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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아내에게: "이거... 설마... 빌린거지?"
-작가에게: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여러 리뷰를 읽고 망설이는 당신에게: (두손을 꼬옥 잡고 진지한 눈빛으로) "이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해봤어요?"
책을 덮고 제목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핀란드/ 디자인/ 산책/ 이라는 따로 국밥이다.
핀란드에 사는 사람이 산책길에 디자인을 훑어보는 게 전부이다. 사진 퀄리티도 조악하기 그지없고 내용도 정보삼을만 한 것이 전혀 없다. 편집부의 무성의, 출판사의 안이함에 화가 난다. 환경을 중요시하는 핀란드 디자인에 대한 간단 소개서정도로 생각하기엔 <낭비>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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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자마자, 아니 행간과 이미지들을 눈으로 확인해가며 간절하게 핀란드에 살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핀란드와 한국의 디자인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큐레이터이자 아트디렉터인 안애경 작가와 함께 하는 '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지금의 나를 비주얼 에디터란 직함을 갖게 했다. 알렉세이 브로도비치에 경도되어 '하퍼스 바자'의 잡지 디자인을 흠모했고. 사토 가시와의 획기적인 디자인 접근법에 '유니클로'를 한참이나 애용했었다. 칸타이 킁의 캘리그라피에서 동양의 손글씨를 제대로 맛보았고, 북유럽 디자인(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은 내가 좋아하는 궁극의 디자인 형태와 조우하게 했다.
지금껏 안그라픽스에서 출간된 4권의 디자인 여행기를 접했고, 앞서가는 유럽의 여러 선진 국가들의 디자인을 두루 살펴보았다. 각기 다른 빛깔로 내게 다가왔고, 색다른 경험을 안겨줬다.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
예일대 출신의 부부 디자이너. '슬기와 민'의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 공공 디자인 분야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툼바스튜디오의 나라 네덜란드와 만났었다. 얀반에이크에서 수학했던 당시의 아트스쿨에서의 경험들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흥미로운 책읽기였다.
스위스 디자인 여행 스위스 디자인의 특징은 헬베티카로 상징되는 타이포그라피다. 유학생들이 많이 찾는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설익은 디자인 스케치를 보는듯 해서 약간 실망을 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스위스 타이포그라피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독일 디자인 여행 맥주, 소세지, 쿠텐베르크의 나라, 독일 디자인 여행이다.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독어를 사용해야 하는 점때문에, 수준 높은 인쇄술과 타이포그라피, 바우하우스의 본령이면서도 유학생이 많지 않다. 이 책은 유학생 관점에서 독일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아주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유럽 디자인 여행 뭐든 두루뭉술한 제목이면 내용이 빈약하기 마련이다. 유럽 디자인을 대표할 만한 국가별 박물관, 학교, 관광지 등을 알기 쉽게 정리해놓은 말그대로, 여행 정보책이다. 낯익은 이름과 학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으나 깊이 있는 이야기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번엔 핀란드다. 노키아의 나라. 북유럽의 부국. 그런 핀란드의 디자인 산책이란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내 작가는 핀란드 특유의 자작나무 숲, 눈덮인 헬싱키의 거리, 헬싱키 시립극장의 빛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나 또한 핀란드, 특히 북유럽을 아우르는 북유럽 디자인에 완전히 혼을 뺏긴 뒤라, 이 책에 실려있는 모든 제품 디자인, 이미지 등에 압도되어 버렸다. 알바 알토의 '암체어'는 수 차례 나의 구입 목록 1호로 손꼽히고 있다.
핀란드의 디자인은 일상 자체다. 혹독한 겨울 날씨가 계속되면서 자연스레 실내 장식과 같은 의식주에 관계된 것들(가구, 그릇 등)에 대한 디자인이 발달했다. 핀란드의 디자인은 자연이 만든 것이리라. 울창한 침엽수림이 발달하면서 목재를 이용한 가구 디자인이 발달했다. 이 책에서는 3부로 핀란드 디자인을 산책하듯 보여주고 있다.
