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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책은 유난히 손길이 가지 않는데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신청했다. 익숙해지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옅게 깔린 일본 특유의 정서가 활자를 통해서 비칠 때마다 몰입을 방해해서 물과 기름처럼 좀처럼 이야기에 스며들지 못했다. 이런 내 문제를 알고서도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제목은 내용이 궁금할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감각적인 색과 익살스러운 표지는 세련된 느낌마저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쳐서 지은이에 대한 소개를 읽는데, 우아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젊은 작가를 기대한 것과 달리 나이를 지긋이 먹은 대학교 교수님 같은 이미지였다. '2010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마지막 글에, 이제 막 저자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마음이 요동쳤다. 세상을 떠난 뒤 마주하게 된 책은 마치 하늘에서 보낸 편지 같았다. 작가는 꽤 많은 상을 받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쓸 수 있겠는데?'라는 건방진 생각이 듬성듬성 들 정도로 거창한 교훈도 기가 막힌 내용도 없었다. 파리 잡기에 평생 쓸 집중력과 담력을 모두 소진해버릴 정도로 괴상하고, 달을 보면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듯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감수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루스벨트가 죽은 날 심상찮은 학교 분위기 속에서도 운동회 머리띠를 책상 서랍에 두고 온걸 아쉬워할 정도로 싱거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자꾸 읽게 된다. 가벼운 문체 속에서 느껴지는 솔직함이 독자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늘 읽었다>의 한 부분이다. 왜 이토록 책을 읽는 걸까? 나는 취미가 없다. 게으르고 몸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여 소학교 때부터 체육을 못했다. 배구를 할 때에도 나 혼자 멍하니 서 있었고, 공을 맞아도 멍하니 있었다. 공은 아팠다. 체육뿐만 아니라 음악도 못했다. 음치였다. 클래식 따위 소음일 뿐이었다. 이만큼 책을 읽었으니 나도 유식해야하는데 아는 게 별로 없다. 사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철학자라도 되어야 했던 건 아닌지. 나는 철학할 틈도 없이 다음 책을 읽었다. 게다가 그 많은 책을 전부 누워서 읽었다. 사람들은 어떤 자세로 책을 읽을까? 사촌인 다미에 언니는 안락의자에 앉아 읽는다. 독서 답다. 요즘은 책을 읽어도 다음 날이면 까맣게 잊는다.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다. 옛날에 읽은 책도 다 잊었다. 멍청한 노인이 되어버렸다. 독서는 쓸데없었다. 독서만 좋아했던 내 인생도 헛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P.39). 사람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에피소드였던 <노인은 노인으로 좋다>와 엇갈린 우정을 시시콜콜하게 다룬 <아름다운 사람> 에피소드도 좋았지만, <의외로 근처에..>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은이 사노는 유별났다. "엄마는 인간으로서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엄마로서는 정말 꼴불견" (p. 245)이라는 말을 아들에게서 들을 정도니, 남다른 유별함이 짐작이 간다. 글의 초반부터 아무렇지 않게 가정사에 관해 얘기를 하는 데 그 털털함이 놀라울 정도다. 자신을 몹쓸 엄마, 고약한 엄마라고 소개하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자녀와의 사이뿐 아니라 모녀간의 사이도 그리 살갑지 않았던 것 같다. 