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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은 시가 아니라 시를 논하는 딱딱한 글이다. 그런데 시집의 이름이 『시론』이다.
시집 안으로 들어가서 시 하나 하나를 살펴보았다. 시의 이름이 있고 그 아래 또 다른 별명처럼 붙어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시론이었다.
시론·1부터 시작이 되지 않았다. 순서는 없었다.
중간 중간 시론이 아닌 동떨어진 시도 있다.
그 시들은 왠지 섬처럼 보였다. 육지에서 떨어져 나온 섬처럼 그 안에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시처럼,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동경을 하게 만드는 시였다.
개미가 유난히 많이 이 시집에서 등장한다. 개미는 부지런함의 상징이다.
개미는 인간의 육체를 대신하기도 하고 소설, 만화영화 속에서 사람을 대신하여 등장하기도 한다.
개미는 어렸을 적 많이 죽이며 놀았다. 그들은 죽으면서도 인간처럼 붉은 피를 내놓고 죽지 않는다.
깨끗하게 죽는다. 난 그들이 붉은 피 대신 투명한 피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개미, 나비와 거미, 송충이 그리고 매미>에서 화자는 말한다. “지저분하지 않게 죽는 개미”
그에 비해 송충이는 다르게 표현한다. “송충이 그 징그러운 여름 송충이를” 이라고.
어린 시절 초등학교 후문에 서 있는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송충이들을 잡아 죽인 경험이 있다.
지금은 눈여겨보지 않아서 송충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 때 그 시절에는 많이 볼 수 있었다.
송충이를 죽이면 그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끈적거리는 더러운 액체.
그것이 징그럽다는 생각이 그 어린 생각에 들었는데 이 시의 화자의 그 생각도 다르지 않은 듯싶다.
매미는 시끄럽다. 한 여름이면 나무에 붙어서 좀처럼 떠드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사랑을 구걸하는 매미는 구걸하는 동안 쉴 사이 없이 떠든다.
화자 또한 매미를 시끄러운 Steel없는 중학생들로 빗대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귀찮다>
정말 귀찮음이 읽혀졌다. 글자 하나하나에 문장 하나하나에 귀찮음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 같다.
정말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다. 나 같으면
“귀찮다
라고 말해 버릴까“ 라고 묻지 않고
그냥 “귀찮아” 라고 그냥 대놓고 말해버릴 거다. 그것이 더 시원한 느낌이 든다.
시론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않는 섬 같은 시 중에 <표범>이라는 시가 있다.
표범을 살펴보면 “온통 팽팽한 긴장”을 느낄 수 있다. “긴 꼬리가 땅에 끌리지 않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표범은 암습을 피하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표범 자신이 암습을 즐겨하는 동물이기에 가능한 행동이 아닐까.
자기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것에 당하기 싫기에.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인간도 늘 긴장하며 살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긴장의 속도는 늦춤이 없다. 더 바짝 당기기까지 하지 않던가.
그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닐까. 표범이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암습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화자는 이제 테오가 되어 형에게 마음을 전한다. <테오의 노래>를 통해 테오의 마음을 전해준다.
형인 빈센트 고호의 동생으로 형에게 힘이 되고픈 테오가 노래를 들려준다. 우리에게.
지금의 나로서는 테오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에 귀를 기울이고, 이 노래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지레짐작해 봤다.
서로를 애정으로 지켜봤다는 것을.
시론에 대한 시.
결코 딱딱한 글이 아닌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한 시.
여러 가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만나고 헤어질 수 있어서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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