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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으면 2가지를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부동산이고 또 하나는 사교육이다. 부동산에 돈을 투자하는 것도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지만 사교육에 돈을 퍼붓는 것은 또 하나의 바보짓으로 보인다.
이범 이분을 처음으로 인지한 것이 대통령선거 후보지원연설을 할 때 였다. 이 책에도 그 내용 전부가 나온다. 이때 막연하게 우리나라 교육문제에 대해 문제를 느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겨레 신문 칼럼을 통해서 이분의 글을 읽으면서 교육 정책의 문제점도 알게되었다. 참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이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는 것 몇가지이다.
첫째, 성적표는 석차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석차가 없고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다는 것이다.
두째, 대학 본고사 관련하여 대학 본고사를 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정도. 연구하느라고 바쁜 교수들이 문제내고 채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것이다.
이 책은 교육평론가의 역할에 맞게 먼저 가까운 장래의 교육제도의 변경을 예측한다. 주요한 내용이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인데, 미국에서의 입학사정관제의 의미와 그것이 변경되어 한국에서는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역시 기여입학이나 부정입학이 늘 수 있고, 사교육비가 늘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 책은 지난정부인 노무현 정부에서의 교육정책의 문제점과 현정부인 이명박 정부에서의 문제점에 대해서 비판한다. 노무현 정권의 내신 비율을 높이는 것이 내부경쟁을 더 심화시키고 사교육 시장만 키운 꼴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자사고와 특수목적고 증가는 학교를 결국 평준화에 위배되는 것이며, 사교육비만 늘리는 꼴일 것이다.
저자는 미래 교육의 지표로 책임교육, 맞춤교육, 창의적교육이다. 우리나라의 지금 교육은 무책임교육이라는 것이다.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며, 또 얼마나 많은 잡무가 있는 지 알 수 없지만, 교사들에게 적절한 학생수와 잡무를 줄여 주어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잡무 때문에 교육을 못하는 지경이라니 눈물이 날 정도이다. 맞춤교육의 반대말은 획일화 교육일 것이다. 획일화해서 효율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21세기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붕어빵 찍어내지 말고 다양하게 가야한다. 그리고 객관식 문제 답 찍기 교육을 추방되어야 한다. 21세기 정보화사회에는 지식산업이다. 창의성이 가장 필요하다.
(나는 군사독재시절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특히 전두환 군사정권이 과외를 없애버리는 바람에 학원한번 안 가보고 대학까지 갔다. 여의도에 있는 저것들은 비밀 과외를 했겠지만 그때 사교육 시장이란 것이 없었다. 어쩌면 이런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68혁명뒤의 프랑스 대학을 보고 놀랐다. 대학교 무상 교육이 가능하고, 학교를 평준화 시켜서 서열을 없애버리다니 대단히 부러웠다. 우리도 대학교에 돈 주는 것 대신에 국공립화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책에 핀란드가 좋은 예로 자주 등장한다. 세계에서 치르는 학력평가에서 1위를 하니 공부 잘하는 것이 당연하고 본 받아야 하지만, 참고로 우리나라는 2,3위 정도의 수위권이라고 한다. 학업에 흥미를 느끼는 것도 1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학업 흥미에 있어서는 뒷쪽 꼴지라고 한다. 억지로 해서 2위하는 것보다, 재미있게 해서 1위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교육문제에 있어 관료가 권위주의로 힘을 쓰는 나라가 아니라, 교육 문제의 당사자인 교사와 학생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학생과 직접 관련이 있는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대한민국 학부모와 선생님이라면 꼭 읽어야 할 교육필독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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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학부모로서 지금까지 교육에 관한 수많은 책을 읽어왔다. 우리 아이 엄마도 전교조 활동을 오랜동안 해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내가 먼저 이 책을 읽고 아내에게 권했다. 아내도 관심이 가는지 잡자마자 하루만에 다 읽고 하는 말이 "전교조가 이런 현실적인 방안들과 대안들을 가지고 학부모나 교육관료를 설득하면 분명히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부모, 전교조 사람들, 선생님들이 너무 공부를 안한다. 나도 이제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매우 좋는 자극제를 준 책이다" 라고 말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아내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래도 내 아이를 사교육에 의해 길러지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와 학교가 책임지고 기르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도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이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는 교육의 모든 문제들이 망라되어 있고 그런 교육문제들이 왜 일어나고 나는 어떤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분명한 자기관점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실천가능한 대안을 이야기는 책이다.
