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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더불어 숲을 이루는 생명의 공간을 바란다.(파블 12기 5-1)
"더불어 숲을 이루는 생명의 공간을 바란다.(파블 12기 5-1)" 내용보기
연초록 잎이 갈맷빛으로 물들어가는 5월 초부터 시작된 연휴를 즐기려는 차량 행렬은 열병식 하듯 이어진다. 고희를 넘은 어머니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금요일 버스를 타고 고향 집을 찾았다. 유년시절부터 자라온 집은 세월 따라 퇴락하여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집 나간 이의 발길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녹차를 따야 하는 때면 잊지 않고 찾아온 방문객을 맞으며 사십 년 전의 기억 속
"더불어 숲을 이루는 생명의 공간을 바란다.(파블 12기 5-1)" 내용보기

  연초록 잎이 갈맷빛으로 물들어가는 5월 초부터 시작된 연휴를 즐기려는 차량 행렬은 열병식 하듯 이어진다. 고희를 넘은 어머니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금요일 버스를 타고 고향 집을 찾았다. 유년시절부터 자라온 집은 세월 따라 퇴락하여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집 나간 이의 발길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녹차를 따야 하는 때면 잊지 않고 찾아온 방문객을 맞으며 사십 년 전의 기억 속 추억 한 방울 마음에 떨어뜨려 파란을 일으킨다. 저녁 설거지를 끝낸 밤 9, 서둘러 잠자리에 드는 것은 이튿날 일을 오롯이 행하려는 이유다.

 

   “일어나라. 동네 사람들 모두 밭으로 간다. 잠자러 왔나?”

    라는 어머니의 소리에 놀라 일어나면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지난밤 어슴푸레한 꿈 속 기억을 되뇌며 눈을 비비고 양치질한 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주먹밥과 간식·포대를 챙겨 일터로 향한다. 이슬 머금고 있는 찻잎을 따며 어머니와 그동안 품고 지냈던 일들을 주고받는다. 무한 재생되는 동네 어른들 이야기에 흥미는 가신 지 오래지만 홀로 일하는 어머니의 고독한 마음을 헤아리며 맞장구를 친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호응하는 일은 한 생명이 존재할 이유를 실어준다. 하나의 생명이 두 개의 생명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랑임을 일깨운다는 대목은 왠지 모를 공감 능력을 발현하며 사는 일에 인색한 것은 아닌지 반추한다.

 

   범죄자를 구금하는 물리적 공간인 교도소 생활은 바깥에 사는 이들에게는 착각을 일으키는 정치적 공간으로 속박 없이 살아갈 자유를 함의한다. 통혁당 사건으로 스무 해를 수감자로 살아온 저자는 그곳에서 만난 재소자들의 삶을 통해 견고한 관념의 틀을 깨고 교도소를 새로운 배움의 연장에 놓인 대학 생활로 여겼다. 사회의 모순 구조가 첨예하게 밀집된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이유를 찾아 스스로 그들과 함께 지내려 저자는 결단을 내렸다. 일류대 최고의 학과에서 공부한 그의 이력은 재소자들과 함께 하는 작업장 일에서도 벽으로 작용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힘겹게 살았던 이들과 먹물 옷을 입은 지성인으로 대별된 그는 언어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검증받으려는 각오로 버림을 실천했다. 책을 통해 습득한 관념적 논리를 허물고 상대의 처지에 입각하여 인식을 정확히 하는 일에서부터 관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과서적 범주를 벗어난 다양한 경험 속에 사회구조적 특성을 통찰하는 안목을 키우며 더불어 성장하는 길을 탐색하는 시기로 삼았던 대학 생활은 소외 계층과 연대하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지향하였다. 1986년도에 대학에 입학하였을 당시 대학가는 군사독재 정권 퇴진을 위한 시위가 이어졌고, 대자보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회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등을 모색하는 일로 촉발된 관심은 연대를 통한 시위 대열에 동참케 하였다. 평화적인 촛불행진의 원류로 삼을 1987년 유월 항쟁의 민심은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열기를 더하였다. 수레를 끌며 과일 행상하는 이는 서면 광장을 걷는 시위대를 응원하기 위해 과일을 나눠줬고, 인근의 병원 근무자들은 마스크를 나눠주었던 감동적인 장면은 30년이 다 되어가도지만 명징하게 떠오른다. 퇴근 후 넥타이부대까지 가세하여 민주화를 향해 결집된 열망은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 조치 시행을 끌어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는 흐려져 부정, 부패는 만연해졌다.

 

   거대 자본의 바퀴에 물린 작은 바퀴를 열심히 돌려야 생존할 수 있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 경제적 자생력을 기르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화폐 중심으로 치닫는 자본주의는 물질적 낭비와 인간적 낭비를 가속화하여 관계를 파탄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타인에게 물건을 팔아 이윤을 챙기기보다는 물건의 쓰임이 여럿에게 도움을 주고 환경에도 이로운지 살피는 노력은 관계를 살피어 정성을 다하는 모습으로 투영된다. 화폐를 통한 교환에만 비중을 두기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교감으로 남을 재화의 재구성으로 시장은 자리해야 한다.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려던 젊은 청년은 식량을 마련하지 못할 때 가게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공생 관계를 떠올리는 구절에서는 타인을 고려하는 선량한 마음을 읽는다.

 

   질곡의 공간인 수감생활에서 만난 이들의 출소를 앞두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벌이는 송별식에서 유일하게 아는 노래인 시냇물을 불러 숙연한 분위기를 만든 일화는 목울대를 적신다.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을 수도 없는 곳에서 20년을 보내고 출소하여 들은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갇혀 지낸 시간의 강직이 순식간에 풀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무명의 껍데기를 벗고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과 맞닥뜨린 대학 생활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찰하며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일깨워주었다. 학회 일을 함께 하며 크고 작은 일을 풀어가는 자리의 뒤풀이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는 양성우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이라는 곡목이었다. 애절하면서도 처연한 소리로 선창하면 하나둘 노래를 같이 불러 정의로운 세상을 구현하려는 의연한 가치를 추구하는 연대의 움직임은 커졌다. 누군가의 우산을 들어주는 것보다 그와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진정한 도움임을 새기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 아픔의 치유를 위한 실천은 작은 관심에서부터 촉발된다. 때 묻지 않은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여럿이 더불어 살아갈 세상을 바라며 생명체를 품고 살아갈 공생의 숲을 그린다.

