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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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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재앙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다스리는 왕(통치자)이다. 이전 왕인 라이오스에 이어 왕위에 오른 그는 기울던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라이오스가 통치자인 시절, 테바이는 스핑크스라는 괴물 때문에 온 백성이 시련을 겪었다. 잘 알려진 대로 스핑크스는 여자의 얼굴에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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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재앙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다스리는 왕(통치자)이다. 이전 왕인 라이오스에 이어 왕위에 오른 그는 기울던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라이오스가 통치자인 시절, 테바이는 스핑크스라는 괴물 때문에 온 백성이 시련을 겪었다. 잘 알려진 대로 스핑크스는 여자의 얼굴에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갖고 있다. 그는 테바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앉아 뮤즈가 가르쳐 준 수수께끼를 냈다. 땅 위를 걷거나, 하늘을 날거나, 바다에서 헤엄치는 모든 것 중에서, 같은 이름으로 네 발, 세 발, 두 발로 걷는 존재가 무엇인가 하는 수수께끼였다. 정답은 인간이다. 정답을 맞히지 못하는 사람을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잡아먹었다.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의 정답을 맞히자 스핑크스는 바위산에 머리를 박고 자살했다. 테바이를 괴롭히는 원흉을 오이디푸스가 무찌른 셈이다.

 

스핑크스를 죽인 영웅이 되어 오이디푸스는 당시 공석이었던 테바이 왕위에 올랐다. 성 밖에 시찰을 나간 라이오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후로 테바이 왕위는 비어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왕위에 오른 오이디푸스는 전임 왕의 아내인 이오카스테를 부인으로 맞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 둘, 딸 둘이 태어났다. 오이디푸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테바이는 금방 안정을 찾았다. 백성들은 괴물을 죽이고 나라를 안정시킨 왕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고 고향을 떠난 오이디푸스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코린트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지 않는 한, 아들로서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를 일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코린트의 왕 폴리보스가 세상을 떴다. 오이디푸스가 신탁에 더 이상 신경을 쓸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테바이에 죽음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여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풀을 뜯는 소들 역시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렸다. 이에 오이디푸스는 메노이케우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처남인 크레온을 퓌토에 있는 포이보스의 집으로 보냈다. 포이보스는 아폴론의 별칭이다. 아폴론은 신탁을 통해 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렸다. 크레온은 이 땅에서 생겨난 오염을 몰아내고, 치유할 수 없는 것을 키우지 말라는 신탁을 오이디푸스에게 전했다. 살해로써 살해를 다시 풀어 정화하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전하기도 했다. 테바이에는 지금 도시를 오염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치유(실제로는 살해)하지 않는 한, 도시를 감돌고 있는 죽음의 기운을 걷어낼 수 없다.

 

크레온은 성 밖을 나갔다가 피살당한 라이오스를 이야기한다. 신탁은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찾아 보복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범인은 이 땅에 있다. 이 땅은 테바이를 가리킨다. 전임 왕을 죽이고 테바이에서 사는 살인자라니, 신이 노할 만도 하다. 라이오스는 신탁을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한 사람만 빼고 그를 수행한 모든 이들이 죽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도적들이 라이오스를 죽였다고 진술했다. 도시를 지배하는 왕이 죽었는데, 사람들은 왜 세밀하게 조사하지 않은 것일까? 앞서 말했듯 라이오스가 통치하던 시절, 테바이에는 스핑크스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 와중에 라이오스까지 죽었으니 도시는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스핑크스를 자살에 이르게 한 오이디푸스가 테바이의 영웅이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정황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진실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위대한 예언가인 테이레시아스를 부른다. 예언자는 진술을 거부한다. 그는 누가 범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범인을 말하는 순간, 테바이는 헤어 나오기 힘든 구렁에 빠져들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진술을 강요하자 예언자는 내 선언하건대, 그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가장 수치스럽게 어울리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고, 어떤 악에 처해 있는지도 못하고 있소.”(43)라고 이야기한다. 사실이 밝혀지면 오이디푸스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언. 오이디푸스는 미칠 노릇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예언자는 오이디푸스를 재앙의 원흉으로 꼽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과 짜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예언자는 크레온은 아무런 재앙도 아니라고 대꾸한다. 진짜 재앙은 오이디푸스 스스로 짊어진 재앙이라고 아울러 덧붙인다.

