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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거기까진 시선이 닿지 못했다. 살면서 지금까지 허다하게 사찰과 고궁을 다녔지만 한 번도 눈여겨 본 적이 없다. 기와의 끝, 그래서 수막새라고도 부르는 와당. 그저 기와의 마무리를 위한 실용적인 용도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 거기에 뭔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와당이 실은 그것을 만든 시대의 사상과 문화적 지문(指紋)이기도 하다는 것은 더욱 고려해 본 바 없었다. 그런데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 법인가?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을 하나 만나게 되었다. 우리나라 고전 문학을 접하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작가, 정민. 바로 그가 중국 고대의 와당들을 문양과 모양에 따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이름하여, '와당의 표정' ![]() 제목 그대로 여기엔 전국 시대부터 당나라까지 실존했던 와당들의 모습이 탁본으로 수록되어 있다. 와당의 모양과 문양에 따라 모두 5장으로 나누어 담고 있는데, 하나의 와당 옆엔 정민 작가의 간략한 해설이 실려있다. 해설이라고 했지만 모두 서 너줄의 문장들이라 해설이라기 보다는 어쩐지 짧은 시 같은 느낌도 난다. 책은 모두 371페이지로 두 페이지마다 와당이 하나씩 있으니, 서문 제하고 차례와 장을 여는 부분을 각각 제하고 나면 거의 350 페이지, 그러니까 총 175 개의 와당이 이 책에 실려 있는 셈이다. ![]() 보시다시피 이런 형식이다. 페이지 하나에 와당 하나, 설명 하나다. 와당은 모두 탁본으로 실려 있다. 밤에 찍어서 좀 흐릿하게 찍혔는데 실물은 선명하다. 탁본으로 된 그림이라 어쩐지 판화를 보는 느낌도 난다. 그래서 책이 좀 더 정갈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다. 정민 작가의 설명 또한 단출하여 더 그렇게 보인다. 부담 없이 시간 날 때마다 쉬엄 쉬엄 하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75개의 와당은 하나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추상에서 구상까지, 동물에서 글자로 만 된 문양까지 실로 다종다양하다. 시대마다 유행이라는 것도 있었을 터인데 그 작은 와당 하나에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개성을 부여하려 애쓴 것을 보노라면 절로 옛 사람들의 여유와 정성이 느껴져 어쩐지 갸륵해지기도 한다. ![]() 어떤 것은 사는 이에게 액운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주술적인 기원(祈願을 담고 또 어떤 것은 다산을 위한 바람을 담았다. 또 어떤 것엔 성공을 위한 야망과 가문의 번성을 위한 숙원을 담기도 했다. 그렇게 와당에 담은 바람이 가없이 다양했으니, 와당의 모양이나 문양도 다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 더구나 와당 하나 하나는 그 어떤 것도 대충 만든 것이 없다. 때로는 이렇게 복잡한 문양을 새겨 놓기도 했고 짐승이나 식물을 그리더라도 생명력을 느끼도록 했다. ![]() 이런 귀여운 용이라니! 아마도 이 와당을 만든 이는 꽤나 재치가 있는 이였으리라. 분명 아이에게 장난감도 곧잘 만들어주곤 했을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언뜻으로도 보지 않았던 와당. 무심히 지나치기만 했던 와당. 그것에 이리도 개성과 정성을 누벼 놓았다니. 요즘처럼 사소한 것은 곧잘 무시되곤 하는 세상에서 아주 작은 것에도 진심을 다하는 그 모습이 무척 그리워지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책에 실린 와당을 하나 하나 보노라면 절로 이것이 하나의 목소리라는 걸 느끼게 된다. 자신이 만드는 집에 사는 이가 무탈하고 번성했으면 하는 간구 같은 것. 그렇게 내밀한 바람이 담겨 있기에 와당이 또한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무엇을 선호했으며 또 그 바람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알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증언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같은 종류의 와당도 그 미묘한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면 아주 흥미롭다. 수없이 많은 와당들이 비슷한 원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지만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전국 시대에 성행하던 반원형 와당은 후기로 오면서 원형으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반원형이 원형으로 옮아가는 중간 형태들도 적잖게 보인다. 하나의 원형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모해가는지를 통해 우리는 시대 정신과 미의식의 추이까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p. 9)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그저 작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얼마나 큰 것을 담을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똑똑히 느끼게 되었다. 우리 삶도 알고 보면 이와 같지 않을까? 작고 사소한 것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눈을 길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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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의 『와당의 표정』이란 책을 만났다. 이 책은 2002년 출간되어 십여 년 넘게 절판되었던 책이 다시 개정 출간되었다고 한다.
