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75%
  • 리뷰 총점6 25%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6.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작고 가녀린 희망의 나라
"작고 가녀린 희망의 나라" 내용보기
우리가 앞날에 관한 전망을 이야기할 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박기범 동화작가가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의 사연. 박기범 작가는 2004년 16대 국회에서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에 단식을 하며 반대했다. 보름 동안의 단식을 마치고 찾아간 곳은 안동 일직면 조탑리. 권정생 선생님은 아주 몸이 좋지 않으신데도 그날따라 반겨 맞으며 좁디좁은 방안까지 들여주셨다. 그리고 두어
"작고 가녀린 희망의 나라" 내용보기

우리가 앞날에 관한 전망을 이야기할 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박기범 동화작가가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의 사연. 박기범 작가는 2004년 16대 국회에서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에 단식을 하며 반대했다. 보름 동안의 단식을 마치고 찾아간 곳은 안동 일직면 조탑리. 권정생 선생님은 아주 몸이 좋지 않으신데도 그날따라 반겨 맞으며 좁디좁은 방안까지 들여주셨다. 그리고 두어 시간 말씀을 하셨는데 그 때 하신 말씀 중에 단식은 왜 했느냐고, 그런 거 하지 말으라고, 하려면 한 천 명이고 만 명이고 다 같이 청와대 앞으로 가서 굶으면 모를까, 혼자 그리 굶는다 해서 어찌 되겠느냐 했다. 지금같이 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말씀이셨다.

 

그러면서 환경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을 비판하셨단다. 환경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죄 차를 몰고 다니면서 독한 연기를 뿜고 다니는데 그게 무슨 환경운동이냐고, 텔레비전에서 전쟁 반대 데모 같은 걸 봐도 얼굴에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하는데 그래서 어떻게 전쟁을 반대하겠느냐고. 기름 때문에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기름을 그리 써대면서 무슨 전쟁을 반대하느냐고. 결국 운동이 아니라 습관이고 실천이 문제였던 것이다. 선생님은 당신의 생각을 직접 글로도 썼는데 그것은 월간 <작은책>(2004년 8월호,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에서 볼 수 있다.

 

우리 인류의 앞날에 관한 전망을 이야기한 이 책 또한 운동이 아니라 습관이자 실천이 문제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문제를 모르기 때문에 앞날의 전망이 어두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설 속 현실은 오늘날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현실과 닮았다. 공기와 물 그리고 음식물의 오염과 독성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다. 원자로의 노심 용해도 큰 위협 요인으로 자리 잡는다. 군사 지출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나라가 붕괴하고 있는 동안에도 정치인들은 한물간 의제를 두고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온갖 분야에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아주 적은 세력이지만 어두운 전망에 맞서 싸우는 세력이 있다. 피폐한 현실 사회에 회의를 느낀 헌신적인 사람들은 그 위기에 대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하고, 점차 신선한 희망들이 고개를 내민다. 무모한 듯 당찬 물리학 지망생 루 스위프트가 독특한 태양전지를 발명하는데, 이는 오염을 유발하는 화석 에너지에 대한 인류의 의존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것이다. 메리사 다마토는 개벌지와 침식된 숲의 복원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어머니 로라는 발암성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 공장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화학물질의 희생자들인 암환자들과 함께 특공대 그룹을 조직한다. 현실정치에 환멸을 느낀 저명한 국회의원 베라 올웬은 생존 지향적 미래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풀뿌리 정당을 조직한다.

 

이렇듯 자본과 국가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미국 안에 또 다른 국가 혹은 사회인 ‘에코토피아’를 세우기에 이른다. 실상 우리의 바람직한 앞날이 있다면 에코토피아라야 하며 에코토피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동안 지구에서 자신을 포함하여 생명의 진화나 멸종에 너무 두드러진 역할을 해 왔다. 그리하여 지구의 생물학적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유일한 희망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인간 종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영원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지구 전체로 볼 때 아주 적은 소수이며, 여전히 파괴적인 행동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에코토피아가 지구의 작고 가녀린 희망의 섬인 것도 분명하다. 하여 우리는 에코토피아 사람들의 계명을 일상에서 실천하여 습관화하며 앞날의 역사를 새롭게 세우고 볼 일이다.

