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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喜怒哀樂] 아리스토텔레스는 "화는 공격당했을 때 일어나지만 적개심은 그렇지 않고서도 일어날 수 있다. ...화는 시간이 진행에 따라 점차 사그라질 수 있지만 증오는 사그라지지 않는다....화는 고통을 수반하지만 증오는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다"(p49) 라고 정의하고 있다. 참 명료한 정의다. 무엇보다 증오는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저자인 윌러스 게일린은 '증오'란 단순한 타인을 향한 강한 분노의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의 결과로 인해 비이성적인 행동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저자는 증오에 대해 표면적인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증오를 불러오는 다양한 측면의 원인들을 분석함과 동시에 증오의 감정을 예방할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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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좋은 사람과 그리고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며,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평범하고 보편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사람을 해하거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우리는 9.11테러 등을 경험하면서 비행기를 몰고 빌딩으로 돌진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우리의 가치관과 보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그들을 막연하게 비정상적인, 혹은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테러리스트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증오]는 일반적인 생활 속에서 한 인간이 한사람 혹은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증오를 키워나가고 자신의 희생을 성스러운 역할로 생각하고 있는지 심리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정리하여 놓은 듯 하다. 특이할 만한 사실은 증오는 애착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애착이 그 것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대상에 대한 적개심에서 출발하며 그것은 여러 가지 심리학적 원인과 정신적 비정상 활동이 정상화 되는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인 사생활을 기본으로 보았을 때에도 증오를 유발하는 인자는 사람들이 모두 겪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 글에서 두려움 혹은 위협감을 초래하는 여러 느낌을 설명하고 있는데, 박탈감/ 불평등, 불공평, 불공정한 느낌/ 배신감/ 착취와 조종을 당하는 느낌/ 좌절감 등에서 자진을 위협하는 정신적 느낌이 격노의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격노는 증오의 시작은 될 수 있으나 증오의 감정과는 다른 느낌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여 이런 감정의 발전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의 느낌이 정신벽적 증세와 결합하거나 문화와 사회적으로 그런 감정이 정당화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들의 생각을 보편타당하다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로 인식하게 된다. 사회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종교 혹은 이데올로기는 그 집단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고 그것을 신봉하였을 경우에는 보편적이지 못한 행동이 오히려 찬양 받는 그런 상황까지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테러리스트, 그 들은 분명 나의 생각이나, 내가 속한 무리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나 사회로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그 들의 세계에서는 그 들이 영웅시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다만 그 들의 행동은 인류의 역사가 혹은 세월이 흐른 뒤에 후세들이 판단을 하여 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해하고 그 들의 생활을 예기치 못한 공포 속으로 밀어 넣은 부분에 대하여서는 사람의 세상이라면 정당화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보편타당성은 생명의 존엄 즉 적이라도 생명의 존엄을 보전하여 주는데 그 근간을 두기에 그 들의 생성과정은 이해하더라도, 그 들의 행위는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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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보다는 고통을 선택하자. 자신의 아픔과 절망을 타인에 대한 증오로 회피하지 말고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고 성찰하자. 