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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생은 퍼즐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디선가 얼핏 봤던 장면이나, 얼핏 봤던 사람들이 어느덧 다가와 나와 만나 새로운 그림을 완성해내는 과정을 보며 나 또한 퍼즐의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공상을 하곤 했는데, 권지예씨의 책 <퍼즐>은 인생을 퍼즐조각처럼 풀어나간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표지를 보고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상상해 머리속에 그려넣었고, 책을 몇 페이지 읽는 순간 그 상상이 잘못된 상상임을 깨닫고 잠시 책을 덮었다가 다시 읽어 나갔다.
이 책은 만지면 차가워 순간 손을 떼버렸다가 다시 손을 가져다대는 느낌으로 읽었다. 차갑고 무서워 잠깐 손을 뗐다가 다시 손을 가져다대기를 몇번 반복하자 퍼즐의 조각이 다 완성되어 있었고 다 완성된 퍼즐 조각은 손끝에서 머리 언저리에서 차가운 기억들을 만들어냈다. 이 책에는 '결핍된 사랑형'이 많이 등장한다. 법률적 관계로 얽힌 관계가 아닌 떳떳하지 못할지라도 '사랑'이라고 믿고,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결핍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결핍된 사랑형'이 끝없이 등장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각해가기를, 결혼이라는 관계가 딱 맞아떨어지는 퍼즐의 모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빈 공간도 있고,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들어 온 조각때문에 흔들리기도 한다. 당사자들은 그것을 뒤늦게 찾아온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름을 불륜이라고 칭한다. 결핍된 사람들은 또 다른 어디엔가에서 결핍을 매꾸기 위한 발악을 하고, 그 발악의 모습은 대게 서글픈 종결형으로 끝을 맺는다. 쪽팔리거나 슬프거나 어쨌든 서글픈 종결형이다.
나는 '불륜'을 증오한다. 왜냐 어디선가 날아든 퍼즐 조각 하나는 부부가 이루고 있는 퍼즐만을 깨놓는 것이 아니다, 부부라는 퍼즐이 만든 또 다른 퍼즐조각들을 다 흐트러놓는다. 예를들면 부부라는 퍼즐이 만들어놓은 자식이라는 이름의 퍼즐은 자신의 뿌리 끝이 흔들리는 기분을 느끼며 증오라는 퍼즐조각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 날이 시퍼런 퍼즐의 조각은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 자체를 믿지 않는 불신이라는 이름의 퍼즐의 조각을 만들어낸다.
<BED>는 얽혀있는 B와 E와 D가 불쌍했다. 그들이 이루어놓은 아슬아슬한 관계속에서 어느 누구도 행복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불행했고, 모두가 파멸의 길로 걸어갔다. 불완전한 조각은 이렇게 모두를 조각조각으로 해체시켰다. <퍼즐>의 주인공은 불쌍했다. 끝없는 결핍과 결핍속에서 그녀가 미치지 않은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라져버리는 그녀의 도피가 어쩌면 그녀의 선택이 그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여주인공 오영실>이라는 챕터의 이야기였다. 작가의 첫 소설에 등장했던 주인공에게서 걸려온 전화, 분명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인데 그녀는 자신을 여주인공 '오영실'이라고 소개했고,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까지 하게 되었다.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피꽃'처럼 서슬퍼런 인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소설은 어려웠다. 생각보다 읽어나가기도 힘들었다. '불완전한' 퍼즐을 계속 맞추어보려고 하지만 맞추어지지 않을 것 같은 퍼즐처럼 보였다. 이 한 조각을 옮기기 위해서 다른 한 조각을 애써 떼어내 던져보려하지만 떨어지지 않는 조각같았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 드는 묘한 소설이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항상 결핍을 느낀다. 나 또한 그렇고 매순간 결핍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책에서 결핍을 받는 사람들이 채워나가는 장면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법들이였고, 그렇지만 가장 흔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들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불편한 진실'들로 가득찼다고 정리하고 싶다. 불륜, 자살, 죽음이 난무하는 그 언저리에서 나의 결핍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의 연속이였다.
