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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가 아름다운 사람』이 있던가. 그런데 지느러미가 아름다운 사람이 문지방을 넘어 바다를 끌고 왔구나.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누구나 두려워한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모르지만 누구나 두려워한다. 당연한 심리이니 걱정하지 않았음 한다.
기억의 저장물들이 캔 모양을 띠었다면 따서 봐라. 따기 전까지는 두려워하던 것이겠지만 따서 본 후에는 그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모든 것들이 똑같다. 다른 것도 없다. - 〈비유들〉을 읽었다.
첫 번째 시라서 넘어갈 수 없었다.
철거되는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이 시를 읽지 말고 다른 시 읽기를
〈지느러미가 아름다운 사람을 아세요?〉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주기를.
상처가 덧날까 두렵다. 괜히 읽었다가 철거된 자신의 사랑을 생각하다보면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고 하지만 그냥 말뿐이지 않던가.
아무래도 읽지 말고 다른 좋은 시도 많으니 넘기자.
다시 한 번 읽어보니 무서운 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 보면 창조주의 시가 아닐까싶다.
“나는 천천히 갈비뼈와 내장 꺼내” - 6행
“부러뜨려서는 작은 가지, 잎사귀를 붙인다구.” - 7행 (아! ‘붙인다고’가 맞는 말이었네)
독서하는 시간 “해가 빛을 읽는 저녁 여섯 시” - 2행
“천 년 전에 구독해 놓은 책을 읽는다.”
나는 백 년 전에 구독해 놓은 책도 아직 읽지 못하고 있건만
시의 화자는 천 년 전에 구독해 놓은 책을 읽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다. - 〈독서〉중에서
〈안개의 자페증〉에서는 누가 자페증에 걸린 것일까?
안개일까? 아님 “春川, 근교에 있는 나무들과 덤불들”일까? 아니면 “울음 우는 강물”일까.
〈오 분 후에〉그 사람 너무 두렵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요.
오 분 후에 그 사람과 마주치기가 두렵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오 분은 참으로 오랫동안 서서히 죽어갈 것이고” 나는 그 표정 이상한 사람과 마주칠지도 모릅니다.
그 때 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는 곧잘 전기가 나가곤 했다. 지금은 그런 적이 별로 없지만 어디서나 전기 수리공들이 전봇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라는 노래.
그 노래를 우리도 따라 부르곤 했다. 전봇대 아래 모래쌓인 곳에서 주먹만한 모래집을 지으며 말이다.
전기 수리를 하다가 죽었다던 김씨 아저씨도 생각이 나고 그 아래에서 울던 그 아내도 생각이 난다.
아마 그 아들도 지금쯤 어른이 되어서 어느 전봇대 위에서 아버지처럼 “노란 헬맷” 쓰고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생명이 있고 죽음이 있고 삶이 있다. 만질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었다.
먼 길을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임을 나도 알 수 있을까.
아니 삶에 대한 이야기이니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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