와당이란 무엇일까? 사실 우리에겐 와당이란 단어보다는 수막새란 명칭이 더욱 익숙하다. 다음백과사전에 수막새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목조건물에 기와를 덮는 풍습은 고대 동양건축의 특색 중의 하나로 중국 주대(周代)부터 시작되었다. 전국시대에 타원형의 수막새를 붙이기 시작하였으며, 진(秦)·한대(漢代)에는 원형 수막새가 널리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 기와 전래의 시기는 한사군설치 이후인 BC 2~1세기로 보이며, 삼국시대에 불교전래와 함께 연꽃무늬가 새겨진 수막새가 제작되었다. 수막새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형성한 기왓골과 기왓등의 가장자리로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막음하는 역할을 한다. 수막새에는 대부분 장식적인 문양이 새겨지는데 연화무늬가 주로 사용되었다. 이외에 당초무늬·모란무늬가 많으며 때로는 문자나 명문(銘文)이 쓰이기도 한다. 또 귀면(鬼面)을 비롯한 각종 동물무늬가 등장하고 불·보살이나 인물이 조각되는 예도 있다. - 출처 : 다음백과
수막새란 말은 순우리말이다. 이를 한자어로 표현한 단어가 ‘와당’이다. 그럼, 수막새란 우리말을 놔두고 책은 왜 ‘와당’이란 단어를 썼을까? 그 이유가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닌 중국의 것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한자어인 ‘와당’이란 단어가 더 적합하겠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와당의 문양들은 대부분 전국시대와 한나라 때의 와당들이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이천년 이전의 물건들이다. 이천년 시간의 간극을 초월하여 우리를 찾아온 와당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나는 시간이 즐겁다. 왜냐하면 단순히 문양이나 그림, 글자를 만나는 시간이 아닌, 이천년 전 사람들의 꿈과 소망, 그들의 바람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와당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와당의 문양에는 그 시대를 살고 간 사람들의 꿈과 현실이 담겨 있다. 그들이 꿈꾸었던 삶, 그들의 삶을 지배했던 약호들이 그 속에 살아 숨 쉰다. 집은 허물어져 자취 없이 되었어도, 와당은 흙 속에 묻혀 두 번의 천년을 넘겼다. 그 긴 세월을 잠만 자다 다시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 그 시대를 증언하고, 빛바랜 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책을 펴내며 中
이천년, 즉 두 번의 천년을 넘어 긴 잠에서 깨어난 옛 사람들의 소망과 꿈, 그들의 바람을 와당을 통해 만나보자.
때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때론 유치한 문양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다양한 와당의 문양들. 그 속엔 당시대인들의 소망과 삶, 꿈과 희망이 담겨 있다. 그 염원의 힘이 전달되어 나의 것이 되는 것처럼 느껴짐은 착각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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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끝에 핀 예술 [와당의 표정]
가까이 살고 있다는 핑계로 경주 나들이를 자주 가는 편이다. 경주 입구에 들어서면 '신라 천년의 미소' 라는 글귀와 함께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 하나를 접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3분의 1정도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 온화한 표정만은 다행히도 남아 있어 항상 푸근한 마음으로 마주 미소 지어보곤 한다. 그 조그만 조각 하나에도 마음 전체가 허물어질 정도라니. 생활에 필요한 기와의 효용성을 넘어서서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와당의 표정]은 '와당'이 표현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것이 아니라 중국 고대의 와당들을 모양과 문양에 따라 모아 놓았다. 전국시대가 열리는 기원전 400년 이래 한나라와 북조를 거쳐 당나라에 이르는 일천 년간 중국의 와당 가운데 아름다운 것들만을 간추렸다고 한다. 탁본을 뜬 것이라 어찌 보면 그림 같이 보이기도 한다. 저자 정민이 2002년 봄에 펴낸 이후 절판되었던 것을 2016년 12월에 다시 펴낸 것이라 한다. 우리 옛 선인들은 중국에서 구해 온 와당 또는 탁본 하나하나를 아껴 보며 그것으로 금석 서화 공부의 재료로 삼았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 선인들처럼 금석 서화에 골몰할 것은 아니지만 선인들의 마음을 충분히헤아려 볼 수 있겠다. 어렵게 구해온 것을 귀하게 들여다 보며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그들의 기쁜 마음을 같이 느낀다.