까만밤 시퍼렇게 빛나던 고양이의 눈을 본 것처럼 '퍼즐'이라는 책의 잔상이 내게 남아 결핍된 언저리를 날카로운 무언가로 긁어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며 머리 언저리가 지끈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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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욕망이 없다면 욕심을 부릴 일이 없고, 욕망이 없다면 누군가와 비교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각자 다른 욕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욕망으로 눈멀기도 하고 누군가는 돈이라는 욕망으로 파멸하기도 한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욕망의 강과 약이 있을 뿐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욕망을 가진 사람이고, 어떤 욕망에 흔들릴까? 지난 나와 지금의 나를 돌이켜보면, 난 조금 심심하게 산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강한 욕망에 휘둘리기 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이나 규율에 맞게 욕망을 억누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까? 때론 앞뒤옆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욕망에 미쳐 사랑하며 살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 본다. 하지만 어떤 인생을 상상할지 몰라 난감하기도 하다. 욕망을 내보이며 사는 것도 그걸 해 본 사람이나 가능한 것은 아닐까?
‘삶이라고 하는 지독한 욕망의 퍼즐 판위에 놓인 사람들의 처절한 싸움.’이 싸움에 진정한 승자는 존재하는지, 오랜만에 만난 권지예 소설에서 찾아보려했다. 하지만 욕망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인생은 왜 이렇게 처절하고 아픈지. 그들의 삶이 혹 내 주변의 누군가의 인생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BED’. B는 지방 소도시 공무원이고 아내 D는 투어 컨덕터다. 아내는 직업 때문에 한 달 20일은 해외에서 보낸다. D는 어린 딸을 데리고 B와 재혼했다. B는 D와 재혼했지만 옛 애인 E를 잊지 못하고 D와 섹스를 하면서도 E를 생각한다. 어느 날 아내 D는 남편의 침대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되는데... ‘퍼즐 ’은 전처 소생의 딸이 있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다. 아들을 낳길 바라는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 여자는 성감별을 받아 중절 수술을 한다. 이후 아들을 갖게 되지만 융모막 검사의 부작용으로 이 아이를 사산하게 되는데.. ‘바람의 말’은 젊은 남자와 바람이 집을 나간 엄마 때문에 여자로서의 자신을 사랑을 포기 하겠다 다짐한 여자의 이야기다. ‘네비야, 청산 가자’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정신적 성장이 멈춘 동생 만수의 국제결혼과 자신이 사랑한 오랜 연인 H의 이야기다. 유부남이기에 기다렸지만 시간이 흘러 점점 사랑은 식어 가고 식물인간이 되었던 H의 아내는 깨어나게 되는데.. ‘여주인공 오영실’의 주인공 나는 어느 날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자신이 그녀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라며 만나자고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이 썼던 소설을 생각해 내고 그 책의 주인공 오영실의 기구한 삶을 떠올리게 되는데... ‘꽃 진 자리’는 한 남자가 벙어리 여자가 사는 집으로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고, ‘딥 블루 블랙’은 소설가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여자가 자신의 생활이 뭔가 잘못되었다 느끼면서 아이와 남편에게 결별을 고하려 하는데..
7개의 단편 모두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는 않다. 다양한 욕망을 가진 여자들의 삶이 모두 다른 모습으로 일그러지고 펼쳐진다. 나라면 이 여자들처럼 살지 않았을 텐데 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인생이 잘못 된 거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 역시 자신의 입장에선 그게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 남자에게 그리고 여자에게 사랑은 어떤 종류의 욕망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가끔 지인들과 이야기 하다 진짜 사랑이 나타난다면 가정이고 뭐고 다 팽개칠 자신이 있냐고 묻지만.. 자신 있게 내팽개치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결국 내 마음을 따르고, 욕망을 향해 불사를 수 있는 것 또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 인 것이다.
