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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살았던 잿빛 구름 가득했던 유년 시절은 긍정적인 태도로 밝은 빛을 떠올리기에는 미욱함이 많아 음울함을 더했다. 청상의 엄마와 남은 식구들에게 아버지 부재는 고단한 삶의 무게로 일상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늘 조사했던 가정환경 조사서에 아버지 사망을 적는 일이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았다. 태어났을 때는 아버지가 곁에 있었겠지만 태어나서 나 이외의 인물을 분별할 때쯤 아버지는 서둘러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 급작스럽게 이승을 떠나는 친구 아버지 부고 앞에서는 초연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이별의 슬픔을 알아차리기 전 영면한 아버지의 삶이 위안이 될 때도 있음을 알았다.
천수를 누리고 피안의 세상으로 떠난 포플러 장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치아키는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인생 길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은 치아키 엄마를 무척 힘들게 하였고 치아키 역시 아버지 부재가 주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슬픔을 줬다. 오랫동안 연어 통조림을 먹고 온종일 전차를 타며 지내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 안주의 공간 포플러 장에서의 새로운 삶은 모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 후 방황이 많았던 엄마와 강박증에 시달리던 치아키는 서서히 삶의 절박함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린 소녀는 늘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여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어둠 속으로 빨려들지 않기 위해 긴장하며 살았던 치아키는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는 편집증을 보이기도 했다.
치아키는 직장에 나가는 엄마를 대신해 포플러 장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어둠 속에서 조금씩 빠져 나와 밝은 세상을 호흡하기 시작했다. 우편배달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할머니는 전하려는 대상에게 편지를 적어 건네 그 대상과 소통하면서 지낼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전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심신이 약해진 이들을 위해 사랑의 전령사로 자리한 할머니는 봉인된 편지를 서랍 속에 넣어 차곡차곡 갈무리해 뒀다. 서랍 속 편지를 함부로 봐서는 안 된다고 치아키에게 쐐기를 박은 할머니는 서랍 속 편지를 소중히 다루어야 함을 강하여 그 편지의 가치를 더했다. 소녀는 아빠에게 편지를 처음 쓸 때는 막막함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편지 내용은 소통의 깊이가 더해졌고 치아키 마음까지 정화해 갔다. 비로소 치아키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건네며 부재하는 아빠와 대화하며 지내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포플러 장에서의 생활이 이어질수록 치아키는 안정 속에 세상 속으로 나가는 법을 배워 갔다. 포플러 장에 깃들어 사는 이들과 교류하며 오사무와 함께 찾은 성당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그리스도 상을 보면서 아빠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골몰하였다. 한편 엄마가 일을 열심히 하다가 돌연 죽게 되면 어쩌나하는 염려는 또 다른 불안을 잉태하기도 했다. 봄이면 온다던 오사무는 사산한 엄마가 측은하여 포플러 장으로 올 수 없다는 통보를 보낸 뒤 3년 뒤 엄마의 재혼으로 소녀는 포플러 장을 나와 홀로 생활하였다.
