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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발전의 원동력,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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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이 책에서 내세운 자유, 개인, 권력 등의 개념은 번역어로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서양의 추상적 개념들을 한자를 이용해 일본어로 번역한 낱말은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다만 저자는 그런 광범위한 번역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뽑아냈을 뿐이다. 영문법 속의 '동명사'니 '현재완료'니 하는 용어들도 모두 일본식의 번역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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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이 책에서 내세운 자유, 개인, 권력 등의 개념은 번역어로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서양의 추상적 개념들을 한자를 이용해 일본어로 번역한 낱말은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다만 저자는 그런 광범위한 번역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뽑아냈을 뿐이다. 영문법 속의 '동명사'니 '현재완료'니 하는 용어들도 모두 일본식의 번역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저자가 말하는 번역어는 극히 일부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19세기 서양 열강들을 모델로 나라의 발전을 모색했을때 그것의 핵심은 번역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만큼 당시 번역이라는 것은 서양을 경험할 수 있는 근간이요, 서양을 따라잡기 위한 우선적인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번역의 시대에 당대 지식인들은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서양의 이질적 용어 앞에서 많은 고뇌를 했고, 이런 그들의 노고는 오늘날의 일본을 있게 한 뿌리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같은 번역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수많은 서양의 개념들을 일본 번역어에 의존하였다. 우리의 서양어에 대한 고찰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점은 이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대부분의 용어들이 일본식 번역어로써 대체되게하는 근원이었다.
j********5 2004.01.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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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지식인의 고뇌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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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또 무언가. 개인이 사회 속에서 어디까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런 류의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다. 자유, 존재, 개인, 사회은 이미 사고 체계 안에서 뚜렷이 자리잡은 개념들이라 여기에 의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는 개념을 이용해 사유할 뿐인 게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이런 단어가 있었나? 자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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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또 무언가. 개인이 사회 속에서 어디까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런 류의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다. 자유, 존재, 개인, 사회은 이미 사고 체계 안에서 뚜렷이 자리잡은 개념들이라 여기에 의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는 개념을 이용해 사유할 뿐인 게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이런 단어가 있었나? 자유라는 개념이 뭔지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알았을까? 서구의 역사와 체제를 받아들이고서야 이해하게 된 개념들이 아닌가? 그럼 이 단어들은 어디서 나온 거란 말인가? 이 책은 그런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쓰여졌다. 번역은 단순히 글자를 치환하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그 당시처럼 완전히 새로운 문명과 맞닥뜨리는 과정에서 [번역]은 문화와 문화가 충돌하는 치열한 경계선이기 때문이다. 책은 당시의 지식인들이 생소한 관념들을 받아들이고 단어를 만들고 의미를 전용하는지를 설명해간다. 저자는 현명하게도 그 당시의 [번역]이라는 광대한 문제를 논하기 보다는 특정 단어를 정하여 단어의 발전과정을 짚어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 특정 단어들은 사회society, 개인individual, 근대modern, 미beauty, 연애love, 존재being, 자연nature, 권리right, 자유freedom, 그he, 그녀she이다. 이 단어들이 모두 번역의 과정을 거쳐 생겨났다는 점이 놀랍지 않은가? 문화가 맞부딪히는 순간을 일본의 지성들이 온몸으로 겪어낸 그들의 수고를 존경한다. 책을 읽으며 깨닫는 점이 많았다.먼저, 후쿠자와 유키치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그가 왜 1만엔권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일부나마 느꼈다. 한국의 입장에서 탈아론을 주장한 후쿠자와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고, 근대 일본의 지도자로서 후쿠자와는 감탄할 만하다. 책이 다루는 대부분의 단어는 후쿠자와를 거쳐 나온 것들이다. 그가 쓴 단어가 그대로 번역어로 자리잡았다는 게 아니라, 그가 그 단어의 번역을 고민한 흔적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고민들이 쌓여 지금의 번역어까지 자리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후쿠자와는 individual을 독일개인(獨一個人)으로 번역했다. 그는 번역어에 되도록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individual을 번역할 단어로 한자를 선택했다. 책의 저자는 [그의 사고가 여기서 가로막혀 버렸기 때문일 것]이라며, [individual에 녹아있는 사상과 일본의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어] 이해하기는 무리었으라리 해설한다. 사고가 가로막힌 그 지점에서 그 어려움을 커버할 수 있는 한자어(기본적으로 한자어도 엘리트들이 사용하는 외국어였으니)가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독일개인은 일개인을 거쳐 개인이라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그 과정에서 후쿠자와가 겪었을 어려움은 심히 짐작하고 남는다. 하나의 개념이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미라는 단어의 개념이 자리하기까지 지식인들이 주고받은 논쟁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 나름의 치열한 고민이나 자기주장이 보여 안쓰러울 정도랄까.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저자가 예시로 사용한 [몰이상 논쟁]은 뛰어난 문예작품에 이상이 있는가, 라는 주제를 다룬다. 한 편은 위대한 문예작품에 들어있는 조화(造化)의 본뜻은 인간이 알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편에서는 최초에 있는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미는 선천적인 이상이므로, 문학은 이상을 표현해야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 관념미학의 논쟁을 닮은 이 논쟁으로, 미술(현재의 예술)은 미=이상을 추구한다고 결론이 났다고 알려준다. 이러한 과정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날 [미]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밖에 자연의 두 가지 개념에 대한 지적도 기억에 남는다. [저절로 그러하다]는 것은 본래 일본어 자연의 의미지만, art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인위가 가해지지 않은 대상이라는 의미는 nature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현재는 이 두가지 의미가 섞여 사용되면서, 사람들은 이를 잘 눈치채지 못한다. 일례로, [자연주의]라는 사조는 본디 [자연과학의 방법을 흉내내어 소설을 쓰려 한 데서 생긴 말]이나, 이런 의미의 혼재로 인해 [자연을 자연인 채로 쓴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마음에 남는 건, 일본이 이런 고민을 거쳐 만든 단어를 우리는 받아들이기만 했다는 점이다. 아주 조금이지만, 중국에서 번역을 고민하던 사례들도 조금 인용되어있는데, 그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저 역사를 탓해야하다니.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심히 넘기기엔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지 않은가. 근대 일본이 한 고민을 이렇게 정리해 기록하는 저자를 가진 것도 부럽다. 어느 누군가 한국의 번역어 성립사정을 -남의 말을 베꼈든 어쨌든- 정리해 출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인상깊은구절]
한자 중심의 표현은 번역에는 이로웠을지 몰라도 학문과 사상등의 분야에서 일본 고유의 야마토 말, 즉 전래의 일상어 표현을 잘라 버려왔다는 것이다. 그런 탓에 가령 일본의 철학은 우리들의 일상에 살아있는 의미를 포섭하지 못했다. 이것은 지금부터 350년쯤 전에 라틴어가 아니라 굳이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쓴 데카르트의 태도와 상반되는 것이며, 나아가 소크라테스 이래 서구 철학의 기본적 태도와도 상반되는 것이다.
