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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 적 친척 삼촌을 멀리했다. 눈이 몰리고 불정확한 발음이 왠지 낯설고 무서웠다. 친적 언니는 그 삼촌이 이상한 개에게 물려 광견병에 걸려서 얼굴이 이상하다고했다. 중학교 들어가 과학 시간에 알게 되었다. 그 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엄청 충격이였다. 책에 나와있던 그 사진이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간 얼굴 하나 바로 삼촌이였다. 광견병이라더니..다운증후군이였구나.. 옛날 어른들은 다운증후군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설사 안다고 해도 그렇게 어린 나에게 설명해주기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을터 그냥..광견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다운증후군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고 삼촌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 바뀌었다. 그치만 지금 내 아이들도 나와 같은 일을 겪는다면 분명 그들에게도 낯설고 무거운 경험일수도 있다. 책 속의 크리스티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에디의 그런 모습이 정말 낯설었을 것이다. 그래서 피하려고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 속의 에디는 아이들의 평견과 냉대함을 스스로 이겨나갔다. 그리고 친구를 만들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다운증후군 아이를 보고 내게 "엄마,쟤는 왜 저래?이상해."하고 물어 온다면 난 아이들에게 말해줄 것이다. "우리 몸엔 염색체라는 것이23개 필요한데 다운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한개가 모잘라.. 그래서 말을 알아 듣기도 힘들고 얼굴 모양이 우리랑 다른거야." "우리랑 겉모습랑 약간 다르지.똑같이 아픔을 느껴." 나 스스로 편견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고 우리 아이들도 세상의 편견을 스스로 깨길 바란다. |
| 별로 문제 되지않을 것 같은데 ㅎㅎ 난 아이에게 이런 좋은 책을 읽어줄때가 가장 행복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와 목이 메이는 걸 간신히 참고 읽어주었다 우리 딸도 나의 떨림을 눈치채었을테지 ㅎㅎ 에디가 "소중한 것은 여기"에 있다며 손을 가슴에 대었을때 나도 우리딸의 가슴에 내손을 얻어보았다 딸은 그저 단순한 내 동작에 웃어보인다 장애아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와 똑 같은 친구라는 부연설명은 하지않아도 좋을 듯하다 가슴에 손을 엊은 에디의 모습으로 충분하니까 친구의 엄마를 위해 꺽은 수련꽃 한송이를 들고 있는 표지를 마지막으로 딸아이와 함께 본다 "엄마드릴려고 에디가 꺽은거죠?"하고 물으며 딸이 수련꽃을 쓰다듬는다 나도 딸아이의 손을 따라 수련꽃을 내손에 들어본다 |
| 표지만 봐도 에디가 어떤 친구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표지만으로는 어쩐지 무섭게도 보이는 하지만 책속으로 들어가면 표지에서 에디가 환하게 웃으며 들고 있는 연꽃만큼 가슴 흐뭇해지는 책이다.. 에디는 말하자면 저능아다.. 친구들을 에디를 따돌리고 자기들 끼리만 놀려고 한다. 하지만..에디를 따돌리는 친구들은 숲속에 개구리알이 어디에 있는지 수련들이 만개한 연못이 어딨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 에디는 알고 있다. 숲속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에디 친구가 개구리알을 보고 싶어하자 에디는 그것을 보여준다.. 아이들 세상은 뭐든 수용하고 포용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디. 에디에게 잘해주렴을 보게 되면 에디가 저능아 이기 때문에 잘해주라는것이 아니라 에디도 우리의 친구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엄마 아빠가 함께 읽으면서 내 주변에 있는 장애아들도 똑같은 나의 친구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준다면 좋을 책이다. 이 책의 표지는 이 책의 작가가 절대 수정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길 얼핏들은적이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것이다. 그 느낌을 아이와 함께 나눈다면 좋을것같다 |
| 신문광고를 보고 초등학교 1학년 조카에게 선물한 책인데, 사고보니 색상이 너무 어둡단 생각이 들어요.. 내용에 무게를 실으려고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읽기에는 전체적으로 어둡다보니 좀 그렇네요. 내용을 봐서는 추천할만한 책이지만 그림의 색상을 봐서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진 않네요.. 번역책 중에서 동양책과 서양책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가 동양이다보니 일본과 같이 동양에서 나온 책들이 우리 정서에 맞는 것 같아요. 어른이 봐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지 않는 책들도 있지만, 우선 이름도 아이들이 생소하게 느끼거든요. |
| 다섯 살배기 다운증후군 아이 민서를 알고 있습니다. 민서 엄마, 추둘란 님이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달마다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 아낙 풋살림’ 이야기라며 시골 살림에 대해 들려주고 있는데 잡지에서 가장 먼저 읽는 꼭지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진솔한 이야기로 감동을 주는데, ‘늦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 천천히 크는 아이’라며 민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더욱 그렇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이 민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눈여겨보고 함께 좋아해 주는 대목은 마음 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은 민서의 남다른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아이다운 민서의 모습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사랑을 듬뿍 안겨주었지요. 『에디에게 잘 해주렴』은 제목부터 거슬립니다. 잘해 주다니요. 누가 누구에게 잘해 준다는 것인지요. ‘조금 천천히 크는 아이’ 에디에게 잘해 주라는 말이겠는데 진정 에디가 그것을 바랄 지는 의문입니다. 민서가 마을 할머니들한테 아이로서 귀여움을 받았듯이 에디도 그저 다른 동무들과 똑같은 아이로 대하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차별은 억울하지만 특별 대우도 불편합니다. 에디를 다른 동무와 같은 눈길로 보지 않는 작가는 짐버드 역시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 같지 않습니다. 공연히 에디와 대립하게 합니다. 이를테면 짐버드는 개구리 알이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며 크리스티를 숲으로 데려가고, 에디에게 바보라고 놀리며 같이 놀지 않고, 겁도 많은 아이입니다. 그러나 에디는 개구리 알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동무들을 부르고, 짐버드가 바보라고 놀려도 말대꾸를 하지 않으며, 도룡뇽을 잡는 용감함을 보입니다. 에디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짐버드가 나쁜 역할을 맡은 셈입니다. 이런 설정은 너무 단순한 편가르기입니다. 에디와 짐버드 사이에 크리스티를 두어 처음에는 짐버드랑 같이 놀게 했다가 나중에는 에디랑 놀게 하는 것도 너무 뻔한 구도입니다. 에디와 짐버드는 끝내 화해하지도 않습니다. 숲 속 여러 체험을 통해 다운증후군 아이들도 특별한 게 있으니 사랑을 주자는 작가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앞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화 그림으로 된 긴 구호를 보는 기분입니다. 에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림책을 기대하기는 무리인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