와당은 우리말로는 수막새다. 수키와의 끝을 막는 장식이었다. 처음에는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이었지만 거기에 무늬를 올리고 글자를 새겨넣으면서 와당 예술이 꽃을 피웠다. 재료는 같을지라도 그것을 채우는 사람들의 예술지향은 달라서 각기 색다른 무늬들이 탄생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흙 속에 묻혀 이천 년의 오랜 시간을 버틴 와당이 보여주는 신선한 예술적 감각 속에서 거닐며 꿈을 꾼다. 지금의 예술, 미술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 없을 만한 무늬들도 여럿 보인다. 나무와 사람과 구름과 동물과 상상 속의 존재들로 가득한 와당의 세계는 작지만 크다.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령 가운데 백호다. 백호를 새긴 와당이라도 백호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역동성이 느껴지는 저 백호의 모습이 활달하다. 막 같이 움직여보고 싶다.
용처럼 생긴 발이 하나 뿐인 상상 속 동물인 기를 새겼다. 해설을 보지 않았다면 동물 모양인지도 몰랐을 정도로 기하학적인 선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와당의 문양에 이런 불상까지 새길 줄이야. 당대 사람들의 정신 속에 깃들여 있었던 중심적인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겠다. 자꾸 들여다보면 꿈에서 둥실 떠오를 것만 같은 모양이다.
와당에 새겨진 글자들은 대부분 진한 시대를 거쳐 많이 사용되었던 전서인데 여기 와당에는 예서풍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글자와 그림의 조화가 재미있다. 장식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심심할 때 한 번씩 펼쳐 들여다보면 그 때 사람들의 꿈과 현실을 함께 느낄 수 있으리라. 헛헛하고 어지러운 요즘, 마음 둘 곳 없을 때 한 장씩 펼쳐 보리라.
이 리뷰는 예스24에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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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와당이라는 이름조차 낯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찰이나 고궁 답사라도 갈라치면 가이드가 빠지지 않고 설명하는 것이 와당이기도 하고, 설사 그 이름은 모른다해도 오히려 사진을 보면 바로 알아차릴 만한 것이 와당이 아닌가 해요. 하지만 와당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아했는데요, 정민 선생은 아예 책까지 내셨군요. 심지어 이 책이 재출간된 판본이라고 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와당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처음에 이 책이 당연히 우리나라 기와의 와당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예상과 달리 중국 역대 왕조의 와당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더군요. 물론 와당의 유래나 양은 중국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그간 정민 선생의 관심사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한국의 와당도 포함될 줄 알았는데 아예 배제된 것은 조금 의아하기도 합니다. 머릿말에서 우리의 와당이 다양성 면에서 아쉽다는 언급을 하면서 그 이유를 암시합니다만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는 했어요.
