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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그림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던 책<조선의
마지막 춤꾼>이랍니다. 화성 재인청의 맥을 이은 운학 이동안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사실 이동안이라는 분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어요. 이 책을 읽으며 그래도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이런 분들을 수면 위로 올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동안 선생님의 삶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한 창작동화이지만 이 책을 읽고 이동안 선생님뿐만 아니라 우리의 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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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나라의 젊은 남자들을 강제로 군대로 보내던 시절
춤추는 예인이나 악기를 다루는 재비(국악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기능자를 이르는 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춤 하나만은
조선에서 최고였던 동안에게 황군 위문대를 맡아 군인들을 위한 공연을 해달라고 수없이 부탁을 받았다고 해요.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지만 용주사에서의 딱 한 번의 승무를 춰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면 강제 노역으로 앙갚음을 하겠다고 하니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지요. 어쩔 수 없이 제자는 승무를 추기 시작합니다. 승무를 추는 여인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눈빛에서 자신의 옛 모습을 보게 되는 동안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다음으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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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은 육촌인 창수와 함께 어름사니(남사당패에서 줄을 타는
사람)인 작은 할아버지의 집 뒤편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장터에서 줄을 타는 작은 할아버지의 모습에 넋이 나갈 정도로 줄타기가 좋았는데요. 동안의 아버지는 그런 동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동안의 아버지는 동안이 돈도 잘 못 버는 도대방이 아니라 공부를 해서 먹고살기를 바랐기 때문이에요. 물론 동안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구요. 서당을 빠져나와 시장에 온 창수와 동안은 남사당패를 만나고 그 안에 있던 한 여자아이 인희를 만나게 되는데요. 동안은 인희에게 호기심도 생기고 마음이 생기니 남사당패를 따라가 마음껏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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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의 개인적 이야기도 있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들도 나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요. 독립운동을 위해 숨어 다녀야 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 3.1운동 때 무자비하게 죽어나간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들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장의 남사당패의 활동을 막는 등 불안하고 두려웠던 일제 치하 당시의 우리 민족의 삶도 들여다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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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독립운동하던 덕근이 형을 만나 도와주게 된 동안은
그 때문에 일본 경찰에게 쫓기게 되는데요. 그들에게 잡힐까 두려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창수에게 알린 후 용주사의 남사당패를 찾아갑니다. 지치고 힘들었던 동안을 남사당패의 꼭두쇠 아저씨가 품어주었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동안에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무엇이든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말해주지요. 그리고 동안은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다만 꼭두쇠 아저씨는 승무를 바라보던 동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고 보통 아이가 아닐 거라며 할아버지에게 말했는데요. 아버지 역시 동안의 사주가 타고난 끼를 살리면 세상을 가질 수 있다며 동안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답니다. 기본부터 배우기 시작한 동안은 타고난 재능과 남다른 연습량에 춤이 하루하루 달라졌어요. 아버지가 물려준 화성 재인청의 도대방 자리를 맡았지만 3년 뒤 일본이 민족 문화를 없애버리기 위해 화성 재인청을 닫아 버렸고 그 안타까운 소식에 동안의 재주를 아끼는 선생들이 앞다투어 제자로 받아들여 다양한 기술을 전수시켜 주었답니다. 그리고 그는 세월이 흘러 그의 스승들이 했던 것처럼 제자를 키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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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초반에 승무를 추는 여인을 바라보던 한 청년의 눈빛에서
자신의 눈빛을 발견했던 동안의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그 청년이 승무를 보고 느낀 마음을 종이에 적어 동안에게 건넸어요. 그러면서 시가 한편 등장하는데요. 바로 조지훈의 <승무>랍니다. 이 책 속에 실제 인물과 등장하니 시를 읽는 느낌이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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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에는 운학 이동안 선생님의 이야기와 대표적인 춤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요. 이야기를 읽고 이 부분을 읽으니 더 관심 있게 살펴보게 되네요. 운학 이동안 선생님은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고 우리의 문화라고 하면 판소리, 탈춤, 마당놀이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요. 많은 분들에게 전수받은 춤을 또 많은 제자들에게 전수해줄 수 있었던 이동안 선생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네요. 자신이 좋아했고 또 재능이 있었기에 일제 치하의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 춤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문화를 계승해주셔서 참 감사하다는 마음도 들었네요. 조지훈의 <승무>라는 시로 마무리된 부분도 참 좋았답니다. 이동안 선생님의 삶을 알고 시를 읽으니 시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네요. 우리의 춤을 보면 한과 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유가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장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이 책을 통해 느껴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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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춤꾼 조선시대 마지막 광대이야기로 이동안 선생님의 춤에 대한 꿈과 열정을 초등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동화로 쓰여진 책이라 더욱 관심갑니다. 책 표지부터 좀 색다른 느낌이 드네요.. 춤꾼이라는 말이 어떤 말을 의미하는지 책을 읽어보게 된 후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춤을 더욱 자세히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답니다. 이처럼 많은 춤이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에 우리나라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구요. 춤 하나하나에 깃든 예술성을 이해하게 되었답니다.
