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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사실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안다.
카프카는 편지를 흡혈귀에 비유했다. 쓰는 사람의 영혼에서 피를 빨아, 받는 사람의 피로 다시 살아나는 존재. 정확한 비유다. 여기에 한 문장을 더 보태고 싶다. 흡혈귀는 누구의 목을 물지 자기가 정하지 않는다. 편지도, 글도, 일단 봉투를 나서면 어느 목덜미에 이빨을 박을지 알지 못한다. 작가가 아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카프카 자신이 정작 자기 글의 운명 앞에서 가장 무력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두려움을 여러 번 고백했다.(약혼녀 펠리체에게도 비슷한 불안을 털어놓았듯) 종이 위에 놓인 말이 자신의 의도를 넘어 상대에게 어떤 모습으로 도착할지 확신할 수 없었고, 그것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그런데도 그는 편지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두려워하면서 계속 썼다. 그것이 쓰는 사람의 모순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요청을 떠올려 보라. 그는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원고를 모두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흡혈귀의 생리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았던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결국 그 피를 다시 거둬들이려 했다. 자기가 문 자리를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브로트는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소송』도 『성』도 지금 우리 손에 있다. 카프카도 자기 글의 최종 처분권을 갖지 못했다. 심지어 유언조차 흡혈귀의 이빨 자국을 지우지 못한 것이다. 이보다 명확한 증거가 있을까.
문학평론이든, 칼럼이든, 술 취해 쓴 넋두리든,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매번 같은 착각을 했다. 이 문장이 어디로 가서 누구의 무엇을 건드릴지 내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 지나고 보면 늘 예상 밖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울거나 화를 냈다. 반대로 내가 온 마음으로 눌러쓴 대목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글은 내 설계대로 지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흡혈귀의 생리다. 피를 빠는 자리는 물린 사람이 정하지, 문 자의 의도가 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오독이라는 말부터가 오해다. 오독이라는 말은 ‘정독이라는 표준이 있고 그 표준에서 벗어난 읽기가 있다’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데, 실은 그 표준을 쥐고 있는 사람이 없다. 작가조차 아니다. 내 글을 수백 번 되읽다 보면 나조차 뭘 썼는지 헷갈리는데, 단 한 번 스치듯 읽은 독자에게 “이것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라고 정할 자격이 나에게 있을 리 없다. 독자가 자신의 상처, 자신의 하루, 자신의 옛사랑을 끌고 와서 내 문장에 자기 피를 빨리는 순간, 그 문장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 그의 것이다.
흡혈귀는, 목을 물린 사람에게 “피는 가져갈 테니, 아프다는 말은 하지 말라”라고 요구할 수 없다. 피를 빨리면 아픈 것이고, 아프면 소리를 내는 것이 사람이다. 작가가 그 소리까지 검열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글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 일기장을 잠깐 보여 주고 다시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기는 자물쇠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책으로 묶이고 화면에 걸려 활자로 찍히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나 손댈 수 있다. 그 손이 남긴 자국까지 감당하는 것이 그것을 세상에 내놓은 자의 몫이다.
카프카에게는 브로트라는, 유언마저 거역해 준 벗이 있어 그나마 흡혈귀가 살아남았다. 오늘의 작가들에게는 그런 벗이 없다. 익명의 독자가 내 뜻과 무관하게 내 문장을 오려 붙이고, 내가 상상도 못 한 맥락에 세워 놓고, 내가 부끄러워하는 문장을 오히려 명문이라 떠받든다. 억울할 자격도 없다. 그것이 애초에 글을 공적인 몸으로 내놓은 자가 감수하기로 한 약속이니까.
나 역시 이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감동하거나 전혀 다른 지점에서 화를 낼 때, 머리로는 독자의 몫임을 알면서도 속으로 “그게 아닌데”라는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오른 적이 왜 없겠나. 그러나 그 말을 삼키는 것, 그 모순을 삼킬 줄 아는 것이야말로 쓰는 사람의 예의다. 글을 놓아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자식을 흙으로 돌려보내듯, 아까워도 다시 붙들지 않는 것.
결국 작가에게 남는 권한은 딱 하나다. 다음 문장을 쓰는 것. 이미 나간 문장이 누구의 피를 빨든, 누구를 울리든 웃기든, 그것을 되돌릴 방법도 자격도 없다. 그저 다음 봉투를 봉하고, 또 한 번 세상으로 내보낼 뿐이다. 흡혈귀는 자기가 문 자리를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다시 밤이 오기를, 이번에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다음 목덜미를 기다릴 뿐이다. https://brunch.co.kr/@litcrit/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