포플러 장에서 안으로 쌓인 응어리를 풀면서 소통하는 법을 배웠던 치아키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엄마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확인하며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에 사랑했던 첫사랑에게 편지를 쓴 뒤 자살한 아빠의 죽음을 교통사고로 위장한 채 보호 본능이 발동하여 딸이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진실을 숨기고 지냈다.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이승을 떠나 이 세상과 단절되기 전 치아키에게 사랑의 원천을 토대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할 당위성을 부여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치아키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유산하고 직장을 그만뒀을 때 이쯤에서 삶의 궤도를 이탈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아빠가 이승의 멍에를 짐 지지 못한 채 스스로 쓸쓸한 죽음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삶을 끝냈을 개연성이 있다. 어찌 보면 엄마는 아빠와 닮은 점이 많은 딸을 사랑하고 배려하였기에 성숙한 사회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에 담긴 진실을 밝히려 했는지도 모른다. 치아키는 포플러 장을 떠났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서야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는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더욱 윤기 나는 삶을 살아갈 희망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준 엄마에게 전하고 이 한 마디를 전하고 싶다. “고마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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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치아키가 엄마에게서 온 한통의 부고 전화를 받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어린 시절 세들어 살던 포플러장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포플러장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엄마의 계속된 잠.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 연어 통조림만 먹으며 버틸 수 밖에 없던 어린 치아키. 엄마가 긴 잠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무언가 해보겠다고 선택한 포플러장에서의 생활. 그런 엄마를 위해 여섯 살, 어린 치아키는 짐이 되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는 아이가 된다. 그런 노력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던 치아키는 결국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된다. 출근을 해야하는 엄마 때문에 아래층 할머니에게 맡겨진 치아키. 그리고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서 치아키는 변화하게 된다. 그렇게 외부 세계를 향해 말을 하기 시작하자, 바깥에서도 나를 향해 여러 가지가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p42) 혼자서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잘하려고 하던 치아키는 할머니와 그리고 세들어 사는 사사키씨, 니시오카씨, 오사무와의 소통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할머니가 알려준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병도 나아가고, 아이다운 면도 찾아가면서 아빠의 죽음을 극복한다. 마냥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치아키의 어른스러움 면도 대견해 보이고, 무뚝뚝하게만 느껴지던 할머니의 세상에 대한 따스한 배려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결말의 어린 그녀를 위한, 역시나 세상엔 어린 엄마가 선택했던 방식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물이 차오른다. 아빠가 갑자기 사라진 후 어린 치아키를 두고서도 잠을 잘 수 밖에 없었던 엄마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최선이 아니었을까? ‘ 엄마는 강하다 ’는 말이 새삼스레 마음에 떠오른다. 그리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세상에 남겨져 있는 불씨와 같은 사람 사이의 훈훈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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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한 처자가 떠올랐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문장을 잘도 써 가슴에 맑은 물결을 출렁이게 하던 사람. 그이는 아빠를 자주 이야기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저세상으로 가면서 딸아이가 입게 될 옷이나 신발을 크기별로 준비를 해 놓았다는 자상한 아빠를 자랑했다. 그이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은 아빠의 그런 자상함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일찍 아빠를 여읜 딸이 아빠에 대한 동경을 키우면서 점차 아빠를 닮아간 것은 아닐까. 그이가 겪었을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져 가슴 알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며 살고 있는지.
치아키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여섯 살에 사고로 갑자기 아빠를 잃는다. 갑자기 잠에 빠져든 엄마는 내리 잠만 자더니 어느 날부터인가는 닥치는 대로 전철을 타고는 무작정 가다가 종착역에 내렸다. 그리고 둘이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의 낯선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목이 마르면 빙수나 국수를 사 먹은 뒤 다시 전철을 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쏘다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피로에 젖은 채 잠에 쓰러졌다. 그렇게 배회하다 발견한 포플러莊. 전신주보다 높은 포플러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이사한다.
주인은 악당 뽀빠이의 어린 시절 얼굴을 하고 있는 할머니.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다 할아버지를 만나 도망쳐 살았단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한 명도 없고 대학에서 강의하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남편을 ‘우리 선생님’이라 부르는 할머니 집에 살게 된 치아키는 맨홀 구멍에 빠지는 악몽을 꾸며 아빠의 죽음을 괴로워한다. 온통 맨홀 구멍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어린 치아키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러다 할머니가 저세상으로 가면 아빠에게 편지를 전해줄 테니 편지를 쓰라는 할머니 제안을 받고 편지를 쓰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아간다.
