상관있나? 라는 생각도 하게 돼 적당한 제목이라고 본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고 한 부분은 독서한담이라는 제목으로 시사주간지에 써낸 글 다른 부분은 편지라고 이름 붙여 일간신문에 쓴 글이라 조금은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2015년 ~ 2016년)에 발표된 글이지만 하나는 저자의 이런 저런 생각을 말하거나 책에 대한 소개나 감상에 관한 글이고 다른 하나는 그 당시에 다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편지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어 특별히 겹쳐지는 내용은 없다. 독서한담의 경우 저자가 꾸준히 얘기하던 내용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기도 하고 들어보지 못했고 제목만 알고 있었던 책들을 소개 받을 수 있어 제목 그대로 독서와 책에 관한 글이라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을 꼽자면 글쓰기 방식에서 구어체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기도 하고 색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불편했던 독자”도 있을 것이고 구어체로 느끼기 보다는 그냥 반말로 생각될 수도 있어 여러 가지로 이색적인 글이었다. 시사주간지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글이랄까 독서한담은 특정하지 않은 누군가를 향해 말하고 있다면 편지의 경우는 내용이 꼭 그 사람에게 향하진 않지만 누구누구에게 라는 이름이 달려 있어 읽기 전부터 어째서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글들로 되어 있다. 대부분 정치 사회와 관련된 인물들이고 다른 몇몇 인물들은 저자 개인의 관심에 따라 선택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 혹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 독서한담에 비해서는 다른 의미에서 읽기 편하지 않게 될 때도 있다. 뛰어난 문장가이고 예리한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본 저자는 공백을 느낄 수 없이 여전히 무뎌지지 않은 날카로움을 보여준다. 선택을 존중해야겠지만 이런 글을 쓴 저자이기에 절필은 여전히 아쉽게만 느낀다. 자신의 글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너무 낮잡아보는 것 아닐까? 아마도 다시 글을 쓸 것 같진 않지만 그 예민함으로 우리들이 쉽게 놓치고 관심 기울이지 않는 것들을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지 읽지 못한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어가며 기다려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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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무언가 남는 게 있으면 그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우연찮게 ‘고종석’이라는 작가만 보고 고른《쓰고 읽다》란 책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글을 남기네요. 고종석 선생에 대한 책은 서평이벤트로 몇 번 접했었는데《고종석의 문장1, 2》로 기억합니다. 도서출판 알마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그 당시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도서출판 알마에서 나온 책들은 인문과 고전 책들이 많았는데 책들이 하나 같이 마음에 들어서 거의 구매를 하거나 서평이벤트에 나오면 물, 불 안 가리고 신청한 걸로 기억합니다. 문학동네의 임프린트로 시작해서 지금은 아이쿱생협과 함께 출판공동체를 운영하는 출판사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난 도서출판 알마! 요즘 들어선 출판하는 게 뜸하지만 마음 속으론 항상 응원하는 출판사입니다. * 임프린트 : 대형 출판사의 경우 책의 출간 분야나 방향에 따라 브랜드를 나누는데 본사에서 한 브랜드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임프린트라고 합니다.(임프린트사는 상황에 따라 대형 출판사에 독립적일 수 있고, 종속적일 수 있어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번 책은 알마에서 나온 고종석의《쓰고 읽다》란 책입니다. 목차에는 독서한담 / 편지 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독서한담>은 한자 그대로 말하자면 책을 읽으면서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로 우리가 꼭 읽어야하는 책들을 소개하면서 그 책의 본질적인 부분(우리가 어려워하는 부분)에 대해 작가가 살살 긁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살살 긁어주다 보니 더 가려울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잘못했다간 소개한 책 모두를 구매할 수 있음에 유의해 주세요.