 

n*****9 2017.05.05. 신고 공감 10 댓글 7
리뷰 총점 종이책
그는 내게 얼레가 되고 냇물이 되며 죽순의 마디가 되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얼레가 되고 냇물이 되며 죽순의 마디가 되라고 말했다." 내용보기
때로 어떤 이름은 삶의 어느 때와 단단히 결박될 때가 있다. 신영복이라는 이름이 그렇다. 그 이름은 내 20대와 떼어낼 수 없다. 그의 책을 처음 읽었고 더불어 벗하면서 사람과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과 가슴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타인의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나로서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혼돈과 불안의 나날들을 그래도 자맥질을 하며 겨우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
"그는 내게 얼레가 되고 냇물이 되며 죽순의 마디가 되라고 말했다." 내용보기

  때로 어떤 이름은 삶의 어느 때와 단단히 결박될 때가 있다. 신영복이라는 이름이 그렇다. 그 이름은 내 20대와 떼어낼 수 없다. 그의 책을 처음 읽었고 더불어 벗하면서 사람과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과 가슴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타인의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나로서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혼돈과 불안의 나날들을 그래도 자맥질을 하며 겨우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신영복이라는 구명조끼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랬던 그는 이제 여기에 없다. 그것도 예전 인기를 끌었던 가요의 제목처럼 벌써 1년이다. 1주기를 맞이하여 유고집이 나왔다. 그가 살아 생전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 중 미처 책으로 엮이지 못한 글들이 여기에 실려있다. 얼레에 무수히 감긴 실처럼 그의 책에 절로 내 질긴 그리움이 거듭 칭칭 감기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렇게 단단하게 얽히고 뭉친 그리움으로 육신 없는 혼의 언어를 소중히 받아든다.



 표지에 눈이 오래 머문다. 저자가 직접 쓴 글자들이 모여 있는 품새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지난 겨울 광화문 광장에 있던 내가 떠오른다. 이 글자들의 운집이 그 밤, 나 역시 일원이 되어 내부에서 목을 빼들고 바라봤던 촛불의 행렬과 꽤 닮아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냇물아 흘러 흘러’라는 노랫말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때 바라봤던 촛불의 행진은 문자 그대로 함께 더불어 흘러가는 강물로 보였으니까. 어둠의 압제에 굴하지 않고 저마다 작은 빛이라도 되어서 정의가 바로 서고 위계에 상관없이 공정하며 아프고 약한 자의 마음을 먼저 돌볼 줄 아는 데다 사람이 오로지 사람이기에 존중받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밝히겠다는 의지로 묵묵히 흐르고 있는 빛의 강은 그야말로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란 그의 말을 절로 떠올리게 했다. 힘겨운 겨울이었다. 그 겨울, 밤바람을 맞으며 광장에 서 있었던 것은 겨울 한파보다 더 시리고 매서운 현실의 칼바람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모두가 너나없이 밤을 낮처럼 밝히는 하나의 숲이 되었던 덕분에 다행히 희망을 만들고 지켜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막 하나의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난파 중인 배에 고리를 걸어 그저 침몰을 막은 것에 불과하다. 이제 이 배를 어떻게 수리하고 어느 곳으로 몰고갈지 생각해야 한다. 겨우 결실을 맺기 시작한 희망의 과일이 다시 파과(破果)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책무를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지 말고 자신의 것으로 여겨 대안을 구축하고 실현하는 주체로서 참여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이 더욱 운명처럼 우리 앞에 도래했다고 여겨진다. 읽어 보니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대답들이 글마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책에 있는 글들이 20대에서 70대까지 거의 전 생애에 걸쳐서 발표한 것들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마다 변치않고 일관되게 흐르는 것이 존재한다. 바위처럼 굳건하고 한결같기에 그의 신념 혹은 근본 철학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것이 말이다. 바로 '관계 중심'이다. 나는 이것이 중심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1998년에 '존재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고 하던가. 적어도 내겐 이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그는 근대까지의 서양 철학이 내내 개별적 존재에게 중점을 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덕분에 개별 존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충돌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로 인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마저 억압과 저항이 기저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은 예전의 그 역시 이런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감옥에 갇혔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얼른 상상하기 어려운, 무려 20년이라는 긴 수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늘 함께하고자 했던 민중의 밑바닥 현실로 들어갈 수 있어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드는 자신의 꿈에 있어서 바깥과 감옥이 구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꿈을 감옥에서 구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씁쓸한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무시하고 냉대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많이 배웠고 이론의 갑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가진 것도 없고 기댈 데도 없이 오로지 혼자의 몸으로 삶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그의 언어가 그들의 현실과 유리된 공허한 관념에 지나지 않았기에 제아무리 논리 정연하고 화려한 언변으로 포장되어 있어도 신뢰를 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경험이 그에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가져왔다. 시야의 지축이 흔들린 것이다. 그 때까지 그는 자기 앞의 사람을 자신이 이끌고 갈, 그만큼 그 사람에겐 자신만의 생각이나 삶의 경험이 없는 존재로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이 가진 삶이라는 거대한 맥락은 괄호쳐 버리고 눈 앞에 보이는 모습만 전부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감옥 생활을 통해, 통렬한 절망 뒤에 찾아온 혜안의 시야 속에서 그는 모든 이가 자신만큼 육중하면서도 광대한 삶의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 앞의 존재란 그저 빙산의 일각이며,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체화된 모든 삶의 내막을 다 껴안을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도. 


 나의 존재라는 것이 과연 나의 개별적 존재로서 완성되는 것인가.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그 사람들의 걱정과 어떤 배려 속에 내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내가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관계는 존재’라는 말도 생각났어요.(p. 50~51)


 바로 존재론에 빠진 서양의 시각이 그것을 무시한 채로 개인의 껍데기만 보고 있었고 그것의 한계란 그대로 그것만 공부한 그의 한계가 되었다. 그런 서양의 시각은 무엇을 낳았던가? 타인을 단순한 존재로 치부한 것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자신마저 남들에게 그렇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결국 개인은 내재된 가치에 상관없이 오로지 겉모습을 이루는 조건에 따라 쉽게 계량화 되었고 무엇과 교환될 수 있는지에 따라서만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게 되었다.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관계는 이뤄질 수 없다. 진정한 관계는 공존과 조화가 생명인데, 교환가치는 경쟁과 우열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갈수록 인간관계가 황폐화되고 와해되는 것(p. 47)은 그 때문이었다.


 사람의 얼굴이 담겨 있지 않은 우리의 머리와, 사람과의 관계가 사라져 버린 우리들의 삶 속에 사람 대신 무엇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아있는지... 참으로 섬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p. 183)


 그는 그런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사람을 교환가치가 아니라 그만이 가진 고유하고 온전한 가치로 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저마다 가진 삶의 결을 그의 처지에서 깊이 헤아릴 수 있는 관계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관계론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었고, 지식이 아니라 뼈져린 삶의 경험이 바탕된 것이었기에 한층 더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그의 삶 전체에 있어서 모음(母音)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진정한 배움을 감옥 생활이 가져다 주었기에 그는 감옥 생활을 사람들에게 '대학 시절'로 소개한다.