여행경비를 모두 대고 유령 여행에 엄마를 모시고 갔는데도 엄마로부터 '고마워' 혹은 '미안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여행을 같이 가보면 사람의 성격과 스타일을 단번에 알 수 있듯이 사노와 사노의 엄마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무조건 짐을 줄이고자 한 번 입고 버릴 낡은 속옷과 읽은 만큼 책을 찢어버리는 사노와 달리 작은 봉투에 액세서리도 촘촘히 넣고 만찬용 드레스랑 구두까지 챙기는 엄마의 애장품은 다름 아닌 화장품이었다. 글 속에서 엄마의 치매 과정을 화장품을 통해 그려냈는데 화장품이라는 간접적인 비유가 있었기에 슬픔이 어느 정도 억제될 수 있었다. 엄마의 화장품이 옷장 안에서 나오기도 하고, 눈썹을 여덟 개나 그리기도 일쑤. 어느새 엄마의 서랍 안에는 전혀 관계없는 물건들이 뒤죽박죽 나오기 시작했고, 사노는 그런 서랍장을 보며 엄마의 머릿속이 서랍처럼 뒤죽박죽되었다고 말한다. "엉뚱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서랍을 볼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꼭 엄마의 머릿속을 열어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서랍 안에서 데굴데굴 립스틱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서랍에 다 쓴 립스틱이 딱 하나 들어 있었다 (이제 엄마 뇌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아. 다 쓴 립스칙 처럼 되어버렸어)" (96). 엄마도 치매가 되겠다고 선택해서 된 건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 죽어도 좋지만, 치매만을 피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노는 이젠 엄마에게 딸이 아닌 '누군가'가 되었다. 아무리 자신을 소개해도 금세 까먹고 자신의 이름도 기억 못 하며 "아니, 나는 아기 안 낳았어"라고 딸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는 엄마를 보는 심정이 어떠할까. 지쳐가는 게 보이는 마지막 문단에서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이 마음속에 맺혔다. "요즘 엄마는 '고마워'와 '미안해'라는 말을 홍수처럼 쏟아낸다 (엄마, 평생 그 말을 저축해뒀구나. 이제 일생을 마치기 전에 다 써버리려고 하는구나). 엄마 침대에 같이 누웠다. "엄마, 나 이제 지쳤어. 엄마도 지쳤지? 같이 천국에 갈까? 천국은 어디 있을까?" 엄마가 말했다. "그래? 의외로 근처에 있는 모양이야" (p.97)." 이처럼 사노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며 울컥한 기분을 주기도 하고, 또다시 금새 천방지축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덤덤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죽어서 염라대왕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해학적으로 삶을 그려 나간다. 좀처럼 예측할 수 없고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다채로운 성격을 가진 만큼 한 가지 캐릭터가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지나온 삶 그리고 앞으로 부딪힐 수많은 문제가 있어도 우린 늘 시간의 도움을 받아서 헤쳐나갈 것이다. "인간은 잊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한 사노의 말처럼 좋은 일, 힘든 일 언젠간 모두 잊게 될 테니.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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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는 아이의 그림책으로 먼저 만났다. 「100만 번 산 고양이」 , 「나는 고양이라고」 등의 그림책. 아기자기한 그림에만 익숙해있던 때 조금은 날카롭고, 때로는 무심한 듯한 그녀의 그림에 낯설어하며 놀라고, 이후 그림책이 담고 있는 주제에 두번 놀랐었다. 아마도 아이들의 그림책의 주제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림책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작가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고 여러 에세이들을 읽으며 그녀의 삶을 조금이라도 엿보려고 했다. 암 재발 통지를 받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브리티시 그린 색상의 재규어를 구입했다는 그녀. "죽으면 돈은 안드니까" 라고 했다지. 나는 '때론 솔직하고, 때론 삐닥하다는' 그녀의 팬이 되었다.