 

참다못한 오이디푸스가 예언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나무란다. 예언자는 말한다. 나는 당신에겐 타고난 어리석은 자로 보이지만, 그대를 낳은 부모들에게는 현명한 자였지.”(47) 예언자의 입에서 드디어 그대를 낳은 부모라는 말이 나왔다. 오이디푸스는 대체 자신을 낳은 이들이 누구냐고 거듭 묻지만, 예언자는 그날이 그대를 낳고 또 파멸시킬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한 사람은 진실을 직접 들으려고 하고, 한 사람은 진실을 비껴나는 말로 오이디푸스의 잘못을 간접적으로 묻는다. 예언자가 말하는 모호한 것을 풀지 않으면 테바이에서 재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스핑크스를 물리친 오이디푸스의 권위 또한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 곁을 떠나면서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내 그대에게 이르노니, 그대가 진작부터 라이오스의 살해자라 선언하고 위협하며 찾는 그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소. 그는 명목상으로는 이방 출신의 거주자이지만, 나중에는 태생부터 테바이 사람임이 드러날 테고, 그 행운에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오. 그는 눈 뜬 자에서 장님이 되고, 부자에서 거지가 되어 이국 땅을 향해 지팡이로 앞으로 더듬으며 가게 될 것이오. 또 그는 자기 자식들의 형제이자 아버지로서 함께 살고 있으며, 자신을 낳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씨 뿌린 자이자 그의 살해자임이 드러날 것이오. 그러니 들어가서 이것을 따져 보시오. 그대가 만일 내 말이 거짓임을 밝혀낸다면, 그때는 내가 아무 예언술도 모른다고 떠들어 대시오. (49)

 

라이오스를 죽인 살인자는 테바이에서 태어났지만, 명목상으로 이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자이다. 그는 자기 자식들의 형제이자 아버지로 함께 살고 있고, 자신을 낳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으로 살고 있다. 어머니를 아내로 둔 남자는 동시에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이기도 하다. 예언자가 말하는 사내는 한마디로 인륜을 완전히 파괴했다. 인륜 제도는 무엇보다 근친상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근친상간은 근친(近親), 그러니까 같은 피를 나눈 부모와 상간(相姦)을 금지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라이오스를 죽인 남자는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까지 낳는 근친상간을 저질렀다. 누가 됐든 그는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만약 이 사람이 오이디푸스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오이디푸스는 예언자를 사주한 인물로 크레온을 지목한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 앞에 나타난 결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를 쉽게 받아들일 오이디푸스가 아니다. 끔찍한 예언이 드러났으니, 누구 하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도시를 지배하는 왕이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권력이 있되, 왕이 아닌 인물인 크레온이 희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크레온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왕이 시키는 대로 신탁을 알아보았고, 위대한 예언자와 만났다. 예언자가 왕에게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예언자의 책임인 것이지, 그를 데려온 크레온의 책임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을 흉악한 악한인 양 대한다. 오이디푸스는 어쨌든 왕이 통치해야 한다고 말하고, 크레온은 그릇되게 통치하려면 안 하는 게 옳다고 맞선다.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오카스테가 나타난다. 그녀는 오이디푸스에게 크레온의 결백을 믿어달라고 탄원한다. 아내까지 이리 나오자 오이디푸스가 한 발 물러선다. 그래도 용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어디 있든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크레온에게 악담을 퍼붓는 것을 보면. 이오카스테가 크레온을 저주하는 이유를 묻는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이 악당 예언자를 통해 자신을 라이오스의 살인자로 몰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의 아내이기도 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오이디푸스를 내쫓은 장본인 가운데 한 사람. 그런 그녀 입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소문에 따르자면, 다른 지방의 강도들이 마차가 다니는 삼거리에서 그를 죽였어요. 한데 아이는, 태어난 지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라이오스가 두 발목을 뚫어 묶어서는 인적 없는 산에 버리도록 다른 이들의 손에 맡겼지요. 그러니 아폴론은, 그 아이가 아버지를 살해하도록 만들지도 못했고, 라이오스로 하여금 그가 두려워했던 무서운 일을 당하여, 아이 손에 죽게 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은 이런 식인 거죠. 이들 중 어떤 것도 무서워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신이 뭔가 필요하다 여기시면, 신 자신이 쉽사리 보여 주시니까요. (66)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를 위로하기 위해 건넨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그의 가슴은 심하게 방망이질한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겹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먼저 폭력이 일어난 장소를 묻는다. 그가 지나온 포키스라는 곳이다. 오이디푸스가 다시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묻는다. 그가 테바이의 통치권을 차지하기 조금 전에 그 일이 도시에 전해졌단다. 비탄에 빠진 오이디푸스는 이제 라이오스의 모습에 대해 묻는다. 이오카스테는 피부가 거무스름하고 머리에 막 흰 터럭이 섞여 나기 시작했지만, 라이오스의 생김새는 오이디푸스 당신과 흡사하다고 이야기한다. 오이디푸스가 다시 라이오스 혼자였는지, 아니면 통치자답게 수행원 여럿을 데리고 갔는지 묻는다. 당시 라이오스는 다섯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갔다. 이오카스테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당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집안 하인에게 들었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하인을 불러들이면 라이오스를 죽인 사람이 오이디푸스인지 판명난다. 지금 그가 수집한 정보들은 정확히 라이오스의 살인자로 오이디푸스를 가리키고 있다. 위대한 예언자가 말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스핑크스를 죽이고 테바이의 위기를 극복한 오이디푸스가 테바이를 다시 위기에 빠뜨리는 원흉이라니. 게다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까지 낳은 패륜아가 되어버린다. 몰라서 벌인 일이라고 해도 소용없다. 운명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라이오스는 신의 뜻을 거부하기 위해 아들을 버렸고, 오이디푸스 또한 신의 뜻을 거부하기 위해 양부모 곁을 떠났다.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는 신의 뜻을 거슬렀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잘못을 범한 것이다.

