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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 존 밴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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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이런 회상의 문장을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명확한 줄거리대신 웅얼거리는 느낌. 칭얼댄다고 하면 더 어울리겠다. 하고 있는 사람조차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를 것 같은 그런 이야기. 듣든지 말든지 나는 신경쓰지 않겠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좀 들어봐봐. 내 가슴엔 이런 상처가 있으니, 지금은 나를 좀 달래줘봐, 하는 내용으로 읽혔다.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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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이런 회상의 문장을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명확한 줄거리대신 웅얼거리는 느낌. 칭얼댄다고 하면 더 어울리겠다. 하고 있는 사람조차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를 것 같은 그런 이야기. 듣든지 말든지 나는 신경쓰지 않겠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좀 들어봐봐. 내 가슴엔 이런 상처가 있으니, 지금은 나를 좀 달래줘봐, 하는 내용으로 읽혔다.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아픔을 준다. 주인공 맥스는 오십대 후반이다. 암진단을 받은 후 1년동안 투병하던  아내가 죽은 뒤,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휴가지를 찾는 것으로 喪妻한 마음을 달래려한다.

 

하지만 그 장소에는 또다른 죽음이 있다. 기억에 또렷이 각인 된 죽음. 아내의 죽음과 교차해 그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이 소설은 화자의 기억에 따라 제멋대로인 듯 흘러가지만 실은 마지막 반전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화자는 자신이 자신이기를 부정하며, 더 나은 사람으로 변모하기를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부모의 이혼과 가난, 변변찮은 재능,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이 노력만으로 자신을 가둔 세계를 뛰어넘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영악해보이는 주인공은 디딤돌로 삼을 주변인들을 늘 모색해왔으며 그들이 바로 죽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남긴 것으로 지금의 자신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화자를 고통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 고통의 기억이 이 책의 기둥이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기억이 몇 조각 있을 것이다. 잠시만 방심하면 불쏙불쑥 떠오르는 기억들. 책을 읽는 동안 화자의 그런 기억들을 공유하게 된다. 어린 시절 엿보던 그레이스 집안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지켜보던 자신의 눈동자. 자신을 다른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라보는 화자의 기억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잠깐 책을 덮고 내 기억의 숲을 뒤적이는 나를 보게 된다. 내게도 화자와 같은 기억이 있고, 그건 아마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화자는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위대한 예술가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책은 화가 보나르에 관한 내용이다. 보나르의 일화를 생각하며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에 감탄하지만 자신과는 다른 부류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도 누구나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책을 읽다보면 자주 내 생각과 닮은 사람의 글을 읽고 있다는 감탄에 빠지게 된다.

 

영원한 것은 없는 세상이다.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 또한 언제가는 죽고 말 것이다. 죽고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소멸이다. 이런 생각들이 책 전체에 흐르고 있다. 살아가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 회상의 소설을 읽는 동안 내게서 떠나지 않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올해 11월의 빛은 겨울 이상의 어떤 것을 예시하는 듯해 씁쓸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

 

다른 해보다 빨리 겨울이 온 것 같은 올해의 11월의 끝에서 마치 11월 같은 소설을 읽으며 소설처럼 우울해졌다. 바깥 날씨조차 흐리다. 화자가 들려주는 죽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살아있는 오늘이 축제처럼 좋지도, 비명처럼 놀랍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과 삶은 우리의 입체적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준 잔잔하지만 적나라한 내용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억할 만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t******e 2017.11.29. 신고 공감 11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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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 존 밴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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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이 많아 천천히 읽었다빛이 부서져 내리는 바다를 조용히 홀로 그리고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파도 소리가 싸아 싸아 들리는 것 같다 *그 빛은 유년으로, 그애의 유년과 나의 유년으로 곧장 통하는 통로였다. 클레어가 어려서 이 방에서, 이 침대에서 잘 때, 아래층 서재에서 들리는 내 타자기 소리 듣는 걸 좋아했는데.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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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문장이 많아 천천히 읽었다

빛이 부서져 내리는 바다를 조용히 홀로 그리고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파도 소리가 싸아 싸아 들리는 것 같다

 

*

그 빛은 유년으로, 그애의 유년과 나의 유년으로 곧장 통하는 통로였다. 클레어가 어려서 이 방에서, 이 침대에서 잘 때, 아래층 서재에서 들리는 내 타자기 소리 듣는 걸 좋아했는데.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애는 말했다. 생각하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말이에요. 나로서야 내가 생각하는 소리가 어떻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 반대겠지, 나는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아, 하지만 얼마나 먼가, 지금은, 그날들이, 그 밤들이. 역시 아이는 차 안에서 나한테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클레어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약간 성깔이 묻어났다. "저녁 드실래요, 안 드실래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아이는 가버렸다. 과거 속에서 사시네요, 그래, 그렇다.

