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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마광수는 19금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이다..그의 대표적인 소설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가자, 장미여관으로>가 있으며 그 소설은 영화로도 쓰여지게 된다..이외에도다양한 소설을 쓴 마광수 교수..그의 소설의 특징은 다른 사람이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여과없이 담아내고 잇다는 것이다.. 마광수의 소설에는 남녀간의 원초적인 마음이 담겨져 있으며 1970년대~80년대의 우리들의 사회적인 모습이 그대로 당겨져 있다..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없었던 그 당시 교련이라는 구시대의 교과목이 있었으며 대학생들은 자유를 외치며 데모를 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이제 나이가 들어 50~60대 중년이 되어서 사회에서 또다른 역할을 당당하게 된다.. 지금의중년이 된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도 한이성에게 열정적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감추어진 그들의 모습들..그래서 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으며 그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였다. 마광수의 소설을 우리가 가까이 하는 것은 우리의 숨겨진 본능 뿐 아니라 우리의 나약한 마음까지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존심 하나로 버텨왔던 남자들..그들은 사랑 앞에서는 갑이 아닌 을의 위치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을의 위치였지만 갑을 넘보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위치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였다.. 책에 담겨진 스물 다섯편의 작은 이야기들..그 안에는 마광수 교수 자신의 이야기도 있으며 마광수 교수 스스로가 창착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하였던 그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우리가 읽고 읽혀지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의 열정적이며 뜨거운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왜 제목을 <나는 너야>라고 지었을까 하는 이유가 궁금하였다..남자에게 있어서 나는 너야의 의미는 무엇일까..여자에게 있어서 나는 너야의 의미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되었으며..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여자는 스스로를 남자에게 맡기려 하고 의지하려 한다...그러나 그반대의 경우에는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포용하려 하고 때로는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두기도 한다..서로 다른 사랑에 대한 정의. 그래서 제목 <나는 너야>의 의미 또한 달ㄹ라지게 된다.소설 속에서 또다른 문학 작품들을 함께 담아가면서 사랑에 있어서 부족한 2프로를 채워 나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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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야 책 제목이 넌지시 내미는 손을 잡고 이번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한 작가이기에 더욱 그랬지요. 책 한권을 낼 때마다 그리고 말 한마디만 해도 사람들은 떠들썩하게 반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에도 야동을 보는 남편들로 인해 불쾌해 하거나 의기소침해지는 아내들이 있습니다. ‘남자의 베일에 쌓인 그 심리는 뭘까?’라며 활동카페의 수다방에 올라온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마광수 작가의 책 그 내용이 이제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그러나 역시 성에 대한 내용들이었고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아낙이라면 해줄 수 없는 일, 때문에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밖으로만 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 책 「나는, 너야」에서 그려지는 내용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호기심에 선택한 책,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작성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에 대한 생각만큼은 아직도 많이 보수적 성향을 띄기 때문이지요. 여자가 먼저 성에 대한 언급을 하면 밝히는 여자가 되고 남자는 아무렇게나 어디서든 성을 언급해도 된다고 여기거든요. 요즘은 초등학생들조차도 야동을 보았다는 통계가 상당합니다. 성에 대하여 너무 무지해도 아이들에게 교육이 어려운 것,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땐 저자처럼 상상력이 무한 동원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책 「나는, 너야」의 저자가 자신의 지난날을 소개하는 것처럼 이어간다. 첫사랑에 대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 내용은 분명 성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데 별로 야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저자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들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분명 성에 대한 견해만큼은 비슷하다고 말하기가 곤란할 것 같습니다. 결혼 전 성을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아내는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했다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이혼하는 사람들의 흔한 이유가 성격차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혹시 그도 성격이란 부류에 포함되는 것은 아닐까요? 