 

운명

 

오이디푸스가 테바이 왕인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아들이라는 것은 진실로 밝혀진다. 라이오스는 테바이를 건립한 카드모스의 자손으로, 동성애에 빠져 스핑크스를 불러들인 장본인이기도 했다. 오이디푸스가 태어나기 전 그는 신탁을 통해 아들이 아비를 살해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신탁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신은 라이오스에게 아들에게 살해당하는 운명을 부여했다. 라이오스는 자신의 운명에 경악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이 자신을 저승으로 이끄는 주범이 된다니. 그는 결코 아들에게 살해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아들이 자신을 죽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아들을 없애야 했다. 엄마인 이오카스테가 아들을 지킬 힘은 없었다. 라이오스는 아들의 두 발목에 못을 박고 키타이론 산에 버렸다. ‘부풀어 오른 발이라는 뜻을 지닌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산에 버려진 오이디푸스가 죽으면 신탁은 실현되지 않는다. 인간이 신을 이기게 되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나 시시포스, 니오베 이야기 등에 나타나는 것처럼, 신의 결정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인간을 신은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신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고 예언했다. 어떤 경우에도 신탁이 이루어져야 인간은 신에게 감히 저항할 마음을 먹지 못한다. 버려진 아기를 목동이 발견했고, 코린트의 왕 폴뤼보스가 오이디푸스를 양자로 삼았다.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퓌토를 방문했다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알고도 어떻게 부모 곁에 머물 수 있을까? 그는 코린트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마음먹고 기꺼이 방랑길에 올랐다. 코린트에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 그곳을 떠남으로써 신탁이 실현되는 상황을 만들어낸 셈이다.

 

오이디푸스의 발걸음은 테바이를 향했다. 그리고 테바이의 통치자가 죽은 그 장소에 도착했다. 세 갈래 길에서 그는 사륜마차를 탄 사내들과 시비가 붙어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이오카스테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하며 오이디푸스는 이제 누가 나보다 더 불행할 수 있겠소? 신들께 나보다 더 미움 받는 사람이 누구겠소?”라고 한탄한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어머니와 결혼으로 묶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코린트를 떠나 테바이로 왔다. 그런데, 운명은 그를 코린트를 지배한 폴뤼보스의 아들이 아니라, 테바이를 지배한 라이오스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한다. 테바이로 오는 도중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와 시비가 붙어 그를 죽였다. 그리고는 테바이의 왕이 되어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해 네 명의 자식을 낳았다.

 

