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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는 급격한 변화의 시대였다. 원치 않았으나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경험하며 우린 모든 것의 파괴를 겪었다. 허허벌판에 기초부터 다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빠르게 모든 걸 복구했으며 창조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괜히 탄생한 게 아니었다. 많은 분야 중에서도 미디어 쪽의 변화는 눈부셨다. 지금이야 크고 작은 형태의 미디어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대기업과 손을 잡은 경우도 있고, 그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곳도 있다. 반대로 혼자 혹은 5인 미만의 사람들이 뭉친 일도 있다. 페이스북 등 SNS는 이제 개개인의 단순한 소통 수준을 뛰어넘어 1인 미디어를 지향한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생생한 현장감을 담아가며 방송을 진행할 수 있다. 앞으로 이 분야가 어떻게 또 바뀔지 예측하는 것은 힘들다. 소수의 특정인에게만 허락되었던 권한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퍼진 만큼 적어도 양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성장이 가능하리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이창근 강준만 조흡 원용진. 네 명의 학자가 뭉쳤다. 30여 년 전 대학원에서 만난 인연이 이어져 책까지 내게 된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땐 모두가 청춘이었다. 이제 하나둘 은퇴기로에 서게 되면서 기념으로 책을 출판하게 됐다고 한다. 학술서적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수필과도 흡사했다. 이론을 이야기하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제 삶을 그 안에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직접 살아온 시간은 아니지만 글을 통해 엿보는 시간들은 벅찼다. 지금의 입장에서는 갑갑하기 짝이 없어 보이나 그땐 그게 보편적이었고 비교 가능한 항목이 없었으므로 다들 잘 견디었던 듯하다. 열악했던 방송장비에도 굴하지 않고 방송인이라는 사명감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각종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현장을 방문해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사실을 전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모든 면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도 자유가 허락되지는 않았다. 이른바 보도지침이 있었다. 지켜야만 하는 것들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었고, 그 틈을 공략해 가며 그들은 방송을 했다. 다루어야 하는 것과 다루지 말아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오늘날에도 심상찮게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누가 이를 결정하는가. 어떠한 방향에서 무엇을 다루기에 앞서 다룰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을 두고도 숙고가 이어진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오늘날에는 과거보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다는 점일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금 아닌가. 아날로그 열풍이라는 말이 언론 분야에서만큼은 도드라지지 않는 듯하다. 매해 추락하고 있는 신문구독률을 보며, 종이 신문의 미래를 그려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양 직업으로 언급되고 있는 ‘기자’다. 각 신문사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이 때에 중구난방 언론사들이 난립하고 있단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집스럽게 종이 신문을 구독해 보고 스크랩을 하고 있는 손길을 상상했다. 저자만큼은 아니었으나 나도 한 때 종이로 된 신문을 넘기며 기사를 읽었다. 확실히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볼 때보다 기억에 많이 남았다. 스마트 치매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매일 스크랩을 하는 일은 적잖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모든 기사를 읽고 그 중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가치 있는 것을 골라내는 일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적잖은 가치판단을 요한다. 무엇보다도 결과물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결국 저자의 방대한 스크랩 또한 폐지화를 피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스크랩까지는 아닐지라도 매해 일기를 쓰고 있는 나 또한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껏 써온 수십 권의 일기장의 보관 문제로 조만간 속 앓이를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의미 없는 종이 뭉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내겐 소중한 것들. 차원이 조금 다를 순 있으나 일기와 스크랩 모두가 그런 게 아닐지 싶었다. 시대가 변화하고는 있으나 미디어는 여전히 많은 힘을 지녔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영화, 음악. 서로 성격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저자들이 경험한 미디어 숲과 우리 세대, 우리 다음 세대의 경험은 다르리라고 생각한다. 10년 후, 15년 후, 20년 후. 과연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면 우리는 어떤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이야기 속에 담길 우리 자신의 모습도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