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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으신 이가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의 무한한 상상력 덕분에
이 책을 손에서 놓는 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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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하나님은 엄연히 다르고, 알라신과 하나님은 같아도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면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교회 전도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지역의 사람들은 다 지옥으로 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또 아프리카의 어린 아이들은 예수님의 존재를 듣도보도 못한 채 굶어죽어가는데, 그들도 지옥으로 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믿음의 무차별적인 강요로 인해 생긴 이 공백이 있는 이 모순은 지금껏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존재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처럼 불사라는 사실만 다를 뿐 인간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그런 분일까?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들은 그 모습도 볼 수 없으며, 또 보통 인간과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아가페>사의 성경으로 창세기 부분을 읽으니, 분명 하느님은 자신과 닮은 형상인 아담을 만들었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과 비슷한 육체를 지녔다는 의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른 부분의 예를 들며 신의 권위를 주장한다.
물론 하나님은 내가 독실하게 믿는 존재이며, 예수님도 나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전 세계의 인류에 공헌하신 위대한 분이시다. 그렇지만, 지나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인간이 친근감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듯하다. 아무래도 케이블 티브이와 포커를 좋아하고, 네일아트에 푹 빠져 지내며, 보트에 타는 것을 매우 신기해하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훨씬 더 다가가기 쉽고, 친근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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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미있어 나는 책을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먼저 나왔다. '하느님이 미용 학교에는 왜 가셨지?' 연결이 안되는 제목, 알록달록 예쁘게 매니큐어를 한 손톱, 드라이기, 립스틱 등이 분홍 바탕 표지에 가득하다. 시라고 하기에는 조금 길고, 소설이라 하기에는 너무 짧은...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생각읽기 책이라 칭하기로 했다.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듯, 일상을 이야기하듯 슬슬 풀려나간 이야기가 재미있다.
신시아 라일런트는 내가 낯선 작가이다. 그래서 인지 작가의 이야기에 나는 아주 빠르게 빠져들었다. 하루하루 살아내며 느끼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대화.. 가을이 시작되며 부쩍 마음이 허전한 내게 새로운 위안이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하느님은 미용 학교 뿐아니라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에 항상 섞여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이나 영화관에도 가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책이나 팬레터도 쓰고 우리가 알던 남자가 아닌 여자란다. 물건을 사기도 하고 요리를 하기도 하는 하느님....
그런 하느님이 마지막 글에서는 인간과 같은 슬픔과 좌절을 마주하게 된다. <하느님이 죽었어요>라는 이야기에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출발선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만들고 싶었어요. 세상의 어떤 것도 죽임을 당할 수 없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 순간순간 충실하던 하느님에게 좌절은 슬픔은 죽음은... 너무나도 힘빠지는 일이 었을 것이다. 새로 시작하고 싶은만큼....
우리와 너무도 닮은 하느님의 일상을 옅보며 나는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 나의 시기와 질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을지 짐작해 본다.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미용 학교에 간 하느님이 나는 참으로 정겹다. 그리고 위대함이 아닌 순박함으로 다가온 그의 삶이 참으로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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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다보니 자연스레 익숙해지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이책 저책 닥치는 대로 읽다 어느순간 이 작가의 책은 모두 읽어야지 결심하게 되는경우, 흔치않은일인데 이 책의 저자인 신시아 라일런트가 그러했답니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라는 책을 만나며 알게된후 특별할것 하나없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삶의 충만함을 발견하게해준 "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 이라는 책으로인해 더욱더 좋아졌었답니다.
미용학교에 간 하느님이라는 제목부터 깊은 인상을 주더니 책을 읽는 중간까지 '시'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던 이 책 또한 아하 역시나 신시아 라일런트구나 싶어지는 너무도 멋진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냥 넘기자면 극히 당연하고 일상적인 말인데 하나하나 한문장 한문장 곱씹어보면 절대 예사롭지 않은 말들, 무언지 모를 감정들을 나의 내면에서 이끌어내고 있네요. 절대자인 하느님도 우리와 다를바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있었습니다. 다만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이고 자신으로 인해 생겨난것들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가 조금 첨가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요. 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의미에 부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용실에도 가고 집잃은 개를 데려와 이름을 지어주고 언젠간 타봐야지 중얼거렸던 보트를 타기도합니다. 그리곤 힘껏 노를 저었을뿐인데 모든것들을 고스란히 느낄수있는 성취감에 놀라워합니다. 인생이란것이 모든사람들에게 그러한것이겠구나 생각을 하게됩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을 찾아갔어요에선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 천사들까지 자신을 향해 기도하고있는 모습을보며 그 모든것을 이해하려 얘쓰다 신성한 장소에 동전 한 닢을 넣고 나오는 하느님을 볼수있었습니다. 또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던 하느님은 저 밑에서 아둥바둥 싸우는 인간 군산들을 내려다보며 다짐합니다.