인간이 감당해야 할 운명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진실을 안 오이디푸스는 아아, 아아, 모든 것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구나, 명백하게!”라고 외친다. 그는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들에게서 태어나, 어울려서는 안 될 사람과 어울렸고, 죽여서는 안 될 사람들을 죽인 자라는 게 밝혀졌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다. 탄생은 선택이 아니라는 말이다. 태어났으니 누군가와 어울렸고, 태어났으니 죽여서는 안 될 사람들을 죽였다. 신은 교묘하게 오이디푸스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상황 속으로 몰아넣었다. 라이오스가 신탁을 받아들였다면, 그리고 청년인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또 다른 형식으로 신은 오이디푸스를 비극의 여정으로 내몰지 않았을까? 그래야 신이 인간을 위압하는 존재로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아들과 결혼해 자식을 낳은 이오카스테는 사실을 알고 자결을 했다. 아폴론이 신탁을 내리는 신전 문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오카스테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아들인 오이디푸스와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이 맺을 수 없는 인연이라는 걸 알고는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그녀 또한 라이오스와 더불어 신의 뜻을 거부했다. 그녀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갓 태어난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 신의 뜻을 인간의 마음으로 해석한 결과가 이토록 섬뜩한 진실로 드러난 것이다. 신의 뜻을 받아들이면 남편이 죽고, 아들과 근친상간을 해야 한다. 이 상황을 그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 그녀는 남편을 따라 신의 뜻을 어겼다. 아들만 죽이면 모든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줄로 알았다.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는 자결한 이오카스테를 끌어안고 무섭게 울부짖었다. 이오카스테는 아들을 버렸고, 오이디푸스는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와 결혼했다. 그들은 가혹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신의 뜻에 굴복하고 말았다. 눈을 버젓이 뜨고도 진실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오이디푸스는 그녀가 입은 옷에 붙은 브로치를 떼어내 주저 없이 자신의 눈을 찔렀다. 그리고는 외쳤다. 그 눈들은 그가 당한 것이든 행한 것이든, 끔찍한 것을 보지 말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그가 보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들을, 그가 알고자 원했으나 알아보지 못한 이들을 어둠 속에서 보라고.”(102) 수차례 눈을 찔러대자 소나기 같은 검은 피가 눈에서 흘러내렸다.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진실을 보았지만, 정작 눈을 뜬 오이디푸스는 어떤 진실도 보지 못했다. 눈을 뜨고도 진실을 보지 못한 그는 스스로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신의 뜻을 오이디푸스는 장님이 되는 상황으로 실현한 것이다. 눈이 먼 오이디푸스는 죽음에서 자신을 구원한 자(하인과 목동)를 저주한다. 그때 죽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게 그 이유이다. 다시 묻는다.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받아들였다면, 그리고 하인과 목동이 오이디푸스를 살리지 않았다면, 비극은 과연 일어나지 않았을까? 태어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듯 죽는 일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신은 신탁을 던져두고, 인간은 그 신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 뿐이다.

 

신은 겸손한 인간을 좋아한다. 겸손한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인간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인간이란 돌려 말하면 신의 뜻에 순종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신은 인간에게 뜻을 전한다. 신의 뜻은 인간이 제 마음대로 해석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령과 같다. 인간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명령을 내린 후, 신은 인간이 그 뜻에 순종하는지 엿본다. 부처님 손바닥에 갇힌 손오공처럼 인간은 신의 뜻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다. 오이디푸스는 어찌 보면 신이 만든 손바닥 위에서 노니는 인형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운명이라는 말로 이러한 신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얼마나 두려운 상황이 벌어지는지 신화=이야기를 통해 똑똑히 보여주었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의 말마따나, 오이디푸스는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숨은 무의식(공포라고 해도 좋다)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o*****s 2019.12.27.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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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 강대진 / 민음사 (2009) [원제 : Oidipous tyrannos][My Review MMLXXXVI / 민음사 25번째 리뷰] 읽을 때마다 '처음 읽은 듯' 새로운 느낌을 받는 것은 <고전>이 주는 선물 같다. 이전에는 '같은 책'이지만 '다른 출판사'이기 때문에 드는 느낌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는데, 그보다는 '읽고 또 읽는' 과정을 통해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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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 강대진 / 민음사 (2009) [원제 : Oidipous tyrannos]

[My Review MMLXXXVI민음사 25번째 리뷰] 읽을 때마다 '처음 읽은 듯' 새로운 느낌을 받는 것은 <고전>이 주는 선물 같다. 이전에는 '같은 책'이지만 '다른 출판사'이기 때문에 드는 느낌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는데, 그보다는 '읽고 또 읽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쌓는 경험(혹은 연륜)이 크게 작용하는 듯도 싶다. 왜냐면 출판사까지 같은 '동일한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종종 받기 때문이다. 왜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을, 이번에는 느끼게 되었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려면 '그간에 쌓은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암튼, 지난 번에 읽은 <오이디푸스 왕>(이미영/별글)에 이은 '민음사' 버전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다.