문제가 있습니다. 問題があります 사노 요코 276쪽 | 362g | 128*188*20mm 샘터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의 저자이자 북디렉터인 하바 요시타카는 그녀의 다른 책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한다. 죽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아픈 것은 싫다는 그녀의 마지막 날들을 엮은 에세이 「죽는 게 뭐라고」 는 여느 작품보다 자유롭게, 힘을 빼고 독을 내뱉는다고. 그리고 그 독은 독자의 몸에 항체를 만들기 때문에 사노의 책은 중독된다고. 그렇다. 그녀의 책은 중독된다. 「죽는 게 뭐라고」 처럼 독하지는 않아도 이번에 읽게 된 「문제가 있습니다」 의 에세이들도 여전히 중독되는 맛이 있는 듯 하다. 이번 에세이 속에는 그녀가 읽었던 작가,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릴케에 빠진 이야기, 어릴 적 허세를 부리며 읽었던 앙드레 지드, 모파상, 톨스토이에 관한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에 얽힌 추억들. 나도 사실은 허세를 부렸다. 앙드레 지드, 모파상, 톨스토이. 서양 작품이 소세키나 후지무라보다 급이 높았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할 것 같은 행위를 하는 부분에서만 눈을 크게 뜨고 읽었다. 그런 책이 아니면 야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으니까. 「비계 덩어리」에 눈을 딱 붙이고 보는데 아버지가 책을 낚아채며 "이런 책은 읽지마!" 라고 호통을 쳤다. 모파상이 야하다는 것을 알았을까? 다음 날 아버지가 도서관에서 세계문학전집의 제1권, 루소의 「고백록」을 빌려왔다. 나는 읽자마자 기겁을 했다. 루소가 마차 안에서 묘령의 여인을 유혹한다. 아버지는 「고백록」을 읽지 않은 것이다. 중학생이었던 내 머릿속은 야한 것으로 가득 채워졌고, 허세를 부리기 위해 책을 읽는 동안 완전히 독서에 빠져버렸다. p54,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 이 글에서는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박장대소를 했다. 중학생 때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떠올라서다. 나도 모파상은 참 야한 작가구나. 라고 생각했었다지. 아마도 그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은 활자만 읽었었던 것 같다. 최근 다시 읽었던 책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사노 요코가 말했던 것처럼 어떤 책들은 "읽고 감동하려면 그에 걸맞은 인생이 필요하다.". 정말 그렇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읽은 책은 다 쓸모없었다. 열세 살 소녀한테 「안나 카레니나」가 이해될 리 만무했다. <중략> 멋을 잔뜩 부리고 거리를 싸돌아다니는 청춘이 훨씬 즐겁지 않았을까. <중략> 작가 특유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 냉소적인 유머 덕에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의 이야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가 힘을 빼고 가볍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녀의 책 읽는 이유가 내 이야기로 와닿은 것처럼. 나는 책을 읽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다. 인격이 고급스러워지는 것도 교양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때 그때 놀라고 싶을 뿐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나의 변변찮은 경험이 아닌 타인의 귀중한 경험을 나눠 받기 위해서이고, 보통 사람에겐 없는 재능을 접함으로써 나의 가난한 마음을 잊고 싶기 때문이다. p149, <책 처리법> 저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 인생을 살고 있다. 그 사실에 나에게 전달되었고, 나는 머나먼 나라 사람들의 삶에 공감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좋다. 아무것도 몰라도 좋다는 걸 알았고, 모든 걸 아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아는 것에만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p132, <아무것도 모른다> 중국의 베이징에서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유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사노 요코.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불화, 병으로 일찍 죽은 오빠에 관한 추억은 작가의 삶과 창작에 평생에 걸쳐 짙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어머니와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도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 「시즈코상」 이라는 책에 더욱 자세히 나와있다. 자신과 어머니에 대해 거침없는 문장으로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던 터라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복잡미묘한 딸과 엄마의 관계. 모든 딸들은 살면서 한번쯤 자신의 엄마와의 관계를 되돌아 볼 필요하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우리는 다롄에 있었다. <중략>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일했던 남만주철도가 없어졌다. p158 종종 자신의 어린 시절, 중국, 러시아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들려주는 사노 요코. 일본의 어떤 평론가는 그녀의 그런 어린시절을 언급하며 전쟁 후 대륙에서 철수해온 과거를 가진 사노의 고독감을 말한다. 그녀가 선명한 자유를 누리는 이유는 일본에서의 생활이 여행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도. 책은 인류의 지혜로 가득하지만 그와 함께 독도 포함되어 있다. 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그 독에 영혼을 빨리고 있는 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지 말도록. 