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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인원이 대학에 진학하는 요즘과 같은 시대. 지식은 더 이상 나와 별개의 것이라며 손사래를 치기란 뭐하다. 물론 오늘날의 대학 공부라 하는 게 좀더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한 실용적인 측면으로 치우친 면이 없진 않지만, 인구의 대다수가 문맹이던 시절을 떠올리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하다. 과거에 지식은 소수에 국한된, 특권층만을 위한 무언가였다. 그렇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게 탄생했을까? 아마도 길고도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이 질문에 대한 답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익히 알고 있듯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한 마디의 말을 통해 사람들을 일깨웠다. 그에게 문자는 각종 불신과 왜곡의 원천이었다. 타인의 의견을 듣고 이와 다른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구술 교육법이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구술을 통해 지식을 주고 받았다. 기록을 남기는 일은 비천한 육체노동의 일환으로 치부되어 이를 전담하는 이들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 이 시기, 필경사들에 의해 대필된 서적들은 개인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한 용도로서만 받아들여졌을 따름이었다. 도서관의 건립은 지식을 개인 차원에서 공적 차원으로 확대시켰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경우 세상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하겠다는 집권자의 야심찬 꿈이 건립의 원동력이었다. 도서관에서 수도원, 대학, 전문학교, 연구소로 지식 기관은 변모했다. 그렇지만 이전의 수도원이나 대학이 그러했듯 오늘날의 지식은 특정 기관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특정 기관에 지식을 붙잡아 둘 정도로 과거와 같은 폐쇄성을 고수하기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통과의례마냥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서는 개개인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여성의 역할도 향상되었다. 남성에 비하면 그 수가 여전히 적긴 하나 여성 노벨상 수상자도 이미 몇 탄생했다. 고대 그리스의 히파티아가 그러했듯 여성이기 때문에 지식과 목숨을 교환해야 되는 일도 현재는 몇몇 극단적인 문화권에서나 발생하는 야만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여러 차원을 고려했을 때 오늘날의 지식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했다. 과거 설명치 못했던 많은 것들이 오늘날은 너무도 쉽게 설명되고 있다. 하지만 생산성을 중시하는 풍토 때문인지 학문의 순수성 면에 있어서는 과거에 비해 오히려 그 깊이가 얕아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완벽한 순수성이란 있을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당시 토대였던 가톨릭 교리를 보존해야 된다는 당위성이 낳은 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8세기 탄생한 전문학교는 오늘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물건의 매매 마냥 지식을 사고 파는 장으로서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신을 통해 이루어졌던 지적 교류는 출신, 성별, 지위, 국적 등 당시 차별의 요소로 작용하던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학문적 화합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잠시나마 모두가 학문 그 자체를 탐했던 시기로 되돌아갈 순 없는 것일까 순수학문이 죽어가고 있다. 각 대학의 철학과는 지원 학생이 없어 고심 중이다. 이미 몇몇 학교는 해당 과를 없애고 소위 취업이 잘 되는 과의 정원을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식은 눈에 보이는 쓰임이 가능한 무언가만을 뜻하진 않는다. 일상 생활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지금의 우리를 설명하기 위한 토대로서, 유한한 삶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크게 쓰임 받는 지식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바로 그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 뒤에 감추어진 적막함을 달래줄, 단비와도 같은 지식의 재탄생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