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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빛 : 숯이나 먹의 빛깔과 같이 어둡고 짙은 빛
책장을 덮은 후에 오는 숨막힘, 답답함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짙누르는데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먹먹함을 감싸안은 채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이 책은 나에겐 너무 어려운 숙제같다.
그들은 학교에 모여 죽어간 사람들을 찾아가며 복구 작업에 힘쓰는 한 편,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간다. 며칠 뒤 등대 할아버지를 제외한 대부분이 섬을 벗어나기로 하는데 …… 그 날 밤, 야마나카와 미카의 침낭이 비었음을 보게 된 노부유키는 그들을 찾아나선다. 구석진 곳에서 미카 위에 올라타 꿈틀거리는 야마나카를 발견하고 격분한 그는 자신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야마나카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를 목졸라 숨이 끊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지나, 모두 각자의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또다시 검은빛이 드리운다.
작가 미우라 시온이 인간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표현해냈다고는 하나, 그 예리함을 나는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덤덤하게 읽었던 탓일까. 문장 하나 하나의 예리함을 뼈 속 깊이 알수는 없었고, 그것이 나로서 좀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번에 다시 읽게 된다면, 문장 하나 하나를 주의깊게 살펴봐야겠다.
작가가 밝힌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는 '폭력' 이다. 구체적으로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은 사람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 2009년 1월 소설 스바루 인터뷰 중에서
쓰나미 피해를 겪어보지 못했다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책 역시 작가가 아닌 이상에는 핵심을 짚어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어떤 특별한 것에 초점을 맞춰서 써야할 지도 막막하다. 이 책이 시사하는 것이 불합리화, 폭력이라고 하나 그 안에 거미줄처럼 엮인 무수한 사건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폭력하는 아버지로부터 학대받고 자라난 다스쿠, 그에게는 일그러지고 더럽혀진 영웅이 하나 있다. 때론 친절하나 무심한 노부유키다. 그는 오직 미카를 위해서만 살고, 행동하는 남자다. 미카는 노부유키를 이용하지만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노부유키가 자신의 약점을 잘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잘못되어 얽혀버린 그들은 모두 검은빛을 지니고 살아간다.
평범하고 무난하고 지루하기도 했던 미하마 섬에서 쓰나미라는 거대한 폭력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줄 곧 이어지는 무수히 많은 폭력들이 이 책에서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다. 너무도 막연하지만,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안개 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참혹했고 무서웠던 <검은빛> 처럼 누구나 무관심, 방관자의 역활로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내면 속에 울렁이는 잔인한 폭력성을 어떻게 방치하고 있는지 <검은빛>을 통해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책 속 밑줄 긋기>
동정이나 애정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있는 한, 형벌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자기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준 자가 설령 교도소에 3년 동안 갇혀 있다고 한들 아무런 기쁨도 감정도 느낄 수 없다. 형벌은 기껏해야 '이 정도로 참아줘' 라며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덮고 얼머무리는, 반창고 정도의 힘밖에 갖지 못한다. 배가 고파 죽어가는 생물에게 먹을 것과 비슷하게 생긴 발포 스티로폼 모형을 주고 배를 채우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마워하며 모형을 베어 무는 놈은 어리석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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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는 <光(Hikari)>이다. 말그대로 그냥 '빛' 이다. 그리고 한국판 제목이 <검은 빛>인데 다 읽기도 전에, 몇 쪽 읽지 않아 '그냥 그 제목 그대로 했어도 됐을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검은'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이 빛은 충분히 어둡다.
누군가에게는 더욱 짙은 어둠이 오히려 빛이 된다.
다스쿠에게 있어 노부유키는 그런 존재다. 다스쿠의 암흑뿐인 생에서 노부유키는 오롯이 더 짙은, 완전한 어둠을 이룬 존재이고 그렇기때문에 더 빛난다. 이 끝없는 어둠이 구원의 빛과도 같은 것이다. 되지도 않는 연민과 동정으로 멀리서 방관하고 있는 다른 이들보다 철저한 경멸과 죄의식 없이 목적을 위해 폭력을 행하는 노부유키야 말로 다스쿠에게는 폭력에 찌든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명이 되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폭력으로 도배된 자신의 생을 폭력을 모르는 눈으로 보는 이들과 달리 폭력을 행하는 자로서의 냉철함. 거짓된 감정으로 점철된 노부유키가 끝내는 것이야 말로 맞는 죽음이라고 여긴 것 같다. 아마도 쓰나미로 그들만 남아버린 그 순간이나 혹은 그 이전부터.
노부유키의 마음과 충성이 사랑이었다고 하면 사랑, 혹은 그 자신의 말대로 소유욕이나 과시욕이었다 해도 그렇다고 믿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노부유키는 미카를 '사랑'한다고 믿었고 부인 나미코와 아이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그리는 풍경화같아서 눈으로 보기에 예쁜 풍경을 보고 감동한 마음을 자신의 그림에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아이의 그림은 그림일 뿐. 그 풍경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하는 것처럼, 나미코와 딸 쓰바키에게 사랑을 흉내낸 감정을 보여도 그건 흉내일 뿐,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는 곳에 있다.
원하는 대상은 자신을 원치 않고, 원치도 않는 대상은 자신을 원한다.