 

더 이상 하지 말라!

- 다른 종을 멸종시키지 말라

- 핵무기나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지 말라

- 발암성 물질이나 돌연변이 유발 물질 제조하지 말라

- 음식에 불순물 넣지 말라

- 성별․나이․종교나 인종적 태생의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

- 자가용 타지 말라

- 텔레비전은 광고업자에 구애받거나 일방적인 방송을 하지 말라

- 유한책임회사 설립하지 말라

- 부재지주가 회사를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말고 직원 1인당 한 표식 투표하라

- 인구 증가하지 말라.


YES마니아 : 골드 g*******g 2009.12.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희망을 시뮬레이션하다
"희망을 시뮬레이션하다" 내용보기
희망을 시뮬레이션하다  (1)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에코토피아≫의 속편이다. 그러나 ≪에코토피아≫를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다. 그래도 이야기는 ≪에코토피아≫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사실, ≪에코토피아≫(어니스트 칼렌바흐)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좀 시들했다. 유토피아에 대한 책 치고 ‘좋은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
"희망을 시뮬레이션하다" 내용보기

희망을 시뮬레이션하다  (1)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에코토피아≫의 속편이다. 그러나 ≪에코토피아≫를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다. 그래도 이야기는 ≪에코토피아≫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사실, ≪에코토피아≫(어니스트 칼렌바흐)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좀 시들했다. 유토피아에 대한 책 치고 ‘좋은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트 리들리는 ≪본성과 양육≫에서 ‘유토피아 이야기’에 대해 아주 아프게 꼬집는다.

 

…유토피아적 공상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유토피아가 지옥이라는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편협한 개념에 의존하여(종이 위에서든 거리에서든) 사회를 설계하려는 모든 시도는 언제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로 끝난다.

서양의 유토피아는 플라톤에서 시작된다. ≪국가론≫에서는 타고난 가치를 가진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플라톤의 공상을 전체주의적인 몽상이라고 칼 포퍼는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히틀러의 제3제국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틀은 비슷해 보인다. 그 이후에 나온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유토피아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스키너의 ≪월든 투≫ 모두가 숨막히는 전체주의 국가를 다루고 있다. 최근 영화에서 보여준 <마이너리티 리포터>나 <이퀄리브리움>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퀄리브리움>은 모든 사람을 강제로 ‘평등’하게 만드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다른 사람이 다르게 사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평등하게 만들려고 한다. 당연히 ‘자연스러운 인간성’은 그것에 반대하고 마침내 <이퀄리브리움>은 깨져버린다.

그런 것은 예술 작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 공동체 건설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러나 그 ‘공동체’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곳은 드물다. 공동체주의에 대한 내 의견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지금까지 있었던 공동체주의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동물 개체는(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다 다르다. 그것은 수백 억년 동안 진화해오면서 목숨 있는 것들이 가지게 된 생존 전략이다. 조금씩 다른 개체가 다른 만큼 다르게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공동체들은 다 다른 개체를 하나의 규칙 아래 묶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자연스럽지 못한 조직 원리로 만들어진 공동체라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것은 그동안 많은 ‘공동체’가 실패로 끝았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생 시몽과 샤를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에서부터 존 험프리 노이스와 바그완 슈리 라즈니시 같은 실천적, 모험적 공동체주의자들은 하나같이 개인의 자율성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동체는 현실화되지 않았거나, 붕괴되는 것으로 끝났다. 그 이유는 공동체 핍박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개인주의로 인한 내적 갈등도 컸다.