요즈음 읽은 책중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가장 충실히 담은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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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업장이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남다르다. 자녀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면서, 자녀에 대한 끔찍한 가학이기도 하다. 어느 TV광고에서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는 부모/학부모 사이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 두 개의 길은 동시에 충족될 수 없으며, 결국엔 학부모의 길을 택할 확률이 높다. 아마도 자녀의 미래를 생각한 부모의 책임감이라 말할 것이다. 부모의 책임감이 자녀들을 짓누르는 이같은 상황은 도대체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그 답을 찾다보면 이런 외침과 마주하게 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 좁은 땅덩이. 빈약한 지하자원. 가진 것이라곤 오직 사람 뿐. 오로지 교육, 오로지 인재만이 살 길이다!
3년 간의 전쟁을 겪은 땅에서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산업을, 사회를 일으켜 세워야 했던 것은 맞다. 그래서 적재적소에 인재가 자리 잡아야 했고, 그 인재를 길러낼 교육이 중요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육열'을 이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이다. 굳이 교육과 경제성장을 연결짓는 것은 그 시대를 '모두가 경제성장을 위해 매진했던 아름다운 시절'로 그리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혐의가 짙다. 우리의 교육열은 그 기원이 훨씬 오래되었으며, 사회적 필요 이전에 개인적 출세의 욕망을 더욱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열'은 사실 '출세열'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열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적어도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권문세가의 자손들은 개인 과외나 사설 학당에서 과거를 준비했다고 한다. 세종 때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과거에 나올 만한 글만 외우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도리어 멸시를 받는다는 한탄도 나온다. 입시 위주의 공부는 이때도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붙기 위해 대리시험, 입시부정 등 오늘날과 같은 온갖 부정들이 횡행하였다. 식민지 시기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고학력만이 조선인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보증서였다. 경성제대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뜨거웠고, 그러기 위해 보통학교부터 경쟁했다.(이같은 입시전쟁의 역사는 강준만의 『입시전쟁 잔혹사』에 잘 소개되어 있다.)
조선이든, 식민지 시기든, 지금이든 '졸업장'과 '삶'이 아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과거급제, 경성제대, 서울대. 그 정점들에 가까울수록 인생살이는 탄탄해지고, 멀어질수록 하루살이는 막막해진다. 교육은 개인적인 행복과 사회적 필요를 동시에 충족하는 프로그램이어야 하지만, 그것은 국가나 사회라 불리는 존재가 최소한의 '안전한 삶'을 보장할 때 이야기다.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삶을 개인의 책임으로 맡기는 순간 개인도 사회도 불행해진다.
개인 혹은 개인화된 집단(가족, 가문)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모색하며, 가장 안전한 곳으로 도달하기 위해 피튀기게 싸운다. 사회의 요소요소에 필요한 인재가 나오기 보다는 보수가 높은 곳으로만 인재가 쏠린다. 사회가 모두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그것을 자신의 역할로 인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곧 전쟁이며, 공적인 필요보다는 사적인 욕망을 반영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2 백년을 내다보지도, 기본을 지키지도.