 내가 이것을 모음(母音)이라고 말한 것은 그냥 하는 표현이 아니다. 바로 여기서 그의 모든 신념과 작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책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전체에 걸쳐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가 석방 이후에 동양철학 연구에 더 심혈을 기울인 것이나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붓글씨가 그랬듯이 말이다. 모두 근본엔 '관계 중심'이 있었다. 개별적 사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 보다 그것이 맺는 관계를 통해 발현되는 새로운 성격을 우위에 두고 있기에 동양 철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붓글씨 또한 그것의 높은 경지는 파격을 통한 균형 잡기에 있고 그것은 관계론적 사고가 없으면 성취되기 어려운 미학인지라 한층 더 수양에 힘을 쓰게 된 것이었다. 


 결과가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중시하기 위하여 고속 도로보다 완만한 속도 속에 풍경을 음미하여 그 안에 있는 자신을 조망할 수 있는 길을 선호하는 것도 이와 관련 있었다. 결과 중시는 얼마나 잘 그리고 빨리 이루느냐가 중요하기에 성장과 속도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도로의 문화다. 하지만 그것엔 모든 것을 수단으로 전락시킬 위험마저 내포되어 있다. 바로 그 위험이 지금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다. 아주 최근의 일이다. 삼성 중공업의 거제 조선소에서 크레인이 전복하여 7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것도 노동자들이 쉬어야 할 '노동절'에 말이다. 성정과 속도에만 치중한 나머지 당연히 해야 할 안전상의 조치들을 이행하지 않은 결과였다. 희생당한 그들이 기업으로써는 손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하청 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기에 더욱 소홀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수단이 되면 어떤 비극이 찾아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역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허다하게 일어났던 사례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 언제까지 이렇게 어이없이 삶을 희생당하는 이들이 생겨나야 할까?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했다면, 그 어떤 이도 수단이 아니라 고유한 목적으로 대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성장과 속도의 혜택마저 모두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소수의 주머니만 채운다는 사실을 신자유주의 10년을 거쳐 맨 가슴으로 쏟아진 냉수처럼 선명하게 경험한 지금, '자본 논리에 맞서 인간 논리를 지키는 길이 '도로의 문화' 대신 '길의 문화', '길의 정서'를 키워야'(p. 70) 한다는 그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리라.


 이는 그대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해당된다. 그렇지 않아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로 인해 역사를 올바로 세우지 못하면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얼마나 쉽게 그리고 처참하게 왜곡될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게 된 요즘이 아니던가? 이처럼 역사가 쉽게 오염되는 근본에는 역사가 그저 과거의 사실로 국한되어 그만큼 쉽게 규정 가능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존재론적으로 개인을 바라보는 시야가 그대로 역사에도 투영되고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이다. 이런 무분별한 변질을 막기 위해서라도 역사 역시 관계론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드러난 하나의 사실로 판단하기 보다는 그것을 하나의 흐름이 표출한 것으로 보고 거기까지 진행되었던 당대의 다양한 움직임과 깊은 내막을 당대의 처지와 한계를 고려하면서 두루 헤아려 보려는 노력이 말이다.


역사의 보편적 발전 구도는 오랜 불균형 상태와 일시적인 균형 상태의 교직이다. 이것이 사회 변화를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과정으로 파악하는 근거이다. 따라서 발전과 진보의 개념은 과정의 총체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더구나 선취된 이상적 모델로부터 실천을 받아 오는 과정도 아니다.(p. 243)


 이는 특히 진보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꽤 둔중한 경고가 될 것 같다. 출근길의 지하철처럼 종착지만 생각하면 도중의 역들은 그저 시간을 지체시키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만 고집하는 이들에게 현재란 바로 그와 같을 것이다. 자신이 정한 미래의 규격에만 맞추다 보면 현재란 늘 모자라고 부족하게 보이기 마련. 그래서 현재가 가진 장점과 긍정적인 가능성 또한 쉽게 무시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자주 범한다. 흔히들 보수는 쉽게 뭉치고 진보는 쉽게 분열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최근 대선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진보가 자주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신영복 선생의 말대로 자신이 선취하려는 이상적 모델을 현실과 상대에게 강요하고 있는 탓은 아닐까? 그러기 보다는 영국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말했던 대로 현재가 지금까지의 과정이 총체로 나타난 최선의 결과라 생각하고(이것은 현실의 한계를 온전히 긍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혁 주체의 역량이 부족해서라거나, 대중이 덜 계몽된 탓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좀 더 나은 쪽으로 진전시킬 것인가에 보다 초점을 맞추었다면 대화와 협력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이 책엔 오늘날 당면하고 문제들과 관련하여 새겨 듣고 사색할만 말들이 참 많다. 더구나 이 말들은 한 순간 표출된 것들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줄기차게 그의 내면에서 영글어 왔으며 선생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까지 했기에 더욱 설득력을 얻고 신뢰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삶 자체를 통해 온전하게 구현된 '관계 중심'은 결국 나와 그의 삶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자각과 그래서 함께 이 구차한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정언 명령으로 향해 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그 일생에 담겨 있는 시대의 양'이라는 말이나 '자기의 삶 속에 파편처럼 박혀 있는 분단의 상처'나 '개인의 팔자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민족의 팔자'(p. 192)라는 말에서 그것은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한 개인을 단면이 아닌 폭과 깊이를 지닌 입체로서의 인식하는 일은 이렇게 별개의 개인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삶의 어렵고 힘든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공동 운명체로서의 인식으로 이어지고 시대의 부조리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전선도, 부당하게 고통 받고 있는 병실의 구분도 없게 만든다.


 좋은 음식을 받을 때 당신의 ‘밥’이 생각납니다. 따뜻한 겨울 난로를 만날 때 당신의 ‘방’이 생각납니다. 만원 버스 속에서 여자들과 몸 부대낄 때 나는 당신의 ‘밤’을 생각합니다. 도시의 거리와 거리에 넘치는 인파, 그 흔한 보행의 자유 속에서 나는 당신의 묶인 ‘발’을 생각합니다. 당신을 전선에 두고 혼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미안합니다. 당신을 병실에 남겨 두고 혼자 퇴원하여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곳만이 전선이 아니며 그곳만이 병실이 아니라던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p. 257)


 나는 그의 이 고백이 그가 지향하는 '관계 중심'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내가 그 어떤 높은 지위와 좋은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로지 나로 인해서가 아니라 여기엔 내가 속하거나 어쩌면 내가 전혀 모를 수도 있는 다양한 삶의 주체와 맥락들이 연결되어 형성된 것이라는 깨달음과 설령 내가 가장 환한 곳에 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 기꺼이 가장 어둔 곳에서 외롭고 아픈 이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 마음. 이것이야 말로 초혼처럼 찾아온 그가 내게 전하고 싶은 밀알의 언어라고 믿는다. 더하여 광화문의 겨울밤을 밝혔던 빛의 강이 다음으로 나아갈 바다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나로 국한하자면, 그는 관계와 과정 중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될 내가 얼레가 되길 바란다고 할 수 있다. 나만 고집하지 않고 계속 타인들과 삶이 가진 다양한 측면들을 나처럼 여기며 감아갈 수 있도록. 그것도 무한정.