개인적인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섹스였다. 공동체주의자들이 내놓은 섹스 문제 해결책은 금욕적인 생활이거나 ‘새로운 섹스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금욕적인 섹스 문화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섹스 문화도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소설 ≪에코토피아≫를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 속에서 보이는 섹스 문화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도 있다. 여자의 자유로움이 어처구니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고도 하고(가부장적인 생각으로 보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소설이니만큼 헐리우드 영화 같은 재미를 더하려고 넣은 에피소드라고 짐작하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는 잘못 짚은 것 같다. ≪에코토피아≫는 다른 유토피아 소설과 그 출발점부터 다르다. 대개의 유토피아 소설 속 세계는 전체주의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짜 만들어진 곳이다. 위대한 지도자(지도자가 없다면 교조주의적인 교리)의 지도 아래, 그것에 짜맞춘 삶 속에 사람들은 갇힌다. 본성(본성이라고 여겨지는 본성)이나 양육에 따라 사람을 ‘달라지게 만듦’으로써 유토피아를 만들어내겠다는, 빗나간 열정이 빚어낸 비극이다.

그러나 ≪에코토피아≫는 마치 시뮬레이션을 보는 것 같은 소설이다. 오늘날 우리가 풍족한 사회를 이루고, 누리지만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강력한 동력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고 있다. 경제학이니 경영학이나 하는 학문들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좋아하는가, 또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를 예측하기 위한 인문학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까 똑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오늘날 이 시점에서 정답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것이 바뀌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정답은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선택이 바뀌면 따라 바뀌는 것이다. ≪에코토피아≫는 그런 방식으로 씌어진 소설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에코토피아라는 나라는 ‘만들어진 유토피아’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움직이게 만들고, 조직하고 구성하는 원리가 ‘자본주의’라면, 그곳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원리가 다를 뿐이다. 친환경적인 조직 원리가 조직 구성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답답하거나 괴로운 비극적인 세상이 아니다. 합리적이고 환경적인, 자연스러운 조직원리에 바탕한다면 사람들은 멋진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준다.

에코토피아에서 사는 사람들은 한 주에 20시간 일한다. 그보다 일을 더 많이 할 때도 있다.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한다. 그래서 일은 일이면서 놀이이기도 하다. 당연히 질로든 양으로든 생산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시간 노동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한국과 같은 노동환경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스웨덴과 같은 나라가 비슷한 원리를 바탕으로 노동력이 조직되었고, 그 곳의 생산성이 무척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런 식의 혁명적인 생각은 교통체계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멀리서 출퇴근하지 않는다. 도심 속에서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산다. 차나 버스가 빠르게 달릴 이유도 없다. 시속 16킬로미터로 느리게 달리는 버스와 배터리로 시속 50킬로쯤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쓴다. 좀 멀리 가야 한다면 기차가 있다. 자기가 살아가는 생활권에서는 자전거를 쓴다. 자전거는 어디서든 누구나 필요할 만큼 널려 있다. 물론 도심에도 나무가 많고, 맑은 개울이 흐른다.

이런 교통 문제에 대한 에코토피아의 입장은 지난호에서 다룬, 이반 일리히의 책 ≪자전거는 행복을 타고 온다≫를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자동차는 이미 빨리 달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 때문에 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자동차는 자전거보다 더 빠르지도, 더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반 일리히가 지적한 것처럼 교통 문제를 ‘혁명적인 생각 방법’으로 바꾸어 적용하면 ≪에코토피아≫처럼 되리라 싶다.

그것처럼 이 소설 속의 이야기는 생각하는 방법, 사람들이 어떤 것에 좀더 높은 가치를 두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그 속에서 남자나 여자가 다 다르면서 다름을 존중하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이 페미니스트 소설로도 읽히나 보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페미니즘을 여자 중심 생각으로 여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참된 페미니즘은 사람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생각에 바탕한 것이다. 사실 가부장제는 남자중심제가 아니라 권력중심제이다. 페미니즘은 권력의 그늘에서 억압받는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에코토피아≫를 무슨 파시즘 사회처럼 보는 ‘교조주의적인 자본주의 광신자’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보여주는 세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적인 고정관념을 좀 풀어헤쳐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재미도 없을 뿐 아니라, 무슨 헛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문화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황당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상식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만일 이 책에서 ‘이야기’만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지겨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이반 일리히와 같은 사람의 생각을 삶으로 구체화시키면 어떤 세계가 만들어질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무척 재미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최근에 읽은 수십 권 가운데 가장 즐거운 만남이었다.

