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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시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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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시키는 삶, 남의 기대에 맞추는 삶이 당장은 주변과 충돌할 일 없어 당사자를 편하게 만들지만, 지나고 보면 다 손해난 듯 억울한 듯 남은 게 없는 듯 회한을 남긴다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자신의 삶과 관계 없는 모토(정반대라고나 해야)를 마치 자신의 좌우명이자 오늘의 자신을 있게 만든 원칙인 양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던데요. 평생 남의 기준에 자신을 옥죄며 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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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시키는 삶, 남의 기대에 맞추는 삶이 당장은 주변과 충돌할 일 없어 당사자를 편하게 만들지만, 지나고 보면 다 손해난 듯 억울한 듯 남은 게 없는 듯 회한을 남긴다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자신의 삶과 관계 없는 모토(정반대라고나 해야)를 마치 자신의 좌우명이자 오늘의 자신을 있게 만든 원칙인 양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던데요. 평생 남의 기준에 자신을 옥죄며 산 그런 인생도 결국 허수아비처럼 걸어온 과거의 자취에 허탈함이 느껴지긴 하나 봅니다. 그렇다고 막 내키는 대로 살며 사회에서 공인한 표준적 커리어를 마냥 무시해도 노년에 미련이 남지 않을까요? 이 역시 위험한 도박임은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억울한 건, 남들 시키는 대로 하고 살며 전혀 기를 못 펴고 산 인생이 결국 늦은 나이에 손에 물질적으로 쥔 것도 별로 남지 않은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참 인생이 이래서 어렵습니다. 정해진 경로를 밟을 것이냐, 내 맘대로 내키는 대로 살 것이냐, 이 두 가지 옵션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은 한 코스를 묵묵히 밟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걷고 보니 죽도밥도 아닌 결과나 기다리고 있을 때가 참 난감하겠죠.

이 책의 제목이나 주제는 아주 단순명쾌합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라! 니 맘대로 해라!" 예전에 소위 신세대 코드가 젊은이들 감성을 휩쓸었을 때도, 저 비슷한 제목을 단 책이 인기를 끌었던 게 기억납니다. 실제로 대학에 입학한 후 그런 원칙(?)에 따라 산 이들(방종과 쾌락)도 많았지만, 그것도 다 때가 정해져 있는 자유이자 일탈이지 직장 잡고 가정 꾸린 후까지 그런 마인드로 살기란, 무엇보다 한국처럼 틀이 꽉 정해져 있는 사회에선 불가능한 옵션입니다. 앞에서 1)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속도 없더라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서 많다고 했습니다만, 반대로 혹시 2)를 선택했다고 여겼는데 알고보니 주위의 시선에 따라 위축된 인생에 불과했더라, 뭐 이런 경우는 전혀 없을 것이라 봅니다. 1)은 사람 능력과 재량에 따라 큰 편차가 있겠지만, 2)는 지나고 보면 누구나 비슷한 느낌일 겁니다. 2), 즉 내 맘대로 원없이 사는 옵션은 미련을 안 남기는 선택인 건 확실합니다.