^-^) ‘독서한담’에서 필자가 여러 분야의 굵직한 책들을 소개했다면 ‘편지’에서는 세계에서 화두가 되는 분들과 대한민국 사회를 대표하는 분들께 ‘편지’라는 이름으로 도발적이면서 대담하게 그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평상시에 하지 못할 말들을 ‘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처럼 편지를 통해 그동안 마음 속에 꾹꾹 담아 놓은 이야기보따리를 풀듯이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그들에게 안부도 묻고, 존경하는 마음도 갖고, 쓴소리도 하면서 사회의 메이저보다는 마이너들에게 바치는 글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나오지만 그 책들 중에서 빛이 나는 책을 고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 또한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지만 보석 같은 책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아요. 이 책《쓰고 읽다》는 제가 읽었는데 읽고난 후의 느낌이 좋았고, 제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인문학책이라서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다를 수 있기에 이 책을 읽고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속는 셈 치고 읽어보시길~ <독서한담>에서 고종석 작가가 소개한 책들을 적어봅니다. 19세기 말 조선 지식인이 쓴 유길준의 <서유견문>, 당대 조선인들의 잘못 쓴 말들을 바로 잡은 정약용의 <아언각비>, 국문학자 김윤식 선생의 책들,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정운영의 선집인 <시선>,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의 세계>, 프랑스 공쿠르상을 2번이나 수상한 로맹가리의 <내 삶의 의미>, <자기 앞의 생>, 이 시대의 영남패권주의를 분석한 김욱의 <아주 낯선 상식>, 유럽 지성사를 꿰뚫는 세 권의 책 스튜어트 휴즈의 <막다른 길>, <의식과 사회>, <지식인들의 망명>, 문제적 인물들을 통해 세계사를 읽어보는 이언 커쇼의 <히틀러>, 로버트 서비스의 <스탈린, 강철 권력>, 필자의 사상에 결정적 영향을 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과 존 롤스의 <정의론>, 이 시집만은 꼭 읽길 바라는 송경동 시인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언어에 관련된 에세이 모음집이면서 작가가 언어의 둘레에 대한 풍경화라고 칭송한 대니얼 헬러 로즌의 <에코랄리아스>, 유럽 예술을 원근법으로 그려 보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책 <김수영 전집2:산문>과 조지 오웰의 <1984>, 번역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전문번역가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 번역의 이론적 탐구를 엿보고 싶다면 데이비드 벨로스의 <내 귀에 바벨 피시>와 조재룡 교수의 <<번역하는 문장들>, 20세기 언어학만이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커다란 영향을 준 페르디낭 드소쉬의 <일반언어학 강의>, 순 우리말 4,793개를 공부할 수 있는 장승욱의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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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덮은 뒤 고종석님의 저서 리스트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중에서
눈길이 갔던 책이 바로 <생각의 모험> 입니다. 그 때 읽었던 <생각의 모험> 에 나오는 다섯 분의 공저자
중에서 고종석님을 알지 못하였던 겁니다. 이 책을 일고 나서야 비로서 고종석님의 필력과 프로필에 눈길이 갔으며, 신문기자이면서,
언어학자로서 살아가는 고종석님의 생각을 잠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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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지런한 독서가이자 열정적인 집필가가 부러워요. 제가 게으른 독서가이자 무관심한 집필가이기 때문이지요. 그저 소소한 장서가일 뿐이에요. 그리고 여럿이 함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제가 혼자이기 때문이지요. 그저 고요한 은사(隱士)일 뿐이에요. 그런데 부러운 책을 만났어요. 책 이야기와 사람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고종석 씨가 바라본 책과 사람의 이야기예요. '독서한담'과 '편지'로 나뉘어져 있는 이야기예요. '시사IN'에 2015년 10월 7일부터 2016년 9월 12일까지 연재한 '독서한담'과 2015년 8월 17일부터 2016년 2월 15일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한 '고종석의 편지'를 추려 엮었다고 해요. 뒤에는 '경향신문'에는 연재하지 않은 '사적인 편지' 두 편도 있네요. '독서한담'은 책 이야기예요. 그런데, 글이 친한 또래에게 쓰는 구어체예요. 듣기에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친구에게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런 이 책 이야기에는 고종석 씨의 취향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그의 안목이 훌륭해요. 