이 책의 뒤친이 '강대진'의 해석에 따르면, <오이디푸스 왕>은 일종의 '수사극(추리물)'으로 짜여졌다고 한다. 희랍(그리스) 테바이에 돌고 있는 역병의 근원이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이, 마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에 명탐정이 단서를 찾고, 증거를 모아서 최종적으로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라고 외치는 장면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란다. 그 과정에서 테바이의 이전 왕이었던 '라이오스를 죽인 자는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불거졌다가, '내(오이디푸스)가 그 범인인가?로 바뀌고, 끝에는 '나(오이디푸스)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되었단다.

이걸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 까닭은 '독자의 시선'에서 보면, 그 범인이 누구인지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오이디푸스 왕의 친부가 라이오스 왕이고, 우연한 사고(피할 수 없는 운명)로 인해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가 누구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잠시 잠깐의 화를 참지 못하고 살해를 저지르기 때문에, 사건 자체의 '비극성'보다 정해진 운명을 결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비애'가 더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수사극'이라는 느낌을 덜 받게 된다. 애초에 범인이 누구인지 다 아는 마당에 무슨 '추리'를 하려 든단 말인가. 그런 까닭에 <오이디푸스 왕>을 읽고서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다.

하지만 극중 인물인 '오이디푸스'는 다르다. 그는 코린토스를 떠나 테바이로 가는 도중에 '스핑크스가 낸 문제'를 풀어내고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영웅으로 등극하게 되는 일을 겪는다. 다시 말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사건의 해결자'가 된 셈이다. 그리고 테바이에 도착했을 때에는 '해결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기에 '임금이 비운 자리'를 꿰어차고 임금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서 맞이한 '새로운 문제'는 바로 테바이를 급습한 정체 모를 역병(전염병)을 막아내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밝혀내려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자신이 어릴 적에 받았다는 '신탁(운명)'을 피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사실은 '정해진 운명'대로 따르게 되었다는 '비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많은 독자들이 '필멸자의 숙명'이고,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비애'라는 주제에 꽂히고 만다.

그렇지만 <오이디푸스 왕>의 결말이 꼭 비극인 것만은 아니다. 필멸자인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마주할 용기를 짜내어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찔러 앞 못보는 봉사가 될지언정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려다 지은 죄를 달게 받기 위해서 '고행'을 스스로 자초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는 약해 빠진 필멸자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신이 정해준 운명 따위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두 발로 걸어 나아가며 '자신이 지은 죄값'을 톡톡히 치르겠다는 다짐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런 오이디푸스 왕의 모습을 보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돌을 던질 용기가 있는 자는 얼마나 될 것인가?

한편, <안티고네>는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립적 성격으로 읽어내는 맛이 톡톡한 작품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국가가 정한 명령'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전통적, 관습적으로 지켜온 도덕'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따져보는 맛도 쏠쏠하다. 우리는 '법치주의'를 내세워 정해진 법대로 따르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법정의'가 무너지고 법의 형평성이 무너진 상황에서 '맹목적인 법치주의'는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원흉이 된다는 사실을 '12·3비상계엄사태'부터 '윤석열탄핵'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국가가 정한 명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정의롭고,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다시 말해, 권력을 가진 집단이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려고 사법을 악용하려 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일들이 '민주주의'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을 금치 못했던지라 정말이지 식겁한 사태였다.

그에 맞선 '안티고네'는 인간이기에 마땅히 해야만 할 도리를 따른다는 논리가 얼마나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아무리 '국가가 정한 명령(법률)'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정의롭지 못하고, '인간답게 살 수 없는 법률'이라면 법에 저촉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저항하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그 어떤 걸림돌이 있더라도 정정당당하게 행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다행히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들은 '비상계엄'이 부당한 것임을 잘 알고,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을 되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극우주의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극한의 갈등은 전쟁까지 불사하고, 강대강 대치에서 한발짝이라도 물러서면 패배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끝장 날 때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키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다는 대원칙을 위해 서로 양보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안티고네>의 결말을 보면, 모두가 죽는다. 오직 한 사람 독재자처럼 굴었던 크레온만 빼고 말이다. 그는 '안티고네'가 자신이 정한 법을 어기자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었지만, 종국에는 크레온 자신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을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크레온이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으면 '악인'이 달게 받는 죄값이라며 고소해 하기라도 했을텐데, 크레온은 뒤늦게 나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안티고네'에게 내린 형벌을 수습하려 들었지만, 너무 늦은 탓에 더욱 끔찍한 참극을 겪게 된 셈이다. 어쨌든 대부분 '강대강의 대치'는 대개 이런 죄값을 치르게 하고, 참극을 면치 못하게 만들곤 한다. 더구나 전쟁이라도 벌이게 되면 더욱 끔찍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승자라고 해서 '남는 장사(?)'를 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러우전쟁'이나, '이팔전쟁', '미국vs이란' 가운데 러시아의 푸틴,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가 승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을까? 그들의 결말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 말썽을 부려놓고도 '영웅'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오산이다. 그리고 그들이 벌여놓은 짓으로 인한 '후폭풍'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작게는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큰 폐해를 남기고, 크게는 전 지구적인 참극을 남겨 놓을 것이 가능성이 농후할 뿐이다.