그럼 이 책은 독자들더러 막살라고 부추기는 내용인가? 어느 누구도 그렇게 무책임한 주장을 (아무 안면 없는) 상대에게 전파할 수는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뜻대로 살고 꿈을 좇되 적성을 살려 경제적 실리도 취하거나, 혹여 물질적 축적과는 전혀 무관한 주관적 이상과 가치에 헌신한 삶이라도 그 궁극적 성취감이 존재를 가득 물들일 수 있는, 누구 눈에서도 존경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삶들, 그 구체적인 사례를 저자의 관점에서 감동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에 실린 어느 모범된 예라고 해도, 우리들 평범한 일상인이 그대로 따라한다거나, 과감히 저런 진로를 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인생이란 한순간의 충동이나 결단으로 무책임하게 모든 걸 던져도 되는 유희가 결코 아닙니다. 그런 권리는 자신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도 마구잡이로 행사해선 안 되죠. 이 책에 소개된 실로 다양한 인생(뜻대로 꿈대로 산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 구체적인 행보가 이처럼이나 다양합니다)은, 독자에게 "당신이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어디까지나 딴 방향을 틀 수 있는지" 건전한 방향으로 어떤 영감을 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을 읽고 무작정 던져도 되겠구나 하는 방심 내지 타락은 결코 겪지 않을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은 사실 일반인이 넘볼 수 있는 게 아니니 일단 패스했습니다만, 누구나 알고 있듯 대체 왜 그가 안정된 삶을 그토록 흔연히 뒤로 한 채 초월적 결단을 내렸는지는, 우리 독자 모두가 염두에 두고 "세상에 아주 드물지만 이런 옵션도 있구나" 하고 진지한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파우자 싱도 많은 이들이 미디어를 통해 익숙한 이름일 텐데요. 이 책에는 안 나오지만 20대 시절 최강의 주먹으로 군림했다가 무하마드 알리에게 패한 후 은퇴, 이후 40대 후반에 다시 링에 복귀하여(기독교 전도도 일부 목적이었습니다) 또다시 최강자에 오른 조지 포먼 같은 이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불꽃 같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의 사례에서 저자가 뽑은 교훈을 보십시오.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때 인체의 일부에 칩을 심어 기곝처럼 영생할 수 있다는 파격 주장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테크놀로지가 그런 과부하 비전을 버텨낼 수 있을지는 둘째치고도, 과연 현생 인류의 정신적 내성이 불로불사(가능하다고 쳐도)를 누릴 만큼 강한 편이겠습니까? 물질적으로 풍요해져도 도를 넘은 양분 섭취가 결국 신체 기능의 붕괴를 가져 오듯, 사람이 그 생리적 진화와 함께 발전시켜 온 도덕관념 역시 버텨낼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리셋이 가능하고 과오에 책임지지 않는 타락한 인생에게, 불로불사란 그 자체로 영겁의 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헤세야말로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주어진 삶의 모든 제약과 조건(때로는 특혜와 행운도 있었을 텐데)을 거부하고, 반항아처럼 자기만의 궤도를 개척해 온 특이한 인생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 세계란 파격과 자유와 분노와 도전 속에 안온한 질서가 결론처럼 자리잡히니, 일탈과 반항이 진정 가장 큰 성과를 본, "이유 있고 보람 있는 rebel"이 아닐 수 없습니다. 페르귄트 설화가 알려 주는 교훈처럼, 무슨 반항과 방랑 그 자체를 위한 몸짓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이런 건 심지어 청소년기에도 도가 넘으면 추할 뿐이며 또래들로부터 손가락질이나 받기 좋을 뿐). 출가는 궁극의 귀가를 목적으로 해야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자원을 낭비 없이 살았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음수사원이란 말이 있죠. 물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내가 마시는 이 물을 있게 해 준 근원을 돌아본다는 뜻인데, 다른 예를 떠올릴 필요 없이 부모님을 바로 떠올리면 됩니다. 대체 내가 육신과 혼을 갖고 대지에 두 발을 내디디며 활개를 펴게 해 준 은인이 누구겠습니까? 만사는 이유가 있어야 그 결과가 생기는 법입니다. 탤런트 최성준씨는 (저는 TV를 잘 안 봐서 모르는데)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나쁜 남편 역을 자주 맡는 탤런트라는군요. 이분이 알고보면 남다른 효자라서, 부친께 간 이식을 해 드린 남다른 결단을 내린 건 그리 많이는 노출되지 않은 미담이라고 합니다(이 책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가, 좀 의외다 싶은 다채로운 빛깔의 인생이 두루 소개되었다는 겁니다). 우리 예전 구전 민담이나 <오륜행실도> 같은 책을 보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사경을 헤매는 양친께 먹여 드렸다는 일화가 자주 나오죠. 제 생각에 누구라도 갑작스러운 결단을 내리기는 힘들 것 같고, 평소에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당시 유교 사회에서) 전시용 제스처로라도 결행이 힘들었을 겁니다(출세를 위한 스펙쌓기용 이벤트라든가). 효행(극단적인 경우뿐 아니라)은 물론 다른 과감한 결단이라도, 어디까지나 평소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인생이라야 내실 있는 실천이 가능합니다. 그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체신 없고 나잇값 못하는 촐싹대기가 언제나 경멸을 부르고 그 진정성 없음이 누구 눈에도 빤히 비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결국 이런 진정성과 성실, 절박함의 내면화가 "일탈과 도피 아닌 진정한 꿈과 현실의 일체화"를 이루는 것이겠고요.

v*****7 2017.02.06.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