1906년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난 이동안 선생님은 우리가 문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태평무와 기본무를 전수한 분으로서 화성해궁에 뿌리내린 재인청에 도대방으로서 1922년 일본이 강제로 화성 재인청을 폐지하는 바람에 그가 마지막 도대방이 되었는데요. 일본이 화성 재인청을 폐쇄한 뒤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예인들이 모인 곳 광무대에서 공연하고 우리 춤과 가락 전부를 익히게 되었답니다.. 80을 넘기면서도 무대에 올랐을 정도로 , 진정한 춤꾼으로서 88세에 천식을 앓으며 힘들게 살다 생애를 마감하였던 분이랍니다. 어릴적 아버지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며, 춤을 배우기 위해 집을 나간 적도 있었던 그는 춤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했는데요. 전승이 끊긴 잃어버린 한국의 춤을 이동안 선생님은 새롭게 기록해준 셈이니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게 된답니다.. 수십 가지의 춤 모두를 한 사람이 전수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동안 선생님의 노력으로 우리 전통 춤의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답니다.. 이동안 선생님의 제자들이 우리 춤판의 큰 기둥으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동안 선생님의 춤에 대한 열정과 꿈을 통해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역사가 어찌 이어오게 되었는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뿌리를 알게 해주는 놀라움이었답니다. 그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춤을 중국, 러시아까지 널리 알리려고 했으며, 춤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을 달려올 수 있었음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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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작년이네요. 아이와 5월 5일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서울 4대 궁에 나들이를 다녀왔었습니다. 덕수궁 내의 한곳에서 사람들이 막 모여있는거에요. 뭐지? 하고 다가갔다가 외줄타기 공연 연습을 하고 계시는걸 봤습니다. 줄 하나에 온몸을 내맡기는 그 자체에 지루할틈이 전혀 없었어요. 혹시나 외줄에서 떨어지진 않을까 긴장감이 가득하였었죠. 아이도 마찬가지로 두손을 모으고 집중 가득하여 관람을 했더랬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조선의 마지막 춤꾼> 이 책을 읽었습니다. 화성 재인청의 마지막 도대방 이동안 이야기!! 이동안 선생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79호 발탈 예능보유자이며 진쇠무, 신칼대신무, 승무 등 전통무용뿐 아니라 줄타기, 땅재주에도 능한 전통 예술 재인으로 화성 재인청의 마지막 도대방을 맡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는 것보다 줄타기와 땅재주를 좋아한 어린 동안은 집에서 나와 남사당패를 따라가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곳에서 우연히 승무 공연을 보며 춤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깨닫고 화성 재인청 도대방을 지낸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춤을 배워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어 전국의 유명한 춤꾼들로부터 다양한 우리 전통 춤과 장단을 배우고 나아가 줄타기와 다른 재주들도 모두 배워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춤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동안이 살았던 때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했던 조선 시대 후기로 우리나라의 식량은 물론 노동력까지 착취하고 민족 문화를 말살시키고자 화성 재인청도 폐지시켰으며 우리 민족을 전쟁터로 내몰기도 했지요. 우리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역사속에서 이동안은 우리 춤과 예인들을 지키고 우리 춤을 중국과 러시아에 까지 알리고자 노력한 인물이에요. 아이가 역사 공부를 하고 있는데 화성 재인청에 대해서는 이번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고 하더라구요. 엄마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 해주고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그때의 역사를 좀 더 이야기 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여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우리것을 알리는것도 독립운동이 아니겠냐며 아이와 이야기도 나누었네요. 몰랐던 사실도 알게되었고 더불어 역사 이야기까지 아이와 너무나 좋은 시간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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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춤꾼 ![]()
