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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청소년들의 희망과 꿈, 자유와 좌절에 관한 이야기." 한번쯤 이런 기획이 필요했다. 암울한 10대들의 인터뷰를 동녘이 책으로 엮었다. 여기 인터뷰이로 참여한 청소년들은 10대들 중 '암울한 일부'가 아닌, '암울한 모든' 10대들을 대변한다. 우리가 뉴스나 신문으로만 알고 있던, 보도와 기사로 전해져오는 무미건조한 사실들은, 여기엔 없다.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는 힘겨워하는 우리 곁의 사람들만 존재한다. 현실이 이 정도일까, 물음을 던져보면서도,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네 명의 10대가 책에 이름을 올렸다. 2년 전의 인터뷰라고 했던가. 지금 자라서 대학생이 된 아이도 있고, 자신의 꿈을 한번 접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도 있고, 여전히 괴로워하며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도 있다. 2년 전과 달리 그들의 신분이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혹은 여전히 자퇴한 소년소녀일지라도, 그들의 방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선생님들마다 두발 규정이 달라서 아무리 깎고 또 깎아도 불려가서 맞고 머리카락을 잘리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머리를 기르면 나라 경제가 망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수업 시간에 맞기 싫어서 공상을 하는 건 애교다. 나도 고등학교 3년 동안 공상을 무척이나 많이 했다. 공상을 하다 지겨우면 노트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창밖을 보거나, 머리를 책상에 박는 행위는 바로 제재 당한다. 나름 모범생'이었다고' 그래도 봐주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원래 모범생이 아니었던 친구들에겐 가차없었다. 어쩌면 나를 자꾸 봐줘서 내가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가 감옥인 건 여전한가보다. 아니, 요즘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그때보다 더 나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기도 하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OO야, 정석 공부하고 있니?", "네? 정석이 뭐에요?", "아니다... 됐다. 교실로 가봐." 당시 선생님와 나의 짧은 대화다. 지금은 더 심하지만, 당시에도 선행학습이란 게 있었다. 이건 누구의 말마따나 학원이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이다. 선생님은 내게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공부하고 있냐고 묻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대고 그게 뭐냐고 묻고 있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이 짧은 대화를 기억하고 있는 건, 그 선생님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내게 그걸 아직도 공부하지 않고 있으면 어쩌냐고 말했다면, 그 선생님에 대한 나의 기억이 달라졌을 것이다. 책 속에서 어느 학부모가 전한 이야기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 친구가 그랬단다. "수학 어디까지 나갔어?", "아무것도 안 나갔는데", "너 그렇게 공부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도 못 들어가", "너 왜 이렇게 망가졌냐" 그날 그 아이는 펑펑 울었다. "엄마,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지 그랬어?"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학생에서 선생으로 신분 탈환을 한 지난 3년 간,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이었을까. 그걸 선생이 아닌 지금에서야 생각해보고 있다. 나름 한다고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못난 부분이 많았다.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 성적이 아닌 다른 것으로 - 차별을 했던 것 같고, 매를 들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매를 들었고, 감정을 절제한다고 했지만 감정을 실어서 때리기도 했다. 다 못난 탓이다. 마음만큼 현장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다. 내 탓이었다. 좀 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준비된 선생이었다면 달랐을텐데. 다행히 난 미숙한 그 모습을 뒤로 선생을 하고 있지 않지만, 학교엔 그 당시의 나보다 훨씬 더 경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미숙한 선생들이 쎄고 쎘었다. 우리네 선생들은 보고 배운 것이라고는 본인의 학창 시절밖에 없어서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하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뉴질랜드나 덴마크 등에서 공부하다 온 아이들은 한국의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돈다. 자율주의에서 규제주의의 영역으로 넘어온 그들이 적응할 수 없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그곳으로 갈 수는 있어도, 그곳에서 이곳으로 오는 건 애초 불가능했는지도. 대안학교와 일반학교를 놓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학생도 다르지 않다. 대안학교로 가면 일반학교에 돌아와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고민은 한없이 길어지기만 한다. 참 다양한 환경에 처해있는 학생들이 나온다. 어떤 아이는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떤 아이는 타워팰리스에 산다. 그러나, 그 아이도, 이 아이도, 고민이 많다. 힘들다. 주어진 환경은 달라도 모두가 힘들다. 강남 아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강남의 한 정신과 의사는 강남 학교에 가서 현장 조사를 해보고 놀랐다고 한다.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녀석들이 많았던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의 등쌀에 못이겨 고통스러워 했던 것이다. 통보했더니 알아서 찾아왔단다. 