야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데도 남이 어떻게든 표현을 하자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에 대한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과 음흉하게 속으로 야한 생각을 하고 은밀한 만남을 즐기는 사람 중 과연 어떤 사람이 더 음흉하다고 할 수 있을지 각자 생각하는 사람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줄을 타고 있을까요? ‘나는 너야’ 책 제목처럼 ‘맞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절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이것도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가 맞는 거겠죠. 저자의 필력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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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하는 마광수 이름 석자는 9시뉴스에 오르락내리락했었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는 10대였기에 그냥 이름석자와 외설이라는 한단어만 기억속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 나는 너야가 나와서 마광수 이름 석자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얼마큼 외설이기에 구속까지 당하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있을까 싶어서 너무나 궁금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25편의 시와 단편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한마디로 자유롭게 성에 대해서 작가의 표현이 거침없이 숨김없이 직설적으로 어떻게 보면 변태스럽다라고 느낄 정도로 상상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성에 대한 지독한 섹스를 표현했습니다. 가장 인간의 본능적이고 탐욕스럽고 관능적이며 욕망스러움과 음습하고 어두운 면을 너무나 솔직하게 그러면서 너무나 충실하게 까발렸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제목 나는 너야가 너가 가지고 있는 그곳을 내가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니 나는 너야다라는 느낌을 받았네요. 이 책을 그냥 성적으로 감상해도 상관없고 그 성적인 표현이면의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나름의 해석을 해도 상관없고 그냥 글로 문학적으로 이 책을 즐기면 그만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성적인 욕망과 이성에 대한 섹스를 가슴속에 품고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 사랑이라는 표현을 정신적 사랑, 육체적 사랑으로 나눠서 이야기하는 단편이 몇개 있는데요. 사랑이라는 단어는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더 강요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은 육체적인 욕망을 구속하기 위한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런것이지 사랑이라는 것은 육체적 쾌락이 중심이다라고 저자는 표현하는데요. 어느정도 공감이 가긴하네요. 요즘 결혼에서 속궁합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만큼 성이라는 것이 이제는 숨겨야할 것도 아니고 음침한 곳에서 음침하게 행위를 해야하는 저질스러운 의식에서 많이 희석되어가고 있는 것 같거든요. 마광수라는 단어를 치면 문학의 실제 효용가치를 본능적 욕구의 상상적 대리배설에 있다고 전제하고 대리배설로서 카타르시스를 연구하고 몸의 철학, 육체주의 등에 주목하고 있다라고 나옵니다. 왠지 대리해서 성에 대해서 마광수작가님이 대신 표현해주고 있다라는 느낌이 드네요. 그래도 아직 저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버겁습니다. 그래도 잠시나마 신선한 문학적 산책과 신선한 성에 대한 표현을 맛보았던 즐거운 시간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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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는 92년 즐거운 사라를 발표하고 그것이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구속이 되면서 즐거운 사라 역시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판매가 금지 된 책이라 읽을 수는 없지만 어떤 내용일지는 나는 너야를 보고 조금은 상상 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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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
아마도 이 책의 저자인 이 분을 안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즐거운 사라』로 음란물로 분류될 외설인지, 표현의 자유인지를 놓고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야 했고,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라를 위한 변명』,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등 우리가 익숙하게 성(性)과 섹스에 관한 파격적인 작품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이렇게도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지금까지 들어만 오다 이번에 나온 이 책『나는 너야』로 마광수 교수님을 직접 책에서 보게 되었다.
역시 들어왔던 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 적혀 있는 각종 섹스와 성에 관한 용어들, 그 과감한 표현들은 나에게 사뭇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누구나 살 수 있는 책이란 곳에서 이런 표현들이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보는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워낙 진한 표현들이 많아 버스에 서서 있는 뭇사람들이 책 내용을 볼까하는 조바심마저 들 정도로 조심스러운 책을 대한 것 같다.
이 소설은 짧은 형식의 단편 소설들로 모두 구성되어 있는데, 읽다보면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도 중간 중간에 포함되어 있어 소설의 주인공이 혹시 마광수 교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친한 친구 애인에 대한 혼자만의 사랑으로 그 여자 낙태수술비용을 대주는 이야기, 여자 대학생과 젊은 교수의 짧은 섹스 이야기, 젊은 시간강사와 연상의 유부녀와의 불륜이야기 등은 저자의 이야기 같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마 교수는 성에 대하여 진솔하고, 본능적 욕구에 대하여 상상을 통하여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고, 이 책에는 그에 충실한 과감하고 대담한 성적 행위와 묘사들이 상당부분 점유하고 있다.