<조선의 마지막 춤꾼>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참 당혹스러웠다. 춤 꽤나 보러 다니고 배웠다지만, 그 혹은 그녀가 누구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표지에 작게 그 명예로운 이름이 새겨 있다. '운학 이동안.' 그렇게 이름 석 자를 보고도 모르겠다. 그가 누구인지, 왜 마지막 춤꾼이라 하는지. 부끄럽고 미안해진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다. 이 책은 경기도 화성시의 문화자원을 발굴하여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화성시 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책이다. 이동안 선생님의 자취를 찾아 용주사 등을 답사했다는 정종영 작가가 글을 쓰고, 윤종태 그림작가가 그림을 더했다. 솔직히 춤을 글로 옮기는 어려운 작업에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불어 넣어준 5할은 정종영 작가의 매력적인 그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책은 유난히 일러스트레이션이 돋보인다. 특히, 어린시절의 이동안이 남사당패를 찾아갔다가 처음으로 춤을 마주한 순간의 그 경외감을 시각화한 그림은 참 아름답다. 정종영 작가는 이 순간의 감동을, "동안의 눈길은 오로지 춤추는 여인만 쫓았다. 동안의 눈동자 속에서 여인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다."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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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안 선생은 요즘 말로 "끼를 타고났다." 20세기 초반 당대에는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으로 치면 할아버지가 피리의 명인이요, 작은 할아버지는 줄타기 명인에 아버지가 화성 재인청의 도대방이었다. '도대방?'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인 도대방의 리더였다. 나라에서 내린 벼슬이 아니라,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 다시 그 손자에게도 물려지는 자리였다. 그 이야기는 이동안 역시 아버지를 따라 도대방이 될 운명이라는 뜻이겠지만, 이동안의 아버지는 생각이 달랐다. 도대방을 한다고 큰 돈이 생기는 게 아니라, 심지어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다. 반면 양반은 일을 안 해도 훨씬 잘 먹고 사니, 아들 동안에게 춤이나 재주가 아닌 글을 가르치고 싶었던 터.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서당에 나간 동안은 글공부에 도통 취미가 없다. 대신 줄타기를 하면 신이 나고, 재주 넘기에 재주를 보였다. 그러다 보았다. 남사당패의 거리 공연을. 동안은 아버지, 할아버지 몰래 남사당패를 따라 나섰다. 그렇게 해서 예능인으로서의 이동안의 삶이 시작된다고나 할까. 이후 이동안은 아버지의 인정과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아, 조선의 예능 명인에게서 춤과 음악을 전수 받았다. 당대 전통 예능을 전문으로 하는 광무대 극장에서 일하며, 같이 일하는 분들을 스승삼았다. 대금, 피리, 해금은 명인 장점보에게, 태평소는 방태진에게, 재담은 명인 박충재에게, 남도 잡가는 조진영에게, 김인호에게는 우리 춤과 장구, 북의 장단까지 다 배웠다. 신들린 듯 선생들의 춤과 음악을 다 빨아들인 이동안은 젊은 나이에 조선 최고의 춤꾼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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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춤으로 살던 이동안의 전설적인 춤을 보고자 일본 천황이 이동안을 부르고, 일본 황문 위문대를 맡아달라고도 했나보다. <조선의 마지막
춤꾼>에서는 이런 일본의 부름에 대한 이동안의 결정과 반응에 대해 명확한 서술을 피한다. 자료가 있다면 더 찾아보고 싶어진다. 이동안은
조선뿐 아니라 중국, 만주 등으로 공연을 다니며 이매방, 이승희, 최승희, 김복련, 한영숙 등의 제자들에게 춤을 전수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 태평무, 학춤, 한량무, 승무 등 30여 가지의 전통 춤을 모두 전수받았고 다시 이를 제자들에게 전수해서 우리 전통 춤의 명맥을
이어갔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이동안은 천식을 앓으며 힘들게 살았지만, 88세까지 무대에 직접 올랐다 한다. "해마다 기력은 쇠잔해 가고 있지만 죽더라도 무대 위에서 죽는다는 마음으로 꼬박꼬박 공연을 해 왔고, 사실 무대에만
나가면 아픈 것도 잊고 신명이 살았다. 이제 남은 생에 마지막이자 유일한 소원이라면 평생 추어 온 내 춤을 한 번이라도 더 무대 위에 올려
많은 관객에게 알리고 성실하고 재주 있는 제자를 하나라도 더 보는 것뿐이다."라고 <수원 근현대 증원
자료집> (수원시, 2005)에서 말씀을 남겼는데, 과연 이동안의 소망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한 반, 염려 반이다. 힘들게
명맥을 이어온 우리 전통춤, 춤 전수받아 추는 이 뿐 아니라 관객이 많이 사랑해주고 찾아주고 배워야 계속 살아 남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조선의 마지막 춤꾼>에서도 이동안의 이야기를 동화 형식으로 전하는데서 조금 더 나아가, 그의 춤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나 당시
재인청 등에 대한 대략의 설명이라도 인포그래픽 형식으로 부연해주었으면 어린이 독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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