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의 적솔력 [박현모 저 / 흐름출판] 이 책의 저자 박현모는 서울대학교에서 '정조'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을 지냈고, 현재는 한국형리더십개발원의 연구교수 및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전통연구실장으로 세종실록학교, 서울대학교 등에서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다. <정치가 정조>, <현대정치학>, <마인드맵으로 본 국제정치학>,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세종 리더십의 형성과 전개>, <정조 사후 63년>, <세종처럼> 등 20여 권의 저서와 [정약용의 군주론] 등 70여 편의 연구논문이 있다. 세종이 조선을 다스린 32년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잘 다스려진 시절로 평가받고 있지만 사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직후 조선은 가뭄과 태풍 등의 천재지변과 민심이 들끓는 어지러운 사건사고들, 정치적 수완 발휘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과연 세종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진정한 리더가 되었을까? 세종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리더였을까? 이 책은 크게 5장으로 나누어 총 52개의 사자성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종실록 속에 있는 52개의 사자성어로 세종을 만나고 그의 리더십과 사상을 배울 수 있다. 세종이 백성들을 찾아가 만난 기록이 많은데 그것은 세종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기르는 데 있으니, 백성의 생활을 풍족하게 하여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것이 나라 다스리는 급선무다."라고 말했다. 비록 못배우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백성들에게 매울 점이 있다고 믿은 세종은 백성들을 만나는데 불필요한 홍양산과 큰 부채는 치우고 호위군관 한 명만 대동하고 단기필마로 직접 백성들을 찾아가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들었다. 요즘은 선거 전이나 큰 사건사고들이 일어났을 때 대통령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시장에 얼굴을 내밀거나 사고 현장에 들러 위로하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많은 경호원들과 기자들에 둘러싸여 잠깐 있다가 가는 것을 보면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는 쇼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돌아가서는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무엇보다 깔끔한 일처리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당시 왕이라는 최고 위치에 있는 인물이 호위군관 한 명만 데리고 손수 말을 끌어 바깥 외출을 하는 것도 대단한데 직접 백성들을 만나고 장애를 가진 백성들에게도 차별없이 기회를 주려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한 정치를 실행했다는 것이 역시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 생생지락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조건 * 1. 국경의 안정이다. 세종은 '나라의 울타리가 안정될 때 생생지락이 가능하다'고 하여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 안정된 직업이다. 함경도에 나가 있는 김종서에게 세종은 여진족을 우리나라 사람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곳에서 땅을 일구며 살거나 조선 사람으로 귀화하여 관직을 맡을 수 있게 하라고 말했다. 3. 부모와 친척을 자유롭게 만나보게 하는 것을 '생생지락'의 조건으로 꼽았다. 한마디로 나라가 평화롭고 직장이 안정되어 있으며 가족이 우애롭다면, 누군가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려 해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 세종의 의사결정 방식 * 1. 만장일치다. 군사에 관계된 사안과 사형집행 여부와 관련해서는 회의 참석자 중 누구라도 제기한 문제가 해소된 다음에야 결정했다. 2. 다수결이다. 세종은 고을을 합친 후 그 대표 이름을 결정할 때와 세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다수결 방식을 택했다. "여러 사람이 말한 것을 참작해서 많은 것으로 따르면, 비록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다수결을 택한 것이다. 3. 독단결정이다. 관료제 개혁, 영토 개척, 한글 창제 등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그 결정이 무산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 세종은 제시된 인용문과 같이 "의심이 없는 것은 독단으로 하는 것"이라며 방대를 무릅쓰로 결정하고 추진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인 세종대왕의 업적을 말로 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세종의 업적을 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백성들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셨음이 느껴지는데 우선 대표적으로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백성들에게 우리만의 글을 익히도록 하셨고, 당시 겨우 7일에 불과하던 관비의 출산휴가를 100일로 늘렸고 남편에게도 휴가를 주었으며 출산 1개월 전에도 쉴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환과고독과 노쉬한 자와 폐질 환자들은 왕자의 정치에서 마땅히 불쌍히 여겨야 할 바"라면서 맹인 음악가를 양성하여 국가에 기여하게 했고 나라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복지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불구자에게는 병역을 면제해주고 그들을 봉양할 장정 한 사람씩을 붙여주라고 지시하기 까지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리더 세종이 남긴 업적은 엄청 많은데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펼친 관대하고 은혜로운 왕이었다. 