흔히 동성끼리 있어도 말로 꺼내기 힘든 남자와 여자 성기에 대하여 직접적 단어로 묘사되어 있는 것은 기본이고, 오럴섹스나 변태로 불리는 성행위에 대하여도 아무런 숨김없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책을 보면서 마광수 교수가 추구하고 말하고자 하는 성과 섹스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생각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라서 거부감이 없지는 않지만, 어쩌면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우리 모두는 理性으로 숨기고 있는 異性에 대한 육체적 욕구를 책과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대리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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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히 이 책이 보고 싶었던건 호기심이었다.
궁금했다.
그렇게 한결같이 화두에 오르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글이 궁금했다.
근데 나는 뭐랄까? 읽는 중에 드는 생각은 이 책에 나오는 글들이 아름답다거나 오~하는 감탄이 나오는게 아니고, 심지어 좀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기까지했다. 신작이라고 했는데...예전에 쓴 글들을 모아둔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말이다.
나는 도대체 뭐를 기대하고 이 책을 보게 되었던 것일까? 문학계에서도 마광수작가의 글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고 들었다. 그런점에서 나는 호기심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정확한 마광수작가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된것이 아니고 그 카더라하는 이야기들, 뭘까? 궁금해로 시작했기때문에 더 실망이 커진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건 그러그러한 이야기 속에서도 뭔가 내 마음속에 울림이 있는 글이기를 바랬던것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건 그냥 기대였을 뿐....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자주 나왔는데 이걸 찾아봐야하나 싶기도 하다가, 이런 용어들은 어찌 아나 싶은 생각도...그러고는 이걸 찾아보는 정성까지 쏟을 필요가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책 맨 뒷장의 작가의 오래된 사진처럼 읽다가보니 옛날 이야기로만 느껴지면서 좀 허무했다. 너무 기대(?) 했기 때문이겠지만...
드라만 응답하라 1994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이유중 하나는 오랜된 이야기이지만 그 안네 내가 살았던 시절이 있고, 내 이웃의 이야기가 있고, 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나는 어쩌면 늘 회자되는 그의 글에서 그런걸 기대했던건 아닌가 싶다. 또 다른 일례로 내가 중학교때였던, 고등학교때였던가? 무튼 '죽은 시인의 사회'를 영화로 보기 전에 책으로 먼저 읽었는데 그때 내게 엄청나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는게 학생들(럭비부였던가?)이 파티를 열었는데 술취한 상황에서 묘사된 모습을 처음 접해서 너무 놀랬던 기억이다. 그 때 엄청난 충격을 받긴 했지만 이런 실망은 아니었던거 같다. 뭘 몰라서였을거고, 아마도 지금 그 구절을 다시보면 뭐 이런걸로~라고 할 수도 있을거 같지만 지금 이 책 나는 너야를 보면서는 그냥 허탈감 + 실망감이 든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어떤일을 하기 전까지는 너무너무 설레고 기뻤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나니 김이 팍 세는 그런...
모습은 있는데 안은 비어있는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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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 이후 마광수 교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게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지 간에. <즐거운 사라>는 그만큼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어찌하다 나도 읽어보았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런 표현을 쓴 책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문학일까 그냥 포르노일까? 이런 책을 쓰는 것이 표현의 자유일까, 대책 없는 방종일까?
지금도 그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논란의 중심에 서있을 만큼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벗어나 있다. <나는 너야>라는 이번 작품은 또 어떨까? 그의 전작들만큼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인,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솔직한 내면의 고백일까
그런데 제목이 먼저 눈에 띈다. ‘나는 너야’라니. 결국 저자의 생각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는, 다시 말해, 그의 생각은 우리가 숨기고 있을 뿐이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것이라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단 읽어보자.