가까이 하다보면 입맛을 다시며 꿀꺽하고 싶은 것이 잔뜩 보이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니까. 읽고 싶겠지만. p55.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 책의 독에 영혼을 빨리지 말라고 하면서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사노 요코. (본인은 그렇게 책을 읽었으면서 말이지.) 이미 당신의 책에 중독된 듯 한데 어쩌죠.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전 하지말라면 더 해보고 싶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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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노 요코는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1971년 『염소의 이사』를 펴내며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주요 그림책으로 『100만 번 산 고양이』 『아저씨의 우산』 『내 모자』 등이 있고,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시즈코 상』 등의 수필을 썼다. 『내 모자』로 고단샤 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수필집『하나님도 부처님도 없다』로 고바야시 히데오상을 받았다. 2010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태어날 때부터 활자를 좋아했을 것이라는 저자는 굉장한 독서가였다. 그 당시 화장실 휴지는 신문을 재생하여 만들었는데, 거기서 희미한 활자를 발견하고 읽는 기쁨을 느낄 정도였다. 이미 중학교 때 안나 카레니나를 만나고 나쓰메 소세키를 읽었다고 한다. 소세키의 책을 읽을 때는 독서대 앞에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아서 읽었단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다. 모르는 게 많다고.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여 교양이 쌓이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너무 어려서 읽은 책은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시간낭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다 맞는 말이겠는가. 어릴 적부터 읽은 내공으로 끊임없이 독서할 수 있는 힘이 생겼겠지. 별다른 취미가 없고 너무 게을러서 운동이나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책만 읽었다고 했다. 어릴 적에는 동생을 업고, 결혼해서는 아이를 업고, 요리할 때도, 전철에서도. 그저 학생들이 공부할 때 음악을 들으며 하듯이 자신의 책읽기도 습관화된 배경음악 같은 것이었다고 토로한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에서 만남은 쉽지만, 관계 청산에는 10년의 세월을 허비했다는 그녀의 삶이 결코 녹록치 않았음이 보인다. 항상 허약했던 오빠의 이른 죽음이 엄마와의 관계를 힘들게 했을까. 그 엄마가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의 해제에서 그나마 애증이 풀어졌다는 대목을 보면 참으로 큰 아픔이었겠다. 아들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너무 깊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몹쓸 엄마였다는 고백에서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공감한다. 자녀는 자녀 나름대로의 생각과 뜻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는 순간 관계는 어긋날 수도 있으니.
이런 일화도 있었다. 얼마 전 <왈칵 마음이 쏟아지는 날>을 읽었었다. 그녀는 그 저자 가와이 하야오와 오타루 시의 카바레 ‘현대’에 갔던 이야기를 해 준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카바레’인 이곳은 60세가 넘은 호스티스, 춤추는 할아버지들, 밴드 멤버도 모두 노인이었다. 그것을 보고 ‘마음’ 전문가 가와이 하야오는 그저 아이처럼 놀라기만 했다. 어설픈 인텔리처럼 아는 척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않는 그의 넓고 깊은 인격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무엇에든 놀라는’ 것은 ‘젊음’의 유지에 필요한 것이라 한다. 별로 놀랄만한 일이나, 즐거운 일이 없다고 의기소침해 하는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후회는 남을 테니까. 이 책 <문제가 있습니다> 처럼 문제가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문제 있는 삶을 살아간다. 어쨌든 우리의 삶이 한정돼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선은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삶에 따를 일이다.
죽을 때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고 생각되면 원통할 것이다. 짧은 일생이리라. 하지만 빈둥빈둥 느긋하게 산 사람은 죽을 때 ‘아, 충분히 살았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본문 중에서-
그렇다고 모두 빈둥빈둥 느긋하게 살 수는 없다. 바쁜 가운데 잠시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신의 일상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조금은 만족스런 삶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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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기피증까지는 아니지만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해서 웬만하면 가급적이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려 한다. 만나더라도 최소한으로 줄이려 한다. 하루에 한 번씩. 일하러 가는 곳에서만 잠깐 어울리고 돌아온다. 그게 어울린다고 말 못하겠는데 각자 일을 하느라 바쁘다. 바쁘더라도 잠깐씩 시간이 주어지면 수다 정도는 떨고 온다. 