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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페(Santa Fe)에 공부하러 간 해인이 덕분에 알게 된 화가다. 산타페는 미국 뉴멕시코주 중부에 있는 400년 역사를 가진 도시로 스페인어로는 ‘거룩한 믿음’(Holy Faith)이라는 뜻이다. 한때 스페인이 점령했던 도시라는 흔적이다. 해발 2,234m의 고지대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막을 끼고 있는 도시, 낮과 밤 기온 차가 심한 그곳에서 해인이는 조지아 오키프(George O’Keffe, 1887-1986) 미술관을 가장 먼저 찾았다고 한다. 둘의 예술적 만남이 강렬한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오키프는 1927년 처음으로 뉴멕시코 여행을 떠날 때부터 뉴멕시코의 산타페에서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틀 때까지 뉴멕시코를 애정했다.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갖게 된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이 산타페에 있는 까닭이다.
조지아 오키프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이다. 스티글리츠는 1910년대에 오키프의 예술 재능을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저명한 사진가로서 갤러리를 열어 미국 미술 현대화에 앞장서던 스티글리츠 덕분에 오키프는 뉴욕 미술의 한복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키프는 24살이나 많고 스승 같은 스티글리츠와 동거를 하고 스티글리츠가 이혼한 뒤에는 결혼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스티글리츠의 영향 아래에만 있을 수 있었지만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의 성을 따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공고하게 구축해 나갔다. 강렬한 예술혼을 가진 화가가 아닐 수 없다.
오키프는 꽃, 짐승의 뼈, 작업실 근처인 조지 호수, 뉴욕, 그리고 뉴멕시코 의 풍경을 수없이 반복하여 그림으로써 유별날 정도로 일관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꽃은 에로틱하고, 짐승의 뼈는 힘찬 생명력이 느껴지며, 조지 호수와 작업실은 자연 속 소박한 아름다움이 보이고, 뉴욕은 도시의 선과 면이 잘 드러나며, 뉴멕시코는 광활하여 탁 트이는 느낌이 든다. 하나의 연작이 여러 해 또는 수십 년씩 계속되어 수십 개의 연작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검은 새와 흰 눈이 쌓인 언덕’(1946)과 4년 뒤 검은 새를 모티프로 기하학적으로 변형해서 그린 ‘안뜰에서 IX’(1950)는 연작의 묘미를 보여준다. 오키프는 자신이 머문 장소, 대상의 모습에서 일부를 택해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내게 깊이 들어온 것은 짐승의 뼈 연작이다. 특히 ‘숫양 머리뼈, 흰 접시꽃 ? 구름’(1935)은 죽은 동물의 뼈에서 생명력과 아름다움까지 느껴진다.
내겐 동물의 뼈가 내가 아는 모든 것처럼 아름답다. 정작 살아서 어슬렁거리는 동물들보다 이상하게도 훨씬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뼈는 광대하고 텅 빈,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사막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은 것들 ? 잔혹한 사막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들의 핵심을 예리하게 꿰뚫는 것 같다. (148쪽, “About Myself”, George O’Keeffe : Exhibition of Oils and Pastels, New York : An American Place, 19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