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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강의 시간만 제외하고 꼬박 이틀 걸려서 다 읽었다. 표지는 꽤 팝pop한 편이지만 내용은 절대 톡톡 튀지도 않고 그렇게 읽기 쉽지도 않다. 빅 히스토리, 거대사를 다룬다는 건 즉 세세한 부분은 일단 넘어가고 전반적인 흐름을 잡는다는 뜻이기 때문에(130억 년을 4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에 꽉꽉 다 채워 넣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대신 열심히 집중해서 읽으면 굉장히 공부가 된다.
응, 지금까지 이런 책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나의 역사적 지식이란 애초에 그렇게 대단한 것이 못 된다. 게다가 요 근래 2~3년 정도 정말로 소설책만 열심히 읽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잊어버린 것도 꽤 된다. 아마 지금 중학교에서 싫든 좋든 절찬 역사공부를 하고 있는 내 남동생보다도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수능 치느라고 사탐은 열심히 공부했으니 누가 역사적 사건을 하나 던져 주면 아, 어떠어떠한 시대에 벌어진 어떠어떠한 일이었지, 정도 아주 어렴풋하게 감만 잡을 수 있는 정도일까? 개중에는, 현역 중고딩 시절에는 분명 연도와 경위까지 달달 외웠지만 지금은 '그런 거 배웠던가' 싶은 것도 있을 터다;; 무식은 죄가 아닐지 모르지만 게으름은 대단히 죄로고.
그러니까 이 책이-혹은 거대사라는 학문이-좋은 점이란, 정말로 차근차근 '처음부터' '큰 덩어리를' 짚어 준다는 거다. 책의 캐치프레이즈는 '자연과 인간, 과학과 역사를 아우른 진정한 통합적 지구사'인데 이게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학문의 분화가 이루어진 건 짧디짧은 인류의 역사에서도 굉장히 최근의 일이다. 게다가 아무리 세부 학문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라 해도, 어느 학문도 단독으로 성립할 수는 없다. 만물은 만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마련이니 '지구의 역사'란 즉 통합 학문이자 인류의 모든 것이 될진저.
책은 빅뱅 이론부터 시작하는데 모든 '우주의 시작' 및 '지구의 시작'이 그렇듯 초반부는 생물학과 지구과학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역사를 기록할 인간은 한참 후에나 등장하니까 뭐...) 덕분에, 뼛속까지 문과 스타일의 인간인 나는 읽으면서 꽤 고생했다. 어찌어찌 호모 기타등등(...)이 등장하면 여기서부터는 지리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하여 전세계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면서 살기 좋은 곳에 정착하고 농업 혁명을 일으켜 잉여 농산물을 생산하면서 점진적인 증가를 이루게 되는데 전반적으로 어느 곳에 사는 인간들이건 비슷한 발전 양상을 보인다는 게 재미있는 점이다. 별로 저자가 노리고 쓴 것 같지는 않지만 집 짓는 데 털 많은 매머드 95마리의 뼈가 이용되었다는 이야기에는 혼자 뿜었다. 본격_집짓느라_매머드_95마리_때려잡을기세.avi
신화와 종교학, 문명의 발생 등도 범세계적 견지에서 굉장히 큼직큼직하게 다루는데 이게 어떤 장점이 있느냐 하면 굉장히 객관적으로 이들을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뭐 이건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점도 한몫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책 전반적으로 무척 쿨시크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에는 꽤 호감이 간다. 이 커다란 덩어리덩어리들을 보고 있으면 새삼스럽게도 내가 참 작고 덧없는 존재구나 하는 깨달음만 짙어져 간다. 만물의 영장입네, 진화의 결정체네 하고 있지만 결국 인류도 언젠가는 이 지구 위에서 '멸종'해 갈 생물의 한 종류일 뿐이지. 사실 환경파괴에 자원 고갈에 인류가 위기를 맞았다고 시끄럽게 굴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류의 위기지 지구의 위기는 아니다. 아 얼마 전에 읽은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하고 맞물려 자꾸 니힐해지는 나;;
아무튼 지금까지 배운 역사에 대해서도 되짚어보고, 관심 없거나 전혀 몰랐던 동네에 대해서도 꽤 공부가 되었다. 저자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거대사>도 어서 읽어봐야겠다 /ㅅ/
+) 매머드 얘기 다음으로 뿜은 건... 본격_무슬림들이_책만들겠다고_파피루스도_씨를_말릴기세.m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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