g******g 2003.10.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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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모습에서 보는 우리의 근대, 그리고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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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필자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근대의 일본이 어떻게 각 용어들을 만들어 번역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간다. 추상적인 일반 이론이 아니라 사회, 개인 등 열 가지의 번역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비록 일본인 필자에 의한 일본의 번역 이야기이긴 하지만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근대에 일본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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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필자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근대의 일본이 어떻게 각 용어들을 만들어 번역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간다. 추상적인 일반 이론이 아니라 사회, 개인 등 열 가지의 번역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비록 일본인 필자에 의한 일본의 번역 이야기이긴 하지만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근대에 일본의 한자 번역어들을 그대로 도입해 왔을 뿐 아니라 이는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어로 서양문물을 번역해 내는데 어떤 고민이 있었으며 무엇이 문제점이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아직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근대 번역어들에 대해 좀 더 이해해 나가는 기초가 될,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각 번역어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타날 ‘카세트 효과’ 등에서 일반 민중들의 번역어 수용을,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의 고민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s*******1 2006.10.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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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생각하기, 우리말로 학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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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한 것은 하이데거였다. 언어가 먼저인지 '존재'가 먼저인지가 '닭과 달걀의 변증법'과 같은 쓸모없는 싸움이라 일컫더라도, 우리 '근대'사 속에서 등장한 서구어의 번역어들을 보면 하이데거 쪽의 손을 은근히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존재'나 '근대'가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사회,' '개인,' '권리'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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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한 것은 하이데거였다. 언어가 먼저인지 '존재'가 먼저인지가 '닭과 달걀의 변증법'과 같은 쓸모없는 싸움이라 일컫더라도, 우리 '근대'사 속에서 등장한 서구어의 번역어들을 보면 하이데거 쪽의 손을 은근히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존재'나 '근대'가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사회,' '개인,' '권리'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이들 번역어들의 특징은 시쳇時體말로 '썰렁하다'는 것이다. 뜻과 맛은 다르지만 '지나치게 학구적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어에서 être, moderne, société, individu, droit같은 낱말들은 평소에 자주 쓰이는 말들이다. 대표적으로 '사회'같은 낱말은 우리 현실에서는 거의 글말文語에서만 쓰인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영어의 society는 입말口語과 글말에 두루 쓰이는 말인 것이다. 2003년 출간된 4판 『롱맨현대영어사전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의 society 항목을 보면 이 낱말이 글말written에서 자주 쓰는 1000낱말 중의 하나인 동시에, 입말spoken에서 자주 쓰는 1000낱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부터 생긴 것일까. 대개의 번역어들을 '근대' 일본에게 빚지고 있는 우리는 일본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근대' 일본에서 번역어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정립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글이다. 말하자면 번역어의 계보학을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낱말의 세세한 계보는 책 자신에게 맡겨두고 그 맨 아래층에 깔린 저자의 생각을 읽어보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어떤 번역어가 선택되고 남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자의 뜻으로 보아 가장 적절한 말이 남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가장 번역어다운 말이 정착한다." (177쪽) 지금은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한겨레 신문 이상수 기자는 『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말 철학 용어에서 생소한 한자가 지나치게 많아 우리에게 '가짜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에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운동이 일고 있는 것도 실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구병 선생 같은 분도 싸르뜨르의 L'Être et le néant의 우리말 제목은 '있음과 없음'이 훨씬 더 적합하고 원어의 뜻에도 가까운데 『존재存在와 무無』로만 옮겨지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고민은 사실 일본에서도 일찍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소개하고 있다. 후쿠자와는 그의 벗과 대화하면서 "자네와 같은 이들은 서양 원서를 번역하는 데 한결같이 네모난 문자(한자를 뜻함)만 사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어째서인가?"(45-46쪽)라고 물으며 서양어를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옮겨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던 것이다. 우리도 '피투성被投性의 존재'같은 말을 버리고 '던져진 존재'로 가려고 하고 있다. 후쿠자와는 후년에 할 수 없이 스스로의 소신을 꺾고 '사람들이 많이 쓰는' 번역으로 전회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이번 시도는 어떨까. 언젠가 우리말을 대상으로한 '번역어가 생긴 유래'라는 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s******z 2004.02.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