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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이 시작되면서 역사에서 미시사가 유행했듯 미학에서도 일상적이고 사소한 소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로서의 미학이 유행하게 된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음식을 그린 그림이다. 음식이 중요한 소재가 된 그림을 동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을 배경으로 성만찬에 대한 그림이 많기 때문에 저자는 일본인이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다. 나로서는 익숙한 이야기들이라 읽기가 편했다. 또 한쪽에서는 귀족들이 농민들의 탐욕스러운 식습관을 그린 그림을 걸어두고 보면서 그들처럼 살지 말고 금욕을 실천하자는 교훈을 얻거나, 음식이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에 이상적인 음식에 대한 소망을 담은 정물화를 과시용으로 그려서 집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나쁜 음식'과 '좋은 음식'의 싸움을 보여준다. 당시 풍속이나 전설을 그림으로 묘사하기 좋아했던 브뢰헬의 작품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에는 그러한 구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책에 다루어진 모든 음식 그림들 중 가장 흥미로웠다. 이 그림의 절반 왼쪽은 사육제를, 절반 오른쪽은 사순절을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서 뚱뚱한 몸과 마른 몸, 고기(탐욕)와 물고기(예수님 상징), 광란과 금욕 등의 대결 구도를 엿볼 수 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 '월리를 찾아라'처럼 도상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밖에도 성만찬 도상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에서 제자들을 만나 식사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성인이 구제하는 그림 등은 좋은 음식을,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 탕자가 쾌락을 누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은 나쁜 음식을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중세에 기독교 교리가 다듬어질 때 플라톤의 철학과 섞인 부분이 많아서 영육이원론을 추구하면서 정신을 우위에 두고 몸을 경시했던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영혼도 몸도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이라면 몸도 정신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성경에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님이 마치 농부처럼 자주 시장해하시고 음식을 '게걸스럽게(저자의 표현)' 드시는 모습이 묘사되곤 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네덜란드 등지에서 음식을 그린 정물화들도 표면적으로는 '이중 공간' 구도로 성경 이야기와 음식을 함께 그리거나 바니타스의 교훈을 담고자 했지만, 그 이면에는 맛있는 음식을 그려두고 보며 즐거워하고 싶어했던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 역시 숨겨져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시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그림에서, '오감'을 묘사하고 싶어했던 화가들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음식이 될만한 것들을 많이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단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 근대까지도 귀족이나 농민이나 음식이 부족해서 항상 불안해했다고 한다.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한 자리에서 판매하기 힘든 각종 식료품들이 시장에 모여 있는 그림이나, 사계절의 과일이 한 그림에 모두 그려져 있는 그림은 맛있는 음식을 보며 안도하고 싶었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음식을 배 터지게 먹고 누워 있는 각 계급의 남자들을 그린 그림을 보면 그러한 소망이 얼마나 컸을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식도락을 과하게 추구하다가 병에 걸려 죽음과 가까워졌던 저자의 경험은 이 책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음식과 죽음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저자는 많은 문화권에서 신과 인간을, 망자와 인간을 연결 시켜주는 음식이 있어왔다고 주장한다. 책 처음부터 길게 이야기했던 '최후의 만찬' 역시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먹는 마지막 음식이었으며, 마치 어떤 문화권에서 망자의 살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그를 기억하고자 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그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인간이 먹도록 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맛을 추구하지 않는 긴 입의 소유자인 나는 때가 되어도 끼니를 거르다가 생존을 위해 마지못해 식사를 하는 습관이 있다. 저자처럼 식도락을 즐기러 일부러 맛집을 찾아가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후기에서 보여준 나와 전혀 다른 습성이 흥미로웠다. 미술학자이면서 맛있는 음식을 좋아해서 그림 속 음식도 유심히 바라보았던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폭식, 폭음하는 습관 때문에 병을 얻어서 살기 위해 자신의 식생활을 대폭 개선해야 했단다. 그래서 그 시간을 거쳐오면서 만들어진 이 책은 단순히 그림 속 음식을 나열하지만은 않는다. 그림과 음식, 그 속에 담긴 종교, 죽음, 정신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스토리텔링 덕분에 책장 넘어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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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주제에 대해 설명해 주는 착한 그림책. 왜 서양 미술에서 식사의 풍경은 되풀이되는가? 혀끝의 미감으로 읽는 ‘음식의 미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