1. 핀란드는 일상이 디자인이다 2. 핀란드 공공디자인의 의미 3. 핀란드 사람, 그리고 디자인 철학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핀란드의 공공 디자인이다. 20세기 초부터 도시계획은 아주 점진적이고, 사람 중심의 사용자 배려로 진행되었다. 도시계획 또한 30여 년에 걸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추진한다. 거리의 돌멩이 하나를 옮기는 것도 규제 대상일 정도로 공공 디자인 분야 자체는 국민 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서울의 모습은 어떤가. 우린 대통령이나 서울시장의 임기에 따라 도시, 국가의 얼굴과 이미지가 바뀌어버린다. 2년도 안 걸려 청계천이 복원되고, 광화문에 물이 흘러넘치는 분수가 설치되었다. 특히 오세훈 시장의 세계 디자인 수도 정책은 이명박을 능가하는 전시 행정의 극치다. 공공 디자인은 말그대로 시민들을 배려한 공공의 디자인 정책이어야 한다. 서울 디자인 엑스포와 같은 생색내기용 행사, 여기저기 아무렇지도 않게 구조물을 세우며, 남산체, 서울체와 같은 전용서체를 개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핀란드는 30년을 내다본다. 서울은 고작 4년을 기약한다. 이는 국민성의 차이에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핀란드 국민들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 모든 행동은 후세에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한 배려. 공공의 재산임을 알며 지켜나가는 공중도덕. 우리네의 빨리빨리와는 천양지차의 차이다. 물론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분명한 건 자연을 도외시한 인위적인 디자인, 사람을 배제한 관료주의적 사고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핀란드인들은 여름을 즐긴다. 기나긴 겨울을 견디고 한없이 거리로 나와 광합성을 즐긴다. 500만명의 인구에 200만개의 사우나 시설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산타클로스의 전설이 숨어있고, 일상 속에 커피향이 가득한 나라(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내 핀란드 헬싱키 시내 곳곳을 밝히는 빛의 향연 속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너무나 부러웠고, 서울의 현재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작년 가을에 북유럽 디자인에 대한 원고를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다. 당시 친환경 트렌드에 맞물려 각광받고 있는 북유럽 디자인의 심플함, 세련됨, 수퍼노멀한 멋을 중심으로 썼던 기억이 난다. 아래와 같다. 모 아웃도어 브랜드의 잡지에 실린 글이다. 한없이 부끄러운 글이다. 이 책을 통해 못다 경험한 북유럽, 핀란드 디자인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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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에 대한 기대를 잔뜩 하고 책을 펼쳤으나,,,, 개인 감성 이상의 어떤 메시지나 정보는 다소 부족해서 많이 아쉬웠다.
좀 더 핀란드 디자인의 맥락이랄까, 전체적인 조망을 갖게 하는 큰 기둥이 없어 파편적으로 글이 나열되어서, 지은이의 감성을 따라가기엔 동기부여가 약했다고나 할까..
책 자체가 개인의 경험에 치우치는 것이 컨셉이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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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들면 마주하는 푸른 어둠이 내린 헬싱키의 겨울 산책길이 몽환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검은 어둠을 비추는 헬싱키시립극장, 핀란디아 홀의 푸르고 차가운 빛이 절제된 아름다움, 세상과 그대로 어우러져 두드러지지 않은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얼음의 투명함이 발하는 시린 푸른빛에서 자연에 대한 핀란드 사람들의 경외와 겸허함을 읽는다면, 그리고 자연과 닮은, 아니 자연과의 일체화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진 그네들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일 정도이다. 핀란드의 디자인은 이처럼 자연의 모습이고, 자연을 소재로 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겸손함을 담고 있다. 책을 장식하고 있는 단순함과 투명함 속에 그 절제된 미를 드러내는 사진들이 고독안에서 자신의 열정을 이끄는 저자의 디자인 산책길과 함께 무언의 하모니를 이루어 낸다. 공공건축물, 도시계획, 작은 찻잔, 스탠드를 비롯한 소품에서 패션의류, 그리고 농기구 등 일상의 재료들에 이르기까지 물질의 낭비, 자연의 남용, 과장된 현란함과 허영이 배제된 자연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교감, 진중함을 품고 있는 핀란드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절제된 침묵’속에 담긴 그 우아한 아름다움이 결코 화려하지 않음에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얼굴, 바로 인간 본연의 삶이 스며있기 때문일까? 고목(枯木)을 활용한 조각, 버려진 의류를 활용하여 멋진 빈티지 의류로 재탄생시키고, 옛 건물, 작은 설치물 하나에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 문화와 철학을 담아내는 그들의 정신에서 그 어느 곳보다 세련된 미(美)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리네들이 쏟아내는 과잉의 물질과 욕망, 무분별이란 천박함과 대조되어 더욱 절실한 공감이 된다. 자연을 넘지 않는 핀란드인이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저자는 인간 삶의 ‘그러해야 함’의 방편을 찾아낸 것 같다. “물질보다는 정신과 마음을 우선으로 하는 풍토를 가진 문화”그래서 그네들이 표현하는 디자인의 내면에 더더욱 마음이 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시 마스터플랜을 재정비하는 데만 30년”, 도시의 변화는 다음 세대를 위한 변화라는 그들의 신중함과,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에 배경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그 이유가 타당하고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서야 비로소 다음단계로 이행한다는 저자의 설명에서, 그들은 “도시계획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풍부한 문화와 철학을 담아내고”있음을 본다. “인간적인 도시의 모습, 인간의 삶이 담긴 도시, 도시계획이란 무언가를 채워놓은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서 어딘가를 어떻게 비워 두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판단하는 일”이라는 그들의 생각이 우리네의 경제적 효용 우선이라는 탐욕의 기승과 비교되어 더더욱 부끄럽고 민망함이 밀려들게 한다. 또한 자연과 벗하며 노동의 대가를 스스로 확인하며 살아가는 그네들의 안목과, 비움의 시간으로서 손작업과 노동의 시간을 즐기는 등불하나 없는 원시의 여름휴가 생활이 마냥 부러워진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만이 흐르고, 겉모습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모두 평등하고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그들의 숭고한 정신이 책을 수놓는다. 