그런데도 어찌하며 고집불통인 권력자는 계속 나오는가? 이는 권력의 속성이 '잘못'을 인정하면 권력을 내려놓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자는 '잘못'을 시인하지 못한다. 오이디푸스도, 크레온도 똑같이 '자기 잘못'을 제 때에 시인하지 않고, 고치려 들지 않았기에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권력자들은 처음엔 인지하지 못해 잘못을 고치지 못했더라도, 인지한 뒤에도 잘못을 시인하지 '못한다'. 시인하는 순간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장을 본다. 어차피 스스로 내려가나, 끌려서 내려가나 '똑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허나 결코 똑같지 않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순간 '두 눈을 찌르는 형벌'을 스스로 내리고 권좌에서 내려와 한 사람의 죄인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오이디푸스 왕을 동정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테바이 사람들이 역병에 시달리고 죽음을 당했지만, 결코 오이디푸스 왕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그건 정해진 운명으로 인한 비극이었고, 인간 오이디푸스는 왕의 위치에서 테바이 국민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크레온은 조국을 지켜낸 영웅을 떠받들고, 외국 군대를 몰고온 배신자를 처벌하는게 공정하다고 믿고 강행했지만, 자신이 직접 만든 법을 어긴 백성에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고압적이고 강제적인 처벌만 고집하다가 결국엔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고 만 비극의 장본인이 되었다. 이런 크레온을 두둔하는 이들이 있었을까? 법치주의를 수호한 위대한 영웅이라고 떠받드는 이들이 있었느냔 말이다. 적어도 크레온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게 무도한 권력자의 비참한 결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아이아스>와 <트라키스 여인들>은 임팩트가 그닥 남지 않은 작품이었다. 아이아스는 굽힐 줄 모르는 영웅적 기질을 잘 보여주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닥 인기 있는 영웅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자신의 기준'으로 맞추지 못한다면 '자신을 소멸'시키는 쪽으로 선택하는 모습이 너무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안티고네'는 도덕적인 전통에 따라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했기에 많은 이들에게 정당성이라도 얻었지만, 아이아스는 자신이 영웅인데 '영웅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것에 역정을 내고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어버리는 버리고 말았기에 공감대가 좀 떨어졌다. <트라키스 여인들>에서는 정말 유명한 헤라클레스가 등장해서 눈요기를 할 수 있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영웅적인 모습의 헤라클레스보다는 광기에 빠진 모습만 보이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만 보여주었기에 그닥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더구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이라네이라'는 공주 신분인데도 '헤라클레스의 아내' 역할로 만족하고, 능동적이지 못한 수동적 모습만 연출하다 끝내 파멸하고 마는 인물로 등장해서 실망이 컸다.

나는 <고전>을 읽을 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며 읽기보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까닭을 밝히는 쪽으로 읽으려 노력한다. 아무리 오래된 작품이라도, 그 안에 잠재된 '권위'와 '명성'에 잠식 당해서 '과거의 고찰'에 매몰되어 버린다면 오늘날의 독자들이 굳이 '낡은 작품'을 귀한 시간을 내어 읽을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전>을 읽으면서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찾는 느낌으로 읽어나갈 뿐이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25.08.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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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죄의식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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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포클레스의 대표적인 극작품인 오이디푸스왕, 안테고네, 아이아스. 트라키스 여인들 4편을 번역한 책이다. 문학텍스트를 읽다보면 독자들은 자신이 읽은 작품들에 대한 (이른바) 평론가들의 해석을 찾기시작하고, 그들 상당수는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평론이론'들을 적용한 평론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 이론들중에서 미국대학의 비평가들을 통해 수입된 유럽산 이론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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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포클레스의 대표적인 극작품인 오이디푸스왕, 안테고네, 아이아스. 트라키스 여인들 4편을 번역한 책이다. 문학텍스트를 읽다보면 독자들은 자신이 읽은 작품들에 대한 (이른바) 평론가들의 해석을 찾기시작하고, 그들 상당수는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평론이론'들을 적용한 평론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 이론들중에서 미국대학의 비평가들을 통해 수입된 유럽산 이론들중에서 가장 많이 수업된 이론중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이 있고, 그 이론은 프랑스의 철학자들의 개발노력으로 세련되게 포장되어 우리나라 대학의 평자들에게까지 수업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잘 팔리는 이론중의 하나가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거세메카니즘을 기제로하는 불안, 분열, 편집증적 사고방식에 관한 이론인데 이 이론의 기본이 바로 이 '오이디푸스왕'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이라는 이론가의 이론도 겉으로 보기에 무지하게 난해해 보이지만 사실 오이디푸스왕의 스토리를 (정말 편집증적으로) 세세하게 이론화한 것이다. 