 

*

그 끝도 없이 이어지던 시월의 밤들에 우리는 어둠 속에 나란히 누워, 마치 쓰러져버린 우리 자신의 조각상들처럼 누워, 견딜 수 없는 현재로부터 유일하게 가능한 시제로, 과거로, 머나먼 과거로 탈출을 시도했다. 우리는 함께 보냈던 첫날들을 돌이켜보면서, 서로 상기시키고, 고쳐주고, 도와주었다. 마치 오래전 함께 살았던 도시의 성벽을 따라 팔짱을 끼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두 고대인처럼.

 

*

"이상해" 애나가 말했다. "여기 있다는 게, 그런 식으로, 그러다 없어진다는 게."

 

YES마니아 : 플래티넘 c*******l 2017.03.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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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밸빌 :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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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내려앉은 밤바다를 오랜시간 걷는 기분이 든다. 익숙하진 않지만 아름답게 이어지는 문장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 마지막에 가서는 환상의 빛이 생각나기도 했다. : 17  나는 햇빛이 쏟아지는 텅 빈 오후에 스테이션 로드를 따라 걸어갔다. 산기슭과 맞닿은  해변 쪽빛 아래 담황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바닷가에서는 모든 것이 수평선으로 납작해졌다.  세상은 땅과 하늘 사이에 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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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내려앉은 밤바다를 오랜시간 걷는 기분이 든다. 

익숙하진 않지만 아름답게 이어지는 문장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 

마지막에 가서는 환상의 빛이 생각나기도 했다. 



: 17

  나는 햇빛이 쏟아지는 텅 빈 오후에 스테이션 로드를 따라 걸어갔다. 산기슭과 맞닿은

  해변 쪽빛 아래 담황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바닷가에서는 모든 것이 수평선으로 납작해졌다.

  세상은 땅과 하늘 사이에 눌린 긴 직선 몇 개로 줄어버렸다.

  나는 빙 둘러서 시더스로 다가갔다. 어린 시절에는 어째서 내 관심을 끄는 새로운

  것마다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풍겼던 것인지? 권위자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것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알려진 것이 다른 형태로 돌아온 것이라던데, 유령이 된 것이라던데.

  그러나 대답할 수 없는 그 많고 많은 것 가운데 이것은 가장 하찮은 것이다.  


: 19

  당시,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삶의 많은 부분이 고요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렇게 보인다.

  늘 곁에 머무는 고요. 살핌. 우리는 아직 모양이 정해지지 않은 우리의 세계 안에서

  기다리며, 그 남자아이와 내가 서로를 살피듯, 들판의 병사들처럼 무엇이 다가올 지 지켜보며

  미래를 살피고 있었다.


: 67

  클레어는 잠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다가 이내 울기 시작했다. 소리는 없고 눈물 뿐이었다.

  우리 앞의 높은 유리벽에서 떨어지는 바다의 마지막 광채를 받아 반짝거리는 수은 구슬들

  같았다. 우는 것, 그렇게 소리 없이 우발적으로 우는 것도 아이가 자기 어머니를 닮은 점이다.


: 137

  어린 시절에는 행복이 달랐다. 그때는 그냥 축적하는 것, 뭔가를ㅡ새로운 경험을,

  새로운 감정을ㅡ가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마치 광택이 나는 기와인 양 언젠가 놀랍게 

  마무리될 자아라는 누각에 올려놓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쉽사리 믿지 않는다는 것,

  그것 역시 행복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 147

  "그렇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지 마." 애나가 말했다.

  "나도 당신을 미워했어, 조금은. 우리도 어차피 인간이었으니까."




YES마니아 : 로얄 t****j 2017.03.2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