 냇물의 생명은 흐르는데 있다. 설사 바다에 다다른다고 해도 냇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이 일흔이 넘어서까지 과거의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계속 재구성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듯이 말이다. 유고를 먹먹한 그리움과 함께 읽고 난 지금, 나도 그 꿈을 꾸어본다. 감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에 기쁨을 느끼는 얼레의 나를. 결코 멈추지 않고 언제나 유동하며 잘 섞이는 냇물의 나를. '떨리는 지남철'과도 같이.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어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약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p. 248)


 그렇게 오늘의 내가 아니라 달리 변화될 내일의 나를 더 기대하는 나를. 죽순의 짧은 마디에서 나오는 강고한 힘이 대나무의 곧고 큰 키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p. 204)고 했던가. 이 순간 가지게 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그런 힘을 가진 마디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려 한다. 죽순의 마디가 그 힘을 뿌리에게서 배우듯이 오늘 내가 처한 현실을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치열하게 껴안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외면도 않고 순응도 없이 보다 많이 품고 깊이 헤아리려 하며 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때까지 선생의 말은 내게 내내 '꽃세움 바람'이 되어주리라.


 봄바람은 가지를 흔들어 뿌리를 깨우는 바람입니다. 긴 겨울잠으로부터 뿌리를 깨워서 물을 길어 올리게 하는 바람입니다. 무성한 잎새와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기 위한 바람입니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아니라 꽃을 세우기 위한 ‘꽃세움 바람’ 입니다.(p. 220)






l****1 2017.05.07.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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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귀하고 아름다운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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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을 전부 알 수는 없다. 부모와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삶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알 수 있는 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거나 곁에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생을 듣는다는 건 그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온전히 감옥에서 보낸 시대의 스승 고 신영복(1941~2016)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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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생을 전부 알 수는 없다. 부모와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삶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알 수 있는 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거나 곁에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생을 듣는다는 건 그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온전히 감옥에서 보낸 시대의 스승 고 신영복(1941~2016) 선생이다. 이미 내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거대한 울림을 주었기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을 통해 선생의 다른 글을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책은 어린 시절, 대학 시절, 감옥 시절의 이야기부터 1988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 후 강연과 강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을 모은 에세이집으로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절실한 삶의 조언이라 할 수 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는 시간이며 세상이 두 번 바뀔 수 있는 시간이다.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신념을 굽히지 않은 대가는 참으로 가혹했다.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그 시간을 ‘나의 대학시절’로 부른다. 감옥에서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그것은 ‘사람’이었다.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에서 들려주는 그 시절은 이전과 다른 관계의 정립이며 인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곳이 아니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통해 배우는 삶이라고 하면 맞을까. 내게는 특별히 집을 그리는 그림에 대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지붕을 시작으로 집을 그린다. 그러나 집을 직접 짓는 이는 터를 그리고 기둥을 세운다는 것이다. 지붕부터 만들어지는 집은 어디에도 없는데 우리는 그것이 정답인 양 자신 있게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읽고 생각한 것, 심지어 내가 온몸으로 겪은 것에서마저도 껍데기만 얻고 있을 뿐이었고 껍데기로 누각을 짓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메마르고 비정한 연상 세계에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심어 나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관념적인 연상 세계를 풍부한 구체성으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181쪽)

 

 그런가 하면 감옥에서 다른 이에게 전해 들은 이응노 화백의 이야기는 먹먹한 감동을 안겨준다. 죄목과 형량으로 구분하는 재소자에게 이응노 화백은 “뉘 집 큰 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숫자로 대상화하는 게 아니라 인간 그 존재로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옥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무섭고 삭막한 곳이 아닐까 싶지만 그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귀했다. 감옥에서 여름과 겨울 중 어느 때가 더 힘들까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일반적으로 더위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옆 사람의 체온을 감사하는 겨울이 더 낫고 옆 사람의 온기를 증오하는 여름이 더 힘들다는 글에서는 가슴이 저려왔다.

 

 스물여덟의 청년이 중년이 될 때까지 감옥에서 보냈지만 그는 그 안에서 진짜 삶을 만났다. 제한된 공간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시간을 공유하면서 진정한 삶의 가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대학에서 강의를 한 그였지만 그가 가진 지식은 아주 작은 것이며 현장에서의 경험이야말로 진짜 지식임을 배웠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삶을 이해하고 세상은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본질을 말이다. 내부의 내부로 들어가는 경험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러니 그가 감옥에서의 시간을 배움의 시간인 대학 시절이라 명한 것이다.

 

 가장 귀중한 삶의 가치란 바로 사람으로부터 건너오는 것임을 깨닫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까마득히 잊었던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진지(陣地)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참다운 삶의 가치를 지켜 주는 따뜻한 진지를 만들어 내고, 막강한 국제 금융자본의 한파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진지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229쪽) 

 

 물질과 자본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사람의 가치를 아느냐고 호통치는 듯하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데 필요한 톱니바퀴처럼 자본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회의 비전은 없다는 걸 말이다.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회, 양심을 저버린 세상에 필요한 게 무엇일까. 제대로 된 가르침이 아닐까.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신영복 선생의 유고집에서 만나는 참다운 관계, 사람의 가치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책에 수록된 글은 1~2년 전의 글이 아닐진대 지금 현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투영하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소통과 미래를 향한 희망을 언급한다.

 

 유고집의 제목은 동요「시냇물」의 한 구절이다. 감옥에서 출소를 하는 이들을 위한 조촐한 타피에서 그가 부른 노래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감옥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 나가는 형상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하나의 물이 모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어 바다라는 거대한 세상으로 나가기를 희망하는 상징적 이미지가 아닐까. 하나의 물이 아닌 하나의 나무가 아닌 그것들이 모인 강물과 바다, 그리고 숲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이 독방에서 혼자 부른 「엘 콘도르 파사」도 같은 의미다.  ‘길보다는 숲이 되고 싶다’는 구절에서 그는 제일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갇힌 공간인 감옥을 떠날 수 없지만 그에게 숲은 만들 수 있다는 위로였고 가능성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때로 주어진 환경을 탓하며 희망이 아닌 절망을 택한다. 무엇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감옥에서 20년 20일을 보낸 그가 희망은 아닐까. 참 스승 신영복 선생이 남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하고 다짐한다.

 

 ‘독서는 만남입니다. 성문(城門) 바깥의 만남입니다. 자신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자신의 확장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마치 바다를 향해 달리는 잠들지 않는 시내와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이 모이고 모여 어느덧 사회적 각성으로 비약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시대가 갇혀 있는 문맥(文脈)을 깨트리고, 우리를 뒤덮고 있는 욕망의 거품을 걷어 내고 드넓은 세계로 향하는 길섶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253쪽)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하여 사람의 가치를 아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 소통과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나만의 행복이 아닌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것. 그리하여 더불어 숲이 되어 살아가기를 꿈꾼다.   