그 꾸며낸 온화함 뒤에 가려진 죄의식 없는 폭력성이 어둠뿐인 노부유키를 더욱 깊게 만든다.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는 웃는 가면과 등대지기 할아범에게 사들인 콘돔쪼가리만 남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어둠과 슬픔을 정작 노부유키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짓누른다.
글 전체를 휘감고 있는 '폭력'은 노부유키의 부인 나미코에게서 또다시 이어진다. 아버지에게 받았던 폭력의 기억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딸 쓰바키에게 행하고 쓰바키는 악몽을 꿀 정도로 무의식에 남은 타인이 남긴 폭력과 더불어 제 어미에게 받은 폭력을 기억할 것이다. 폭력은 되물림된다. 그리고 폭력은 그것을 외면해 고개를 돌리는 곳곳에서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누군가를 죽였을 지도 모르는 남편의 폭력을 애써 덮는다. 거짓으로라도, 죽는날까지 평범한 생을 연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폭력은 덮어야 할 존재일 뿐. 폭력은 그런 존재로 남는다.
쓰바키라는 이름이 잔인하다 생각했다. 동백꽃은 아름답지만 노부유키와 다스쿠, 미카에겐 동백꽃이란 그저 과거의 기억. 잊고싶은 표상일 뿐. 그런 이름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다 노부유키같은 사람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우라 시온의 글을 보며 종종 놀래곤 한다. 과연 이 글을 쓴 사람이 저번의 그 책을 쓴 사람이 맞나 하고.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나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의 정감가고 어깨동무하고싶게 만드는 것과 <그대는 폴라리스>나 <비밀의 화원> 등에서처럼 쓸쓸해서 어깨를 웅크리게 만드는 것이 있는 반면, 또 이렇게 어둡고 섬뜩해서 손을 움켜쥐게 되는 글이 모두 한 작가의 글이라는 사실이. 재미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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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소재,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인간의 검은 내면을 파헤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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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의 양면성을 철저히 가지고 있는 '검은 빛'
책 속에서 저자는 바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기본적인 부분을 섬마을이라는 한정된 배경속에서 보여준다. 저자는 가능한 공간과 시각적부분을 한정하려한다. 최대한 한정시키고 압축시키어 검은 빛이 다른곳으로 퍼져나가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는 검은 빛깔의 모습들을 한정된 공간속에서 마음껏 표출한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고 산다.
우울함과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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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콧물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늘 학교에 결석하는 친구가 있었다.. 검은빛이라는 책을 보면서 계속적으로 떠올려지는 기억이었다...나의 인생속에서 이렇게 생각나는대로 끄적댄 내용들이 바로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들이다....극단적인 폭력이 몰고오는 인생의 고통들..한 섬에서 평화롭고 그 나이의 맞게 살아가야할 아이들이 겪어야했던 수많은 폭력과 거부할 수 없는 아니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 폭력(쓰나미)으로 섬 체가 죽어버린 그때 남은 아이들의 마음속도 이미 죽어버린것이다..그렇게 폭력은 인간성과 현실과 도덕과 사랑을 죽여버린다.. 노부유키....미카...다스쿠는 미하마섬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다...전체 섬주민들이 죽어버린 그때 그들은 살아남았다....노부유키와 미카는 또래의 성적 호기심을 그대로 나타내는 아이들이고 일반 가정의 아이들답게 자라나는 우리와 똑같은 아이들이었다..하지만 다스쿠는 알콜중독인 아버지 요이치에게 늘 맞고 폭력에 찌든 외롭고 비굴하고 눈치보고 위로받고 싶은 상처받은 아이이다....그럼 노부유키와 미카는????? 하지만...어느날 그들은 밤늦게 섬 꼭대기 신사에서 만나게 되고 그 순간 섬은 쓰나미에 모두 죽어버린다.....한순간에 모든것이 사라져버린 곳....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그리고 살인...사랑...집착....배신....탐욕....또 다른 폭력.....그리고....사라지지 않는 현실!!!!!~~~~~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것이다....그리고 그 폭력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들어설 준비를 할 지도 모른다....조심하라....폭력에 무감각해지지 않게.. 참..말많다...하지만 이렇게 말많이 안하고는 이야기가 안된다....나는 그렇다....모든 생각을 글로 옮기지는 못해도 순간 떠오른 내용들은 끄적거려대야...나름..독서후의 정화가 되지 않겠나?...그러지 못한다면...아마도 난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잊혀졌던 기억들과 새록새록 다가오는 무감각화된 폭력사이에서 후회를 거듭할 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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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난 후, 미카는 연예계의 스타로, 노부유키는 평범한 가장으로, 다스쿠는 노부유키의 아내의 불륜남으로 다시 재회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다스쿠가 생각하는 어긋난 생각, 미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노부유키, 노부유키와 아내 나미코의 딸 쓰바키가 당한 정신적 폭력으로 인해 공황상태에 빠진 나미코 등, 이어지는 폭력과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세상에 돌아오며, 또 다른 폭력과 협박사건으로 돌아오는데.... 상처를 사랑으로 감싸안는 것이 아니라, 상처에 괴로워하며, 다른 상처를 만드는 일을 선택하는 과정이 등장한다. 의도와 관계없이, 본심은 전해지지 않고, 누군가를 위한 선의가 누군가를 살해하는 폭력으로, 살인을 교사하는 행동으로, 살인을 알면서도, 너무나 의지했던 상황을 벗어날 수 없기에 묵인하는 과정 등, 다양한 포즈로 등장함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항거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무력한 대응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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