고통은 이해를 증진시키지만 증오는 몰이해와 차별을 부른다. 증오에는 번뇌나 고민이 필요없다. 고민은 병과 아픔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그러나 증오는 다만 그 대상에 대한 차가운 절연과 집착만 존재할 뿐 이해하려는 일말의 노력조차 전무하다. 증오는 집단적 분위기를 통해 집단적으로 전염되는 사회적 바이러스이다. 이런 증오 바이러스는 사회적 위기감과 존재적 불안감을 먹고 자라나며 결국 무고한 희생양을 자기치유를 위한 핏빛 처방전으로 삼는다. 마치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의 논리처럼 내재적 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만만한 희생양을 선택해 악마화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잘 알 것 같지만 사실 감정이란 미묘해서 자기 자신도 오판하거나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성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감정은 사실 이성의 힘보다 강력한 어둠의 파워가 된다. 특히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은 비이성의 기초이며 인성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영한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파괴력이 강한 것이 증오이다. 저자 윌러드 게일린은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에서 증오의 기제를 밝히려고 한다. 거시적인 관점은 사회심리학적 시각에 기초해서 증오의 문화적 맥락을 설명한다. 미시적인 관점은 정신분석학적 시각에서 개인적 차원의 증오의 기제와 특성을 설명한다. 개인적 차원의 증오는 크게 감정, 관계, 사고장애, 애착으로 구분되어 설명된다. 우선 책이 내리는 증오의 정의를 살펴보자. 「지속되는 격노의 감정이며, 그 감정이 개인의 일상 대부분을 차지하고, 증오의 대상을 관찰하고 괴롭히는데 즐거움을 느끼며, 항상 강박적이고, 또한 비합리적이다.」(48쪽) 「증오는 적이라고 지각된 대상에 대한 감정과 편집적 사고와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관계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78쪽) 저자는 감정적 측면에서 화나 격노를 증오와 구별한다. 증오는 타인과 집단에 대한 공격적인 충동이 오랜 기간 구조화된 복잡한 감정이다. 생명이나 재산 등 실질적인 위협 못지않게 지위나 명예, 자존감 같은 상징 세계에 대한 위협이 점증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는 느낌, 배신감, 착취당하고 조종당하는 느낌, 좌절감, 굴욕감 같은 복잡한 감정이 격노, 나아가 증오로 가는 선상에 있다고 지적한다. 사고장애로서의 증오는 기존의 정신분석학에서 '투사'라고 부르던 '편집적 전환'에 기인한다. 편집적 전환은 자신의 실패와 불행의 원인을 외부의 적과 집단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스스로를 가련한 희생양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에 죄책감과 두려움은 격노로 바뀌고 수치심은 울분으로 바뀐다. 애착으로서의 증오는 증오 집단의 특징인 '배타적인 우리'의 동일시기제를 설명한다. 배타적인 동일시는 '적 만들기'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데올로기적인 적, 영토적인 적, 희생양 이 세가지는 증오의 문화 시나리오의 구성요소가 된다. 책은 증오에 의해 지배되는 공동체를 크게 '증오의 문화'와 '증오자들의 문화'로 구분한다. 증오의 문화는 나치독일처럼 증오를 낳고 조장하는 자연적인 공동체를 말하고, 증오자들의 문화는 전 세계에 걸친 신나치주의자들처럼 다양한 배경의 개인들이 공통된 증오란 단 하나의 요소만을 가지고 만들어낸 인위적인 공동체를 말한다. 저자가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증오에 관한 다른 입장들도 소개된다. 가령 저자는 도덕적 상대주의에 반대하는데 지나친 도덕적 상대주의는 악의 개념을 은폐하고 도덕적 책임감의 귀속여부를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증오가 인간에게 정상적인 감정이라는 가설과 애초부터 씨가 나쁘다는 식의 유전적 환원론에 모두 반대한다.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나 사회적인 이유로 증오를 설명하는 이론에도 회의적이다. 이런 외재적 접근법은 내적 갈등의 원인을 외적 요인의 탓으로 돌리고, 결과적으로 확실한 가해자를 애매한 피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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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관계 상황이나 상태. 미워하는 감정 또는 느낌.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것, 싫어함. 적대감, 나쁜 의도와 악의. (p.35)
"HATRED"라는 단어를 "증오"로 번역하는 바람에, 거기에다 "테러리스트의 탄생"이라는 무시무시한 부제를 붙인 덕분에 무작정 테러리스트의 증오를 다루는 사회학 도서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내가 원하던 방향과는 정 반대의 내용이 진행되었는데 어그러지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개념정리가 어찌나 명확하고 깔끔한지 금새 반해버렸다. 욕망 심리를 다루는 대부분의 심리학 도서가 학설로 뒤덮였다면, 이 책은 풍부한 예와 "증오"를 구성하는 인간의 기본감정들의 정의를 통해 오히려 중요한 정보를 얻는 느낌이다. <증오>는 테러리스트의 탄생을 다룬 사회비평적 내용이 아니라 증오의 정의, 증오의 뿌리와 종류, 증오의 문화를 탐색해가는 심리학 도서에 속한다.