 

r*********s 2017.05.0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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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역사를 통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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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인간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 (accumulation of every single mo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개인은 집단, 조직, 국가라는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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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 (accumulation of every single mo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개인은 집단, 조직, 국가라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며, 이 같은 경험들은 개인의 잠재의식 속에 어떠한 형태로 저장되었다가 추후에 재생, 재구성,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기억 (記憶, Memory)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 (Retrospective Memory)은 마치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개인의 의식 속에 퇴적되고 암석화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되고 재구성하느냐 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역사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주체간의 동시다발적인 삶의 교차와 수렴이 일어나는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라지고 소멸되는 것들에 대해 다루는 것이다. 사라지고 소멸된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개별 주체들의 삶과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이 서로 상이하다는 것이며, 이를 서술하고 평가함으로서 역사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은 역사가의 역할이다.

 

“내가 만난 것은 물론 개개인의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들의 총화에서 또 하나의 만남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와의 만남, 역사와의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P. 25 -

 

기억과 역사는 모두 과거를 현재화하는 수단이지만 역사가 객관성, 합리성, 실증 가능성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기억은 주관적, 직관적, 감성적이라는 면에서 그 차이가 존재한다. 역사는 객관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그 성격으로 인해 과거 사건에 대해 ‘가능한 유일한 것’을 지향한다. 하지만 기억은 개인이나 집단의 경험에 근거하지만 오히려 ‘열린 행위’라는 성격으로 인해 역사가 추구하는 진리와 객관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기억과 역사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서 동시에 활용되어야 한다. 기억은 역사의 외연을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를 검증하고 역사를 평가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불멸을 꿈꿀수 있다. 기억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고동치는 존재이자 동시에 미래의 삶에 대한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관계와 소통, 연대를 통해서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는 끊임없이 평가되어야 하는 대상이고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왜곡되고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은 다시 ‘기억’으로 회귀하여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재검증해야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냇물은 우리에게 묻는다. 빛을 반짝이며 흘러가는 물결처럼 과거와 현재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 유년의 기억과 현실의 존재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냐고…




 


r******2 2019.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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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계속 흘러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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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선생님이 억울하게 수감하게 된 통일혁명당사건은 158명이나 검거되고 73명이 송치되었으며 23명은  불구속기소돼었을만큼 규모가 큰사건이었다. 지금은 통일혁명당사건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가는 사건은 없지만 작은 규모의  조작사건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인터넷이 많이 발달되어  대규모의 사건은 조작하기 힘들기때문에 작은 규모의 조작사건만 생기는것 같지만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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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선생님이 억울하게 수감하게 된 통일혁명당사건은 158명이나 검거되고 73명이 송치되었으며 23명은

 

불구속기소돼었을만큼 규모가 큰사건이었다. 지금은 통일혁명당사건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가는

 

사건은 없지만 작은 규모의  조작사건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인터넷이 많이 발달되어

 

대규모의 사건은 조작하기 힘들기때문에 작은 규모의 조작사건만 생기는것 같지만 반대로 인터넷의

 

발달때문에 조작사건이 더 빨리 더 많이 퍼진다. 뭐든지 장단점은 있는 법인 것 같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후 세월호를 비롯한  비선실세사건으로 인해

 

몇백만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은 결과,

 

결국 탄핵되어 지금 구치소에 수감중이다. 또 촛불집회는 외국에서도 극찬하는 평화시위로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라 말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민주주의의 탄생이지만 잔당들이 많이 남아있어 아직도 갈길이 험하긴하다

 

이런 시국에 신영복선생님의 책을 읽고 민주주의가 극심한 고초를 겪는 10년의 세월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하는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신영복선생님처럼 아직도 억울하게 "빨갱이"소리를 듣는 사람들도 많고

 

자칭 보수라 칭하며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빨갱이다.좌파다 하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다. 신영복선생님이 사시던 세상보다 나아졌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는 세상인데

 

이런 세상에서 나는 그저 내 가족과 지인들이 빨갱이타령하는 정치인들에게 투표하지 않는다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을뿐이라 그런 나에게 신영복선생님의 책은 감동인 동시에 아픔이 되었다

 

고작 카톡프로필을 촛불사진으로 바꿔놓고 나는 촛불을 잊지 않는다고 자만하고 있었던건 아닌지

 

아무생각없이 그저 흘러만 가고 있었던건 아닌지, 냇물처럼 더 큰 곳에 도달하기 위해 흐르는게 아닌

 

그저 떠내려가고 있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신영복선생님은 아름다운 자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다고 했다.

 

들어오고 나가는 파도들로 인해 돌멩이는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수천년,수만년동안 자기들끼리

부딪치면서 저렇게 아름답게 다듬어지는구나 하고 깨달으셨다며 여러분은 여러분끼리 부딪쳐서

다듬어가라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고,우리가 청산해야 할 관념들들을 함께 모색하는 노력들을 함께 모아가길 바란다고 하신 말씀하신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되고 서로 부딪쳐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 문장을 하얀종이에 따로 써서 매일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할 것이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한층 더 성숙해진 나 자신이 되기를 바라며-

함께 청산하고 21세기 새로운 담론을 함께 모색하는

m****m 2017.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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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흘러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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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선생님은 유명한 분이시지만 선생님의 책을 읽어본것은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가 처음이었다.언제나 나라와 사람을 생각한 신영복선생님의 글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짙은 부끄러움만 남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동안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MB가 공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에 미국산소에서 나타날 수 있는 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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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선생님은 유명한 분이시지만 선생님의 책을 읽어본것은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가

처음이었다.

언제나 나라와 사람을 생각한 신영복선생님의 글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짙은 부끄러움만 남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MB가 공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에 미국산소에서 나타날 수 있는 광우병에 우려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며 수입반대를 외쳤고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소의 수입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기사를 쓰는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정치,민주주의,촛불 이런것은 나와 별로 상관없다 여기던 나도 미국산소의 수입에 우려했고 그것을 반대하는 카페에 가입하고 조중동광고불매를 시작했다

역사에 유례없을 시민운동이었지만 공권력을 무기삼아 휘두르는 그들의 칼날에 조중동 광고불매카페를

만든이와 광고목록을 올리던 사람은 구속되고 카페회원 상당수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지방법원에 전례가 없던 1주일에 한 번이라는 급박한 재판진행을 수개월동안 진행됐고,

그 와중에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지쳐갔다. 지금도 그 일이 옳은 일이라 믿어의심치 않지만

과거로 다시 돌아가도 다시 할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글쎄요"이다.

