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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왜 마을에서 살 수 없었을까 - 장주식 그림동화 『토끼 이야기』 오늘은 장주식이 지은 『토끼 이야기』(재미마주, 2017)를 읽으려고 합니다. 이 동화는 제목처럼 토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동화니까 토끼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겠네요. 동화는 쉽게 말하면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아빠에게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야기에는 항상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나옵니다. 이 동화 제목이 ‘토끼 이야기’니까 당연히 토끼가 이야기 중심에 배치되겠네요. 토끼가 사람처럼 등장해서 이야기를 할지, 아니면 누군가 토끼 이야기를 들려줄지는 동화를 직접 읽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동화는 토끼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자(작가라고 해도 됩니다)가 있지요.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토끼 이야기를 작가는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작가가 토끼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토끼 이야기로 작가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합니다. 자, 이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볼까요?
상미네 집에서 토끼를 마을에 풀어놓았네요. 수컷 한 마리, 암컷 두 마리입니다. 하얀 토끼가 마을 고샅길과 텃밭과 뒤란과 마당을 오가며 뛰어노는 걸 본 마을사람들은 참 좋아합니다. 평화롭고 한가로워 보인다고 말하네요. 평상에 앉은 어른들은 어린 시절 산토끼 잡던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웃고 있습니다. 토끼 세 마리가 마을 여기저기를 뛰어다닌다고 상상해 보세요. 어떤가요? 이야기는 늘 상상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읽으면 이해하기도 쉬운 법이지요. 가뜩이나 우리는 높은 건물로 뒤덮인 도시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상을 하지 않으면 토끼가 뛰어다니는 장면을 그저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토끼가 되어 고샅길을 뛰어다니는 상상을 해도 좋고, 마을사람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하얀 토끼를 바라봐도 좋습니다.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면 자기가 이야기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토끼가 마을을 마음껏 뛰어다닌 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교회 집 아저씨가 개를 풀어 수토끼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들리네요. 아저씨는 왜 마을사람들이 좋아하는 토끼를 잡은 걸까요? 아저씨는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합니다. 토끼가 내는 울음소리가 어떻기에 아저씨는 이런 말을 하는 걸까요? 아저씨는 교회 집에서 개를 많이 기릅니다. 열 마리가 넘는 개가 마당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아저씨가 사료를 들고 집에서 나오면 열 마리가 넘는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짖어댑니다. 아저씨는 자기를 반기는 개들의 이런 모습이 참 좋답니다. 이웃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하자 아저씨는 마을회관에 개 두 마리를 기증합니다. 할아버지들 보신용으로 내놓은 거죠. 아저씨가 이리 나오니 이웃집에선들 어쩌겠어요. 어느 날 수토끼 한 마리가 이 교회 집으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줄에 묶인 개들이 마당을 침범한 토끼를 보고 얼마나 짖어댔겠어요. 개들이 원래 야생성이 강하잖아요. 야생 본능이 살아난 건지 개들이 토끼를 향해 그악스럽게 짖어댑니다.
교회 집 아저씨가 참지 못하고 마당으로 나옵니다. 그리고는 사냥 잘하는 진돗개를 풀어 수토끼를 잡아버렸습니다. 아저씨는 죽은 토끼를 들고 상미네 집으로 갑니다. 상미네가 어쨌든 토끼 주인이잖아요. 잠을 잘 수가 없어 토끼를 잡았다는 아저씨 말을 상미네는 별다른 생각 없이 듣습니다. 그저께 누구네 집 개가 토끼 새끼 일곱 마리를 물어 죽였다는 말을 덧붙이네요. 상미네가 곧바로 술상을 차립니다. 죽은 토끼가 안주네요.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모여들자 술이 얼큰하게 오른 상미네는 “산토끼 토끼야”하고 노래까지 부릅니다. 마을을 뛰어다니는 토끼들을 보며 평화로움을 느끼던 사람들이 맞나요? 개 짖는 소리를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나온 아저씨는 왜 진돗개를 풀어 토끼를 잡은 걸까요? 토끼를 마당 밖으로 내쫓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상황을 보면 아저씨가 굳이 개를 풀어 토끼를 잡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아저씨는 아마도 토끼 고기를 먹고 싶었던 거겠지요.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토끼의 생사(生死)가 달라지는 거네요. 토끼 고기를 먹은 게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토끼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하고 싶은 겁니다.