성년의 치아키가 할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고 장례식을 가면서 회상하는 어린 시절 이야기가 줄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록 아빠를 잃고 흘러든 곳이었지만 포플러莊에서 만난 이웃들은 아빠 잃은 치아키가 슬픔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데 큰 몫을 한다. 특히 저세상으로 편지를 배달하려는 할머니는 치아키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도착한 치아키는 놀라고 만다. 쓸쓸한 장례식을 예상했는데 장례식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거니와 대부분 할머니에게 편지를 전달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은 사람들이다. 치아키에게만 지어낸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편안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 많은 사람들. 할머니는 이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말을 던졌던 것일까. 길가에서, 안과 대기실에서, 떡집 앞에서, 전철 안에서,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 공원 벤치에서, 백화점 옥상에서, 다리 위에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멍하니 있는 사람에게, 딱딱하게 표정이 굳은 사람에게, 불안으로 표정을 잃은 사람에게, 울부짖는 아기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겁먹은 사람에게, 할머니는 일일이 말을 걸었던 것일까. (155쪽)
그랬다. 할머니는 둘레의 사람들이 겪는 슬픔의 무게에 맞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저세상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스스로를 치유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치아키의 엄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교통사고가 아니라 사실은 자살을 해버린 남편에게 편지를 써 할머니에게 전했고 그 편지에는 어린 딸 치아키에 대한 간곡한 사랑도 담겨 있었다. 하여 그 편지를 본 치아키는 사귀던 남자의 애를 유산한 뒤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던 결심을 바꾼다. 적당한 병원을 찾아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필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아울러 어린 시절의 엄마, 지금은 재혼하여 새아버지랑 살고 있는 엄마도 적극 받아들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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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지는 마을]을 읽고 '유모토 가즈미'의 팬인 되어버린 나는 번역된 그녀의 모든 책을 모조리 읽었다. 성인보다는 청소년이 읽기에 더 적합한 '고마워 엄마'도 이런 이유로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어릴 적 추억과 잊고 지내던 그때의 내 생각들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 치아키는 옛 애인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자살한 아버지를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한것으로 아는 어린 여자아이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치아키는 엄마와 연립주택 '포플러장'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주인인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던 치아키는 할머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점차 성장해 나간다.
『 쨍하게 맑은 겨울의 밤공기와 어느 집에선가 끓이는 카레, 그리고 담배 연기 어쩐지 낯이 익은 풍경이었다. 언젠가 이런 풍경이 내게 있었다. 아빠와 둘이서 밤길을 걸을 때 .... 어디선가 카레 냄새가 났고, 아빠는 담배를 피웠다. 그때 보았던 달이 하얗고 밝은 보름달이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p.76 』
문득 초행길임에도 왠지 낯설지 않고 익숙한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 길을 보고 어릴적 가보았던 다른 지역의 길과 비슷하다고 느낄때면 그 무렵의 내 옷차림이나 행동, 나누었던 대화 등을 기억해낼 수있는데 유모토 가즈미의 글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되살아난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모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근사하게 포장해 낸다. 그게 유모토 가즈미의 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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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의 어린 사사키는 어느 날 갑작스레 사라진 아니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커다란 상실감을 가진다. 엄마는 세상과의 단절이라도 하하듯 잠에 빠져버린다. 배가 고플 때마다 연어 통조림을 따 먹어야했던 꼬마 아이는 아버지의 부재, 엄마의 무관심으로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엄마는 잠에서 깨고 엄마와 함께 기나긴 전철 여행을 한다. 아무말도 없이 떠나고 집으로 돌아오고를 반복하던 즈음 모녀는 포플러 장이라는 주택을 보게 되어 이사를 하게 된다.
사사키처럼 어린나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날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때문에 무척이나 힘든 시기를 보낸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사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늘 내곁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아버지가 주검으로 마주했을때는 무척이나 겁이났고 그런 현실이 너무도 믿기지 않았다. 마치 다른세상에 빠진것 같은 느낌이들었다. 사사키 또한 그랬을것 같다. 자신의 곁에 있을 줄만 알았떤 아빠가 떠나시고 너무도 바뀐 가족환경이 너무도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사사키는 포플러장은 마음에 들지만 주인할머니는 너무도 무섭게만 보인다. 오랜 공허함을 지닌 어느날 많이 아파 어쩔 수 없이 할머니에게 며칠간 맡겨지고, 할머니에게서 비밀 이야기를 듣는다. 나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직접 편지를 쓰진 않았지만 아버지와의 끈을 어떻게든 닿고 싶어 수 없이 노력했었다. 아마도 할머니가 들려주신 비밀 이야기는 오랫동안 공허함으로 가득찬 사사키에게 한가닥 희망이었으리라. 아버지에게 원망의 소리를 내어보기도 하고, 투정을 부리고, 수 없이 많은 편지를 쓰는동안 사사키의 아픔은 조금씩 회복된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사사키 또한 평범한 여성으로 자란다. 늘 똑같은 일상에 지친 그녀에게 포플러장할머니의 장례소식을 듣게 되고 엄마가 아빠에게 남긴 편지를 읽는다. 장례를 치르면서 포플러장할머니. 이웃들의 따뜻함,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그녀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늘 곁에 있어 그들의 따뜻함과 사랑을 늘 잊어버리는 우리들에게 어린 사사키가 조금씩 마음이 자라고, 할머니의 장례식을 통해 다시 보게 되는 삶의 통찰을 책 속에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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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랑하는 가족 중 누구 한명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어릴적 반 친구 중에서 엄마 아빠가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있어서 가끔 그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아빠나 엄마 그들 중 누구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빠가 떠난다면 생각해 보고 싶지도 않지만, 이 책 속 엄마처럼 상실감에 잠을 잘 수 있었을까?