매주 지방에서 서울로 재판받으러 올라가야했고 재판이 끝나면 밤늦게 지쳐서 귀가하고

다니던 회사의 일에 지장이 생긴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으면 고소하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적이 있는데 그 말이 왜 나온건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1심에서 유죄가 되어 항소했지만 불매운동은 점차 사그라들어갔고

광우병우려가 있는 미국산소는 정부의 강행으로 상처만 남긴데 수입이 진행됐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미국산"이라는 글자도 자주 보게 되는데

서글픈 마음이 든다.

 

2심재판은 벌금형이 나왔고 지금 현재 대법원판결도 진행되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에 나는 너무 지쳐버려서 웅크리고 있는 상태인데

신영복선생님은 그 긴 옥살이를 어떻게 하셨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고작 이정도의 일로 지쳤다고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진다.

그 분이 흘린 피로 지켜진 민주주의의 편안함을 누리면서 정작 나는 그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쳤다는 이유 외면하고 있었던건 아닌지..

 

나는 지금 이 시대의 어디쯤 서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본다

 

f*****j 2017.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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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선생과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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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마아~ 언제 나온다 카드노~ " 어릴때 외가집 가면 어른들이 모여 있을때 간혹 누구의 안부를 묻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게 누구인지 그 다지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저 혼자 집에 있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그날따라 집에 일찍 들어 오셨습니다. 약주를 하신것 같은데 행동에 한점 흐트럼 없이 들어 오시더니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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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아~ 언제 나온다 카드노~ "

어릴때 외가집 가면 어른들이 모여 있을때 간혹 누구의 안부를 묻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게 누구인지 그 다지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저 혼자 집에 있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그날따라 집에 일찍 들어 오셨습니다. 약주를 하신것 같은데 행동에 한점 흐트럼 없이 들어 오시더니 갑자기 광에 가셔서 도끼 한자루를 들고 나와 장작을 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 혼자 독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
애꿎은 목심 ! 잡아 가둬두고 어떻게 살란 말이고~ , 에이~! 망할놈의 세상~! "

그렇게 한참을 " 망할놈의~세상 ! 망할놈의~세상 ! " 하시면서 울분으로 장작을 패시더니, 그만 지치셨는지 부엌에 가서 주전자 하나 들고 나와서 저를 부르시곤 탁주 심부름을 시키시는 거였습니다.
전 그때도 몰랐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
알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정말 ~ 죄송합니다. 이 어리석은 손자 마흔이 넘어서야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언제 나올지 모를 조카 생각에 한쪽 눈 실명해서 살고 있는 큰 외손주 바라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당신이 마신 술의 양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당신을 저는 마흔이 넘도록 그저 술을 좋아 하셨던 술꾼으로만 기억하며 살아 왔던건 아닌지 너무 후회스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조카 사랑과 외손주의 사랑 방식의 표현 방법이 그때에는 술 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죄송스러워 눈물이 납니다. '

70
년대에서 80년대의 격동의 세월을 격어야만 했던 우리 어머니,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신영복 이라는 이름의 세글자를 왜 지우고 살아야 했던 마음을 알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전에 선생님과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신영복 선생님 책의 내용중에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입니다.’ 란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인생의 황금기의 나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감옥에서의 20년의 세월을 보네야 했고 그것을 바라만 보고 한탄할 수 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인생과 생각은 그저 안타까운 조카 인생의 사랑과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평범한 농부로써 일생을 살다 가신 할아버지지만 그 삶의 내용은 바로 자식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 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만남은 우리 삶속에 아마도 사랑이 더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모식에서 선생님의 제자들, 같이 어울리셨던 교수님들, 선생님의 말씀을 새기며 살고 있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신영복 선생님을 이 시대의 영원한 스승이라고 합니다.
미묘한 마음이 추모식 내내 그렇게 들던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할아버지 당신 생각이 나는지 ...

추모식을 마치고 성공회대 뒷 동산에 선생님을 기리는 비석 옆에 작은 돌맹이에다 ' 당신은 우리 할아버지의 애꿎은 목숨 이셨습니다. '
하나 적어 놓고 내려오는데
~! 그렇게 눈물이~눈물이 ~ 흘러 내렸었는지 ~

나중에 수정이 은정이 만나면 할아버지 이야기 들려 줘야 겠습니다.

j******2 2017.05.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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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지음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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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지음 / 돌베개부제 : 신영복 유고      이 책의 제목은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라는 제목은 "시냇물"이라는 동요의 가사에서 따온 것인데....  선생의 삶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분의 삶의 편린이라도 잠시 들여다본 사람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영복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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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지음 / 돌베개

부제 : 신영복 유고 

 

 

 

 

 

 책의 제목은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라는 제목은 "시냇물"이라는 동요의 가사에서 따온 것인데....

 

 

선생의 삶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분의 삶의 편린이라도 잠시 들여다본 사람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을 조금이라도 알고그분 책의 일부혹은 단편이라도 읽은 사람이면 이 "시냇물"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코끝이 시리고 눈물이 핑 돌게 된다...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대전교도소로의 긴긴 옥살이 내내 노래를 꼭 해야 하는 자리가 생기면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하고,  세상으로 나와서도 가끔 자리가 생기면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모두들 이 노래의 첫 마디는 시큰둥 하다가 마지막 소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울컥했다고 한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딜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싶어 강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싶어 바다로 간다.'

 

 

 

 

 

20년간의 감옥에서 즐겨 불렀고세상 밖으로 나와서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노래....

 

 

 

그 노래의 첫 소절을 유고집을 내는 사람들이 제목으로 따왔다.

 

 

감옥이나 현실이나 이 노래를 부르면 듣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막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라는 부분은 지금도 안습을 일으켰고 사연을 여러 번 전해 들은 내게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는 조건반사가 되고 말았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 중년을 넘어가면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온다고 하던데 나도 나이가 들어서 강철같던 내 심성에 변화가 찾아오는 것인가...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함께 하실 때나지금 험난한 이 세상에 안 계실 때나... 

 

유고집에서 나온 가사를 보고 마음속으로 따라 부르다가 여지없이 눈물이 글썽이는 나를 보게 된다.

 

시대의 스승이자 사표를 잃어 안타깝던 시점에 1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두 권의 책 중에 한 권.

 

선생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글과 강연집을 채록한 책으로 이전에는 책으로 나오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서 엮은 유고집이라 보면 된다.

 

웬만한 선생의 책은 다 읽은 나로서는 유고집 2권을 읽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선생은 생전에 출소 이후로 일관되게 몇 가지 삶의 지침을 우리에게 꾸준히 전달하려고 노력하셨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물론 오랜 기간 감옥에서 명상하고 사색하여 생각에 생각을 덧쌓은 덕분일 것이고그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란 생각에 더욱 간절하게 읽은 책.

 

그분의 세상을 보는 눈 중에 몇 가지 글을 따오자면~

 

 

 

 

*****

 

 

  

 

스승 - 스승이 훌륭한 게 아닙니다좋은 스승을 가진 그 사람이 훌륭한 거지요.