"증오"는 어떤 면에서 "사랑"의 반대말로 사용할 수 있다. 애착을 기본으로 하는 극단적 감정이란 점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황이나 상태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둘을 동일한 위치에 놓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증오"는 "미움"과는 명확히 다른 감정이다. 영어단어 "HATRED"는 "미움" 너머 모든 "증오"까지 뭉뚱그려 포함하는 의미지만 우리말의 "미움"과 "증오"는 분명 다른 의미를 가리킨다. 우리는 나쁜 짓을 한 친구를 "미워"해서 싸우지, "증오"해서 파괴시키지는 않는다. 친구와의 싸움 한 판에 인생이 달라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수로 벌어지는 사고를 제외하고, 약간의 관계의 흠 때문에 죽이기 위해 친구에게 달려들지는 않는다. 반면에 "증오"하는 사람들의 기본감정은 파괴, 목적도 파괴다. 평범하게 교육받고 자란 일반의 보통 사람이 일으키는 일련의 해프닝은 보통 "증오"가 아니라 "미움"이라고 봐야 한다. "미워"하는 감정이 겉으로 표출되어 그 대상을 파괴하는 경우에 비로소 "증오"가 된다. 애정결핍이나 가난에 고통받으며 자란 사람이 부자들만 선택해서 살해하는 행위나 알카에다 조직처럼 명확한 이유없이 관심끌기용으로, 힘의 과시나 두려움 전파를 목적으로 일삼는 테러를 예로 들 수 있다. 박탈감이나 불공정한 느낌, 두려움, 배신감, 좌절감, 굴욕감 등 "증오"를 만들어내는 감정들은 수없이 많다.
개개인의 관계에서 보면 배신은 남녀 사이의 문제에서 가장 정확하게 드러난다. 버림받은 연인은 분노의 모든 인자를 다 가지고 있다. 애착이 그곳에 존재한다. 버림받은 연인은 단지 사랑에서 미움으로 감정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성적인 의미가 포함되면 격노는 더욱 복잡해진다.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자신의 성에 대한 개념은 힘과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우리 문화에서 남성에게는 자신의 성이 곧 힘과 남성다움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경우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힘센 남성의 도움을 받아 생존하게 하는 도구로 본다. 성적 가치를 공격받는다는 것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된다. 성적인 배신은 자살 폭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사악함과 잔인함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머리에 맞은 상처나 등에 칼에 찔린 상처가 한두 개 있다면 강도나 낯선 이를 의심하지만, 외상이 수십 군데라면 상처받고 버림받은 애인과 관계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p.69)
그 소년은 종교적이지만 학대하지는 않는 집안에서 자랐으며 미숙하고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었다. 그는 열다섯 살이었으며 여자와 한 번도 성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시절 캐나다의 작은 마을에서는 그 나이까지 성 경험이 없는 것이 드문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위 행위를 통해서도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껴 본 일이 없었다. 그는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해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온 여덟 살 난 여자아이를 보고 유인했다. 소년은 여자아이의 옷을 벗겼으며, 아이의 벗은 몸을 보고 자위 행위를 했다. 이때만 해도 그는 아이에게 손을 대거나 해를 가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20분이 지나도록 사정을 하지 못해 좌절하자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놀란 여자아이가 흐느끼다가 소리쳐 울기 시작했다. 그는 들킬까 봐 겁이 나서 자기보다 더 놀란 여덟 살 난 여자아이에게 조용히하라고 소리쳤는데, 그거싱 아이를 더 겁나게 했다. 그는 격노와 두려움이 섞인 채 아이를 조용히 하게 하려고 칼을 들어 계속해서 아이를 찔렀고, 결국 아이는 죽었다. (p.75)
그런데 "미움"과 "증오"가 반드시 별개의 감정만도 아니다. 저자는 정신병자와 정신병질자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정신병자는 망상과 환각으로 인해 정상판단이 불가능한 사람을 일컫지만 정신병질자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여 정신병의 범주에서는 제외되었지만 논리적인 비약을 하는 심각한 흠이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히틀러, 스탈린 등이 여기에 속하며 이들은 어떤 단체에 가입하더라도 단체의 공통된 목적에 공감하거나 동일시하지 못한다. "증오"의 폭발력으로만 봤을 때 정신병자보다 정신병질자가 훨씬 위험군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정신병질자는 정신병자와 구별하기 힘들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테러리스트들의 "증오"가 표출되는 땅,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외부자의 시선이다. 증오의 영역은 생각보다 넓고 깊다. 서양의 국가들에 투입되는 자살폭탄 테러자들을 보면 테러의 정의도 모를만큼 어린 소년, 소녀들이다. 종교적 분쟁이나 영토 분쟁 등 심각한 국제문제를 감안하더라도 기껏 열 몇 살 먹은 아이들이 타국에 와서 죽어갈 이유가 없다. 뭘 위해서 그들은 선택했을까?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자살테러의 주동자들은 대부분 자발적인 선택을 했고, 테러의 댓가로 고향의 가족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얻는다고 한다. 또 9.11 테러에 사용된 항공기 조종사들이 세계 제일의 조종 기술을 보유 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위호식할 기회를 과감히 던져 버린 채 스스로 죽음의 길로 걸어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나치 독일이나 현대 알카에다의 만행은 그저 대상없는 "증오"가 부른 파괴의식에 불과하다. 정치적으로 무언가 요구하는 것 같지만 파헤쳐보면 그 뿌리는 결국 "증오"의 감정에 있다. 목적은 없고 수단만 있는 "증오"의 감정.