’여름이 준 선물’의 작가 유모토 가즈미의 새로운 책 <고마워, 엄마>에는 아빠를 잃은 상실감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여섯살짜리 소녀가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며 엄마와 주변 이웃을 통해서 마음을 치유해가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떠나고, 엄마는 상실감에선지 잠을 자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의 여자아이는 몇날 며칠을 잠만 자던 엄마 곁에서 연어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다 그 통조림을 거의 다 먹어치울 즈음해서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엄마는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하자고 한다. 이사를 한 곳은, 포플러 나무가 있는 마당과 1층에는 집주인 할머니가 살고 윗층에는 집을 개조해서 만든 포플라 장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처음엔 아이가 있는 집은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무섭게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포플라 나무를 보면서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그즈음, 소녀의 마음 속에는 불안이 자리잡고 긴장감과 함께 맨홀 뚜껑의 공포로 힘들어하지만, 엄마도 힘든 마음일 것 같아서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다 열이 나는 병에 걸린 소녀는 급기야 입원을 해야하는 상황에 이르고 직장생활을 해야하는 엄마 대신 할머니가 돌봐 주시게 된다. 그리고 점점 할머니와 가까워진 소녀에게 할머니는 비밀을 털어놓는데 할머니가 저세상의 우편배달부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왜 제목이 <고마워, 엄마>인 줄 몰랐다. 사실 책 전반에 걸쳐서 포플라장의 할머니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포플라장을 통해서 마음의 상처도 치유가 되어 가고 주변 이웃들과도 가족처럼 지내게 되는 과정, 그리고 여섯살 여자아이가 가졌을 아빠에 대한 상실감이 자라면서 엄마에게 부딪히게 되는 반항이, 아이에게는 할머니에게 더 애틋하고 다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도 할머니가 편지를 아빠에게 전달하겠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고, 엄마도 아빠에게 편지를 썼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장례식날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편지를 전했다는 사실도 알려진다. 어쨌거나 <고마워, 할머니>이렇게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 뒷 부분에 가면 반전이 기다린다. 엄마의 딸에 대한 배려가 가슴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선사한다.
마음에 따스한 난로처럼 읽고 나니 가슴이 따스해지는 이야기다. 이 계절 포플라잎도 물들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계절을 맞아, 책 속처럼 젖은 신문지와 은박지로 감싸서 낙엽 군불 속에서 구운 따스한 군고구마를 함께 나누고 싶어지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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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을 맞게 되면 남은 가족은 어떤식으로든 일종의 죄책감을 갖게 되는가보다. 병으로 인한 죽음이었든 우연한 사고이었든 혹은 자살이였을지라도.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조금더 마음을 썼더라면, 혹은 전혀 엉뚱하게 양심에 걸렸던 일이 발목을 잡아 꼭 나때문에 이런 불행이 생겼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셨을 때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실 때 마지막으로 피우시던 담배를 힐책했던 기억이 자주자주 떠나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서 마치 나의 그 힐책때문에 아빠가 가신것 같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가족의 죽음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무의식중에 잠겨있다가 전혀 엉뚱하게 발현되고는 한다. 더구나 여섯살 치아키에게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 되어 치아키의 영혼을 잠식해갔다. 강박증이 생기기도 했고 꼬마답지 않은 조숙증도 있었다. 무의식중에 잠겨있는 트라우마는 의식으로 떠올려 객관화 시키고 나면 치료될 수 있다고 한다. 치아키는 죽은 아빠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작업을 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치료되고 있었던 거다. 거기에는 치아키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 하숙집 할머니의 돌봄이 있었다. 성년이 되어 사랑에 실패한 치아키는 자살을 준비할때 고인이 된 할머니의 장례식을 통해 다시 한번 태어나게 된다. 할머니의 관에는 죽은이들에게 전해줄 편지가 한가득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한 가득 담아 떠나가는 영혼의 치유자라고나 할까... 그리고 치아키는 알게 되었다. 아빠의 죽음으로 갖었던 죄의식은 엄마의 행복을 비는 마음과 비례해 커졌다는 것을. 엄마 역시 아빠의 자살로 힘에 겨웠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어쨌거나 재혼해 행복해 보였으므로 그러므로 치아키는 말할 수 밖에 없다. 고마워, 엄마 라고. 우리는 모두 죽기위해 산다. 죽을 그날을 향해 하루하루를 살아 간다. 그렇지만 후회와 원망으로 보내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다. 