명제로서는 옳지만, 설명이나 분석으로는 옳지 않은 말들이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교육이 사회의 인재를 양성한다'라는 말이 그렇다. 옳은 명제지만, 사교육이 난무하는 현실과는 어긋난다. 사회의 각 부문에서는 쏟아지는 대학 졸업생들을 새로 가르쳐야 한다고 난리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지, 어느 분야에 가기 위해 공부하지는 않는다. 개인들은 보다 안전한 곳을 원할 뿐, 사회의 필요는 의식하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 역시 그렇다. 교육이 한 사회의 근간이며, 미래를 좌우한다는 뜻의 옳은 명제지만, 한국사회를 설명할 수는 없는 말이다. 만약 지금의 교육이 '백년을 좌우할 계획'으로 설정된 것이라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사회의 기반을 다각적으로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사교육비는, 주거 비용과 함께 저출산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인재양성'을 외치지만, 가르칠 대상 자체를 줄여버린다. 또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심각하게 제한하여 내수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외부의 변수에 쉽게 휘청거리는 우리 경제는 '내수'라는 균형추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미래가 고령화 사회라는 점에서도 문제다. 앞으로 노년 인구가 증가하더라도 젊은 시절 자녀들의 사교육비와 부동산 마련에 소득을 쏟아부은 노년층에게 가처분 소득이 많을리가 없다. 그나마도 깔고 앉은 집에 묶여있기 쉽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지식경제에 걸맞는 창의적인 인재를 기를 수 없다는 점에서도 우리 교육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그리고 사교육비가 팽창하면서 지출 부담을 갖춘 계층의 자녀들이 좋은 학벌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고, 결국 '가장 안전한' 직업에 종사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이미 심각한 계층간 양극화가 확대 재생산될 확률도 높다. 양반은 양반, 상놈은 상놈이듯 강남은 강남, 지방은 지방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교육은 사회를 운영할 인력을 줄이고, 안정된 경제기반을 무너뜨리며, 미래 주력 소비계층을 미리 탈진시키고, 과거지향적 교육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백년을 내다보고 있지 못하다. 사회의 양극화를 확대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적합하지도 않다. 교육이 한 사회의 근본이며 미래라는 것은 다만 명제에 그칠 뿐이다.
사실 이런 부분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다. 식량을 생산하는 일이 한 사회의 근본이라는 명제인데, 이 명제도 현실에서는 힘을 잃는다. 한-칠레FTA, 한-미FTA에서 대표적으로 알 수 있듯이 공산품 수출을 잘하기 위해서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근본'같은 것은 명제로만 존재할 뿐, 별로 중요하게 여겨진 적이 없다.
#3 서열화, 관료화라는 두 가지 포인트
자녀들은 입시경쟁에서 탈진하고, 부모들은 뒷바라지로 탈진한다는 점에서 우리 교육은 오늘을 불행하게 하며, 저출산 고령화 사회와 지식경제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에서 미래를 어둡게 한다. 사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차대한 것이라, 나라를 운영하는 이들도 매번 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과외를 금지해보기도 하고, 수능이니 내신이니, 입학사정관제니 내놓으며 공교육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입시제도를 바꿀수록 사교육 시장은 더욱 넓어져갔고, 과외하는 대학생을 구속해도 비밀과외는 이뤄졌다.
문제는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을 강화하든, 어쩌든 대학이 서열화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석차이다. 학교에서 아무리 잘 가르친다 하더라도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사교육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입시제도 개혁이 매번 실패한 이유이다. 어떤 제도를 시행하든 남보다 앞서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인생을 얻으므로 사교육 수요가 존재한다. 그래서 이 책은 사립대 재정공영화 -> 국립대 네트워크화 -> 대학평준화의 단계를 거쳐 서열을 철폐하는 것을 제안한다. 대학이 평준화되고, 각 대학별로 특성화된다면 사교육 수요를 낮추고,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필요를 절충시킨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관료화'라는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현장의 교사들은 과도한 행정업무에 시달리면서 교육 커리큘럼과 학생 지도에 신경 쓸 시간이 제약되어 있다. 또한 '전국석차'를 내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교육보다는 단답식, 객관식이 가능한 지식암기 위주의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때문에 행정 수요를 줄여주고,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의 자율권을 높여줌으로써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열화가 폐지된 환경에서라면, 좋은 대학이 아니라 학생의 적성에 따른 맞춤형 교육도 가능하다. 즉,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다원화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승진과 연계시킨 현행 인사제도의 개혁도 중요하게 사고해야 한다.