책의 구성이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데요, 일단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은 문양의 소재에 따라 분류되어 있습니다. 반원형, 동물과 인간, 구름이나 꽃 무늬, 길상문 순이지요. 왼쪽 페이지에는 와당의 문양과 연대를,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에 대한 해설이랄까가 간략하게 실려있습니다. 이러다보니 한편의 시집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특히 각 장마다 와당의 문양을 다른 색으로 처리한 것은 단순하지만 꽤 기발한 선택인 듯 합니다. 마치 판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것이 이 책을 한결 더 친근하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정민 선생이 붙여놓은 주석은 좋게 보자면 담담하고 좀 깎아내리자면 밋밋합니다. 통찰이 더해진 것이라기보다 그저 단순한 해설처럼 느껴져요. 그 덕에 심심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달리 보자면 책 전체의 톤을 담담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와당은 복잡하게 기획된 고급 예술이라기보다는 민속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므로 단순하고 소박할 수밖에 없겠고 그에 대한 독해도 담백해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읽어가다 보면 시대별 차이도 느껴지고 특히 특정 문양이 가지는 공통적인 상징성을 알게 되면서 점점 더 문양의 의미를 이해하기 쉬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해설서라기보다는 시집을 읽는 기분으로 차라도 마시면서 편안히 읽어가기 좋은 책이 아닌가 해요. 그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기와 끄트머리라도 보면서 한가한 오후를 즐기는 기분을 다시 맛보도록 한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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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에서는 기와집을 많이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넓디넓은 마당을 끼고 있는 한옥을 보면 꽤 멋스럽게 보인다. 처마끝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것도, 맑은 하늘 아래 울리는 풍경소리도 모두 멋스럽게만 떠올리게 된다. 기와 지붕의 모습은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눈이 쌓여도 이쁘고 아무것이 없어도, 심지어 낡아서 이끼가 자라고 있어도 멋스러울것만 같다. 그런 기와의 끝을 장식하는 것이 와당이라고 한다. 처음엔 떠올리지 못했는데 와당을 우리말로 하면 '수막새'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수막새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것. 신라의 미소,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 미소띈 얼굴이 떠오른다. 어떤 멋진 모습들이 담겨있을까 기대하며 책을 펼쳤는데 사실 와당의 표정에는 뜻밖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어서 놀라웠고 책장의 마지막을 덮을때는 조금 아쉬운 것이 있었다.
와당의 표정은 전체적으로 4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시기나 지역, 국가별 구분이 아니라 와당의 '표정'이라는 제목답게 와당의 문양에 따라 반원형, 동물과 인간, 구름 꽃무늬, 길상문의 4종류로 구분하여 비슷한 문양끼리 모아놓고 저자의 감상을 짧게 덧붙여놓고 있다. 처음 책을 볼때는 와당의 모양만 보고 그 다음은 저자의 설명과 감상을 곁들여 읽었는데 굳이 저자의 설명이 필요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와당도 있지만 솔직히 와당을 많이 보지 못했던 내게는 저자의 설명이 와당의 표정을 더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이 책에 대해서는 글로 설명하기 보다는 실제 와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니 긴 글이 필요없겠지만 와당에 대한 저자의 글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꾸밈과 장식이 들어가고 좀 더 세심하고 풍부함을 보여주려고 한 와당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게 된다.
"와당의 문양에는 그 시대를 살고 간 사람들의 꿈과 현실이 담겨있다. 그들이 꿈꾸었던 삶, 그들의 삶을 지배했던 약호들이 그 속에 살아 숨쉰다. 집은 허물어져 자취 없이 되었어도, 와당은 흙 속에 묻혀 두 번의 천년을 넘겼다. 그 긴 세월을 잠만 자다 다시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 그 시대를 증언하고, 빛바랜 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물론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서문에 저자가 '이 책은 중국 고대의 와당들을 모양과 문양에 따라 모은 것'이라고 이미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수막새에 대한 소개가 없어 아쉽다. 우리의 수막새는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지만 또한 저자의 말대로 '같은 종류의 와당도 그 미묘한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면 아주 흥미롭다. 수없이 많은 와당들이 비슷한 원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지만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더 우리의 수막새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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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이라는 이유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유일한 상품이 바로 책이다. 