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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이 태중 아이의 아버지로 내세울 바지 연인을 만들고자 베니스에 머무는 동안 그녀가 떠나온 곳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그녀의 혼외 정사의 대상이,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사냥터지기인 ‘올리버 멜로즈’라는 것이 그의 남편인 ‘클리퍼드 채털리’ 남작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사냥터지기가 쫓겨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다. 사실이 알려진 이상 그녀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녀는 편지를 통해 아이의 아버지로 내세울 만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통보하고 이혼을 요구한다. 그녀의 새로운 사랑인 ‘올리버 멜로즈’와 정식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이혼 승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클리퍼드 채털리’는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절대 이혼을 해줄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녀가 돌아오기를 종용한다. 결국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채털리 부인은 그녀의 남편에게 돌아가 태중 아이의 아버지가 사냥터지기인 ‘올리버 멜로즈’라는 사실을 밝힌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이혼을 해줄 마음이 없고, 그것을 확인한 채털리 부인은 그를 떠난다. 실제로 소설에 묘사된 사건만을 보자면 이 소설은 에로티시즘 소설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소설이 쓰여진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단순한 에로티시즘 소설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우리가 사는 2018년 현재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 일컬어진다.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혁신으로 새로운 기술 혁신 시대가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던 인류에게 과학의 발전은 어떤 의미였을까? 현재의 과학 수준과 비교하면, 산업혁명 당시의 과학의 발전은 돌 지난 아이의 첫걸음 정도의 수준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생산의 주체가 사람에서 기계로 바뀐 시대의 사람들에게 당시 과학의 발전은 가히 혁명이라고 불릴 만한 일이었을 것이고, 기계로 인한 인간성의 말살을 우려할 수 있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기계 중심으로 변화되는 세계에 맞서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주장일지도 모르겠다. 과학과 기계에 내어준 자리를 다시 살아 움직이는 육체를 가진 인간의 존엄성으로 채우자는 세상의 주인인 생명을 가진 인간의 권리 주장. (BOOK : 2019-003-0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