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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기 시작하던 때 이후이다. 그러니까 최대로 소급해도 산업혁명 이후이며, 이것조차도 환경문제에 대한 문제가 여러가지 이유로 대중에게 인지되지 못했던 당시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생태주의자란 말보다는 자연주의와 같은 말이 비슷한 뉘앙스로 사용되었다고 봐야겠다. 생태라는 말이 생물학의 한 형태로 등장한 것이 1800년대 중반이후 이고 그 말에 철학적이고 세계관적인 의미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도 1900년 중반 이후라고 봐야하니 기원의 전후를 구분한 예수님에게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생태주의자라는 이름표를 붇이는 것은 어쩌면 예수님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환경문제의 원인에 대해 논의가 다양하지만 철학자들의 한결같은 결론은 인간의 욕망과 연관된 것이다. 인류라는 특별한 생물종이 그들의 멈출 수 없는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 다른 생물을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써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대상으로 만들고 지속적으로 지나치게 사용하다보니 결국 환경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 지구라는 생태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닥이 보일정도로 사용해버리고 불필요할 뿐 아니라 위협을 가하는 오염물은 넘처나는 불균형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예수님에게 찾을 수 있는 생태주의자로써 모습은 이런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진 욕망을 버리고 신의 아들로써 인류를 그들의 욕망이라는 죄악에서 구원하기 위한 희생에 있다. 저자는 예수님의 행적 전반에 대해 생태적 해석을 하기위해 노력을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파에서는 다소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해석을 하는 부분도 있으나 지나치게 나의 미래, 인류의 미래에 대해 국한되어 해석되었던 성경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지구라는 생태계의 미래를 위한 해석이라는 확장된 노력을 하고 있어 우리에게 의미있는 재미있는 논란거리를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