인생이라는 퍼즐 앞에 나는 지금 어디까지 맞춰왔을까? 반이라도 맞춘 것은 맞는 것일까? 권지예 작가가 보여준 다양한 형태의 욕망에 고개를 끄덕일 뿐. 내 인생의 퍼즐에서 놓친 피스는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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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책을 완성하고 많이 아펐다 한다. 아니 죽음의 공포를 맛보고 처절히 무서웠다고 한다. 나쁜 생각을 하면 아퍼서 나쁜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는 배우 하지원의 인터뷰 기사를 오늘 읽었다.
이 책은 ‘사랑’이란 미명하에 그릴 수 있는 여러 모습을 그렸다. 대부분은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결혼생활의 티격태격이 아닌 묘하게 엇나간, 비정상적인 사랑 위에서 군림하는 마음들을 섬세하게 그렸다. 비정상적인 관계가 갖는 내면의 흐름과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듯 싶은 우울증환자의 심리를 세밀히 묘사했다. 우울증 환자를 본 적이 없지만 왠지 글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우울을 겪는 사람이 어느새 되어있는거다. 여기에 독성이 있었다.
때문에 정상인의 범주 안에서 살고 있는 내가 이해하는데 먹기싫은 음식을 억지로라도 다 먹어야 할 것 같은 상황처럼 부담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처음 맛 본 음식이 꺼름칙하면서도 어딘가 잡아당기는 맛에 저항하지 못하고 끌리는 그런 맛이었다. 맛있는 쪽의 맛깔스런 맛이라서 착착 감기는 맛이 아닌, 첨 보는 생소한 음식이라서 먹어보는데 묘하게 기분이 나쁘지만 더 먹어보고 싶어지는 그런 음식이어서 젓가락이 가는 상태 말이다. 주위에서조차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읽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고 희망이 싹트고 더 열심히 살아봐야지 하는 자신감을 주는 책과는 전혀 반대의 개념이었다.
우울이 엄습하고 있는 상태에서 환청과 환영이 보이고 현실인지 꿈인지 애매한 상태가 연속되는가 하면 끝내는 7편중 5편이 죽음이요 나머지 2편도 죽음을 생각하고 떠난 여행이지만 어찌어찌해서 죽음은 실행하지 않는 이야기. 이렇게 불편하면서도 쉽사리 책을 덮지 못함은 진즉이 맛보지 못한 세계를 접한다는 사실앞에서 왠지 흥분이 되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밀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는 막상 상상조차 못할 상황을 피력하는데 나도 모르게 점차 빠져들면서 기분은 여전히 나쁜채로 책은 여전히 읽혀진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저렇게 볼 수 있구나, 저렇게 해석이 되는구나를 생각해 보며 책을 다 읽었을땐 그 글에서의 피곤한 우울과 어찌할수 없는 우울과 내리누르는 절망감 내지는 분노, 그리고 목마른 갈증 등이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을까봐 서둘러 책을 덮었다. 생각하고 싶지않은 아주 무겁고 아주 싫은 내용들이었다. 죽음은 선택되어서는 안된다는 그저 가야할 날이 되었을때 훌훌 떠나야한다는 인식을 더 각인시켜 주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란 태어날 때는 나 혼자 울고 여럿이 축복해주는 가운데, 돌아갈 때는 나 혼자 웃고 여럿이 슬퍼하는 가운데 갈 수 있는 것이란 글귀를 본 후부터 아주 맘에 싹 들어버렸다. 그런데 죽음을 선택하다니 감히. 난 죽음을 선택하는 자를 경멸한다. 여하튼 죽음은 때가 되었을때 받아들여야 한다. 때문에 이 책에선 죽음을 선택한 만치 죽음 후에도 지지부진한 눈물을 짠다거나 하는 후일담도 없다. 오히려 그런 면에선 담백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BED 난 침대를 엄청 좋아한다. 잠자는 용도로의 침대도 무척 좋아하고 사랑하는 도구로의 침대로도 몹시 좋아한다. 그런 성스럽기까지 한 침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연이 안타깝다가 공감하다가 역겹다가 결국 허무했다. 그리곤 무서웠다.