이렇게 애민과 혜안을 지닌 따뜻하고 지혜로운 왕이라 자연스럽게 훌륭한 인재들이 찾아오고 더불어 기회를 얻은 백성들까지 세종을 따랐다. 세종이 왕위에 있던 32년 동안 다방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며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백성을 먼저 생각한 세종과 훌륭한 리더 세종을 따른 백성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
저는 직장에서 교육 부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다보면 어떻게 그들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변화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성인이 변화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교육할 때마다 절감합니다. 물론 이는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 한 번에 쉽게 사람이 변화한다면, 세상에 변하지 못할 사람은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도모하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배우는 자세'라는 공통적인 소양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4대 성인으로 알고 있는 공자도 이런 배우는 자세를 견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공자는 어린시절부터 남다른 배움의 욕구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는 비록 천한 신분 (공자의 어머니 집안은 무속, 무당과 관계된 집안이었습니다.)으로 태어났지만 끊임없는 물음으로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성장했습니다. 심지어 공자는 배움의 길을 죽어서야 비로소 끝낼 수 있는 것이라 말하며 살았습니다. 논어의 <公冶長篇第誤 공야장편제오>편에서 공자는 자신의 배움에 대한 욕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십실지읍 필유충신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열 가호가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반드시 나만큼 충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있을 거야.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걸!" <도올만화논어> (도올 역주, 보현 만화, 통나무)
공자가 큰 인물이 되었던 이유는 바로 이 배우려는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세 사람이 길을 가다보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고 말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자세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세종의 적솔력》(박현모 지음, 흐름출판)을 읽으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종대왕 역시 배우려는 정신이 투철했다는 사실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세종이 이 나라의 전무후무한 위대한 왕으로, 리더로 자리매김하는데는 바로 그의 이런 배우려는 자세가 큰 역할을 했던 겁니다.
"세종은 비록 못 배우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백성들에게 '배울 점이 분명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조정 관리들이 잡인의 소란을 막는다며 백성들의 행행 구경을 차단해야 한다고 할 때, 백성에게 법을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할 때 '나라의 근본인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는 게 도리'라고 하여 반대했다." (23쪽)
"관료들에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시행해야 할 조건, 청소년 때부터 시 쓰는 공부를 하게 해야 한다는 제안 등 집현전에서 올린 제안들이 거의 채택되었다. (......) 좋은 말이 나오면 그 말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붙잡아 시행하곤 했던 세종의 태도가 그의 시대를 번창하게 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89쪽)
"세종은 결코 그의 인재들에게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경을 믿는다. 경의 재량껏 해보라'라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142쪽)
"이위하여(以爲何如)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는 뜻이다. 신하들에게 '경들의 생각은 어떤가?'라고 자주 말했던 세종의 어투 중 하나다. 세종은 늘 이런 식으로 묻곤 했는데, <세종실록>에서 자주 보이는 '하여'라는 의문형 어투는 신하들의 말문을 여는 그의 화법이었다." (215쪽)
진정한 리더가 종적을 감춘 이 나라는 더이상 세종대왕과 같은 리더를 만날 수 없는 것일까요?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와 같은 위대한 리더가 이 땅에 다시 나타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2016년 책 읽기 포스팅을 닫습니다. 2017년에도 건강한 책 읽기를 통해 저와 저의 포스팅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의 영혼과 의식이 풍성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독사讀思의 글쓰기 by 보보멘) |