 

교도소 - 세상의 힘에 밀리고 밀려 쓰러진 자리그곳이 보로 교도소사회의 모순 구조가 가장 첨예하게 밀집된 곳감옥은 복판이다세상의 복판 역사의 복판이었다.

 

테러 - 약자의 저항의 형태와 강자의 억압의 형태에 대해서 우리가 그 형식만 가지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믿습니다.

 

_ IMF - 왜 일어났는지 피상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 1990년대에 도달한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와 성격에 관한 이해와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어떤 본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한마디로 우리나라 경제 구조가 세계 경제 질서의 하위에 매달려 있는 종속 구조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 자신을 잘 맞추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에게 세상을 맞추려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상이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 때문이라는 것이지요세상에 자신을 맞춘다는 것은 세상과 민첩하게 타협하는 것이고 세상을 추수하는 것이지요이러한 행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어리석게도세상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려는 그 우직한 노력이 좀 더 인간다운 세상으로 변화시킵니다.

 

작은 실수 - 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결정적인 실수를 하면 안 되겠지만 '작은 실수'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실수는 이전의 과정을 돌이켜 보게 합니다그리고는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겁니다.

 

개인의 정체성(identity) - 그 개인 속에 체화(體化된 시대의 양()이라는 것이 현재 나의 생각이다.

 

사람과 작품의 통일 - 매우 귀중한 전통이다예술 작품과 예술 활동이 당자의 인격을 높이는 일과 함께 추구된다는 것은 예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인다훌륭한 글씨를 쓰기 위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더구나 훌륭한 사람이란 당대 사회의 과제를 비켜 가지 않고 그의 삶으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특히 서예는 그림과 달라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그 사회성과 역사성이 직접적으로 표현된다이 점이 서예가 다른 장르에 비하여 사회적 성격을 띠는 이유가 된다따라서 서예가 어떠한 전통 위에서 어떠한 내용을 어떠한 형식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감옥 - 범죄자를 구금하는 물리적 공간이지만 동시에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갇히지 않았다는 착각을 갖게 하는 정치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떠올리기도 했다.

 

대학 -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대학이 없고 스승이 없는 세월을 우리는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한유는 그의 사설에서 스승이란 도()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돌란 글자 그대로 ''이며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 스승이다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리키는'것이 스승의 도리이다그러나 아무도 ''을 묻는 사람이 없는 것이 오늘의 교육 현실이다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투어 달려가는 목표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묻는 것은 다만 그곳으로 가는 방법에 관한 것일 뿐이다. '더 이상의 길'은 없고 스승이 없고 대학이 없다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진선진미(盡善盡美) - 목표의 올바름을 선()이라 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수단의 올바름을 미()라 합니다목표가 올바르고 그에 이르는 과정이 올바를 때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하는 것입니다목표는 높은 단계의 수단이고 반대로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표일뿐입니다.

 

함께 맞는 비 - 우산을 들어주는 것보다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 아닐까생각은 매우 착잡했습니다아픔의 공유와 그 아픔의 치유를 위한 노력그러한 공동의 노력은 그 과정에서 당면의 아픔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만들어 내는 근본적인 사회적 구조를 대면하게 해준다고 믿습니다.

 

사실과 진실 - 사실은 진실을 창조함으로써 완성되고 진실은 사실에 뿌리내림으로써 살아 있는 것이 됩니다.

 

실정법 - 그 내용은 묻지 않고 그 형식만을 문제 삼으며그 부조리를 재 생산해 내는 토대는 그대로 둔 채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을 문제 삼는다.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실언 한마디로 법의 권위와 도덕성이 합리화될 수는 없는 법이다.

 

법의 도덕성 - 법이 도덕성을 신뢰받지 못할 때 그것은 다만 억압의 도구로 간주될 뿐이다.  이른바 '불법적'인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합법적인 절차를 아무리 호소하더라도 합법적인 절차 그 자체마저 억압의 한 방법이라고 여길 뿐이다실정법은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사후적으로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기득권자의 편을 들게 마련이다그렇기 때문에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개혁이 항상 벽에 부닥치며엄청난 사회적 역량이 파괴되는 것이다.

 

독서는 삼독(三讀) - 먼저 텍스트를 읽고다음으로 그 텍스트를 집필한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그 텍스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필자가 어떤 시대어떤 사회에 발 딛고 있는지를 읽어야 합니다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와 우리 시대의 문맥을 깨달아야 합니다

 

독서 - 독서는 궁극적으로 자기를 읽고 자기가 대면하고 있는 세계를 읽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세계와 맺고 있는 사회적역사적 관련성을 성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문사철을 공부하는 까닭은 그것을 통하여 깊이 있는 세계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_  지혜와 용기 - 과거의 아픔을 잊는 것은 지혜이고 그것을 간직하는 것은 용기.

 

나무와 사람 - 한 그루 나무가 그 골짜기의 물과 바람을 제 몸속에 담고 있듯이 사람의 삶 속에는 당대의 사회와 역사의 자취가 각인되어 있다사람 속에 각인되어 있는 이 사회성과 역사성은 책 속에 정리되어 있는 사회 분석이나 역사 고증에 비해 훨씬 더 친근하고 생동적이다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은 쉽고도 풍부한 것이다.

 

 

 

*****

 

 

 

 

19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책 대결은 온데간데없고 막판에 몰리니 늘 그렇지만 선거판의 실상은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미래를 향한 정책 토론은 뒤로하고 흠집을 찾아서 후벼파기 경쟁을 하는 듯하다

 

말도 안 되는 공약과 거짓말이 총동원되는 시기에 우린 어느 사람이 참을 말하고 실천하려는지 헷갈리는 진흙탕 선거판을 목도하고 있다.

 

어떻게 참과 거짓을 골라낼 것인가...

 

그보다 내 생각은 물론이고 여러 자리에서 누구를 골라야 하는지 물어보면 나는 늘한 후보를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인생에 그 사람이 살아가던 시대가 얼마나 들어왔는지를 함께 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생에 얼마나 많은 세상이 담겨있고그 세상에 발맞춰서 어떻게 편하게 살아보려고 적응하려 했던 지혜로운 자 혹은 몇몇 똑똑한 사람보다는 혼자 힘으로 세상을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바둥거리는 어리석은 사람을 선택하려 한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니까...

 

나 또한 내 삶에 세상의 일부를 녹여서 함께 가고 싶기에.....

 

그 많은 후보자들 중에 나와 함께 비를 맞아 줄 후보는 내 눈에는 한 번에 들어오는데다른 유권자들 눈에는 잘 안 보이는가... 싶다.