그러고보면 "증오"의 영역은 일상생활에서도 꽤 넓은 편이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연쇄살인범은 우리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TV에서 뿐 아니라 내가, 우리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 세계적으로 눈을 돌리면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노예 제도, 여성 학대, 아동의 노동 착취, 종족 말살 등의 심각성도 보일 것이다. 그들의 실상은 훨씬 심각한 수준인데도 아프가니스탄과 이스라엘의 사태에 비해 현저히 가려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세계평화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경고하는 넬리 작스의 시를 인용한다.
당신은 방관자
그들을 모른 척하고 당신이 제비꽃을 꺾으며 놀고 있을 때
넬리 작스, <오, 그 굴뚝> (p.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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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일도 미워하는 일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사랑하는 일은 온 세상이 아름다워 한없이 행복하겠지만, 미워하는 일은 온몸을 불구덩이에 내던진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다. 정말 무서운것은 미워하면서 그 사람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테러리스트들의 자신의 생명도 불사하는 테러 행위의 근간은 무엇인지,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다. 어린 소녀가 폭탄을 들고 자폭하는것도,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것, 어떤 이유를 대든지 간에 그 입장에 설 수 없다. 개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에 영향을 준 다른 문화적 규준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극단적인 증오가 생겨난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 원인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막을수 있을것인가? 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그런일들을 터득하고 세뇌당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강대국에 의해서 그들의 피해는 알려지지 않은체 그들이 행한 극단적인 행동들만 우리에게 보여진다면 어떤가?
뉴스에서 나온 연쇄 살인범을 사이코패스라고 말하고 그들의 행동양식에 대해 추적해 본다. 그의 어린시절이 불우했으며 힘든시절이야기가 나온다. 불우한 어린시절 보내면 다 살인자 되나? 정신병이라는 진단만 받으면 죄를 짓고도 병원에서 요양할 수 있다. 확실한건 죄를 지었으면 거기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것은 어떤이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지 진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가 학대를 받아서 심각한 정신병이 있을수도 있고, 단지 벌을 피하기 위해서 쇼를 하고 있는지 말이다.
끔찍한 대학살이라면 20세기에 일어난 유태인 학살을 빼놓을 수 없을것이다. 전에 읽었던 책에서 유태인의 피부를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비누로 만들었다는 내용을 읽고는 끔찍함에 몸서리쳐졌다. 인간이 그런짓을 했다는것이 무섭게 느껴진다. 유태인을 그토록 증오하게 만들고 학살하게 만든 히틀러와 그 일당들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 그리고 방관했던 강대국들. 이 책에서는 사람의 감정의 변화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테러리스트의 심리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다. 증오는 절망감에 대한 방어이다. 증오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세상을 심하게 왜굑해서 받아들인다. 증오는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한 감정이다. 저자의 말처럼 훨씬 더 큰 위험은 항상 개인의 비참함을 냉소적으로 악용하고 조종하려는 사람들,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증오를 조장하고 조직화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런것들로부터 우리는 온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
인상깊은 구절증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관계 상황이나 상태, 미워하는 감정 또는 느낌.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것, 싫어함. 적대감, 나쁜 의도와 악의., p.35.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증오문화가 더욱 싹트기 시작한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증오의 옆에는 심술 맞은 ‘시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지존파’사건에서 인육을 먹으며 잘 사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의 이면에 증오가 있었다.
