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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자 핵심 주제인 ‘포스트 자본주의’는 사실 세계적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입니다. 포스트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이후’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자본주의 다음으로 새로운 후기 자본주의가 등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압니다. 즉 ‘적은 인원으로 최대한 많은 생산성을 추구한다’라는 전제 아래, 자본주의는 오로지 성장과 확대로 일관해오다가 자원의 유한성과 여러 한계 상황에 직면하여 수정자본주의로 방향을 돌렸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실업, 격차 등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는 현 자본주의 체제로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저자는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가 실패에 그쳤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며 이에 대한 근거를 대고 있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 낙수효과를 강조하며 친 재벌 정책을 펴온 것에 대한 시사적인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저자는 이처럼 지금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불가피하게 부단한 확대와 성장을 전제로 삼는 다면 포스트 자본주의는 성숙과 정체화로의 이행을 내포하는 사회상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는 새로운 과학 및 가치와 한 몸을 이루는 사회 구상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크게 총 3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선 1부에 ‘자본주의의 진화’에서는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화제를 비롯해서 자본주의의 발자취를 과학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새로운 시점으로 조명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전뇌 자본주의나 초자본주의 그리고 포스트 자본주의라는 개념 속에서 향후 전망을 논하고 있습니다.
2부인 ‘과학 · 정보 · 생명’에서는 자본주의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규정한 과학의 모습과 그것을 통한 인간관 자연관 그리고 생명관의 방향을 과학사점 시점을 통해서 파헤치려고 합니다. 3부에서는 1부와 2부에서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향후 구상하고 실현하여야 할 포스트 자본주의의 사회상을 시간 정책, 자본주의의 사회학 그리고 커뮤니티 경제 등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마무리 글인 종장에서는 향후 과학의 방향성과 포스트 자본주의 혹은 정체형 사회의 가치인 지구윤리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는 오래된 논의이지만, 이 책은 과학의 발전과 결부시켜 현실성 있는 포스트 자본주의 모델을 모색하고 있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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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자본주의>,
인류 역사를 크게 조감하면 인구나 경제 규모의 '확대, 성장' 시대와 '정체화' 시대의 교체로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제3의 정체화' 시대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역사의 '확대, 성장' 및 '정체화' 주기는 '인간에 의한 자연의 착취 정도'에서 온다고 한다. 인간 역사의 확대, 성장에서 정체로의 이행기에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념 혹은 사상 또는 가치가 생겨났다. (19 P) 인도의 불교, 중국의 유교와 노장사상, 그리스 철학, 중동의 구약사상도 모두 그 시대에 중국, 그리스, 인도 등 각 지역에서 농경과 인구 증가가 진행된 후 삼림이 고갈 되고 토양 침식이 심해져 농경 문명이 자원, 환경의 제약에 부딪혔을 시점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즉 '물질적 생산의 양적 확대에서 정신적, 문화적 발전으로' 의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정체'라는 표현은 자칫 '변화가 멈춘 지루하고 답답한 사회'라는 이미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물질적인 양적 성장의 개념에 사로잡힌 이해다. 오히려 정체기는 풍부한 문화적 창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20 P) 포스트 휴먼은, 인간 자체를 개조함으로써 현재 지구가 직면한 자원 및 환경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지향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23 P) AI의 뛰어난 면(빠른 정보 처리 능력이나 방대한 기억 용량)과 인간의 뛰어난 면(생존에 대한 지향과 그로부터 파생하는 세계에 대한 '의미' 부여, 혹은 타자와의 공감 능력)을 조합하면 이른바 '최강의 존재' - 그것을 '인간'이라고 부를지 말지는 차치하고 - 가 탄생할 것이 아닌가. (27 P) 경제 혹은 자원의 총량이 '유한한' 일정 범위에 머무른다면, 한 사람의 탐욕 혹은 몫의 확대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자기 몫의 감소를 의미한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파이'의 총량 자체가 확대, 성장할 수만 있다면, 상황은 단숨에 바뀐다. 