서열화와 관료화. 서열화 철폐는 사교육을 억제하면서 공교육이 교육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이다. 관료화 혁파는 개인의 적성과 사회적 필요를 고루 반영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구성하려는 노력의 출발 조건이다. 물론 교육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회의 한 영역이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 내수, 지식경제 등 사회의 핵심적인 부분과 관계있는 만큼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학생, 학부모, 대학, 사교육업체, 학교현장, 교원단체, 기업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만큼 교육이란 우리 사회의 '근본'에 위치한 쟁점임을 보여주지만, 그만큼 반발도 많을 것이란 예상도 가능하다. 특히나 '졸업장' - 학벌 프리미엄 - 의 혜택을 보고 있는 이들이 우리 사회를 움켜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우리의 대안은 '정교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입시제도 개혁'이라는 근시안적 제도개혁과, '서열화 철폐'라는 넓은틀의 원칙 사이에서 다양한 제도-시스템을 설계하면서 이해 관계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거나,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여론/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책이 단순히 교육개혁의 원칙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서열화-관료화 철폐의 방향 하에서, 입시제도, 교원평가, 승진제도, 평준화정책, 일제고사, 입학사정관제, 교장공모제 등 다양한 정책들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유이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교육'을 '중요하고 가볍게' 여겨온 듯 한데, 이 책을 통해 교육문제를 대하는 큰 원칙과 정교한 눈을 얻은 느낌이다. 덕분에 긴장감도 슬며시 전해진다.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무엇보다 한국 교육이여, 이범의 교육 특강을 수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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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에 희망이 있을까? 내겐 적어도 이 정부에서는 절망만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우리의 교육을 보면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감하는 내용이 참 많다. 제도권의 교육에 대한 내용까지도 어쩌면 이렇게 정확하게 문제점을 짚어내는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속 시원히 서술하는 것은, 마치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일부에서 속 편히 교사의 복지부동이 문제라느니, 매번 바뀌는 교육과정 개편이 문제라느니, 평준화 교육체제가 문제라느니, 말하지만 거의 교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인데 비하여 저자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선발경쟁’과 ‘학교 관료화’에 두고 있다.
읽으면서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고. 많은 부분 어찌할 수 없는 교사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면에선 위안도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에는 정치적으로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기 전엔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비춰져서 착잡하기 조차하다. 그만큼 선거에서의 한 표가 중요하다는 건데,
‘학교 관료화’에 대한 내용에서는 학교를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행정기관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상당부분 공감가는 부분이다. 심지어 현 정권에서 들고 나온 ‘학교자율화’는 누구를 위한 자율화인가? 겉으로 드러난 자율이란 허울 뒤에는 학교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을 구속하며, 학교 관료라 할 수 있는 행정기관인 교육감이나 교장만의 자율화이다. 또한 현재의 잘못된 교육을 교사에게만 떠넘기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는 정책들..... 올 초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교원평가로 교육의 질이 높아 질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현재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다면평가, 성과급을 위한 줄 세우기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 가를 알면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다면평가의 도입 취지는 상하좌우에서 골고루 전면적인 평가를 한다지만 교사들 간에 자기 수업이나 업무 안하고 동료 교사를 관찰 할 여건도 만들어 주지 않고 무턱대고 하는 평가이다보니 주어진 권리인 병가, 상을 당해 불가피하게 연가를 써는 것을 잣대로 들이대고보면 주어진 권리조차 스스로 내 놓는 격이다. 그나마도 관리자의 평가 비율이 월등히 높다보니 동료평가로는 아무 것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외부에서 알까? 결국은 상관의 손에 달린 것이라는 걸..... 지금 실시한다는 교원 평가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교사와 학생을 줄 세우려하는 것인데, 학부모나 학생들이 평가에 참여한다고 교사의 점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할 것이다. 학생들을 자기능력을 개발할 기회도 뺐고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이기적인 학부모들이 학교에서조차 입시전쟁으로 내몰아 점수 경쟁에만 열 올리는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진정 교육적인 교사에게 후한 점수를 주다고 하더라도 이 점수는 미미하다면? 관리자의 평가 비뮬이 월등히 놓을 것이고, 결국 관리자의 손에 의해 평가결과가 나온다면? .