b******y 2009.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에코토피아 비긴스] 자연주의 - 낙관적 관점에서 그리는 미래상
"[에코토피아 비긴스] 자연주의 - 낙관적 관점에서 그리는 미래상" 내용보기
1. 자연주의 관점에서 꽤 낙관적으로 미래상을 그려낸다. 2. 일종의 시민단체의 생성과 그 부수적인 과정도 그려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느낄 수 있었던 건 위의 두가지가 전부이다. 읽다보니 이상하게 눈이 아파오던 책..-_-;   딱히 재미가 있지는 않다. 쓰여진지 꽤 오래된 책이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문체 자체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서술되는 방식에 있어서 다소 진부하고
"[에코토피아 비긴스] 자연주의 - 낙관적 관점에서 그리는 미래상" 내용보기

1. 자연주의 관점에서 꽤 낙관적으로 미래상을 그려낸다.

2. 일종의 시민단체의 생성과 그 부수적인 과정도 그려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느낄 수 있었던 건 위의 두가지가 전부이다. 읽다보니 이상하게 눈이 아파오던 책..-_-;

 

딱히 재미가 있지는 않다. 쓰여진지 꽤 오래된 책이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문체 자체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서술되는 방식에 있어서 다소 진부하고 고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었던 건, 일반적인 관점과 다소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그 방법들이 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이라서 가능한 부분들도 있겠지. "이거 이렇게 해보자!"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다 우르르 몰려들어서 기꺼이 그걸 되게 하는 그런 자발적인 조직이 세상이 몇개나 있겠냔 말이다.)

 

책의 띠지에는 "현재 미국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예견한 책"이라고 되어있지만, 그보다는 예상되는 어떤 위기들도 모두 착한 마음으로 헤쳐가면 "우린 모두 잘 될거에요 :)" 라는 이상적인 사회를 그려낸 책이라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도 1980년대에 나온 책이라고 하기에는 이 책의 각 부분에서 나오는 각종 병폐들이 현재의 것과 크레 다르지 않아서 현실감이 없지는 않다. 뭐랄까. 배경은 현실감이 있으나 그 논조가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다는 그런 기분?

 

재미가 있다-없다를 말하기가 좀 애매한 책이다. 아무래도 다소 고루한 부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인 듯 하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이런 책에는 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뭐랄까. "어색한 책"이라는 표현이 그래도 적절한 편이라고 생각된다.



w*****y 2009.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에코토피아 비긴스
"에코토피아 비긴스" 내용보기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쓰여졌으나,그럴법한, 가능성이 내제돼있다.   최근, 공기업 특히 발전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자주 나누고 있었는데,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초반부터 발전소들의 위험과그들이 비밀스럽게 사회에 끼치고 있는 생태학적 피해를 꼬집고 있다.   미국 서북부의 한 소수민, 소수 마을, 소수 주에서 에코토피아란 오염되지 않은 가장 이상적인 나라를 설립하는 과정이
"에코토피아 비긴스" 내용보기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쓰여졌으나,
그럴법한, 가능성이 내제돼있다.

 

최근, 공기업 특히 발전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주 나누고 있었는데,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초반부터 발전소들의 위험과
그들이 비밀스럽게 사회에 끼치고 있는 생태학적 피해를 꼬집고 있다.

 

미국 서북부의 한 소수민, 소수 마을, 소수 주에서 에코토피아란
오염되지 않은 가장 이상적인 나라를 설립하는 과정이
그려지지만, 단지 작가의 상상력이 뛰어나다라는 평을 내리기보단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책이랄까..

 

나는 자연보호를 외치고 봉사활동에도 관심있게 참여했왔던 사람이나
생태계보호가 최선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환경단체적 견해를 짙게 가지고 있지 않으며,
기계, 발전, IT등의 과학발전산업에 언제나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또 그것에 따른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등잔밑의 위험요소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있기도 하다.

 

인간이란 뛰어난 두뇌를 가진 영장물에 의해 지구가 파괴된다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약간의 운명론도 믿고 있다.)

h****9 2009.09.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