퍼즐 내가 기억하는 퍼즐 한 조각은 겨울연가의 준상이가 완성하던 한 조각과 유진이가 마지막에 완성하던 한 조각의 슬프지만 아련한 그리움과 행복하고 기쁜 완성품이었다. 人生을 한 편의 퍼즐로 본다면 난 아직도 쉽사리 맞추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윤곽만 조금 잡히는 정도인 것 같다. 펼쳐진 날들을 잘 살아내기 위한 조각을 완성해가는 퍼즐이 있는가하면, 잘 살아보려 노력했다가 부질없음을 스스로 깨닫고는 세상과의 단절을 꿈꾸며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다가 어느날 완벽한 자살을 함으로써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이 완성된다면 당신은 통쾌한가? 완벽한 복수라 생각하는가? 전처 딸이 하나 있다고 남편과 시어머니의 강압에 못이긴 태아감별법으로 피지도 못한 꽃을 두 번이나 꺾고, 세 번째는 아들이라서 융숭대접하는 꼴불견앞에 왠지 모르는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자연유산으로 이어지고, 물컹한 그 느낌이 마치 죽은 아들처럼 느껴져 물컹한 과일은 먹지도 않는다는. 그러구서 정신은 여기저길 헤매이고 그러다 시골집의 오래된 우물에 전주인의 정부가 죽었듯 자신도 숨박꼭질로 위장한 가정부의 모자란 아들에게 부탁하곤 우물 속으로 들어가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듯 우물의 뚜껑을 닫음으로써 이 세상과의 오래된 인연을 고하나니.
꽃 진 자리 복사꽃을 엄청 좋아한다. 분홍색은 좋아하지 않지만 복사꽃을 보면 왠지 그리움이 묻어날 것만 같다. 복숭아도 좋아한다. 그 뽀얀 살은 새색시의 물오른 엉덩이를 연상시킨다. 조카의 뽀얀 엉덩이(백도)를 생각키우기도 한다. 이런 복숭아나무 밑에 사람을 묻었고 그 사실땜에 괴로워하는 한 남자가 십년을 가위 눌리기도 하는 세월을 보내다 몇 번의 망설임끝에 구덩이를 파서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 그 남자를 단 며칠간 지내본 소경 아낙이 못잊고 떠났다는 사실에 그 복숭아나무에 목을 매어 마치 그 구덩이가 자신의 묘자리로 보여지는 상황. 남자가 유유히 떠났듯 살인사건마저 유유히 묻히고 그 사실을 안 소경 여자는 자살이라니. 복숭아맛이 어쩐지 낯설다. 끔찍하다. 복숭아나무 아래 서면 너무나 소상히 쓰여진 이 소설 땜에 한동안 몸서리 쳐 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책을 덮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배우나 탤런트가 연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몰입도에 있다고 본다. 얼마만큼 주어진 역에 맞는 사람이 되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철저한 그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권지예작가는 철저한 그사람이 되었던 듯 싶다. 너무나 넓고 깊어 그 속을 알 수 없는 딥 블루 블랙의 물결 속으로 빠져든 한 작가의 얘기처럼 그건 우리 모두의 상상력의 몫이다. 작가가 우울증을 앓은 경험이 있는지 혹여 그렇다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지 지인들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는지는 그날 한 작가가 암송해 준 시처럼 그저 그렇게 묻혀버리면 그만이다. 그저 여기에 퍼즐만 있을 뿐이다.