과거 법정 스님의 책들이 절판된다는 소식이 있자마자 헌책값이 치솟아오른 경우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자 정민 선생의 책 가운데 절판된지 좀 된 책이 있다. 바로 2002년 봄에 출간된 '와당의 표정'이다. 이번에 다시 펴내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증보판이 아니라 새로이 더해진 내용이 없다. 동양 건축물 양식인 와당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총론 성격의 글도 부재하고, 더불어 우리나라 와당에 대한 비교도 전무했다. 참고로, 우리나라 와당은 유난히 불교의 침윤이 깊어 연꽃 문양이 대부분이고, 귀면이나 인동문, 보상화문 등이 있다고 하지만, 중국 와당만큼 다채롭진 않다고 한다. 전통적인 예술 양식과 관련된 용어는 한자어가 순우리말보다 더 이해하기 쉽다. 예컨대 '와당'이란 우리말로 '수막새', 즉 수키와의 끝을 막음하는 장식을 일컫는데, '와당'은 금방 이해가 되는데 '수막새'는 내 머리에 뚜렷이 그려지는 그림이 없다. 와당에는 문양과 글자가 새겨져 있어 당시의 미적 감각과 예술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문화재다. 가령 조선 중기의 학자 박제가는 마흔 개의 와당문 탁본첩을 보고 난 후 '진한와당가'란 글을 남긴 바 있으니, 당시에도 와당문은 지식인의 독해가 필요한 엄연한 예술 텍스트였다. 저자는 서문에서 중국 전국시대부터 한나라와 북조를 거쳐 당나라에 이르는 일천 년간 중국 와당들 가운데 특별히 아름다운 것들만 따로 추렸다고 밝히고 있다. 와당의 문양으로는 태양, 산과 구름, 사람, 등잔, 짐승, 새, 나무와 도철, 용 등이 나온다. 이런저런 와당의 그림에 대해 저자의 간략한 평이 달려 있지만, 그저 감상에 그친 점이 아쉽다. 예컨대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에서 당대의 문화적 가치와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듯이, 와당의 문양에서도 그런 비스무리한 것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기 때문이다. 와당은 결국 당대의 사람들이 추구하던 미적 가치관과 세계관과 결부되기 마련이다. 한 장 한 장 중국 와당의 문양을 보면서 결국 동양 예술이 추구하는 미학의 정신을 와당문도 벗어나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동양미의 정수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문질빈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말로 풀면, '문'이란 꾸밈과 형식을 말하고, '질'이란 내용과 본바탕을 말한다. 와당의 문양은 꾸밈과 본바탕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눈 밝은 독자라면 와당의 문양에서 '미인의 보조개와 까만 눈동자'와 더불어 스치고 지나가는 영롱한 뭔가를 엿보지 않았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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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당(瓦當). 기와지붕의 암키와(지붕의 고랑이 되도록 젖혀 놓는 기와)와 수키와(속이 빈 원기둥을 세로로 반을 쪼갠 모양이다.)의 끝을 마감하는 장식을 말한다. 처음에는 그저 끝을 막는 막음새에 불과하던 와당은 주술적 의미가 더해지면서 문양과 글자가 새겨지고 점점 더 아름다운 형태로 바뀌어갔다. 궁을 좋아해 자주 방문하는 편이라 와당에 대해 알고 싶어 읽은 책인데, 책을 읽으면서 암키와, 수키와, 호향, 암막새. 수막내 등등. 새롭게 배우는 단어들이 많다. 그저 기와라고만 알고 있던 우리의 옛 건축물의 명칭들이 이렇게나 낯설다니,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울 것이 정말 많다.
와당은 초기에는 반원형으로 간결한 선으로 구성된 패턴이 주를 이루었고 자츰 두꺼비와 사슴, 학과 같은 동물들과 주작, 백호, 청룡과 같이 상상 속 동물들을 새겨넣기 시작했다. 단순한 상징에서 더 복잡해진 사물로 변화된 것 뿐 아니라 상상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역사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역사책이다. 하지만 와당의 표정을 보며 모든 역사가 책에만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님을 알게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물이 곧 역사가 되고, 기록이 된다는 것, 와당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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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 막집, 신석기 시대 움집을 짓고 살던 인류가 비천한 동물이나 다름없던 단계에서 벗어나 문명인으로서 품격을 누리고 살게 된 징표는 이론 없이 의, 식, 주의 양식 진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세련된 정서의 다듬어진 표현이나 심오한 종교적, 도덕적 각성 등은 정신의 산물, 개성, 성취일 뿐이라서 그게 감각적으로 캐치되질 않습니다. 사람의 생이 사람다운 각성을 이뤘느냐는 누구의 눈에도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의, 식, 주 문화가 어느 정도 안정된 꼴을 갗췄느냐에 달려 있고, 정주 문명이 유목 문명에 비해 높은 평가(부분적으로 부당하거나 과장된 면이 있어도)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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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는 수막새라고 하는 와당瓦當이란, 기와의 끝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문양을 조각하여 멋을 더하곤 했다. 어린 시절 처음 와당이라는 것을 봤을 때가 기억난다. 할아버지가 수집해놓은 골동품이 들어있는 장식장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어린마음에 접시라고 생각했었다. 그 가치와 의미를 모르던 시절에도 참 독특하고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민교수의 <와당의 표정>을 읽고 나니, 할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다시 한번 보러 가고 싶어졌다.
