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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전복 - 자크 라캉 또는 제2의 정신분석학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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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페터 비트머의 ‘욕망의 전복’은 그동안 접해보았던 라캉에 관한 여러 연구자들 중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독일 출신의 연구자이고(국내에 번역된 연구자들은 대부분 미국 혹은 프랑스 출신이다), 독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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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비트머의 ‘욕망의 전복’은 그동안 접해보았던 라캉에 관한 여러 연구자들 중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독일 출신의 연구자이고(국내에 번역된 연구자들은 대부분 미국 혹은 프랑스 출신이다), 독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다른 연구자들에 비해 독특한 시각을 보이지는 않고 있지만 어쩐지 조금은 색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1998년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소개된 라캉과 관련된 입문서들 중 초기에 소개된 저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라캉의 논의를 상세하게 검토-응용하고 있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라캉의 논의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무척 어렵게 읽혀지지는 않고 있지만 역시나 라캉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에 그다지 쉽게 읽혀지지는 않게 되는 것 같다.

번역을 두명이 나눠서 했기 때문에 용어에서나 번역된 내용에서나 조금은 불만족스러운(혹은 일치되지 않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라캉의 여러 논의들을 되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입문서이기 때문에 큰 불만 없이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페터 비트머는 라캉의 여러 논의들을 하나씩 검토해가며 설명해주고 있고, 라캉이 어떠한 인물인지 그리고 그가 대체적으로 어떤 입장에서 자신의 논의를 전개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며 내용을 시작하고 있다.

라캉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데 가장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거울단계’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상상계와 상징계, 그리고 상징계의 핵심인 주체에 대해서와 라캉의 논의에서 수시로 등장하는(그리고 그의 논의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기표와 기의, 환유와 은유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고, 다른 라캉과 관련된 입문서와 연구서들에서 ‘읽는 사람이 안다고 가정하고 논의되는 경우가 많은’ 네가지 담론에 대해서와 보로매우스의 매듭에 대해서 읽는 사람이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서 설명하고 있다.

다른 라캉에 관한 연구서와 입문서들에 비해서 무척 명확하고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입문서로서 충실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역시나 난해하고 어렵기만 한 라캉에 관한 논의이기 때문에 그저 쉽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다른 라캉과 관련된 연구서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는 네가지 담론과 보로매우스의 매듭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갖도록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라캉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입문서들보다 가장 먼저 읽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쉽진 않지만 그나마 도전해볼 의욕은 갖게 하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쉽게도... 내 도전은 가볍게 실패한 것 같다.

누구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줬으면 정말 좋겠다.

‘욕망의 전복’에 대해서 아쉬움을 한가지 말하자면, 이론적인 논의에 많은 집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임상적인 논의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라캉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이론과 임상에 대한 논의로 논의 자체가 나눠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분리 혹은 분할이 긍정적이기 보다는 좋지 않은 점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하게 되어서 조금은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참고 : 라캉이 제대로 된 발음인지, 라깡이 맞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용어든 발음이든 무엇 하나도 통일될 것 같지 않다.


y*******o 2011.12.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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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회한과 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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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을 위한 편엽 그것은 독선과 아집이겠지.이기스러움 말이다.남을 배려치 아니하고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주관에 맞추고 독선적인 무차별적 이해와 위안을 받으려는 지독한 독선이다.몰염치하기도 하고 참으로 두서없는 분별이 존재한다.황당한 경우이다. 누구든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을 풀이하려 하는 것은 어쩜 본연에 가까운 행동일지 모르나.남을 배려치 않은 독선은 무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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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을 위한 편엽 그것은 독선과 아집이겠지.

이기스러움 말이다.

남을 배려치 아니하고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주관에 맞추고

독선적인 무차별적 이해와 위안을 받으려는 지독한 독선이다.

몰염치하기도 하고 참으로 두서없는 분별이 존재한다.

황당한 경우이다.

 

누구든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을 풀이하려 하는 것은

어쩜 본연에 가까운 행동일지 모르나.

남을 배려치 않은 독선은 무례하고 만용에 찬 이기로움이다.

아마....

그대에게 다가온 침묵과 위치롭지 못한 현실이

벗어난 과오로 다가섰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잠시 메아리없는 기염을 토한 오만의 착시적 허울이다.

현실과 미래를 즈음치 않더라도 이미 신뢰를 상실한

맹목적 가치관에 무엇을 첨가하여야 무너진 상실의 의미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이미 돌아오질 못한 불신과 지독한 이질감의 충돌로

이미 파괴된지 오래... 무엇이 그대의 울부짓음에 메아리 되어 그을 이해하려 들겠는가?

 

교만하여 득실을 챙기고 실익을 따져 자신을 위안하며 쫏기는

두려움으로 거짓을 일관하던 물질의 부는 과연 신뢰를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물론 그렇게 쉽게 가치를 평가할 일들은 아니지만

다만 나를 기만하여 얻은 득실에 못내 인연의 덧셈을 하려 드는 

영악한 극치에 난 할 말을 잊었다.