즉 오히려 경제라는 파이의 총량 확대를 촉진하는 개인의 행동이야말로 바람직한 일 이 될 것이다. (40 P) 자연자원의 유한성이 '확대, 성장'에 있어서 이른바 '외적 한계'라 한다면, (중략) '기계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면, 인간과 인간 외 존재, 혹은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선이 없어지고, 새로운 애니미즘으로 회귀'하는 것이 현대 과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133 P) 끝없이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오히려 이제는 ' 생산성이 향상하면 할수록 실업이 증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49 P) 생산성이 최고조로 향상된 사회에서는 소수의 노동으로 많은 양을 생산하여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그 결과 자연스레 다수의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다. (중략) 일단 한정된 고용의 의자를 차지한 사람도 불안에 사로잡혀 과중한 노동을 하며 스트레스, 과로, 건강 악화로 고통받는다. (중략) 자원의 유한성이 뚜렷해지고, 동시에 생산 과잉으로 인한 실업이 만성화하는 성숙, 정체기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서비스나 사람과의 관계성으로 이동하여, 사람이 중심인 '노동 집약적' 영역이 경제의 전면에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 변화에 발맞추어 생산성의 개념을 재고하고 전환해가야 한다. (166 P) 현재의 자본주의가 다양한 수준의 격차 확대와 과잉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대응책으로 과잉의 억제, 재분배의 강화, 재편, 커뮤니티 경제의 전개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적인 '확대, 성장'이 아니라 '(지역내)순환'에 중점을 둔 커뮤니티 경제가 발전하면, 자연히 '과잉의 억제'로도 이어져서, 그곳에서 다양한 고용과 커뮤니티적 연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격차의 축소'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여 결과적으로 재분배의 전재 조건을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230 P) 시장경제 혹은 그것을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단기'의 시간 축에서만 사건을 받아들이므로, 그러한 '긴 시간'은 처음부터 관심 밖이다. 이것의 의미를 경제학자인 미즈노 가즈오는 '미래의 수탈'이라는 언어로 적확하게 표현했다. (243 P) 세계를 맥도널드처럼 균질하게 하는 것이 '글로벌'이 아니다. 오히려 지구상 각 지역이 지니는 개성이나 풍토적, 문화적 다양성에 일차적인 관심을 기울이며, 그러한 다양성이 생성하는 구조 자체를 이해하고, 전체를 조감하듯 파악하는 것이 '글로벌' 본래 모습일 터이다. (258 P) 21세기는 무한한 '확대, 성장'과 '성숙, 정체화'가 대립 혹은 경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은 확실하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지속 가능한 복지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중심 메세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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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자본주의는 궁극적인 이상으로서 실패했다는 것을 전제로 설명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아무리 개혁을 가한다고 해도, 빈부 격차, 지역 격차 등을 포함한 여러 부작용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성장을 못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성장이 이루어져도 그것을 체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 높은 목표와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을 뿐, 일정 수준의 달성으로 사람들은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성장과는 반대 개념의 성숙, 정체화 사회의 도래를 부르짖으며, 과연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여러 방안을 제시한다. 소수의 특정 계층이 행복한 사회가 아닌, 누구라도 행복을 정당하게 당연한 권리로서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한다. 그저 이상에 그치는 발상이 아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과학적 인식을 도입하여 진정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 미래에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무엇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하는가, 이 사회는 과연 나에게 무엇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가? 여러 면에서 나를 자극하고 일깨워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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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와나미가 신서가 얼마만큼 일본 사회에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여전히 끼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개인적으로 이와나미 신서는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잇는 중이다. 그들의 오타쿠같은 정신을 인문학 분야에 그대로 가지고 들어왔다 해야 하나, 아무튼 별 시덥지도 않다고 여길 만한 주제부터 해서 당대 시대의 주요 논쟁들까지 두루 살펴보는 맛이 있다. 아주 특이한 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