스스로 알고 있는거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아이들을 건드려주지 않았던거다. 한번만 말을 걸어주면 되는데. 우울한 청소년과 우울한 사회다. 이 아이들은 힘들어하면서도 대학은 끝끝내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왜 대학에 가야 하냐고 물으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게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하는 대답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 어릴적만해도 친구들은 꿈이 많았다. 변호사, 의사, 판사는 물론이고 소방관, 경찰, 대통령, 간호사, 유치원 선생님, 무용가 등 참 다양한 직업이 나왔다. 그땐 변호사를 하고, 의사를 하려고 해도 그 이유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나오는 직업도 제안되어 있지만 그 직업을 가지려는 이유도 똑같다. 우리들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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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참 불행 합니다. 그리고, 참 행복 합니다. 그들의 꿈과 희망이 무엇인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알고 싶고, 그들을 가슴에 안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수 있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이책을 읽으신다면... 우리 학생들이 훨씬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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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터넷으로 보고싶었던 책들을 고르던 중에 갑자기 눈에 확 띄는 책이었다. 대한민국의 10대라....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나도 10대였었지. 어쩌면 지금도 마음과 생각은 10대인지도 모르고.' 이러한 생각으로 책을 주문해 바로 읽게 되었다.
작가가 인터뷰한 14명의 대한민국 10대들.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솔직한 속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여러번 방황을 하고 뒤늦게 학교로 복학한 아이, 외국에서 유학을 다녀와 한국에 적응하기 어려운 아이, 일반학교를 포기하고 대안학교를 선택한 아이, 강남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 전교에서 1등을 하였지만 재수를 하고 있는 아이 등. 그들을 만나 우리 사회에서 10대란 무엇이고,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아픔은 무엇이며, 학교란 무슨 존재이며, 교육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들려주고 있다.
공통적인 문제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성적에 의해 사람의 가치가 결정이 되고 평가되며 좋은 성적을 맞기 위해서 끊임없는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
그렇다. 나라에서 교육에 대해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혼란을 겪어왔으며 부담은 가중되어지고, 결론적으로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대두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이 하나의 제도이자 의무로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 다니게 되고, 끊임없는 경쟁을 강요받으며, 밤늦게까지 받는 사교육을 위해 잠깐 쉬었다가는 숙박업소의 형태로 의미가 퇴색되었다.
자신이 잘하고 흥미있는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기식 주입과 단일화된 교육. 소수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위해 돌아가는 학교의 제도와 수업. 그에 따라 차별과 소외를 느끼는 다수의 아이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청소년 방황으로... 심각하게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까지 발생하고 있다.
언제까는 우리는 이 현실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들고 10대부터 자신의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해 공부하는 수는 없는 것일까?
국가에서는 과거의 교육 방식에 익숙한 기성세대가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성적이 석차로 드러나지 않는 '핀란드', 자유로운 토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뚜렷히 표출할 수 있도록 교육받는 '뉴질랜드' 등 교육 선진국을 롤모델로 삼아 교육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국가의 편의에 따라 제도가 우선이 되는게 아니라 학생 개개인이 고려되는 교육을 이루어야 한다. 선생님들의 노력또한 제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선생님에게 학생은 수십명, 수백명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생에게 있어서 선생님은 하나이다. 모든 선생님들이 처음 부임했을 당시만 해도 학생을 먼저 생각하고 열정적인 꿈을 품었을 것이다. 그 초심을 잠시 잊었을 뿐이다.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학생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오고싶은 학교. 친구같은 형제자매같은 사제지간이 될 수 있을지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학교란 어떤 존재였을까? 마음을 나누고 같이 고민하던 '친구', '선생님'들과 함께 보냈던 공간이다. 물론 나라고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딱히 목표가 뚜렷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작은 꿈이 있어 열심히 공부했고 남들이 좋은 대학이라고 말하는 곳에도 입학했지만 아직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쩌면 나도 지금의 교육제도의 익숙해져버린 하나의 피해자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미래를 짊어질 10대의 꿈과 희망을 키워줄 수 있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교육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