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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치가 과연 가능할까? 정답은 아니오. 역사를 보면 신에 대한 이해에 따라 국가관이 달라졌다. 신이 내재적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수도원이 발전했다. 은폐된 신의 시대에는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었다. 초월적 신은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는 초월적인 신을 믿는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길 소망하고 교회 안과 밖의 구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새로운 공동체를 꿈꾼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독교 정치라는 이름은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무엇이 기독교 정치인가? 라는 질문에 획일화된 답은 없다.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이 얼마든지 기독교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생각만이 기독교 정치라고 생각하는 순간 독재며 폭력이 된다. 각자 가진 강조점을 서로가 수용하지 않는 이상 기독교정치는 이익(혹은 종교적 만족)을 채우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 정치 뿐만 아니다. 기독교 심리, 기독교 상담, 등 기독교가 붙는 모든 것이 일종의 폭력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우리 삶 속에 있는 다양한 영역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기독교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얼마나 작으시며 늘 좁은 곳에만 계시지 않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인만 기독교정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분명 일반 은총의 원리대로 하나님의 뜻을 잘 실천하는 불신자, 혹은 타종교인들 또한 얼마든지 기독교적 정치를 할 수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영역까지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여 장악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기독교는 기독교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