중요한 것은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죽음이 아니라 살고있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자유롭게 보내야 하다는 거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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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대체로 잔잔하고 내면에 비중을 많이 두는 작품을 쓰는가 보다. 그리고 어찌보면 심리적 접근을 한다고나 할까. 전에 읽었던 이 작가의 책인 <봄의 오르간>과 이 책의 공통점을 생각하다 보니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말고도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심리적 치유의 과정을 겪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완전한 치유는 아니지만(모르긴 해도 심리학자나 상담자가 보면 주인공을 문제가 많은, 치유할 게 많은 인물로 보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고 그럼으로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성인이 된 치아키가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에 나오는 몇 쪽 안 되는 이야기만 읽어도 치아키의 모습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겠다. 음, 상당히 내성적이며 여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 듯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엄마와 통화를 하는 모습이 어딘지 거리감이 느껴져서일까. 어쨌든 치아키는 6살 때부터 9살 때까지 살았던 집의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는 도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시자 엄마의 방황은 시작된다. 치아키는 너무 어려서 잘 모르지만 엄마마저 떠날까 두려워 무조건 엄마 뜻을 따른다. 어린 것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괜히 내 마음이 아릿하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나무 하나 보고 살기로 결정한 곳이 바로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포플러장이다.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웃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 할머니와 치아키와의 끈끈한 정은 가장 중심이 된다. 단순히 할머니와 치아키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다. 헌데 여기서는 둘의 만남으로 인해 치아키가 드디어 아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내면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간다.
당시에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지나가는 작은 사건이 나중에 알고 보니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독자는 짧은 탄성을 지른다. 아, 이것은! 이런 식의 구성은 미처 복선이라고 알아채지도 못할만큼 교묘히 숨겨 놓는다. 또한 까딱하면 우연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일이지만 어찌나 교묘하게 엮었는지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든다. 특히 마지막에 할머니가 죽을 때 가지고 가겠다고 받아 놓은 편지가 치아키 것만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 중 동일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심지어 어린 치아키도 똑같이 인격체로 대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치아키도 그것을 알았고.
사건 전개가 빠른 것도 아니고 커다란 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것도 아니지만 읽고 나니 잔잔하면서도 울컥하는 무언가가 있다. 엄마의 상처가 더 커 보여서 자신의 상처는 내면에 꼭꼭 숨겨두어야 했던 어린 치아키가 결국 엄마와 내면으로 화해하기 때문이었을까. 읽는 내내 치아키에게 별 도움이 안 되고 힘도 되어주지 못하는 엄마 같아서 미웠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치아키에게 희망을 준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역시 엄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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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다는것이 참 어렵다는것을 느낄때가 많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울때가 그럴것이고 나같은 사람들은 그런일을 잘 겪을때가 없지만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짱구는 못말려를 들을때면 어찌나 귀엽고 허허 하고 웃음이 나올때가 많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할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고보면 나도 어린시절이 있었는데 그것을 잊고 살아온것 같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을 볼때면 그분들이 지금의 나이를 유지하면서 살아온것마냥 왠지 그분들은 어린시절 젊으시절이 없을거라고 당연시 생각하곤 한다. 그렇지만 어린시절이 있었고 그시절을 지나서 지금에 나자신이 있는거지 태어났을때부터 지금의 나가 있지는 않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니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것이 얼마전 상영했던게 생각난다. 그사람은 늙음부터 시작해서 젊음으로 시간이 거꾸로 가는것인데 결말이 상당히 궁금하긴 한데 영화를 볼시간이 없어서 놓치고 말았는데 언제 한번 책을 읽어보는것도 좋을듯 싶다.