취향에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안목에는 옳고 그름이 있지요. 여러 책을 만나고 깊은 대화를 나눴기에 그런 안목이 생겼을 거예요. 좋은 책을 이야기해줘요. '편지'는 사람 이야기예요. 그런데, 사적인 편지 하나와 어린 아이에게 쓴 편지를 제외하고는 높임말이에요. 그러나 대담해요. 촌철살인이지요. 프란치스코 교황, 수능을 치른 입시생들, 박정희 전 대통령, 문재인, 안철수 의원 등이 받는 사람들이에요. 시대의 인물들에서 정치인들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인 거예요. 물론 사적인 편지에는 친구와 그의 소설 안 등장 인물이 받는 사람이지만요. 그런데, 편지에 그의 성향이 드러나기도 해요. 이 세상을 그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지요. 또, 편지는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요. 그래서 개인적일 수 있어요. 그리고 신문 연재글이에요. 그래서 서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요. 그래도 우리가 외면했거나, 우리의 작은 목소리들을 그가 강하게 말해요. 고종석 씨는 김윤식 선생을 "동사 '쓰다'의 주어"이고, "동사 '읽다'의 주어"이기도 하다고 해요. 그 김윤식 선생의 전시회의 주제가 '읽다 그리고 쓰다'인 것은 정말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고종석 씨의 이 책! 그 이름은 '쓰고 읽다'예요. 아마 이 전시회의 주제에서 착안했을 거예요. 이 "동사 '쓰다'의 주어"는 고종석 씨이고, "동사 '읽다'의 주어"는 우리겠지요. 즉, 우리는 그가 쓴 이 책을 읽어요. 그런데, 모두 공감할 수는 없어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그가 바라본 책과 사람은 어떻다는 건 알 수 있어요.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시인은 책을 '인간의 영혼을 실어 나르는 마차'라고 노래했어요. 저는 고종석 씨가 만든 이 마차를 타고 즐겼네요. 그가 바라본 책과 사람! 그 풍경! 새로운 세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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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유행이 있지 않은가. 유행의 한가운데에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이 자신이 읽은 책 얘기를 쓴 것들이 있었더랬지. 물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추세이고. 일단 소나기 오면 피하는 나는 유행과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한발짝 물러났고, 그리하여 최초로 서평집이라 부를 수 있는 책 얘기를 읽게 되었다. 쓰고 읽다. 작가 고종석의 문장이 좋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읽는 책을 모조리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펼치다보니 가장 큰 어려움은 문장과 어휘. 내가 이제 와서 글쓰기를 공부할 것은 아니지만 어려움을 극복해야겠다던 찰라 들었던 소문과 함께 등장한 그의 책. 그래서 작가 고종석이 무엇을 읽었나보다 그가 어떤 문장을 구사하는가가 더 궁금했더랬다. 제목도 '읽고 쓰다'가 아니라 "쓰고 읽다"니 그가 쓰는 것을 잘 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며 억측도 해보고. ㅋㅋㅋ 즐겁게 읽었다. 등장하는 책 중 상당수가 처음 들어본 것이었고, 작가 본인도 읽기 쉽지 않을 거라 얘기하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눈에 쏙쏙 들어왔다. 반말로 내뱉는 구어체 문장이 상당히 자연스럽고 말투도 젊다. (실제 그분 나이는....... ^^;;) "좋다, 나쁘다, 재미나다, 신난다" 같은 형용사를 빼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할 땐 전율이 느껴질 정도. 나의 허접한 독후기록이 자꾸 떠올라 몹시 부끄러웠다. ㅎㅎㅎㅎ '쓰고 읽다'는 크게 둘로 구성되어 있다. 앞쪽은 책을 읽은 후의 기록, 뒤는 실존인물에게 보내는 고종석의 편지. 감정을 섞지 않은 무미건조한 글을 좋아하는 나는 편지보다 책 얘기가 훨씬 좋았다. 함께 책을 읽은 이는 어려운 책 이야기보다 편지가 가슴 뭉클했다고 하니 둘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듯. 인문학 서적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 전달하는 내용보다 전달하는 방법이 더 맘에 들었던 "쓰고 읽다". 생각은 깊게, 표현은 쉽게. 나도 그리하고 싶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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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잡지 시사in에 게재된 책을 소개해주는 독서한담이란 코너의 글들을 모으고, 경향신문에 연재된 사회계각층의 인물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아논 편지코너의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때마다 전혀 몰랐던 책과 인물에 대해 새로이 알게되는 기쁨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도 아니고 감정적이지도 않다 .