"그대들은 둘 다 컴컴하고 조심스럽다. 인간이여, 아무도 그대 심연의 밑바닥 헤아릴 길 없고, 오 바다여, 아무도 네 은밀한 보물 알 길 없다. 그토록 악착같이 그대들은 비밀을 지킨다!" ㅡ보들레르 <인간과 바다> 한 작가는 이 시를 암송해 주고는 깊은 바다속으로 침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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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은 일곱 개의 단편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책을 보기 전에 해본 생각은 우리네 삶이란 것이 결국은 퍼즐을 맞추어 가면서 완성되어 가는 그런 것이 아닐까?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을 맞추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리라 지레짐작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마지막 퍼즐조각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소설 속 주인공들은 결코 자아를 찾지 않았다. 그들은 유혹을 느끼고 있었고, 결국 유혹들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꿈꾸고,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었다. 아마 저자가 작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저자 자신의 삶이 – 문맥상으론 아마 몸에 탈이 나있던 상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 이 글을 쓸 당시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삶이 힘들 때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죽음의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결혼을 통해, 환멸을 느끼고 있다. 좋아서 한 결혼이든, 마지못해 한 결혼이든 축복받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로 맹세하고 시작한 결혼인데, 결혼 후 느끼는 환멸은 불륜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결국은 죽음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고 있었다. 남편이 아닌 애인과의 목숨 건 사랑을 다룬 단편들의 주인공들도 결국은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록 [BED]에서처럼 죽지는 않았지만, 히말라야 초원에서[바람의 말], 혹은 중국 장춘의 송화강변에서[네비야 청산가자] 그대로 사라져 버리기를 갈망하고 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유부남과의 관계[네비야 청산가자], 혹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관계[바람의 말]가 자의에 의하던, 타의에 의하던 – 대부분은 남자들이 정신을 차리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아내에 대한 죄책감 또는 결혼할 여자의 등장 등 – 파탄을 맞고, 주인공들은 머리로는 정리하였지만 감정은 헤어나오지를 못하면서, 그대로 사라지기를 꿈꾸고 있다.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단편도 결코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체험의 일환으로 동료작가들과 유조선을 타고 항해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일상에서 벗어남을 느껴보지만 옛애인 에게 비망록을 남기고 바다 속으로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딥 블루블랙] 그녀가 느낀 일상에 대한 탈출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죽음만이 일상에서의 탈출이었을까? 삶이 온통 결핍과 상처투성이인 경우는 더 쉽게 죽음으로 읽는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결코 죽음을 비켜나지는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고 나타난 여자 때문에 옛날에 썻던 소설을 살펴본다. 어린 시절 결핍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어린 소녀가 바로 자신이라던 여자와 약속을 정하고 만나러 가는 길에 그 여자의 죽음을 목격한다. 바로 소설 속에서 상처받은 어린 소녀가 주위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여주인공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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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접한 책 표지 중에 단연 최고라 할만한 디자인이다. 고양이의 묘~한 인상에 어우러진 퍼즐이 삶의 편린처럼 흩어지고, 날렵한 타이포그라피가 더해져 하나의 멋진 몸통이 만들어졌다. 양장의 특성상 펼침이 좋긴 하나, 가운데 터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옥의 티라면 티라 하겠다. 외려 무선 제본이나 소프트 양장이 좋을 뻔했다.
각설하고, 권지예 작가. 내 기억으로 2002년에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알고 있다. '뱀장어 스튜'였는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덥썩 대상 수상을 했다는 소식에 적잖이 놀랐던 적이 있다. 물론 권지예 작가는 그 당시에도 작품들이 잘 알려졌던 분이셨는데... 내가 몰랐을 뿐.
그때의 인상과 기억을 더듬어봐도, 도무지 퍼즐과는 매치가 되지 않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7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첫작품 'Bed'의 강렬한 충격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퍼즐, 바람의 말, 네비야, 청산 가자, 여주인공 오영실, 공포의 파노라마가 이어진다.
순간 전경린 작가가 생각났다. 한동안 90년대 작가군 중에서 정염과 귀기의 작가란 분명한 자기 색깔이 있었다. 하지만 권지예 작가는 두 발 더 나아간다. 사랑과 결혼, 유년기적 깊은 트라우마가 결국 죽음에 의해 완성된다. 이 끝없는 피의 향연에 아찔하기 그지 없다.
여성성은 그 자체가 생명의 잉태, 원천 아닌가? 여성성의 발현이라 함은 생명을 보듬고, 생명을 살찌우는 그런 것 아닌가? 이 땅에 여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 중에... 이처럼 지독한 아픔과 상처 속에서 매일매일을 죽음을 꿈꾸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지독하다.