그렇더라도 난 점수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지만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고, 어디가서 교사의 입장을 이야기하면 철밥통 운운하는 분위기도 싫고, 열 받게하는 현실이 싫다. 철밥통은 무슨, 아이들에게 일제고사 치르는 날에 체험학습 가도 된다고 안내했다고 해직 시키는데...... 무슨 서명하나 하기도 겁난다.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버렸다. 희망을 찾아야 하는데........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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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이제 6학년. 예비 중학생이다. 중학교를 준비하는 다른 엄마들의 행보가 숨가쁘다. 멀리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에 보내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지금이 아니면 공부할 시간이 없다며 집중 관리에 들어가는 학원, 과외 선생님까지 모든 이들의 마음이 바쁜 6학년 겨울방학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다. 학원 선생님이나 학습지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면 항상 하는 말, 중학교에 가면 공부할 시간이 없다면서 지금 해야 한다는 거다. 다른 아이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뭘 하고 있는 거냐며, 공부는 들어간 비용만큼 효과를 보는 거라며 비난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그 때 가서 뭘 하기에 시간이 없다는 걸까? 중 1, 2 학년에 배우라고 정한 수학을 왜 6학년에 공부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하는 걸까? 또 한 가지. 학교 선생님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엄마들은 모두 학원으로, 과외로 좋은 선생님을 찾아 이렇게 분주한 걸까? 잘 가르치시고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선배 엄마들의 말에 따를 것 같으면 지금 공부 안 해 놓으면 큰 코 다친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 뭐 이런 협박이랄까 불안이랄까 그런 조언들을 해 준다. 과외건 학원이건 사교육을 알아봐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학교 선생님들을 믿고 그냥 학교 진도에 맞추어 공부하게 두어야 하는 건지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혼란스럽고, 아이를 위한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 갑갑한 이 시점에 현명하고 명쾌한 해답을 주는 책을 만나 속이 다 시원하다. 이범의 ‘교육특강’이 바로 그 책이다. 말 그대로 교육에 대한 전반적 특강이라 생각하면 될 듯한 책이다. 사교육을 안 받으면 점수가 안 나오는 이 시대, 무한 경쟁에 아이들은 초등 학교부터 하루 종일 학원에, 숙제에, 자격증 공부에 바쁜 이 시대, 우리 교육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 해결 방법,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기를 추천한다. 우리 아이는 6학년이 될 때까지 수학 학원이나, 학습지를 해 본 적이 없다. 5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따로 신경도 써주시고 해서 어떻게 따라 갔는데 6학년 올라오면서 점점 점수가 내려가더니 급기야 50점을 받아 왔다. 거의 수업 내용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의 점수에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는데 더 이상 학원을 안 보내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학교만 믿고 따로 공부시키지 않은 엄마의 탓일까? 우리 아이의 미련함 때문일까? 자책도 많이 하고 아이와 이야기도 많이 해 봤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 한 채 결국 동네에 있는 학원을 보냈는데 바로 다음 평가에서 90점을 넘었다. 단 몇 번의 학원 수업과 숙제로 이런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아이가 왜 학교 수업만 믿고 공부했을 때는 50점을 받았던 걸까? 아이가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즐겁게 공부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사교육을 시키는 극성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 수학을 따라 잡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처음으로 수학 학원을 보낸 엄마는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희미하게 학교에서 제대로 수업을 안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선행하고 온다는 전제로 학교진도를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거다. “ 이런 의미에서 한국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자 평가기관이다. 주마간산식, 주입식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이 이걸 잘 받아먹든 잘못 받아먹든 아랑곳 않다가, 때가 되면 시험을 봐서 정확히 ‘등수’를 매겨 낙인 찍어준 다음,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윗 학년으로 올려 보내는 곳, 이런 곳이 어찌 교육기관이라 불릴 수 있겠는가?” (95쪽) 수업을 빼 먹는 교사는 괜찮아도, 공문을 처리하지 않은 교사는 점수에 불이익을 당한다고 하니 주객전도란 이런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상식이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와 소명이 아이들 교육인 것 같은데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기한 내 공문 작성이라니 학부모인 내가 우리 아이를 위해 영어, 수학 학원을 알아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학교가 교육기관이 아니니 우리 아이의 교육을 위해 학원이나 과외 선생을 알아봐야 했던 것이다. 엄마들은 명확하게 학교 현실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미 직감으로 학교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거다.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던 선배 엄마들의 무시무시한 협박은 이로써 그 실체를 드러내며 사실로 입증 되었다. 이 시점에서 선생님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냐며 분개하게 된다. 모른다고 질문하면 학원가서 물어보라는 선생님들의 행태를 안주 삼아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통과한 학교 선생님들이 학원 선생님보다 실력이 뒤쳐질 리는 없고, 직업에 대한 최소한의 소명의식도 없는 그런 소인배들은 더군다나 아니라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없는 것은 선생님 개인의 탓이라기 보다 학교 행정, 환경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교 교육만으로 우리의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학교 행정의 변화가 필요하다. 