오이디푸스왕을 읽을 때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 극의 전개 자체가 가정하고 있는 운명론이다. 즉 인간의 상황에 주어진 '죄의식'같은 것은 사실 스토리상의 허구인데, 오늘날 과도하게 이론적인 평론들은 사실 이제 거의 효용성을 상실한 19세기 의학자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스토리해석에 과도하게 의존하다보니 '독자 자신의 주관적인 오이디푸스 읽기'는 사라져 버리고 허접하기 짝이 없는 가짜전문용어들만 난무하는 잡글들의 푸념들에 빠지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YES마니아 : 로얄 n*******5 2017.10.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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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옛날에 쓴 글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기에 원작과 지금 내가 읽는 책 사이에, 같은 단어로 표현되었어도 거기에 담겨져 있는 의미에, 또 번역되면서 필연적으로 놓칠 수 밖에 없는 부분에, 또 무엇보다 내가 당대의 사람이 아니기에 몇줄을 읽을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제일 맞는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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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옛날에 쓴 글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기에 원작과 지금 내가 읽는 책 사이에, 같은 단어로 표현되었어도 거기에 담겨져 있는 의미에, 또 번역되면서 필연적으로 놓칠 수 밖에 없는 부분에, 또 무엇보다 내가 당대의 사람이 아니기에 몇줄을 읽을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제일 맞는지 고민하면서 읽다보니 오히려 이해하기에는 제일 어려운 작품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반대로 이 때문에 흥미진진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만약 디테일을 조금 포기하고 본질로 직진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겠다.

 매일같이 뉴스에 기구한 삶들의 결말이 소개된다. 이 책에 실린 비극의 주인공들과 그 운명이 유사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결국 상기하게 되는 것은 누구는 기념비라고 부르는 오래된 작품 속에서, 그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성격도 그리고 운명도 결코 바뀌지 않은 채 이웃들과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 비밀, 원리 혹은 비법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힘이 이 책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로얄 d********e 2020.06.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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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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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비극에서 불행과 고통, 죽음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며 무의미하지 않다. 불행과 고통, 죽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거짓된 삶에서 진정한 삶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낳거나 변화의 조짐이 된다. 죽음 같은 고통(정신이나 육체의 고통 또는 정신과 육체의 고통)은 진실에 대한 이해를 낳는 동시에 ‘재생’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소포클레스가 상상해 낸 오이디푸스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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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비극에서 불행과 고통, 죽음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며 무의미하지 않다. 불행과 고통, 죽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거짓된 삶에서 진정한 삶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낳거나 변화의 조짐이 된다. 죽음 같은 고통(정신이나 육체의 고통 또는 정신과 육체의 고통)은 진실에 대한 이해를 낳는 동시에 ‘재생’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소포클레스가 상상해 낸 오이디푸스는 전설에 나오는 모순된 오이디푸스, 즉 인간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가장 비참한 인간,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풀지만 정작 자신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 범죄자를 쫓는 범죄자이며, 그와 동시에 공격적이면서도 너그럽고, 오만하지만 자신이 놓친 진실을 찾는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며, 모든 것을 잃고 추방되는 마지막 순간에 외려 끈기를 회복하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되었다. 결국 소포클레스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진실을 찾기 위해 자기 의지대로 삶을 이뤄 나가는 주체적 인간상을 보여 준다. 소포클레스 비극에서 불행과 고통, 죽음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며 무의미하지 않다. 불행과 고통, 죽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거짓된 삶에서 진정한 삶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낳거나 변화의 조짐이 된다. 죽음 같은 고통(정신이나 육체의 고통 또는 정신과 육체의 고통)은 진실에 대한 이해를 낳는 동시에 ‘재생’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소포클레스가 상상해 낸 오이디푸스는 전설에 나오는 모순된 오이디푸스, 즉 인간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가장 비참한 인간,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풀지만 정작 자신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 범죄자를 쫓는 범죄자이며, 그와 동시에 공격적이면서도 너그럽고, 오만하지만 자신이 놓친 진실을 찾는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며, 모든 것을 잃고 추방되는 마지막 순간에 외려 끈기를 회복하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되었다. 결국 소포클레스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진실을 찾기 위해 자기 의지대로 삶을 이뤄 나가는 주체적 인간상을 보여 준다.