수컷 한 마리는 죽고 이제 암컷 두 마리만 남았네요. 이 두 마리는 마을에서 무사하게 살 수 있을까요? 사람들 마음에 달려 있죠. 토끼가 마을에 평화를 주는 동물이라는 걸 사람들이 믿으면 되는 겁니다. 다시 사흘 뒤 사람들이 매미채나 통발을 들고 토끼잡이에 나섰네요. 토끼가 고추 모종을 먹어 치우고 새순까지 썩둑 잘라 먹었답니다. 토끼를 그냥 놔두면 밭농사에 더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아 마을사람들이 나서 토끼를 잡는 겁니다. 날쌘 토끼들은 잘 잡히지 않네요. 아이들도 소리를 지르며 토끼를 쫓지만 시간만 흐를 뿐입니다. 이틀이 또 지났습니다. 인천 할배네 집이 소란스럽습니다. 그물로 울타리를 둘러쳐서 담집으로 불리는 할배네 집 텃밭에 토끼가 들어와 난장판을 친 겁니다. 손자 손녀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작물을 토끼가 뜯어 먹었으니 할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상했을까요.
할아버지는 대문을 닫고 토끼를 쫓았습니다. 나이 든 할아버지에게 쉽게 잡힐 토끼가 아니지요. 마당을 한 두어 바퀴 돌고나서 할아버지가 먼저 지쳐서 주저앉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장이 개를 몰고 왔네요. 마을사람들도 할아버지네로 모여들어 구경을 합니다. 할아버지가 그물을 가져와 대문에 길게 치니 토끼가 도망갈 곳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장이 푼 개가 컹컹거리며 토끼에게 달려듭니다. 궁지에 빠진 토끼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개가 앞발로 토끼 꽁지를 낚아챕니다. “꼬르릉!” 토끼는 묘한 소리를 지르네요. 개 앞발에 몽톡한 토끼 꽁지가 붙은 게 보이네요. 토끼가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요? 마침내 토끼는 대문에 쳐놓은 그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토끼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전에 잡힌 수토끼 신세가 되겠지요.
인천 할배네 할매가 토끼국을 한 냄비 다복이네 집에 갖다 주네요. 예, 맞습니다. 아까 잡은 그 토끼입니다. 다복이는 신나게 토끼국을 먹습니다. 하지만 토끼가 불쌍한 다정이는 차마 토끼국을 먹을 수 없습니다. 다정이는 토끼국 한 냄비를 맛있게 먹는 엄마와 오빠를 보고서는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다음 날부터 마을을 돌아다니는 토끼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어디로 갔는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긴 사람들 눈에 띄면 좋을 게 무어겠어요? 잡아먹히기밖에 더 하겠어요? 세 마리 토끼 가운데 두 마리는 사람들이 죽였고, 한 마리는 사람들을 피해 어딘가로 떠났네요. 마을에 평화로움을 준 토끼의 최후치고는 참 비극적입니다. 작가 말마따나 토끼가 만들었던 평화로운 풍경은 채 보름이 가지 못했습니다. 토끼가 잘못한 걸까요? 하긴 텃밭에 들어가 고추 농사를 망친 건 토끼니까 사람들 탓을 하기는 힘들 수도 있겠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토끼는 과연 사람들에게 죽을 만한 일을 한 건가요?
토끼가 사라진 며칠 뒤 다복이 엄마 아빠가 뒤뜰에서 풀을 뽑습니다. 다복이 엄마는 풀을 뽑다가 토끼 생각이 난 모양입니다. 문득 “고추 모종 때문일까?”라고 다복이 아빠에게 묻네요. 아빠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엄마를 쳐다봅니다. 엄마가 다시 “토끼를 미워해선가?”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아빠는 비로소 얼마 전에 죽은 토끼 얘기란 걸 알아챕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다복이 엄마는 토끼가 마을을 뛰어다니는 게 보기 좋았습니다. 보름 만에 토끼들은 사라졌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고추 모종 때문에 토끼를 죽인 걸까요? 아니면 하는 짓이 미워서 토끼를 죽인 걸까요? 사람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토끼는 죽이는 게 마땅한 걸까요? 참 답변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농사를 망친 동물을 어느 사람이 좋아할까요? 마을사람들은 텃밭을 지키기 위해 토끼를 잡은 것이라고 말할 겁니다. 사람 일에 훼방을 놓는 동물은 당연히 없애야 한다는 논리를 펴겠지요. 멧돼지가 밭으로 뛰어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밭 주변에 전기 시설을 설치하기도 하잖아요.