고마워, 엄마는 한 아이가 아빠를 사고로 잃고나서 겪는 성장통과 같은 책인것 같다. 그속에서 이웃과함께 그 성장통을 이겨내는 이야기라고 할까...나는 어렸을적에도 친가 외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계셔서 솔직히 어떤지를 잘 모르겠다. 그저 이웃할머니가 계셨다고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내 할머니가 될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서운하다는것은 아니고 그저 내게도 할머니라는 존재가 계셨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곤할때가있다. 그러다가도 만약에 할머니가 우리엄마 시집살이 시키시면 어쩌나 하는 사손한걱정도 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어린시절로 돌아갈수있다면 하는 마음이 누구나 다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시절 우리는 항상 현재를 살아가지 않고 지나왔던 시절에 얽매여 그시절로 돌아갈수 있다면 하고 바란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인생이 바뀔듯 싶지는 않다. 나는 나이기에 내가 선택한것에 만족하면 나이기에 어쩌면 선택은 불가변일수있기에 말이다. 어린시절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것 같다. 나의 어린시절은 아무래도 뛰어 노는게 다가 아닐까 싶다. 비록 지금처럼 풍족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봐도 어린애의 마음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듯 싶다. 요새 아이들은 영악해서 믿지 않는 사실도 많고 애어른이야 하면서 말을 하지만 그래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인듯 싶다. 어린이가 어른이 될수는 없다.
어렸을때 생각나는것은 많이 혼나고 그러면서도 사고도 치곤 했던....그러면서도 동네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언니 동생들과 함께 어떤 편가름도 없이 서로 어울리면서 고무줄놀이 수많은 놀이 누가 창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없어도 즐겁게 놀수는 있었던 시절인것 같다. 지금은 공부라는 스트레스로 인해서 놀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어릴때 밤중에 산에 가면 깡패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바보같이 엄마에게 물어보면 될텐데 나는 혼자만의 상상을 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나만의 깡패라는 존재는 갑옷같은것을 입은 사람이 아닌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지만 그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요새는 이웃이란 말이 생소할정도로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방에 콕 박혀서 나오지않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곤 했다. 이책을 보며서 새삼스럽게 우리의 이웃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도 우리동네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느새 부터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인사를 하는것도 아니다. 우리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던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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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책 제목에 눈물이 떨어져 번져있다.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나이가 되어버린 나에게 눈물이 번진 제목은 눈물을 흘릴 준비라도 하듯이,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책만 보면 쉽게 울어버린 나, 오늘도 그렇게 잔잔한 감동이 물결치는 책 속으로 헤엄쳐본다. 청소년 소설치고는 그닥 두껍지 않은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옹골차게 들어가있다. 한 소녀의 성장과 이웃과의 소통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담겨져 있는 책이다. 아직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가름하지 못하는 나이에, 아빠의 죽음은 삶의 방향을 크게 틀어놓는다. 아빠의 죽음으로 엄마는 세상과 단절되었고, 그것은 6살 치아키에게도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엄마, 그리고 무작정 떠난 지하철 여행으로 알게 된 ’코포 포플러’ 커다란 포플러 나무가 인상적인 집으로 이사를 하고, 엄마는 직장을 다니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다시 시작했지만, 치아키에게 세상은 여전히 무서운 곳이다. 아빠의 죽음을 만화 속의 한 장면처럼, 뚜껑이 열린 맨홀에 주인공이 빠져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여기는 치아키에게 세상은 온통 어둡고 무서운 맨홀이 너무도 많았다. 직장을 다니던 엄마도 갑자기 자신을 떼어놓고 맨홀 뚜껑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무서웠던 치아키는 맨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늘 마음을 놓지 못했다. 낯선 학교 생활에선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고, 맨홀이 잔뜩 깔린 세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잔뜩 긴장해야했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는 반드시 했고, 준비물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몇번이고 확인하고,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표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전 과목 교과서를 다 들고 다녔으며, 학교 가는 길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자물쇠를 확인해야했다. 