25편의 단편이 수록된 <나는 너야>는 저자가 전작들에서 보여준 저자 본연의 색깔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짧게는 한 페이지로 된 작품에서 길게는 40-50페이지 분량에 이르는 작품들이지만 그 속에 저자의 색깔이 온전히 담겨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작품들 속에서 찾아본 그의 모습은 철저한 허무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향락주의 만세>에 나온 김대수씨. 건강한 삶을 살기 원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을 생각하지만 그의 운명은 그의 바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결국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결국은 쾌락을 쫓는 향락주의에 빠져버린 나(저자)의 모습을 김대수씨에게 덧입혔던 것은 아닐까? 또한 그런 향락은 일과 사랑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기를 바랐던 <짝사랑>의 광서의 모습을 통해 드러났던 것은 아닐까
여전히 그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예술로 보기에는 내게 남는 느낌이 없고 외설로 보기에는 알게 모르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조금씩 묻어나오고. 분명한 것은 성에 관한 한 저자는 다른 사람보다 한 발 앞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서 있는 곳이 어떤 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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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야'는 한 때 '즐거운 사라' , '가자,장미여관으로' 등으로 한국에서 에로티시즘을 책을 통하여 현실세계에 새롭게 조명시킨 마광수 교수가 내놓은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집이다. 약간은 촌스러운 그러나 묘하게 야한 책의 표지를 보면서 마광수 교수가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성만을 주제로 하여서 거침없이 사실적으로 글을 쓰면서도 포르노라고 생각되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은 저자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테넷을 서핑하다보면 정말로 성과 관련된 많은 글들이 존재한다. 그 글들은 포르노적인 저질글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용은 없고 그저 행위의 묘사만이 난무하는 글은 심하게 이야기를 하면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의 글들은 그런 글이 아니었다. 저질스러운 단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저자의 글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서 소위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포르노가 아니라 에로티시즘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읽은 '나는 너야'도 저자의 원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참 많은 조각조각의 글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적어놓기도 하였다. 그 모든 이야기에서 일관적으로 나오는 페티쉬는 내 생각에는 저자가 손톱에 대한 페티쉬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길고 곧은 그리고 네일아트가 잘된 손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에피소드에서 자주 들어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면서도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저자가 보통의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보다도 더 보수적이고 답답한 면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는 여러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짝사랑의 모습이라든가 유부녀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아마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저자보다는 더 아무 생각이나 걱정없이 쉽게 즐기고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일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이라고 하였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책은 저자의 잘 알려진 다른 소설들처럼 쉽게 읽혀지고 빨리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저자의 생각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 것 같다. 모든 일은 타인이 해주는 여왕의 이야기는 왜 이것을 여기에 써 놓았을까하는 의문을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건 뭐 아무것도 아니네 이런 글인데 왜 저자가 외설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하는 의문도 든다. 요즘은 저자의 글과 같은 종류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오는 저급한 소설들을 보면 그저 아무 의식없는 포르노에 불과한 것들이 많다. 또한 책이라는 전통적인 미디어 말고도 동영상,사진등의 더 현실적인 미디어들이 많은 성적인 묘사를 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어서 되려 저자의 글이 별거아닌것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에로티시즘적인 - 사실 주류문화에 서 페티쉬라든가 훔처보기등은 전혀나오지 않는 부분이기때문에 에로티시즘만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 글은 사람들을 자극할 수 가 없겠지만 진정으로 인간들의 사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질 포르노가 아니라 올바른 에로티시즘을 느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어 저자의 책을 읽어볼것을 권하고 싶다. 어째든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내놓은 저자의 책으로 인하여서 저자가 내놓은 '가자,장미여관으로' , '즐거운 사라' 등의 책으로 젊음의 때에 성문화를 알게되었던 세대로 너무나 반갑고 즐거운 책 읽는 시간이었다. 바라는 것은 저자가 더 좋은 더 아름다운 에로티시즘적인 글들을 많이 쏟아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