|
유독 책을 좋아했으며 그로인해 수준 높은 인문적 기풍을 왕실에 뿌리내렸던 왕. 세종.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물의 대명사인 세종의 말과 행적을 통해 그 결과물인 세종실록이 세상에 내보이게 된다. 그 세종실록에 담긴 짧지만 통찰력 있는 문구와 고전을 52개의 사자성어로 추린 것이 이 책 "세종의 적솔력" 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을 살펴보면, 제도명비(制度明備) 시스템으로 경영하라 제도명비란 '제도를 밝게 갖추어 놓았다'는 뜻이다. 세종 사후에 신하들이 평가한 '세종 치세 3대 비결'의 하나다. 그 첫째는 현능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시키는 인재경영 둘째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국사를 기획하는 지식경영 셋째는 현능한 인재들이 과거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일하게 하는 제도의 정비 였다. 이를 위해 세종은 해시계 물시계등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활용토록 하였으며, 싱크탱크인 집현전을 설립해 국가 비전을 그리게 하였다. 거기에 더해, 어전회를 통해 창의적 토론을을 벌이도록 하였으며, 다사리 회의를 진행하였다. 다사리 회의란, 회의 참석자 모두에게 다 말하게 하되, 그들로 하여금 마음속 이야기를 모두 말할 때 까지 기다리곤 했다. 우여허지(又予許之) 좋은 의견, 절대 놓치지 말라 우여허지란 '또한 내가 그것을 허락했다'라는 뜻이다. 세종의 대화법 중 주목되는 것은 좋은 의견을 놓치지 않는 민감함이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이 집현전의 젊은 신하들이 내놓는 좋은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데 매우 열심이었음을 알수 있다. 좋은 말이 나오면 그 말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붙잡아 시행하곤 했던 세종의 태도가 그의 시대를 번창하게 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사사한다.
소간장성(少艱長成) 젊어서 고생, 사서 하게 하라 소간장성은 ' 젊어서 고생해야 커서 성공한다' 라는 뜻이다. 세종에게도 젊은 시절, 20~30대의 불안하고 좌충우돌하는 시절이 있었다. 2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이방언은 그에게 인사권과 군사권등 핵심 왕권을 주지 않았다. 모든 정치가 태종 이방언의 의중대로 움직였다. 왕비의 가문이 파탄이 나도 발언 한마디 못하고 밤늦게까지 부왕을 따라 연희에 참석해 춤을 추어야 하는 무기력한 남편이었다. 게다가 왕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왕을 비난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태종이 사망한 (세종4년) 이후로도 어려움은 마찬가지 였다. 이러한 세종은 자식들에게도 인성교육을 강조해왔다. 그리곤, 인성 좋은 훌륭한 리더를 키우는 왕도를 이리 설명하였다. 1. 좋은 스승을 만나서 2. 정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듣고 경험할 수 있게 하되 3.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사는 경험을 4. 젊어서 체득하고 자기 스토리로 만들어 가게 하라. 유심간택(留心揀擇) 온 마음을 기울여 인재를 찾으라 유심간택은 ' 마음에 늘 인재 간택하는 일을 담아두고 있다 ' 는 뜻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 세제도 개혁하고 영토까지 개척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바로 세종의 사람 쓰기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종은 능력만 있다면 문벌과 학력 고하를 초월해서 등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은 벼슬까지도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서 고르는 ' 자세 그리고 '내외의 권한을 온전히 맡게 하는 무거운 직책' 인 정승의 선발에 온 정성을 다하는 왕의 태도가 풍평의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되었다. 임현사능(任賢使能) 위임할 인재와 부릴 인재를 구분하라 임현사능이란 '어진 사람에게 맡기고, 능한 사람을 부린다' 는 뜻이다. 어진 인재란 어떤 일을 기획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에 비해 유능한 인재는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내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기획력이 뛰어난 어진 인재에게 제한된 일만 하게 하거나 주어진 일만 잘하는 유능하기만 한 인재에게 일을 통째로 맡기게 되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세종은 결코 그의 인재들에게 ' 네가 배운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 경을 믿는다. 경의 재량껏 해보라 " 라고 했다고 한다. 영화 '곡성' 에서 곽도원의 딸내미가 은혜받은(?) 상태에서 말한다. " 뭣이 중한디~~ 뭣이 그리 중하냐고~~~ " " 뭣이 중한지 알도 모다면서~~" (- -)^ 그렇다. 이책은 세종대왕의 말과 행적을 통해 바로 리더가 갖추어야 많은 것중에서 바로 "뭣이 중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세종실록 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 문구만을 추려 그 의미를 파헤쳐 본 이책 "세종의 적솔력"을 통해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면모와 인문적 기풍이무엇인지를 살펴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