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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상담자가 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하는 부분'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던 때였다. 인간의 성장과 발달, 그 중에서도 '건강한 발달과 건강하지 않은 발달을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나온 교재의 부분을 읽고,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건강한 발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예를 들어 그림만 그렸다 하면 하나하나 해석하려 하여 그림을 그리기 싫다는 사람도 있다, 모든 사람과 모든 행동을 문제적으로 보기보다 어떤 정도까지는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겠다'라고 말했더니 교수님께서 '양선생에게 긍정심리치료가 맞을 것 같군.'하고 말씀하셨다. 그 시점을 계기로 긍정심리학이라는 것에 관해서도 관심이 증폭되어 공부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었고 처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이 『긍정심리치료』다. 평소 합리화에 가까울 정도로 이미 일어난 일, 특히 기대와 달라진 일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긍정심리의 긍정이 그런 긍정을 말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여기 '긍정'이라는 말은, 단지 상황을 내면이 거부하건 말건, 성장이 생기건 말건 그저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자기위로를 위한 순간적이고 단순한 또는 억지의 긍정이 아닌, 인간에 대한 신뢰로 가득한 보다 깊은 의미의 '긍정'이었다.
최근 몇 개월을 심리치료센터에서 일을 하기도 배우기도 했다. 내담자가 방문하면 첫 면접 이후에 해야 할 일은 바로 '계획서'작성이다. 그의 '문제행동'을 집어내어 그를 '치료'해서 달성하기 위한 장단기목표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회기별 활동을 미리 계획한다. 회기별 목표로 그 활동을 하며 내담자가 문제행동을 '몇 번에서 몇 번으로' 줄여가는지, 혹은 목표로 한 행동 수행을 몇 번이나 해내는지를 기록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나는 머리가 복잡하고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작은 따옴표 안에 들어있는 말들을 들으며 한 번 그랬고, 내담자를 만나기 시작하며 또 한 번 그랬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아이가 들어와 처음 만난 나에게 자기 얘기도 많이 해 주고 내가 제시한 활동도 잘 하다 돌아갔다. 가끔 말을 좀 더듬고 산만한가 싶었지만 그래서 그게 오늘 몇 번이었나? 몇 번으로 줄여야 할까? 이 아이의 문제점이 대체 뭘까? 나는 이 아이가 이렇게 자기 얘기를 많이 해낸 것, 이렇게 밝은 것이 대견하고 사랑스럽기만 한데. 장애아동이 와서 계획서를 쓰라지만 이 아이가 나아져야 할 정도는 어느 만큼이란 말인가? 내가 얻은 조언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도, 공공장소에서도 스스로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정도'라는 대답이었다. '그렇구나'하고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그 사회란 것이 어디까지 받아들여 줄테니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치라는 것인지 그 '사회'란 주체에게 물을 수 있다면 묻고 싶었다. 왜 사회가 그들을 받아들이면 안 된단 말인가? 심리치료의 목적이 왜 자신이 나아지고 싶은 내외적 지점이 아닌 타인이 정한 외적 기준일 뿐이어야 한단 말인가? 마음이 심히 복잡하던 와중 계속 거기에 있을 지 말 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 마침 생겨서 다른 일을 구하기로 했다.
상담공부를 하면 이론서만 읽을 뿐인데도 감동과 기대로 가슴이 벅차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 그럴 때는 결코 행동수정이론을 읽을 때가 아니다. 로저스의 인간중심이론, 실존치료의 이론, 프로이트의 책 중에서도 무의식을 이해하여 의식과 자아의 힘을 키우자고 말하고 있는 부분을 읽을 때이다. 그리고 이번에,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실존주의와도 큰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긍정심리치료에 대해 읽으면서도 그럴 수 있었다. 그 감동과 기대란 내가 이 상담공부를 하고 싶었던 이유를 이미 책에서 말하고 있는 지혜로운 저자들에 공감 받으면서, 아이들을 만나며 느꼈던 내 믿음을 다시금 확인 받으면서, 또한 그런 신념과 지혜로 내담자들을 도울 수 있을 내 모습을 그리면서 느끼는 것들이다.