학원 선생님은 작성해야 할 공문이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수업을 위해 할애한다. 수업 자료를 만들고, 수업에 집중한다. 학교 선생님들도 시간의 대부분을 수업 준비와 수업을 위해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공교육 문제의 대안을 학교 외부에서 찾는 것은 사교육을 더 부채질할 뿐이다. 특목고, 자율고를 새로 만들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학교 내에서 이런 특성화된 교육이 진행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교육안을 갖고 있는 정치인을 선거에서 선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범 선생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여러 생각들을 이 짧은 글에서 모두 담지는 못했다. 나에게 가장 와 닿고 절실했던 것들에 대해 간단하게 적었다. 현실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미래 교육을 위한 해안이 놀라운 책이라 더 많은 것들을 얻기를 원하는 분들은 읽기를 권한다. 우리 아이가 공부할 학교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정말 한국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위기의식마저 느끼게 된다. 사람은 없고 성적만 있는 곳, 알아가는 기쁨을 모르는 지식, 교사나 학생이나 서로 신뢰하지 않는 교실, 이런 곳에서 자식을 가르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비록 이렇듯 참담한 현실이지만 이 책을 덮으며 작은 희망 하나를 품게 된다. 우리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을 아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 있고, 작지만 변화의 조짐이 있으니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을 안다. 100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길이 있으니 갈 수도 있다고 믿는다. 아이를 학원에 보냈지만 이제 부끄럽지 않다. ‘극성 엄마’ 가 잘못이 아니라 학교 행정이 잘못이라는 거시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이 해답을 얻은 것만으로도 가장 혼란스럽던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 좋은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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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이나 배우는 이나 학부모나 모두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지 , 다시 말해서 현재에도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미래를 위해서도 유익한 공부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교육 정책은 교육주체들의 공감이나 이해도 담보하지 않은 채 질주합니다. 이 책은 현실과 미래 모두에 대응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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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장학과 학교평가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이 참 술술 읽히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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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옛일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로 교육부분 공약 비교가 흘러나왔다. 기사님 왈 다들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선거전에는 말했지만 누구하나 그렇게 한 사람이 있냐고??? 대통령들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에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렇게 국민들주머니에서 돈이 흘러나와야 학원산업도 돌아서 GDP니 머시기니 하는것들도 올르고 국가세금도 나오고 할거 아니냐고 그들은 진정으로 교육이 바뀌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다고 하더군요... 사교육비를 줄여준다고 유권자 표가 필요할때만 앵무새처럼 영혼없이 말한다고요...
공감되더라구요... 국민들이 울며겨자먹기로 학원비 70~80아니면 그이상이 들어간다며 힘들다할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진정으로 노력을 해보았을까요? 구조적인 문제, 근본적인 뿌리부터 살펴보지도 않고 많은 문제를 학생과 학부모들 교사들 학교들 학원들 책임으로 매도하기도 하고
암튼 교육이야기라면 가슴이 답답한 현실앞에... 이렇게 용감하고 실랄하면서 이쪽 저쪽 모든 교육의 주체와 장을 아우르는 통찰력과 언론들의 플레이에 속지않고 처절하게 교육문제가 정치문제임을 꿰뚫어보는
저자의 눈은 더 가질 수 있음에도 댓가없이 같이 나눠보려는 순수함과 교육에 대한 애정덕분에 더 통찰력을 발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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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제가 그렇지만.. 늘 고민.. 또 고민.. 작가 이범은 "학원가의 서태지"라는 별명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선뜻 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한국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자 평가기관이다.] 씁쓸하지만 동의한다.. 어렸을 때, 나머지 공부를 해주시던 선생님들.. 거의 모든 반에서 10여명의 친구들이 남아서 공부를 하고 갔었다.. 그때는 고마움을 몰랐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교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실력이 부족한 학생을 평균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의 교사는 나머지 공부를 시키기에는.. 우선 학원 시간에 늦을 까봐 전전긍긍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협조해 주지 않고, 수업 외적인 행정업무가 너무 많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이 모두 내 생각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교원평가제, 평준화 등에 대한 것은 다소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으며, 교사이기에 끊임없이 던져보아야 할 화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