m*******7 2020.0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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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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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하면 가장 먼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떠오른다. 이 단어를 정말 숱하게 들었는데도 막상 제대로 된 얘기는 어렸을 적에 그리스로마신화에서나 접한듯한 가물가물한 기억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읽어보고자 사게 되었다. 대표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의 컨셉은 프로이트에 의해 주목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 작품 자체로서도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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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하면 가장 먼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떠오른다. 이 단어를 정말 숱하게 들었는데도 막상 제대로 된 얘기는 어렸을 적에 그리스로마신화에서나 접한듯한 가물가물한 기억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읽어보고자 사게 되었다. 대표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의 컨셉은 프로이트에 의해 주목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 작품 자체로서도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부류의 컨셉이 자극적이지만 그래도 관심을 확 끌긴 하는 것 같다. 

8*****k 2018.05.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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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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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아들이 읽고싶어해서 구입했어요✔️ 인상 깊은 점운명은 피할 수 없다는 점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결국 이루어짐→ “인간의 한계” 느낌진실의 무서움몰랐을 땐 괜찮았는데→ 알게 되자 인생이 무너짐오이디푸스의 태도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려는 모습→ 책임감 있지만 비극적 빠른 배송 감사해요주말인데도 투데이 당일배송으로 배송됐어요최고!투데이 당일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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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아들이 읽고싶어해서 구입했어요

✔️ 인상 깊은 점

운명은 피할 수 없다는 점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결국 이루어짐

→ “인간의 한계” 느낌

진실의 무서움

몰랐을 땐 괜찮았는데

→ 알게 되자 인생이 무너짐

오이디푸스의 태도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려는 모습

→ 책임감 있지만 비극적

 빠른 배송 감사해요

주말인데도 투데이 당일배송으로 배송됐어요

최고!

투데이 당일배송

b*********3 2026.04.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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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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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내용이지만 한번쯤 읽어봐도 좋은 작품입니다. 등장인물안내가 앞쪽에 나와있어서 헷갈릴때 찾아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불편함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저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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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내용이지만 한번쯤 읽어봐도 좋은 작품입니다. 등장인물안내가 앞쪽에 나와있어서 헷갈릴때 찾아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불편함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저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k*****1 2025.1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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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Oedipus rex / 소포클레스 Sophocles / 기원전429년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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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같았던 희랍 비극 원전.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인 자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파멸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질문하고 따져 물음으로써 예정된 운명을 피하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끝까지 진실을 파헤쳐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은 운명이라기보다는 결국 자신의 의지임을 보
"오이디푸스 왕 Oedipus rex / 소포클레스 Sophocles / 기원전429년 초연" 내용보기


뮤지컬 같았던 희랍 비극 원전.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인 자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파멸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질문하고 따져 물음으로써 예정된 운명을 피하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끝까지 진실을 파헤쳐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은 운명이라기보다는 결국 자신의 의지임을 보여준다. 인간은 그저 운명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삶을 이루어 나가는 주체라고.

민음사 세계문학에 에우리피데스나 아이스킬로스 희곡은 아직이다. 이 책을 옮긴 장대진 교수님께서 희랍 희곡 원전 번역을 꾸준히 내주셨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e 2024.07.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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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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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있는데 태블릿으로 보기위해서 이북으로 구매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중 완벽한 비극으로 손꼽는 이 작품은 여러가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내용은 많이들 알고계시는 내용과 같습니다. 신탁에 의해 필연적으로 비극적 운명으로 이끌려가는 인간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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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있는데 태블릿으로 보기위해서 이북으로 구매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중 완벽한 비극으로 손꼽는 이 작품은 여러가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내용은 많이들 알고계시는 내용과 같습니다. 신탁에 의해 필연적으로 비극적 운명으로 이끌려가는 인간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YES마니아 : 로얄 h*******0 2024.04.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