광화문 도로 한복판에 나무와 녹지를 몰아내고 어색한 사적 놀이터를 만드는 한국인의 경솔함과 천박함이 더더욱 “도시의 혼돈과 혼돈의 질서”를 부추긴다. 결코 겸손과 거리가 먼 이 도시 디자인과 도로 한복판으로 넘쳐흐르는 물과 그곳에서 사적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저자의 당혹감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핀란드의 디자인이 내면화하고 있는 자연환경에서 가능한 생각과 실천의 내용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오래된 것을 새것으로 바꾸기 보다는 그 기본의 유지에 더 고민하고, 격리와 어울림의 자연스런 조화를 만들어내는, 그리고 작은 빛으로도 빛나는 어둠의 존재, 자연의 존재, 곧 절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생각게 하는 지혜로운 성찰과 사색의 에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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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디자인에 대해, 핀란드에 대하여 상세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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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사우나, 눈,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에 이어 최근에는 다양성과 평등이 보장된다는 핀란드의 교육이 내가 생각하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실제 서점에 나가보면 핀란드의 교육에 관한 책을 쉽게 만날수 있다. 여러권의 교육에 관한 책들 사이에서 생소하게도 핀란드의 디자인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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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푸근하다. 오랫동안 우리 인간을 품어주고 우리를 용서해온 탓이리라. 그래서 자연을 닮은 디자인은 말그대로 ‘자연스럽고’ 푸근하고 정감이 간다. 이 책은 핀란드의 자연에 대한 찬가이자 동시에 그 자연을 닮고자하는 핀란드 사람들의 정신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다. 핀란드의 자연풍경과 핀란드를 모태로 살아가는 생물들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들이 있다. 자연에 대해 모방해도 모방해도 또 모방할 것이 남는 자연의 위대함과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삶의 발전이 곧 자연을 거스를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편리함에 대해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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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핀란드는 호수가 많고 복지제도가 우수한 나라로 인식되어 있고 내심 생활의 질이 높을 거란 기대감이 든다. 깔끔한 책표지며 도서구매금액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책이라서 뭔가 의미 있어 보인다. 언제 부턴가 우리나라는 길쭉한 아파트가 빼곡한 도시의 풍경과 비슷비슷한 도시의 건물들이 들어서고 워낙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라서 그런지 더욱 숨 막히게 다가온다. 우선 책속에 사진이 제법 많이 실려 디자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주변 풍경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엣지있게 다가오는 핀란드 건축물의 디자인이 감각적으로 느껴지고 국내도입이 시급하다. ㅋㅋ빛을 활용(핀란드기후와 연관)해서 야간에 도시의 이미지가 신비스럽고 돋보인다. 단순함과 기능성을 우선으로 두고 디자인해서 그런지 군더더기 없이 단백하게 다가오는 디자인들이 제법 마음에 쏙 든다. 책을 읽은 내내 감탄사 연발이다.ㅋㅋ 부러운 것은 (p-78/자연환경과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일은 국가가 우선적으로 제한하며, 엄격한 원칙 적용에 의해 편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라는 내용이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청렴도 1위의 나라는 핀란드라는 뉴스기사를 여러 번 보았다. 사회분위기가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레벨이 다르구나! 선거철만 되면 재개발 공약의 남발에 지은 지 얼마 안 된 아파트까지 때려 부수며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한 숨이 다 나온다. 이렇듯 북유럽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에 배경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그 이유가 타당하고 합리적이어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정책의 조급증이 연상되면서 그들의 여유로움이 마냥 부럽다. 분위기 자체가 물질보다는 정신과 마음을 우선하는 풍토를 가진 문화라서 그런지 사회 구석구석 따듯하고 안정감 있는 공공디자인이 매력 있게 다가온다. 거기엔 작은 결정하나에도 세심하고 민주적인 토론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의 추진은 반발만 불러 올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인상 깊은 구절p-277/핀란드 사람들은 서로 이름을 부른다. 어떤 직위나 직업을 드러내는 말이 뒤에 붙지 않는다. 평소에 누가 누구의 상관이고 후배, 선배 사이인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개별적인 성격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보편화된 사람들의 정서다. p-323/사람들이 침묵의 공간을 두고 그 안에 자신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는 시간을 서로 인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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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즈음은 북유럽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 곳의 눈 덮인 풍경은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지니고 있다. 추위를 지독히도 싫어하기는 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절로 생성되는 듯한 그 모습만은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번잡한 서울이 고향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혹자는 서울만큼 버라이어티 한 곳을 본 적이 없다며 그 나름의 매력을 예찬하기도 한다. 그래도 난 이제껏 복잡한 이 곳에 살아왔다는 이유로 이제는 한산한 핀란드의 한 도시 정도를 꿈꾼다.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 꿈은 사치가 아니다.