생명 본연의 여성의 삶. 그것이 거세됐을 때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 설정이 꽤나 혼란스럽고, 아쉽기도 했다. 특히 딥 블루 블랙에서 우울증에 걸린, 그래서 늘 죽음을 꿈꿨던 한 작가의 자살은 꽤나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지예 작가의 이번 소설집은 내게 값지다. 섬세한 내면 묘사와 밀도 있는 내용 전개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한여름 밤의 소름돋는 공포물로 이 책을 읽기엔,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 그 무게가 녹록치 않으며, 죽음 또한 가볍지 않다. 다음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권지예 작가의 '퍼즐'. 그 완성의 끝이 죽음이 아니었으면 하는... 희망의 조각들을 많이 품고, 맞춰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내게 있어, 올해 접한 소설 중에 단연 최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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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하지 않은 욕망이 있을까. 천형처럼 가지게 되는 욕망, 그리고 욕망의 근거지인 삶을 통하여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하루하루를 매치 포인트에 놓인 운동선수처럼 살고 있음에도, 매번 첫 번째 점수를 내는 순간의 짜릿함을 욕망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거추장스러운 삶의 도덕률, 그 도덕률과 그 도덕률을 무장해제 하려는 욕망의 사이에서 한 조각 부족한 퍼즐처럼 나약한 인간을 향하여 작가가 여는 작은 포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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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쉬운게 아닌데... 죽음이란걸 너무 쉽게 보는 세상이 온 것 같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들린다. 이젠 너무 많이들 자살을 해서 '누가 자살했다더라' 하면 '또?'라는 반응만 나온다. 쉽게 죽는 세상, 이 더러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왜 죽어야 했을까?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도 죽으려 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답답한 글들 이 소설집은 슬프다. 그리고 답답하다. 아니, 답답하고 슬프다. 슬퍼서 답답한 것인지 답답해서 슬픈 것인지 내 감정은 혼란에 빠졌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야 혼란한 내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 답답해서 슬픈 것이다. '살지... 죽지 말고 살지... 어짜피 공짜로 사는 세상인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먼저 가나...'
슬픈 글들 첫 단편 [BED]에는 이 소설집이 말하고자 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BED'는 침대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가장 편안한 휴식을 갖는 곳이다. 침대는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 이 소설속에 나오는 침대는 특별하게도 매우 튼튼한 침대다. 한 번 사면 평생 A/S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튼튼한 침대다. 남자는 이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고 평안을 얻는다. 평생 A/S가 필요없다는 것은 평생 행복이 지속될 것이라는 남자의 심리를 잘 표현해준다. 남자는 튼튼한 침대처럼 자신의 행복이 평생 갈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불행은 찾아온다. 인생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살다보면 잘 포장된 도로가 있기도 하지만 자갈밭도 나오고 가시밭도 나오는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하지만 남자는 행복을 빼앗긴 후에도 평탄한 포장도로를 잊지 못한다. 평생 A/S가 필요 없을거라는 침대가 고장나듯이 우리 인생이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 변화에 적응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사람이다.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여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결국 남자는 죽음을 택한다. 자신의 행복을 빼앗기려고 하지 않는 욕망이 남자를 죽게 만들었다.
소름끼치는 글들 오싹하게 만들고 놀라게 만든 단편 [여주인공 오영실]을 보며 성적 답답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게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하니 더 끔찍하다. 아버지의 죽음, 자신을 겁탈한 탈영병의 죽음, 그 사실을 말해준 또래 남자아이의 죽음 그리고 오영실의 죽음을 보며 이게 허구라면 작가는 너무 끔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 다 죽어야 했을까?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것으로 모든결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답답하지만 죽음이라는 소재로 책을 가득 채운 작가에게도 답답함을 느꼈다. 소름이 끼쳤다.
