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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의 일이다. 학교는 번화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서 매일 등굣길에 수백명의 사람들과 지나치는 것은 예사였다. 6년을 다니던 그 길위에서 매번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된 모임이 있었으니 한때는 매달 그들과 마주치고는 내가 그들에 속해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홀연히 다가오는 인상 좋고 순하게 생긴 아가씨가 다가온다.(가끔은 아저씨인 경우도 있다) 나는 흠칫 놀라면서도 혹시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눈을 맞춘다.
“저~기. 범상치 않은 인상을 가지고 계시군요. 혹, 도를 아십니까?”
아~씨. 도를 알고 있으면 여기 이러구 다니겠냐구. 도를 알고 싶지도 않고 그저 차라리 도에 관심이 없는 여자친구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라고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참는다. 도를 공부하는 고귀함에 먹물을 끼얹는 말을 삼갈정도의 교양을 갖추었다는 자위다.
도를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치고 사기꾼 아닌 사람을 보지 못했고, 현세에 인정받을 도라면 분명히 예수가 그러했듯이 탄압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그 사람 많은 곳에서 높이 올라 외치지 않고 조용히 범상치 않은 사람에게 접근하여 도를 전파하고자 하는 무리는 무엇인가.
아직 시대를 만나지 못해 사람을 구름같이 몰고 다니지는 못해도 지하에서 알음알음 번져가는 도. 따라가 본 이들이라면 알 수 있으리라. 그곳에는 제사의 형식이 갖추어져있고 옷을 갈아입히며 헌금을 하도록 하여 제를 올리는 본인과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이루도록 한다. 마치 유교적 바탕의 굿이 이루어지고 교회의 헌금을 차용한 그 유연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도를 알지 못한다. 도를 모른다고 하는 나는 깊이 아는 사람인가. 아니다. ‘아는 체’ 하는 것에 불과하다. 무위자연을 노래할 뿐이지 자아가 그 안에서 자유를 찾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번민과 갈등이 내가 가둔 세상에서 춤을 추고 남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나’는 범인이다.
남의 물건을 탐하는 것 자체는 부도덕의 극치일진데 무슨 도둑에게서 도덕을 찾는 단 말인가. 역설로서 세태를 풍자하는 일화로 당시의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도둑은 좀도둑이 아니다. 정치인, 기업인, 행정권력자 등이 불법을 일삼으면서 부를 축적하는 내용과 상통한다. 그들은 고개를 뻣뻣이 들고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그들의 죄를 사하여 준다. 힘없는 국민들은 속앓이를 할 뿐이다. 장자의 의도는 명분이나 대의를 내건 뒤로는 더러운 짓을 서슴치 않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과거 군사정권때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당시의 대통령들은 여전히 추앙의 대상이며 그들의 모교에는 왕의 초상화와 같이 큰 사진과 약력으로 업적을 기리고 있다.
장자 33편을 다 읽기 힘든 요즘 사람들을 위해 각 편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30구절을 정리한 책은 ‘논어’, ‘맹자’에서 느낄 수 없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