영국 편에 이어 핀란드 디자인 산책도 읽었다. 사실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거의 문외한이다 보니 핀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호감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걱정했던 게 사실이었다. 전문적인 내용을 어렵게 풀어낸 서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을 놓았고, 디자인 그 자체보다도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들어 있는 책이라는 판단과 함께 독서를 마쳤다. 미적인 요소만 놓고 보았을 때 핀란드의 디자인은 다소 투박한 면이 없진 않았다. 일단 소재 면에서 그들은 겸손했다. 많은 소재들이 이미 한 번 쓰임을 받은 후 버려진 것들이었다. 필요가 없어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할 때 그것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핀란드의 디자이너들은 버림 받은 무언가가 지닌 가치에 주목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정녕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소재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손길 역시 투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격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분위기상 많은 제작은 기기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조금은 이야기가 달라졌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 경제를 일으키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 중 하나가 대량생산 체제이다. 여전히 많은 제품들이 많은 수량 생산되어 그 제품을 향한 사람들의 소유욕을 달래주고는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 뿐인 나만의 제품을 갖고자 하는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선 그와 같은 시스템이 바뀌어야만 한다. 핀란드의 디자이너들은 손 감각에 의존한 창조를 많이 하고 있었다. 아무도 사용치 않을 것만 같은 소재들을 일일이 손으로 재단해가며 만든 제품은 바로 그 순간에 그 사람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독창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개성도 그와 같은 개성이 없을 듯.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아서일까, 촌스럽다기 보다 독특했고 하나 즈음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명 Must Have 아이템을 보았다고 할까나! 이와 같은 핀란드적인 디자인의 면모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디자인은 디자이너라는 걸출한 개인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기는 하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꽃은 피듯 소수의 창조적인 디자이너들의 머리 속에서도 디자인은 생성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통해 만난 핀란드 사회는 원래부터 검소함이 생활에 배인 듯해 보였다. 이는 핀란드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우리가 일제 치하를 경험한 것처럼 핀란드라는 나라 역시 지배 받기를 수차례, 그것도 우리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풍족함이나 축적보다는 나눔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생존을 향했고 디자인도 마찬가지였다. 해석을 이리하면 다소 서글플 수도 있겠지만, 실용성 면에서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인 핀란드 디자인의 뿌리가 생존이 아니면 과연 무엇일지 싶다. 딱 필요한 만큼의 멋을 추구함으로써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실용의 미. 그 안에 깃든 것은 다름 아닌 절제이다. 동시에 그들은 자연의 숭고함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눈을 뜬 듯했다. 기후가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한국 사람들은 일년을 사계절로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핀란드 인들에겐 아마도 다를 것이다. 가본 적이 없어 대강의 짐작 외에는 알 길이 없지만 상당히 높은 위도에 위치한 그 땅이 이 곳보다 추우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무 하나가 사랑스럽고 새들의 지저귐이 존귀한, 자연에 대한 존중은 곧 사람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진다. 공원에 놓인 벤치 하나도 주변 환경과의 기가 막힌 조화를 자랑한다. 벤치 그 자체만으로는 화려함이 다소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벤치가 놓인 공간까지 함께 바라볼 때 어디서부터 벤치이며 어디서부터가 자연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로 그 조화 정도가 뛰어나다. 그 벤치에 몸을 맡긴 사람 역시 편할 거 같다.
적당히 아름다우면서 생활 속에서 귀히 쓰임 받을 수 있는 아이템. 진열장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내 손의 선택을 받으며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아이템. 아마도 그것이 핀란드 디자인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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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자체의 위기의 대안을 핀란드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핀란드는 간간히 소개되고 있을 뿐, 그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 사회적 관계, 사회적 가치관 등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핀란드에 대한 지식은 사실 한계가 있으며, 종종 한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이상향의 이미지만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억지로 그들의 실체를 알 필요는 없지만 너무 막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도록 할 만큼 한국은 너무 모르는 핀란드에 대한 과도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앞뒤가 바뀐 형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