' 애초에 모든 사람들을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 살게 할 걸 그랬어 ' ' 다음번에 그러지 뭐 '
하지만 하느님의 예상처럼 모든 사람들이 온 세상이 광활하고 고요한 느낌을 가지게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이야기는 하느님의 목소리와 모습을 빌어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와 모순들을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듯했습니다. 제목에서 알수있듯 지극히 기독교적 이야기였건만 기독교인이 아닌 나도 전혀 거부감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누구나의 마음속에있는 절대자를 그리며 한문장 한문장을 떠올리며 생의 성찰을 하게될뿐이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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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을 읽으면 이런 느낌을 받을 줄 알았다. 역시 이 작가다운 냄새가 다분하다. 작가는 그림책뿐만 아니라 동화, 청소년 소설 등 그 대상을 정해놓지 않고 작품을 보여주고 있기에 늘 기대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내가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그림책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이다. 이 그림책을 보고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작가라면 남다른 마음과 따뜻함을 지녔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 책은 작가만의 특별한 상상력을 느껴보기에 충분하다. 시형식의 이야기이다. 늘 섬세한 문장과 따뜻한 감정을 가지게 하는 작품들이었기에 이번에도 그 느낌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었다. 이 책이 종교적인 내용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하느님도 우리들처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있고, 특별히 관심 가는 것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그래서 우리를 더욱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난 후 하느님이 더 위대하고 성스럽고 늘 우리의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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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손에 반한 하느님은....]
신시아 라일런트...이름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를 읽고 이름이 마음 속에 콕 박힌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좋은 작가로 기억된다. 이번 책은 제목도 참 특이하다. 하늘에 있어야 할 하느님이 미용 학교에 간단다. 제목만 들어도 뭔가 흥미롭고 재미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도 들지만 이보다 더 생소하게 느껴진 것은 시의 형식을 빌어쓴 소설이라는 점이다.
제목에 따라서 시를 쓴 듯한 형식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이야기가 연결되는 소설임에 틀림없다. 군더더기에 자세한 설명은 피했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 담긴 것 같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의 이야기가.
파마를 하는 그 손톱에 홀딱 빠져서 미용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하느님. 그 발상부터가 재미나기만 하다. 어디 미용 학원만 다니는가? 개를 키우기도 하고 스파게티를 만들기도 하고 병원에 가기도 하고,인라인스케이트와 캐이블티브이에 열광하기까지 한다. 이런 하느님의 모습은 신비감 대신 너무도 인간적인 우리 이웃의 모습과 똑같다.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신의 모습 대신에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랑이 담긴 이웃의 모습을 담아낸 이 책은 지극히 기독교적인 생각에서 바탕이 되었다고 하지만 읽는이의 입장에서는 그런 종교적인 냄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인간적인 모습의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은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 장의 '하느님이 죽었어요'에서는 지극히 종교적인 삶과 죽음 ,카인과 아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종전과는 다른 무거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부담스럽지 않게 만날 수 있었던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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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는 책뒤편의 <옮긴이의 말>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고 했건만 연거푸 몇번을 읽은 내게는 낯설게만 다가오는 시이다. 옮긴이는 '시 형식으로 쓴 소설'이라고 하며, '이 형식은 미국에서는 이미 일반화 된 것'이라고 하였지만 내게는 또한 낯설기만 하였다.
하지만, 제목만큼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미용 학교에 간 하느님'! 정말 표지그림도 미용 학교를 느끼게 한다. 메니큐어에 립스틱, 펜슬 그리고 네일아트로 이쁘게 꾸민 손이며 앙증맞은 드라이기까지, 표지의 바탕색 또한 분홍인듯 빨강인듯.....
벌써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의 작품에 반해(?) 원서를 찾아 읽고, 번역하여 펴내기까지 하게 되었다는 옮긴이의 말에 보니 정말 작가의 책이 그림책과 동화, 소설로 여러 권이 있음을 알게 한다. 문득,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으로 만났더라면 작가의 '시적이고 섬세한 문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옮긴이는 이미 작가의 글에 흠뻑 매료된 것 같으니 말이다.
아무튼, 하느님이 미용학교에 가고, 개를 키우고, 보트에 타고, 소파를 사고, 스파게티를 만들고, 병원에 가고, 심지어 체포까지 되고 감기에도 걸리고, 급기야는 하느님을 찾아 교회에도 가고....... 한마디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하느님의 모습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옮긴이가 기독교인이 아니어서인지 '크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에서 말하는(표현하는) 신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것을.... 옮긴이의 말처럼 '다른 어떤 존재와도 결코 비교될 수 없는 전지전능한 존재'를 지칭한다면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목 역시'미용학교에 간 하나님~'으로 정정해야 할 것이다.
오래 전 교회를 다니던 시절, 나 역시 하느님? 하나님?... 헷갈렸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하느님이 아니라 왜 하나님인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었다. 유일신이기에 '하나'를 뜻하는 하나님이란다. 하느님은 우리의 애국가에도 등장하듯..'하늘'을 뜻하는(종교적인 것과 전혀 무관한) 것이란 것을 그무렵쯤 깨달았던 것 같다.
문득.. 옮긴이는 이 차이를 전혀 모르고 옮긴 것이 아니라... 대중(독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느님이라고 하였을까...하는 생각이 스친다.
어쨌든, 내게는 '낯선 너무나 낯선' 시로 남는 신시아 라일런트의 작품인탓에, 그녀의 다른 작품을 만나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고나서 다시 이 시를 읽는다면 조금은 익숙하게 다가오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