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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차별점은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적인 역사서가 아니라 강의 형태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사실만이 나열된 '역사책'이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한 논평, 의미추구, 앞으로의 전망 등이 있는 '역사강의'서 이다. 즉, 현상의 결과가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내·외부적인 상황, 역사적 인과 관계에 대한 다각적인 고찰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는 저자의 생각을 비판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확대해 나갈 수 있고, 자신만의 관점을 세울 수 있다. 각 장이 시작될 때 전체 내용과 생각할 거리를 짧게 정리한 요약문을 꼼꼼하게 읽으면 내용을 파악하고 생각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가 한 시대의 역사를 책으로 쓸 때는 연구를 통해서 이미 실증되고 논증된 사실만을 골라서 쓰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역사책'에서는, 어느 하나의 사실에 대해 '지금까지는 이런 것으로 되어 있지만,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되면 다른 것으로 될 수도 있을 것'이라든지, '다른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논증을 통해 이렇게 보아왔는데, 비록 논증은 하지 못했지만 역사 흐름의 큰 방향 같은 것에 비추어봤을 때 이렇게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식으로는 전혀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 강의'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강의에서는 말한 역사책에서는 쓸 수 없는 예상이나 가정이나 추측 같은 것을, 수강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정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자 서문 中)
무엇보다 남북관계에서 한쪽의 이념, 상황에 대한 치우침 없이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 이념의 차이로 인해 지금까지 역사 교육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공산당, 좌파 성향 지식인, 무장세력의 활동, 간도·만주에서의 독립 운동 등에 관한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해방 후 신탁통치에 관한 기술이었다. 일반적으로 신탁통치에 관해서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국은 카이로선언에 따라 조선을 즉시 독립시키고, 그 정부형태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가로 한 데 반해, 소련은 남북 두 지역을 통틀어서 한 나라가 신탁통치할 것을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동아일보의 오보에 의해 잘못 전달된 사실이었다. 원래의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신탁통치를 실시하고자 먼저 주장한 쪽은 미국이었고, 영국과 소련은 이에 따랐으며, 신탁통치 기간을 길게 잡은 쪽도 미국었다는 전혀 새로운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우선 소련을 저지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신탁통치를 주장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소련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공산당과 좌파 세력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신탁통치를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같은 이념과 체제를 지닌 국가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동아일보의 오보로 인하여 남북 전체를 통치할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38도선을 해소한다는 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5년간 연합국의 신탁통치를 받는다는 점만이 일반 국민들에게 부각되기에 이른다. 동아일보는 훗날 잘못을 바로잡기는 했으나 이미 국내 여론은 소련이 주도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신탁통치하려는 것처럼 국민들이 인식하게 하여 반소·반공 분위기가 높아지고, 국론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까지 남한-미국-반탁vs.북한-소련-찬탁이라는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북한과 소련에 대한 얼마나 많은 편견을 지녀왔는지 이번 계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언론의 아젠다 세팅이 국민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역사적 진보를 가져올 수도 반대로 퇴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교훈을 얻기에 치른 엄청난 비용을 생각하면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19혁명을 4·19운동이라고 지칭한 점도 새로운 시각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사회혁명이란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에게 국가권력을 탈취하여, 스스로 정권을 장악하고 새로운 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즉, 지배계급의 담당층이 다른 계급으로 바뀌는 결과를 불러온다. 그러나 4·19는 청년·학생층·지식인층·도시빈민층 등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정권의 부정부패에 항거하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은 했으나 이후 스스로 정권을 쥐고 사회개혁을 단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으로 불리기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을 읽고 무고한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희생으로 2000년대에 민주적으로 발전한 국가에서 살게 되었다는 감사함과 더불어 혁명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관해 지금껏 지녀왔던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 동아시아에서 왜 일본이 강대국으로 급부상하며 조선과 청을 침략할 수 있었는지 - 비슷한 맥락으로 왜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 해방 후 김구는 왜 북으로 김일성을 만나러 갔는지 - 김구나 여운형 대신 왜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었는지 -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 이승만 하야 후 박정희 군부 정권이 들어선 이유 - 어떻게 박정희 정권의 18년 독재가 가능했는지 - 박정희의 독재 정권이 물러난 뒤 또다시 어떤 이유로 전두환 군부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는지 - 문민 정부가 우리나라 민주화와 현대사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 국민 소득 20000달러를 앞에 둔 나라가 무슨 이유로 한순간에 세계 최대 채무국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 - 우리나라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는 문제이지만 재벌 기업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화에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 - 왜 금융통폐합이 추진될 수 밖에 없었는지 - DJ와 김정일의 6·15 남북공동선언이 지니는 의미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스스로 역사를 영위해가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며, 우리가 역사를 영위해가는 큰 목적은 한마디로 내 민족 네 민족 할 것 없이 이 세상 사람들 모두의 삶이 한층 더 나은 것으로 되게 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삶이 한층 더 나아진다는 것은, 간단히 얘기해서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한층 더 자유로워지고, 경제적으로 한층 더 고루 잘살게 되며, 사회적으로 한층 더 평등해지고, 문화·사상적으로 한층 더 자유로워짐을 말한다고 할 수 있지요.
(저자 서문 中)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현재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미래의 역사를 조망해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나아가 역사의 진보적 발전을 위해 현재 그리고 미래에 민주 시민으로서 나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참고로 DJ정권에 관한 내용은 2009년 개정판에서 2개의 추가된 장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각 장의 첫 페이지에 요약본과 함께 실린 강만길 교수의 캐리커처는 개정전이 더 푸근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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