사랑과 희망 한 때 자살을 결심한 적이 있는 나에게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충격이다. 책의 내용을 기억에서 모두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충격이다. 물론 이 세상에 어디 해피엔딩만 있겠냐만, 그래도 죽음은 너무한게 아닐까 생각된다. 한 때 죽음을 동경하고 죽음의 시만 끄적거리고 죽음을 소재로 한 단편만 끄적대던 나의 20대가 생각난다. 그때 난 정말 여차 하면 죽을 준비를 하고 시를 쓰고 소설을 썼었다. 나의 시는 대부분 죽음이 주제였으며 나의 소설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죽었다. 하지만 난 이제 그런 시도, 소설도 쓰지 않는다. 죽고싶을 만큼 살기 싫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해야할 대상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사랑과 희망은 죽음의 반대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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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재밌는 소설책인줄 알았는데 제법 내용이 지독했다. 마음에 준비도 없이 읽었는데 뭔가 기묘 하면서도 치닫는 느낌이 무섭고 어이없게 통쾌한 느낌마저 들었다. 대체로 욕망을 필터하지 않은 신랄한 묘사가 음침하면서도 흡입력 있게 다가왔고 단편소설인데도 결론 부분에선 어딘가 강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호칭에 있어서도 소설속 주인공의 호칭이 (BED) 이니셜로 묘사된 부분에서는 익명성에서 오는 듯 한 정제되지 않은 욕망의 꿈틀거림과 뒤틀림이 치열하게 묘사되어 시간가는 줄 모를 만큼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긴장감이 들었고 개인적으로는 이야기의 소재며 배경이 다양해서 조금 놀랐다. 뭔가 한 사람이 쓴 작품이 아닌 것 같은 풍성함(상상예찬)에 작가님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다양한 경험과 내공이 있어야 독자를 사로잡는 글이 나오겠지...나름 생각해 본다. 인간본능 중에는 죽음의 본능(타나토스)이 있다고 하던데 단편들 속 주인공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탈출구로 죽음을 선택해서 안타까웠다. 소설 속 이야기 아니라도 경기침체가 진행된 요즘 한동안 동반자살이 유행하고 그랬는데 마치 인생의 굴레를 표현한 것 같아 씁쓸했다. 감정과잉의 남발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약간 들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국제결혼에서의 자칫 속아 결혼하는 문제점을 지적 한다든가, 불법적인 태아성감별 문제며 사회적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마지막 부분 작가의 말과 작품해설 부분도 인상 깊었다. 인상 깊은 구절 : P-256 어쩌면 사람들은 가슴속에 깊고 검푸른 바다를 품고 사는 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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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소설을 다시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읽어내렸다.
이번 권지예작가의 단편집 '퍼즐'을 감상하면서 느낀것은 인생이 원하는 대로 맞출수 없는 하나의 조각들의 모음같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가질수 없는것이 존재하고 이룰수 없는 일들이 많듯이 우리의 사랑도 삶도 그런 기억의 조각들 혹은 깨어진 파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말이다.
서로 원했으나 엇갈려 버린 인생들이나 마음속에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알콜냄새도 맡지않은 또렷한 정신이었으나 마치 술에 취한듯한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엇갈리는 사랑들 그리고 여성이라는 틀에 갖혀서 허우적대고 있는것만 같은 그들의 모습들과 순탄하지 못하고 전부 아픔이 남는 결말에서 작가는 무슨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열병(熱病) 같은 사랑의 기억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여운이 지금 책을 덮고 느끼는 첫번째 느낌이다.
'퍼즐'은 미완성이다.
죽음이 마지막 조각이 될수있다면 억지로 완성이라 할수도 있을것 같지만 미완성이라서 더 좋은것이 아닐까 싶다.
각인각색(各人各色)의 아픔과 사랑 그리고 잊혀진 기억들의 조합인 이번 단편소설집 '퍼즐'은 위에서 말한것처럼 마치 열병같다.
열병(熱病)이 지나간 후에도 그 각인된 아픔이 또렷이 남을것만 같은 열병말이다.
다만 전작들과 비슷한 설정등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점을 감안하더라도 권지예 작가의 글이 주는 흡입력을 높이 사고싶다.
이번 작품을 보면서 필자는 클래식은 자세히 모르지만 일종의 변주곡(變奏曲, variation)을 들었을때와 비슷한 느낌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권지예 작가의 다음작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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