이 책 ‘테러리스트의 탄생 증오’의 내용은 증오에 대해서, 감정으로서, 사고 장애로서, 애착으로서의 증오와 증오의 문화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감정과 사고, 애착은 뗄레야 뗄 수없는 불가분리의 법칙이다. 저자인 윌러드 게일런은 임상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신 치료와 정신 분석에 정통한 정신과 의사이며 이론가이고 교육자이다. 그는 자신의 평생에 걸쳐 인간의 감정을 연구했다. 이 책 역시 그 결과물의 하나이다.
증오의 시작은 성경의 인류의 첫 가정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담과 하와 두 부부에게서 태어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말이다. 가인은 아벨이 더 나은 제사를 드렸음을 알고 시기하여 동생 아벨을 돌로 때려 죽였다. 난 이 시기 안에 증오의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에서 있었던 수많은 살인들 역시도 그럴 것이다. 난 TV프로가운데 역사를 다루는 사극을 좋아하는데 선덕여왕이나 천추태후만 보더라도 그 드라마안의 내용가운데서도 얼마나 많은 증오가 있는지 볼 수 있다. 친척이 아니더라도 형제간에, 부모 자식간에, 부부간에도 말이다. 우리가 너무나 많이 보고 있어서 실감을 못했을 정도이다.
증오의 가장 분명한 점은 그것의 근간이 강렬한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증오는 그 본질을 ‘관계’에 두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증오의 가장 정확한 반대말은 ‘사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랑” 지존파 역시도 그 사랑 안에서 변했다고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끝까지 믿어주고 신뢰해주는 사랑 지금은 그러한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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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감정이 존재하고 그 감정을 어떻게 억제하느냐에 따라서 행동으로 표현하거나 혼자서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동물에게도 감정은 있지만, 사람만큼 다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감정을 억누를 줄 알며 ‘자제’라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그리고 그런 감정 중에서 격한 감정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증오」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는 ‘테러’는 사람의 감정이 격해져서 결과적으로 ‘테러’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증오’라는 감정은 ‘분노’나 ‘화’의 감정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즉 ‘증오’는 심리적인 질환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증오에 대한 원인과 증오의 마음이 생기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는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적으로 ‘증오’에 대해서 분석하고 해석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9·11 테러가 생각이 난다. 정말 충격적이었고 저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기가 막히는 사건이었다. 이처럼 ‘테러리스트’들은 세계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품는 감정은 ‘증오’라는 감정이 점차 발전해서 종교 문제, 사회 문제, 국가 문제, 개인 문제 등 다양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과 부딪혀 ‘증오’라는 감정으로 변해버리고 결과적으로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으로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것이다.