티끌만한 오만으로 좋은 연의 바램을 치장하려 든 다면

과연 진실의구도는 무엇이던가?

 

난 손실을 봤다.

그는 손익을 챙겼다.

난 사심이 없다.

먹이에 길들여진 야수의 던져진 고기덩이는 이미 먹이돤 채

진흙탕 아래 앙상한 뼈다귀로 나뒹굴고 있다.

투자를내 가 했다.

명의을 빌렸다.

나의 직감은 명중하여 투자의 차익을 실현하게끔 확실케 됐다.

투자금의3/4배의 차익이 그리 작은 액수가 아니다.

 

한푼도 없다던 명의신탁자이자 그는 어디선가 돈을 융통하여

투자금의 원금으로 명의을 돌려주길 묵시적 시위을 하였다.

난 투자처에 무일푼으로 생활 할수 있도록 편의을 제공 했다.

어느날 돌변 한 것이다. 명의 신탁에 합의 했던 그는 차익의 먹이사슬 유혹에 빗겨 가질 못했다.

난 미련 없이 손을 끊었다.

 더이상의 바램이 없기 때문이다.

 

원금을 회수하고 명의 행사권을 넘겨줬다.

차익을 세배을 남겼으리라 생각 한다.

나의 대학 후배이다.

참으로 삶이 그토록 가련한 생각이 든다.

그 뒤에 안 사실이지만 투자을 모든 역량을 동원 하여

또 다른 투자을 해놓은 사실을 알었다.

 

그는 서울 사람이 아니다.

순전히 나의 투자 역량으로 나의 직접적 투자로써 미리 선관해 놓은  투자 였다.

난 내가 바보라서 모든걸 내준 것은 아니다.

그 와의 의기투합이 싫어졌고 무서움과 두려움이 밀려 왔다.

끝없는 이질감 거짓의 분별 그리고 허울의 가면 들이 날 실의시켰다.

그래 더 이상의 욕심을 버린것이다.

채움은 물론 자신을 위안할수는 있을 지라도

전부을 충족 시킬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르리라 믿는다.

 

아마 나의 이권이 걸린 실익에 내가 그리 쉽게 손을 빼리라곤 생각치 못 한것 같다.

그럴수 없음 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결단의 손발을 잘렀다.

아마 다음 나의 발목을 잡을 차례인지 난 눈치 챘다.

지나간 시간속에 채움의 이기속에 만세를 부르고

만찬을 챙길 시간이 지날쯤  멀리 나를 부른다.

파티에 초대도 영화의 만찬도 아니 자리에서.....

 

그래!

인생은 그렇게 시작 되는지도 모른다.

이기와 욕망의 단 맛으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세월은 연륜을 부르고 시간은 자신을 해동 하는 것....

모든것이 전부를 해치우리라 생각 하면 오산이다.

결국 인생은  오르막 내리막 하는 것이며

성숙은 조율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언젠간 채움보다는 비움이 가볍고

남을 가해 하는 것보단 내가 인고 함이 훨씬 부드러움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젠 처음의 기만의 이기가 더욱 빛을 발 하여 못난 나의 의기투합이 잊히어 가길 바란다.

아무일 없듯 그리고 여한이 없는 상처처럼 그 숱한 흔적으로 기억 되길 ~~~ 바란다.

남을 신뢰 하는 것은 항상 위험 한것 인가 보다.

실의 하는 것 보단  마음의 불신이 더욱 문제이다.

남에게 이용 당 하거나 배신 당 하면 차으로 자신이 한심 스럽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래 본연이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여한이 없다. 물론 후회도 없다.  많은 시간을 허비한 노력도 물거품이 됬지만 난 여한이 없다.

난 아직도 여전히 자유로 우며 아직도 난 마음을 구속 당할 부당한 처사에 빠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잠잠하여 시간이 날 해동 한다.

얼음이 녹듯 비바람이 스쳐간 아침처럼 다시 살어야 하는 의미을 되 세긴다.

생존의 의미는 생동을 말 하기에 난 다시 생동 하는 나의 자신을 보고 싶을 뿐 이다.

유유하고 부드러움이 세찬 파고을 이기듯 난 나의 자신과의 대화에 충실한 초라하지 않은 이로 남기 위해 오늘도 생동 하여 본다.

 

자신만을 위한 편엽은 많은 여한과 회한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리 없는 어리석은 이 에게 인생의 부질 없음을 말 하여 주고 싶은 하루이다.

이미 난 욕심의 허울을 벋은지 오래 아직 남은 고기조각에 구미을 당기는 것은 아니라 믿는다.

너의 꾀한 이기의 고기덩이는 허울 이며 너의 낮은 이상은 결국 너을 충족 시키지 못 한다는 사실에 너도 많은 회한의 고통을 나누리라 믿는다.

잠시 스친 비 바람처럼 난몽은 지나고 이제 인간 답게 다시태어 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 하다.

잠잠하여 시간이 날 해동 하길 바란다.

참으로 요묘하고 치졸한 세상의 삶이여

h*****k 2018.04.01.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