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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동독 출신 망명객으로 둥지내릴 포디움도 없이 떠돌아다닌 무명 지휘자여서 ? 주류권에 들지 않은 소수 지휘자에 대한 환상과 동경 때문에 텐슈테트의 말러에는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올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유수 '평론가'들을 믿었고 명동 음반점의 '마니아 점원'들도 신뢰했다. 그 신용의 대가는 접하기 두려운 "갈증나는" 말러였다. 망망대해 표류 중에 목말라 마신 짠 소금물에 타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그의 '말러'를 어떻게 정의내릴까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그래, "텐슈테트"는 "텐슈테트"야.
작품으로만 보자면 - 말러 교향곡 6번 - 표제 '비극적' - 이 대단한 작품이란 것은 굳이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씨디는 말러의 음향을 전부 잡아내지 못하며, 대단한 작품을 능수능란하게 연주해낼만큼의 역량을 지닌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르냐 아니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작곡가 말러가 알마와 결혼한 뒤 전성기 시절에 작곡한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비극적'인 이미지가 뒤따르기도 했는데, (* 마지막 악장에 내려치는 세번의 해머는 말러가 봉착한 세가지 불운을 상징하기도한다.) 이러한 배경과 미신을 떠나서 이 작품은 "완벽한 오케스트라"에 "노련한 지휘자"가 "뼛속조차 말라버리는 몰입"을 꾀하지 않으면 소리로서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은 여타 말러 감상자분들에겐 상식일 것이다.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과연 우리가 듣는 고전음악 교향곡일까 의아스러울 정도로 락과 헤비메탈을 뛰어넘는 거칠고 야성적인 악상이 웅대하기라고 표현하기에는 절망적으로 공허한 연옥 같은 스케일에서 장렬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최초로 들었던 불레즈는 '이지적'이었다. 당시에는 비교할 타 동곡음반이 없었던 탓에 불레즈조차도 '통렬하다'고 느껴졌다. 이어서 들었던 음반이 번스타인의 '구반'과 '신반'이었는데 똑같은 지휘자임에도 그 해석의 차이는 현저했다. 불레즈에 비하면 번스타인은 더욱 격렬하고 정열적이라 좋았지만 도취적이랄까 ? 하지만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나온 '신반' 연주는 녹음도 녹음이지만 원숙한 번스타인의 "거대한 전투"가 나의 강력추천 1호였다. 뒤이어 카라얀도 들어보아야하였지만 한 마니아 분의 텐슈테트 추천을 믿고 접해본 결과는‥. 만약 조물주가 나에게 번스타인과 텐슈테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하면 오랜 시간 갈등할 것이다. 번스타인 반이 텐슈테트 반보다 원숙하고 세련되었으며 말러다운 '광기'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에서 해답은 자명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은 말러 6번에서는 '텐슈테트 6번'을 택할 것이다. 모든 것을 상세히 보여주고 이해시켜준 번스타인과 달리, 한번 들으면 전신의 수분이 말라버릴 것 같은 텐슈테트의 독기(毒氣)는 여전히 미지의 대상이니까. 엉뚱한 얘기지만 조물주가 비교가 어려운 두 여성을 소개하며 반려자를 택하라 하면 나는 당연히 '여전히 신비를 안겨주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명연일수록 반복청취할수록 매번마다 느끼는 바가 달라진다. 텐슈테트의 말러가 그렇다.
평론가들에 따르면 텐슈테트를 '음반'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오당치 않다고 한다. 실제 그의 실황 연주에는 "광기"가 넘쳐흐르는데 음반에는 담을 수 없는 열기 비슷한 것이었다한다. 하기야 레코딩이야 정직하게 '소리'만 담고, 소비자들을 배려한 '편집'의 산물이니까. 따라서 도시바에서 텐슈테트 타계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어렵사리 발매한 이 음반만 가지고 '감탄'한다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음반의 녹음조차 듣는 사람을 피마르게 한다면 진짜 실황은 어땠을까하는 기분에 미이라같이 마른 몸에 소름까지 돋힐 지경이다. 전악장 연주가 훌륭하지만 특히 4악장은 듣다보면 폭발광경과 소리가 없어도 어떤 거대한 폭발이 있었구나라는 심연이 들끊는 느낌에 꼭 듣고나면 물 한컵은 마셔야 살 것 같은 기분이다. 더욱 완벽히 연주하는 번스타인은 어찌보면 달콤한 '여백'까지 마련하여 청자를 추상적 슬픔의 고차원으로 인도하지만, 텐슈테트는 허기진 동굴 밑바닥에서 복통환자처럼 몸부림치는 것이 언제 그 33분 33초가 흘러갔나 모를 정도로 아프도록 멍한 기분이다. 번스타인보다 '아름다움'은 떨어져도 (들어본 적 없는 카라얀보다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가 예술에서 조금만 맛보고나면 발정난 들짐승처럼 환장하기 마련인 그 '광기'와 '독기'에서는‥. 둔탁한 현악 소리에 다소 굼뜬 타악기, 미친 년 널뛰기하듯 날카로운 관악‥. 그리고 미쳐날뛰면서도 배가 고픈 프레이징.
이 음반은 눈에 띄는대로 구입하시길 바란다. (참고로 번스타인의 신녹음은 전집이 아니고선 입수가 어렵다.) 발매 측이 EMI 본사가 아니라 일본 쪽 도시바 EMI 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뭔지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무엇보다 절판될 가능성이 높아서이다. 아울러 그의 실황녹음 - 말러 교향곡 '1'번 (시카고필)도 꼭 들어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천인교향곡 '8'번도 마찬가지다. 베스트 원으로 꼽히는 솔티와는 다른 '잔잔하고 감미로운 신비'가 무의식의 표층 하에 흐르는‥. 이 연주는 '이지적이고 학구적인' 말러 연주가 과연 옳은가하는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언문'이기조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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