‘증오’라는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끝까지 이끌어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에 그 감정은 질투나 분노, 화로 분산되어 버리기에 ‘증오’라는 감정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며 ‘증오’라는 감정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심리적인 질환으로 감정이라고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가 점점 커져서 종교, 사회, 집단, 국가로 확산하여 결국 행동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오’라는 감정을 이 책에서는 그 과정과 해결책 및 예방을 제시하고 있기에 ‘증오‘, ‘화’, ‘분노’가 하나의 감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모두 다른 감정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절제해야 하는 부분이 ‘증오’라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렵고 무섭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증오’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감정에 대해 또 다른 면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증오’라는 감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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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테러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대한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 사건이 아닌가 싶다. 이후로 세계의 소식안에 들어있던 자살공격이니 폭탄테러니 하는 단어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별히 테러의 위험을 느끼지 않던 우리 땅에서도 테러에 대한 공포와 경각심을 일깨우게 되었던 거 같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을 고소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성에게 황산테러를 가한 사람이 있었다. 사람을 다치게 하고 가족을 잃게 하며 한 인간의 일생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테러는 왜 하는 걸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화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각자의 주장이 아무리 다르다고는 하나 그런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비이성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성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삶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고 배신에 치를 떨수 있으며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분노하게 하고 더 나아가 증오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인간의 본질은 원초적인 본능적 충동에 의한다. 모두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것이 해소가 안될때 질투를 하고 시기를 하게 되며 그 끝에 갈등과 공격적 성향을 띠는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미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로서 이해할 수 없었던 증오자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악의 측면에서만 테러자들을 볼 것이 아니라 폭력의 이유와 심리상태 그리고 희생자들과의 연관성을 파악해 봄으로써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게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증오를 「지속되는 격노의 감정이며, 그 감정이 개인의 일상 대부분을 차지하고, 증오의 대상을 관찰하고 괴롭히는데 즐거움을 느끼며, 항상 강박적이고, 또한 비합리적이다.」(48쪽)으로 정의하고 있다. 책은 아주 흥미롭다. 감정의 차이라 할 수 있는 화를 증오와 구별하고 자기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며 특히나 부모 등 주위의 영향력있는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닮아가려는 성향인 동일시와 모방이 성인이 된 후의 사람의 성향을 결정하는데 결정적 영향력을 준다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단지 테러리스트만의 이야기는 아닌 거 같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나 성격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게 변해가는지,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내제되어 있는 폭력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대해서도 생각해 볼 거리를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심층연구해 보았다는데 큰 의의를 지니는 책인 거 같다.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
![]() '잘되면 내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옛말도 있듯이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고 남이 가진것을 부러워하고 배 아파하기도 하며 잘못된 일들이나 실패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이 시기하는 마음이 증로로 발전하게 되며,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테러리스트의 원동력이 바로 증오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계 각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테러와 증오 문화의 원인을 심리학적, 정신 의학적으로 심층 분석한 이 책은 증오자의 마음이 어디서 비롯 되었는지와 증오가 심리적 질환임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증오의 감정적 토대가 되는 '화'나 '격노'는 증오와 분명히 구분되며, 화는 함축적으로 순수한 감정인 반면 증오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공격적인 충동이 오랜 기간 구조화된 복잡한 감정임을 밝힌다. 증오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처받은 감정으로부터 증오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생명이나 재산 등 실질적인 위협 못지않게 지위나 명예, 자존감 같은 상징 세계에 대한 위협과 박탈감,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는 느낌, 배신감, 착취당하고 조종당하는 느낌이나 좌절감, 굴욕감 같은 복잡한 감정이 가장 극한의 화인 '격노'이며 이는 모든 '증오'의 바탕이 된다고 지적한다. 격노는 뜨거운 감정이며 증오는 차가운 열정이라고 말한다.
증오는 적을 만들어 희생양으로 삼는다. 영토적인 적일 수도 있고 종교나 사상에 의한 ‘이데올로기적인 적’일 수도 있데. 영토란 땅뿐만이 아니라 상징적일 수도 있으며, 상징적인 영토를 두고 대립하는 예로 후투 족과 투치 족의 오랜 다툼이 낳은 부룬디와 르완다의 전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인이 품은 증오는 그들의 삶이 비천하다고 여기는데 있으며 알카에다 지도자 역시 스스로 없는자로 인식한다. 비단 돈뿐만 아니라 자기 존중감 박탈이 원인이라 할수 있다.
통신망의 발달로 지구상의 여러 나라들에 흩어져 있던 증오자들이 유대감과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고 다른 사회의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고 상대적 박탈감이 커져 불평등,좌절등의 격노가 외부로 그 원인을 돌리게 된다.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적대감이나 이란과 이라크 사이의 적대감은 서로 단합하여 알카에다를 지지하는 동안에는 적대감이 잠시 보류되고 알카에다는 거대 악마인 미국에 대해 강렬한 증오와 시기를 공유함으로써 국가적 경계를 넘어서 거대한 증오자들의 모임이되었다.
현대는 많은 나라와 집단이 살고 있지만 인종차별, 빈부 격차, 종교와 이데오로기의 갈등등 많은 문제들로 지구촌 곳곳에서 테러나 크고 작은 분쟁들이 끊이질 않는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해결 해야할 과제이며 올바른 가치관 형성과 도덕성을 지닌 인간성 회복이야말로 도덕적 세계를 이루는 길이며, 인류 보전을 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고 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