'긍정심리치료는 궁극적으로 개인적 성장이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견해로는 현대사회에서 마주치는 삶의 많은 문제들은 물질주의 문화에서 사회적 압력과 요구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다. 치료자가 내담자를 사회적으로 더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내담자가 꼭 원하는 바는 아니다.' -pp.25-26
'Horney와 Rogers가 제안한 이러한 견해에서는 인간 본성에 건설적인 발달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적절히 표현될 수 있을 때 개인과 지역사회 및 사회의 웰빙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이 이론들은 정신병리와 질병은 개인이 타고난 지향적 힘에 접촉하지 못하는 정도에 따라 생긴다고 설명하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p.50
이러한 사상이 실제 임상 현장에 주는 의미는 '내담자들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며 치료자의 과업은 내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의견이다. 그러한 심리적 안녕의 상태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지, 그 구분된 것에서 긍정심리학이 추구하는 쪽은 어느 쪽인지, 다른 이론들과의 공통점 및 차이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며 긍정심리에 관해 제기될 수 있는 문제나 오해에 관해서도 하나하나 진지하고 겸허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다른 수확 두 가지는 첫째, 임상심리에 대한 내 견해를 지지받은 것과 둘째,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를 더 확연히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정신병리'라는 용어를 쓸 때는, 불일치로부터 나온 모든 사고, 감정, 행동이 정신병리 형태라는 인간중심 모형을 인식하는 선에서 사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 어떤 시점에서 그리고 어느 정도는 정신병리적이다. 정신병리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범주적 실체(categorical entity)가 아니며 어느 정도 많거나 적은 연속적인 것이다.' -pp. 167-168
'역경 후에 성장을 촉진하는 가장 탁월한 기능을 하는 것은 내담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적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적 경험을 명료하게 표현하며, 그럼으로써 새로운 외상 관련 정보에 동화되기보다는 조절하도록 돕는 것' -p.206
실존주의, 또는 역경의 심리학의 시각으로 본다면 고통을 많이 겪는 이들만이 많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인가? 라는 의문과 두려움이 생기면서도 한편, '그런 시기에 자신을 많이 들여다보게 될 수 있기 때문인가?'라고 미루어보고 있었던 내 추측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실마리를 준 부분이다.
읽으면서 아직은 정확히 긍정심리가 뭔지는 좀 막연하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긍정심리가 뿌리를 두고 인간에 대한 관점을 같이 하고 있는 이론들로부터 긍정심리를 이해시킬 재료를 뽑아오고 있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 셀리그만을 비롯한 저자들이 쓴 긍정심리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는 책을 보기 시작해야겠다. 또 한 가지, 그렇다면 주로 어떤 기법들을 쓸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마지막 부분에 해답이 있었다. 상담자가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기법보다 관계와 치료자의 자질, 공감능력, 진솔성이라는 것.
어쩌면 이런 말들은 기준이 모호하고 변화가 된 것인지 알기 어렵다는 식의 흔히 제기되는 비판이 있겠지만 인간의 마음과 변화와 성장이 어디 그렇게 자로 재듯 수학공식으로 풀듯 확실하고 딱 떨어지는 것일런가? 단순한 행동수정 프로그램보다는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수양하고 공감받고 변화를 시도하는 지난한 노력으로 오는 것일텐가! 그런 모호함과 어려움을 기꺼이 택하여 있는 그대로의 내담자를 더더욱 빛내는 길을 함께 할 많은 상담과 심리치료 학도 및 실무자들이 이 책을 함께 하길 적극 추천한다. 나 또한 그런 상담자가 되길 바라고 다짐하며 이 책을 읽을 기회를 만들어주신 담당교수님과 인연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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