<와당의 표정>은 기원전 400년 이래 일천 년간 중국의 건축문화에서 꽃피웠던 와당 예술 중 아름다운 것들을 골라서 소개하고 있다. 전국시대에 성행했던 반원문형은 형태의 특별함 때문에 따로 구별했고, 그 다음에는 동물과 인간, 구름과 꽃무늬, 길상문의 주제로 구분한 와당을 만날 수 있다. 와당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신(四神)이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사신을 사방에 배치함으러 그 내부가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는 것으로 봤었다. 그래서 동물에서 서쪽을 관장하는 백호白虎, 동쪽을 수호하는 청룡靑龍, 북쪽의 현무玄武, 남족을 주작朱雀을 새겨 넣은 와당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생동감 넘치는 백호를 그려넣은 와당들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거 같은 ‘잠룡’이나 벽사의 의미를 가진 ‘짐승얼굴’, 그리고 인의가 절로 이루어진다라는 ‘인의자성’같은 경우는 와당으로 내가 기대하고 있던 형태들이었다.
그래서 그 외의 독특한 형태를 지닌 와당들이 더욱 재미있었다. ‘나무와 도철’의 경우에는 “나무 아래 구름무늬를 그렸다”는 해석보다는 “술 취한 사내의 뱅글뱅글 돌아가는 눈동자”같다는 해설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계속 사람과 동물의 얼굴을 형상화한 와당을 보기도 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도 그렇지만, 코 역시 ‘코가 삐뚤어졌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느낌 아닌가? 구름 두 개를 대칭형태로 놓은 와당이라고 한 것 역시 나에게는 웃는 표정 혹은 화난 표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마치 캘리그라피처럼 장식해놓은 와당도 있었다. 천추에 이 즐거움을 지켜주소서라는 뜻의 ‘천추위락’을 쓰면서, 글자들마저 ‘락樂’을 소중하게 감싸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집안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와당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또한 예서체로 ‘무無’를 새긴 와당도 있다. 그때도 ‘미니멀리즘이 유행했던 것인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와당과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어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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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이나 옛 건물에 가면 기와랑 지붕 장식물이 있지만 하나하나 염원과 뜻을 담아 세운 것을 모르고 지나쳐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정민 선생님의 "와당의 표정"을 보고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가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림책을 보듯 즐겁고, 가끔은 옆에 주석을 달아 놓으신 것에 웃음이 빵! 터지기도 했고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도 갖게 되었어요. 작가의 말에서와 같이 이천 년도 더 된 아마득한 옛사람들의 마음이 와당 문양 위에 남아 오늘까지 전해질 수 있다는 감사함, 신기함, 그리고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미래에 어떤 글과 마음을 남길 지에 대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용무늬!
역시 용맹한 청룡! (탁본도 파란색이라 그 기세가 더욱 우렁차 보이지요!) "벽력같은 모습으로, 질풍노도와 같이 그대의 가슴속으로 가서 박히리라!" 그러나, 다른 귀여운 용도 있어요.
이 용은 잠룡입니다. 저리 귀여운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어도, 여의주를 무는 날 "단숨에 하늘로 벋드쳐 오르리라" 고 있어요. 지금만 보아서는 모를, 용의 잠재력을 품고 기다리는 저 모습에 웃음도 나지만, 응원하는 마음이 불끈불끈 드네요! 이 책의 구성은 와당의 모양을 다음과 같은 총 4종류로 분류하고, 각각의 문양에 담긴 의미와 뜻, 저자의 느낌도 오른편에 적어두었습니다. 1. 반원형 2. 동물과 인간 3. 구름, 꽃무늬 4. 길상문 2000년 전 문양들이 지금 시대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녹아들어 신기하기도 했답니다.
보면 웃음이 나는 귀여운 문양과 용맹함이 종이를 뚫을 것 같은 문양들도 많아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 2017년 "장락무극상안거" 기운을 담뿍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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