이 동화에 나오는 토끼는 상미네가 기르던 집토끼입니다. 상미네 집에 있었다면 이 토끼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좁은 우리에 갇혀 사람들이 주는 풀을 오물대며 살았겠지요. 좁은 우리를 벗어나 드넓은 세계로 나온 토끼들을 상상합니다. 마음껏 뛰어다니다 보니 배도 금방 고파졌을 겁니다. 풀이 보이는 곳마다 토끼들은 달려들어 마음껏 먹었을 거고요. 고추 모종인지, 새순인지 토끼들이 어떻게 구분하겠어요.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동물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 취향에 자기를 맞추어야 합니다. 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개만큼 사람 마음을 이해하는 동물이 어디 있을까요? 사람들은 개를 자기 취향대로 길들입니다. 개 미용실에서 개털을 가다듬어주고, 개에게 옷을 입히기도 하죠. 그리고는 좁은 방안에 개를 놓아둡니다. 컹컹 짖으면 안 되니까 성대 수술을 시키는 주인도 있다네요.
개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요? 이 동화에 나오는 토끼나 개나 마찬가지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휴가철이 되면 유기견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주인들이 기르던 개를 버리는 거죠. 사람들은 동물들을 그 자체로 놔두지 않습니다. 길을 들여 사람 입맛에 맞으면 살려주고, 맞지 않으면 죽여 버립니다. 말 그대로 사람 마음대로죠. 텃밭을 망친 토끼들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텃밭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동물들을 먼저 제거할 생각을 합니다. 동물들을 잡는 데 들이는 비용도 만만치 않겠지요. 먹을 게 있는 동물들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내려오지는 않을 겁니다. 동물들도 살기 위해 사람들이 농사짓는 텃밭으로 내려온다는 얘기지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동물들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잖아요.
자연생태계에서 인간이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인간은 길들인 동물은 곁에 두고, 길들이지 못한 동물은 자꾸만 바깥으로 내몰려고 합니다. 이 동화에 나오는 토끼는 왜 마을에서 살 수 없었을까요? 인간이 길들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애완견이 텃밭을 망치는 경우는 없잖아요. 길들이기 힘든 토끼를 사람들이 고운 시선으로 볼 리는 없지요. 토끼나 멧돼지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토끼나 멧돼지처럼 개가 텃밭을 망친다면 사람들은 개에 대해서도 다른 마음을 먹겠지요. 사람들은 자기들 삶에 이익이 안 된다는 이유로 동물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궁지에 몰린 토끼를 물어뜯는 개를 보면서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마을에 평화를 주던 토끼가 보름 만에 마을에서 사라진 것은 결국 사람의 시선으로 토끼를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토끼는 토끼일 뿐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토끼에 어떤 의미를 붙이려고 하는 겁니다. 애완견이라고 해서 다를까요?
토끼는 토끼로 놀 때 가장 행복하고, 개는 개로 놀 때 가장 행복합니다. 인간은 토끼가 살 영역을 따로 정해서 그 밖으로 토끼를 내몰고, 개가 지닌 이미지를 그린 다음 그 이미지 속으로 개를 집어넣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개를 가족처럼 대한다고 합니다. 개를 아예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다른 동물들보다 개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동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개를 사랑하는 마음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개를 향한 마음이 정말로 개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개를 들이다 보니 개가 생활하는 영역이 좁아지고 있습니다. 좁은 사육장에서 병들어가는 개보다 사람들 취향에 맞춰 길러지는 개가 여러분은 더 행복한 것 같나요? 거기에는 동물의 본성을 억눌러 사람들 취향에 맞추는 폭력이 스며들어 있지는 않을까요?
이 동화에 나오는 토끼 이야기는 그래서 앞으로 벌어질 개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 삶에 방해가 되면 개 또한 토끼 신세가 될 거라는 얘기입니다. 아니라고요? 개는 토끼와 다르다고요? 토끼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개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깊다고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토끼와 개는 왜 다른 건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토끼는 안 되고 개는 되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요? 사람들이 애완동물로 개를 선택하지 않고 토끼를 선택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토끼 신세가 달라지고, 개 신세도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서 토끼는 토끼대로, 개는 개대로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 입장에서 토끼나 개를 생각하지 말고 토끼나 개 입장에서 그네들을 생각하는 길은 정말로 없는 걸까요? 이 동화를 읽으며 우리가 곰곰이 생각할 대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