그렇게 힘겹게 혼자 맨홀과의 사투를 벌이던 중 병이 나게 되었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를 대신해, 주인 할머니가 치아키를 돌보아 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치아키의 세상과의 첫 소통의 시작이였다. ’할머니’의 존재는 아주 커다랗고 튼튼한 울타리 같다. 엄마보다 튼튼하여 절대 허물어질 거 같지 않고, 엄마보다 더 포근하여 언제든지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 아빠의 죽음으로 세상과 문을 닫게 된 치아키를 위해서 할머니는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아빠의 품에 다시 한번 안기고 싶어하고, 아빠를 그리워하는 치아키를 위해서 하늘에 계신 아빠에게 편지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치아키는 아빠에게 편지를 쓰면서, 어둡고 무서웠던 세상속 무수히 많은 맨홀을 하나둘씩 지워나갈 수 있었고, 포플러장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치아키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렇게 할머니의 서랍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할머니의 죽음이 조금씩 가까워 오듯이.. 하지만, 치아키는 여전히 엄마가 맨홀 뚜껑만 같다. 세상을 떠난 아빠 이야기를 꺼내면 완고하게 거부의 태도를 보이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도 좋을만큼 눈물나게 하는 엄마...치아키는 자라면서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 때문에 힘겨워한다. 엄마의 재혼과 함께 포플러장에서 이사를 한 뒤, 할머니도 포플러 나무도 잊고 살았던 치아키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포플러 장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엄마의 편지 한장. 아빠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는, 다른 편지들과 함께 할머니의 관 속에 담겨질 예정이였고, 치아키는 그 편지를 통해서 엄마 혼자 간직해온 아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아빠의 죽음을 외면하는 엄마에 대한 복잡한 심경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치아키에게 아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치아키를 더욱 절망하게 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엄마는 그렇게 아빠에 대한 마음을 굳게 닫고 있었다는 것을 치아키는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치아카 대신 그 고통을 엄마가 감내하고 있었음을.... 나는 편지를 봉투 안으로 밀어 넣고, 여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엄마의 필체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고마워, 엄마." (출처: 본문 179페이지)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자식에게 고통을 지게하는 것보다, 어미인 내가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것이 어미가 가지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리라.. 치아키가 가지는 아빠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지켜주고 싶었던 엄마는 딸이 주는 미움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을 것이다. 슬데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을 알고 모르고 별 차이가 없다고, (중략) 모든 것을 밝히고, 내 마음속도 모두 드러내고, 원망스런 말도 다 쏟아 내고, 자살만큼은 해선 안 된다는 것을 그 애의 뇔에 단단히 새겨 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애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 될 터이고, 아무리 강한 말로 다짐을 주어도 그 애가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가지 비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아마도 그 애는 그런 나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할 것입니다. 정말 불안합니다. (출처: 본문 168~169페이지, 엄마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중)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일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준 엄마, 아빠를 닮은 딸이 불안한 엄마와의 소통이 이제 시작되었다. 치아키는 이제 세상과의 소통이 아닌 엄마와의 소통을 할 때가 된 듯 싶다. 마지막까지 소통하는 법을 알려준 할머니는 치아키에게 첫 소통자였고, 소통의 연결고리였던 셈이다. 아빠의 부재로 세상과 문을 닫은 치아키가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라 짐작했지만, 마지막 엄마의 편지는 큰 반전을 주었다. 감동과 사랑과 소통이 무엇인지 알게해 준 한장의 편지. 조금은 일찍 그 편지가 치아키에게 전해졌다면 치아키는 이별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아빠와 닮은 딸을 걱정했던 엄마의 마음처럼 나도 그렇게 치아키를 걱정해본다. 지금의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 치아키가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엄마는 편지를 건넸다. 그리고 그것이 치아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여기면서.... 짧은 글이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세상, 죽음, 소통, 엄마, 사랑 등 수만가지의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책 <고마워, 엄마> 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