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짚어나간다. 과하지 않은 질책이 슬그머니 미소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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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덜 읽는 사람보다 꼭 더 지적이거나 현명한 건 아니야. 책날개에 쓰여져 있는 글이자 저자가 나에게 들려주는 말같아 옮겨 적어봤다. 그간 참 많은 책을 읽어왔다고 자만하는 마음이 한켠에 쌓여왔나보다. 이 글을 읽으며 뜨끔한 것을 보면 말이다. 처음 시작할때 다양한 독서를 중요시 했고 다음엔 정독을 목표로 삼아왔다. 다독을 목표로 할때는 시간이 날때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책을 펴들고 읽었지. 정독을 할때는 읽은 내용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며 읽었고 말이야.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왔는데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뭐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작해 보겠다는 것이 2017년 신년의 다짐이다. 읽고 싶은 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어보는거야. 그리고 그 안에서 내것을 찾아내야겠지.
일방적으로 무엇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조근 조근 속삭이듯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한권의 책이 끝나간다. 그리고 어떤 책을 읽어야 도움이 되는지의 정보 또한 들어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수있는지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펴든 것이지만 이제는 그것이 중요치 않게 되었다.《서유견문》의 저자 유길준, 개화당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겠지? '1874년(고종11)경부터 김옥균(金玉均)·박영교(朴泳敎)·박영효(朴泳孝)·서광범 등이 중심이 되어 개화 정책을 추구한 정치 집단'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와있는 내용이다. 유길준은 조선말기의 개화사상가로, 최초의 국비유학생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한 것으로 나온다. 역사를 볼때 어느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고 중립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이 중요해.
《쓰고 읽다》제목이 참 특이해. 보통은 읽고 쓰는 것 아냐? 글쓰기 공부는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고 그것을 필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가 서평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글쓰는 공부를 한다는 거였으니까. 지금은 사라진 꿈이지만 처음 시작했을때 난 60세에 한권의 책을 가슴에 품어보리라 다짐했다. 재능이 없음을 깨달은 지금은 한명의 독자로 남아 열심히 책을 읽으리라 결심했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는 작가가 필요한만큼 독자도 필요하다는 것을 핑계로 삼아가며.《쓰고 읽다》는 독서한담/ 편지로 나뉘어져 있다. 마음이 글리는 부분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예전 학생 시절 '군인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읽어가는 기분? 지금 시대 학생들은 '군인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보내는 일은 없겠지? 지금 다시 그런 편지를 쓰라고 하면 못쓸 것 같기는 해.
<편지>에는 'IS전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를 시작으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께'까지 22개의 편지글이 실려져 있다. 이 편지가 저자가 원하는 당사자들에게 전해지고 읽혀질런지는 궁금하지 않다. 다만 지면을 통해 그들에게 하고픈 말을 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특정인을 상대로 쓴 글이 아닌 '수능을 치른 입시생들에게'같은 글이 더 마음에 들어온다. 정치인이나 정치권 이야기를 싫어하는터라 더욱 그러했다.《쓰고 읽다》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그런 책이 아니다. 제목을 보고 착각했음을 말해줘야겠다. 다만 권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책속에 들어잇는 책들에 관심이 가고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해준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읽고 쓰는 것으로 나만의 글을 완성해가는거야. 2017년 1월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