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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 담론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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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아닌 레즈가 있을까. 있다. 상아탑의 이데올로기적 껍데기를 덮어쓰지 않은 모태 레즈는 주디스 버틀러의 페미니스트 담론에 코웃음 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나서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늦둥이 언니들도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 이론을 비판할 자격이 충분하다. 이들이 이해못하는 정체성 담론이나 퀴어이론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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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아닌 레즈가 있을까. 있다. 상아탑의 이데올로기적 껍데기를 덮어쓰지 않은 모태 레즈는 주디스 버틀러의 페미니스트 담론에 코웃음 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나서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늦둥이 언니들도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 이론을 비판할 자격이 충분하다. 이들이 이해못하는 정체성 담론이나 퀴어이론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또한 백보 양보해서 버틀러의 환상대로 우리의 성 정체성이 단지 수행성의 문제라면 현재 남몰래 자신의 정체성을 번민하는 어린 이반들은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버틀러의 유쾌한 퀴어이론 그대로라면 얼마든지 젠더 수행적인 일상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구성해 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버틀러의 허구적인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동성애 역할을 하는 남녀 배우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동성애 영화나 드라마를 찍기 위해서 젠더 정체성을 언어적으로 행위적으로 반복해서 수행해야만 한다. 만약 버틀러의 이론이 사실이라면 영화를 다 찍고 난 이들 배우들은 게이나 레즈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가능성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주체성과 정체성을 논할 때 버틀러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이론적 허구에 실상을 맞추려보니 태연히 왜곡을 범하고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 

 

버틀러의 주저《의미를 체현하는 육체(Bodies That Matter)》는 권력과 주체의 관계를 다룬다. 버틀러의 담론은 난해함으로 악명이 높은데 이 번역서도 그 악명을 드높이는 데 한몫했다. 김윤상은 왜 재번역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배배꼬인 난삽한 이론이라도 쉽게 풀어가는 방법이 존재한다. 먼저 학자들이 무대에서 원용하는 꼭두각시들의 정체를 살피는 것이다. 학자는 언제나 유명 사상가들의 두뇌를 활용한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훔치고 비틀고 자르고 덧붙인다. 스마트해 보이는 레즈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는 푸코의 뇌와 오스틴의 뇌를 통째로 빌려 물질과 육체의 담론 형성적 과정을 강조한다. 그런데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학자들이 원용하는 이론에는 언제나 차등이 있다. 똑같이 중요한 이론이란 없다. 이론과 이론간에는 주객이 있고 허실이 있다. 예컨대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 이론에서 주가 되는 것은 푸코의 권력담론이고, 오스틴의 발화수행성 이론은 객이 된다. 내가 보기에 버틀러가 원용하는 오스틴의 발화수행론은 오스틴의 화용론 맥락에서 많이 이탈한 오독의 결과물이다. 푸코의 훈육이론과 주체성 형성 기제가 버틀러가 가장 사랑하는 이론적 자원이다. 버틀러 이론의 독창성은 푸코의 권력이론이라는 과실에다 수행성이라는 달콤한 당의정을 입힌 점이다.   


다음으로 학자들이 처한 시대적 맥락 혹은 사상적 조류를 고찰하는 일이다. 서구에서 탈모더니즘이 유행이던 시기에 나온 버틀러의 담론은 근대철학의 이원론을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신과 물질, 자연과 문화, 이성과 광기, 수동과 능동 등과 같은 이원적인 구조들에 의해 각인된 인식소를 비판하는 것이 버틀러 젠더이론의 기본 맥락이다. 따라서 정체성과 주체성의 형성 기제를 다룸에 있어서 섹스(생물학적인 성), 젠더(사회적인 성별), 섹슈얼리티의 삼각구도를 언어, 권력, 육체라는 세 가지 매트릭스로 재해석하려고 한다. 

z***a 2011.12.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