 

누굴 뽑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노력을 하셨던 한 분의 사표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요즘 같은 시기에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지음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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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선생 1주기를 기념하여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과 강연한 글 중에서 생전에 책으로 엮어내지 않은 원고들을 골라서 2권으로 새로 모은 유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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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2017.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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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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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5일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책으로 먼저 뵌 뒤 작은 모임에 직접 찾아가 뵈었다. 그러고도 몇 번을 뵙고 곧바로 스승이 되었다. 선생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중심이 된 모임 ‘더불어 숲’에도 몇 번 나갔다. 다른 모임에 집중하느라 나갈 수 없었지만 선배와 동무들이 선생님 소식을 들려주어 늘 곁에 계신 듯했다. 2014년부터 선생님이 투병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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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5일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책으로 먼저 뵌 뒤 작은 모임에 직접 찾아가 뵈었다. 그러고도 몇 번을 뵙고 곧바로 스승이 되었다. 선생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중심이 된 모임 ‘더불어 숲’에도 몇 번 나갔다. 다른 모임에 집중하느라 나갈 수 없었지만 선배와 동무들이 선생님 소식을 들려주어 늘 곁에 계신 듯했다. 2014년부터 선생님이 투병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 졸이며 부디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해 주시라고 기도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희귀성 피부암 진단을 받고 오래 함께하지 못하셨다. 불과 1년 몇 개월 뒤 돌아가셨다. 76살, 너무 이른 귀천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이 된 성공회대학교 건물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현수막을 보는 순간 당신이 영영 떠난 것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당신을 직접 뵐 수 없게 되었구나. 당신의 눈빛과 웃음과 손짓과 몸짓을 전혀 볼 수가 없구나. 언제나 마음을 순하게 해 주시는 당신을 뵐 수가 없구나. 그토록 아름다운 분을 영영 뵐 수가 없구나. 그렇지만 선생님은 우리의 만남이 그냥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구나. 가시는 순간에도 희망을 말씀하시는구나.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하늘 바라보며 가까스로 참았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달에 『처음처럼』(돌베개, 2016년)이 나왔다.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손수 정리한 유작이다. 이미 병이 깊어진 상태에서 선생님은 2007년판에 실리지 않은 새로운 글과 그림을 추가하셨다. 문장도 다듬었다. 그렇게 하여 편집자에게 전해준 것이 2015년 11월. 선생님은 끝내 개정판을 보지 못하셨다. 개정판을 당신을 뵙듯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다시 1년이 지난 뒤 나온 유고집이다.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글과 강연 녹취록 등 기존의 저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았다. 이번 책 역시 당신이 그리워 집어 들었다. 생생한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뵈었을 때, 거동 못하고 누어 계신 채 말씀하셨습니다. “마비가 다리 쪽부터 위로 올라오고 있어요. 이제 가슴까지 왔네. 얼마나 다행이야. 위에서부터 내려오지 않는 게.” 선생은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김창남, 「신영복 선생의 말과 글」, 14쪽)

 

대학은 최후의 수평공간입니다. 쓸데없는 것, 가치 없는 것들, 더 정확하게 교환가치가 없는 것, 상품가격이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기간, 그런 기간이 저는 대학이라고 생각하죠. 수평공간이면서 자유의 공간입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가 자유(自由)라고 생각해요. 자기의 이유를 갖는 것이 자유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유로 자기가 움직이는 것, 그것은 자기가 동의했건 또는 충분히 공감을 하건 그건 부자유한 거라고 생각해요. (72쪽)

 

관념성을 벗는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 연상의 세계가 관념적이지 않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건축’이라는 단어에서 ‘빌딩’이 연상되는 것보다는 ‘포클레인’이나 ‘망치’가 연상되는 것이 덜 관념적이고 포클레인이나 망치보다는 자기가 잘 아는 ‘목수’가 연상되는 경우가 보다 덜 관념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더구나 ‘정직’이라든가 ‘양심’과 같이 추상적인 단어일수록 그것과 더불어 사람이 연상되지 않는 한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일에 있어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것이 인간적인 것으로 되기는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연상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에 따라서 사고의 성격 즉 사회적 입장이 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 그 사회의 가장 민중적인 사람들이 사고의 밑바탕을 자리 잡고 있어야만, 그의 사상도 시대적 과제와 사회적 모순을 온당하게 반영하고 그것과 튼튼히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182-183쪽)

 

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일생에 담겨 있는 시대의 양(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2쪽)

 

독서는 모름지기 자신을 열고, 자신을 확장하고, 자신을 뛰어넘는 비약(飛躍)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텍스트를 집필한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그 텍스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필자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발 딛고 있는지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와 우리 시대의 문맥을 깨달아야 합니다. (249-250쪽)

YES마니아 : 골드 g*******g 2017.07.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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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역사를 통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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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인간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 (accumulation of every single mo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개인은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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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 (accumulation of every single mo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개인은 집단, 조직, 국가라는 사회적 관계 (Social Relation) 안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며, 이 같은 경험들은 개인의 잠재의식 속에 어떠한 형태로 저장되었다가 추후에 재생, 재구성,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기억 (記憶, Memory)이라고 한다.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 (Retrospective Memory)은 마치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개인의 의식속에 퇴적되고 암석화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피에르 보나르는 현실이 아닌 기억을 그린 화가였다. 특히, 정감 있고 소박한 일생생활을 묘사하여 행복한 내면의식을 표현한 앵티미스트 (Intimiste)였다. 일상속에서 포착한 즐거웠던 순간들을 내재화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세월속에서 화석화된 일상의 단면들을 캠버스에 표출하였다. 현실의 한 장면을 보면서 그리는 대신 '기억'으로 재구성한 행복한 일상의 순간들은 '진실'은 아닐 수도 있지만 오히려 불완전한 기억 덕분에 창조와 감동의 원천이 된다.

 

 

 

 

 

역사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주체간의 동시다발적인 삶의 교차와 수렴이 일어나는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라지고 소멸되는 것들에 대해 다루는 것이다. 사라지고 소멸된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개별 주체들의 삶과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이 서로 상이하다는 것이며, 이를 서술하고 평가함으로서 역사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은 역사가의 역할이다.

 

 

기억과 역사는 모두 과거를 현재화하는 수단이지만 역사가 객관성, 합리성, 실증 가능성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기억은 주관적, 직관적, 감성적이라는 면에서 그 차이가 존재한다. 역사는 객관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그 성격으로 인해 과거 사건에 대해가능한 유일한 것을 지향한다. 하지만 기억은 개인이나 집단의 경험에 근거하지만 오히려열린 행위라는 성격으로 인해 역사가 추구하는 진리와 객관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기억과 역사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서 동시에 활용되어야 한다. 기억은 역사의 외연을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를 검증하고 역사를 평가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불멸을 꿈꿀수 있다. 기억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고동치는 존재이자 동시에 미래의 삶에 대한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관계와 소통, 연대를 통해서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는 끊임없이 평가되어야 하는 대상이고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왜곡되고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은 다시기억으로 회귀하여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재검증해야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냇물은 당신에게 묻는다. 빛을 반짝이며 흘러가는 물결처럼 과거와 현재라는 당신만의 역사 속에서, , 유년의 기억과 현실의 존재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냐고

 

 

r******2 2017.05.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