뉴스에서 본 웃긴 장면을 말하기도 하고 (요즘은 예능이 뉴스를 이기지 못한다, 뉴스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휴일을 이용하여 쇼핑한 품목들을 나열하고 어울린다, 예쁘다 말해준다. 1일 적당량의 이야기가 초과돼서 입술이 마르기도 하는데 그런 날이면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벽을 바라본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굳이 만나서 어울리지 않더라도 무지갯빛 케이크처럼 다채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것도 안다. 책을 읽으러 카페에 가서 앉아 있으면 책에 집중하기보다 옆 사람이 떠드는 소리에 더 신경이 쓰인다. 책장은 넘기지도 않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얼마 올랐다, 임신한 부인이 너무 상전처럼 군다. 음, 쩨쩨하고 볼 품 없는 사람이로군. 말의 시작과 중간과 끝이 욕이다. 사노 요코의 『문제가 있습니다』를 읽으려고 갔는데 문제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말았다. 사노 요코의 산문집들을 읽으면 이 사람과는 어울리고 싶다, 같이 옷 구경 가고 싶다 (굉장히 친하지 않고서야 쇼핑을 같이 가기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가 산 재규어를 타고 놀러 가고 싶다는 한마디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천방지축 장난꾸러기지만 기발하게 웃기고 천진난만하게 귀여운 그의 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텔레비전을 너무 봐서 밖으로 내놨는데 선을 연결해서 밖에서 보고 있다는 그의 아들. 유치원에 가면 여자아이들이 달려 들어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는데 그 틈에 끼지는 못하더라도 멀리서 보고는 싶다.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에 빠져 1년 넘게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섭렵했다는 사노 요코 씨. 두껍고 어려운 책들은 읽어도 이해 못해 자신이 읽는 책들은 배경 음악 같은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해버리는 요코 씨. '아무것도 몰라도 좋다는 걸 알았고 모든 걸 아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아는 것에만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명문장이다. 이토록 단순한 삶의 진리를 나와 통하는 삶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다니. 그런데 그는 이 세상에 없다. 만나서 낄낄대고 드라마 얘기하고 지금 읽고 있는 책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천상 나는 친구가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한다. 알아도 안다고 말한다. 모르는데 억지로 아는 척하지 않고 안다고 드세게 잘난 척하지 않는다. 아흔이 넘은 치매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에게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라고 묻는다. 정신이 흐릿해진 요코 씨의 어머니는 말한다. 의외로 근처에 있다, 고. '시시한 책을 만나면 얼마나 시시한지 알아보려고 끝까지 읽었다. 읽으면서 욕하는 게 좋았다. 훌륭한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얻고 싶어 억지로 빌려주었다. 그래서 훌륭한 책은 내 수중에 없다. 누구한테 빌려줬는지 잊어먹기 때문이다.' 한 번 잡은 책은 끝까지 읽는다.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멀티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그냥 끝까지 읽는다. 그 책이 재밌으면 기분 좋고 더럽게 재미없으면 기분 나쁘다. 나쁜 채로 읽는다. 왜 나쁜지 읽다가 까먹기도 한다. 요코 씨와 나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얼마 전에 읽은 로렌스 블록의 소설들을 마구잡이로 권했다. 문장이 길어지거나 우리말인데도 읽고 있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들이 몇 개씩 나오는 글들을 읽는 것은 따분한 일이어서 어렵게 느껴지는 책은 읽을 시도도 하지 않는다.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일에만 반응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여행할 땐 아무튼 짐을 줄이려고 속옷은 낡은 것을 챙겨 가 한 번 입고 버리고 책은 읽은 만큼 찢어 버린다.' 이 문장을 읽다가 문제가 좀 더 많은 사람 옆에서 크게 웃어 버렸다. 만나도 언어가 달라 수다를 떨 수는 없겠지만 요코 씨가 쓴 글들이 훌륭한 번역가를 통해 한국말로 저를 웃겨 주었어요. 의외로 근처에 계시죠?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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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고민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할 일 많은 세상, 탈도 많고 이유도 많은 세상이다.
하나의 고민이 해결되어 좀 편해질만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걱정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저 멀리로 달아나 있고,
급한 일 끝내고 여유롭게 다가가 소원했던 안부를 전하고 마음을 전달하리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원수다. 움직이는 시곗바늘만큼 바쁘게 변하는 세상사에 그저 한숨만 나온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해법을 찾지만
그 일을 해결할 사람은 바로 문제를 만난 사람이 아닐까?
기분전환이 안되는 날에는 머리 회전을 잠시 쉬게 해줄 에세이를 읽는 습관이 있다.
작가이며 에세이스트인 사노 요코가 쓴 「문제가 있습니다.」를 읽으며 사람 사는 이야기는 누구나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누구에게서 태어날지 아무도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운명이다.
가지고 태어난 성질의 핵심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그게 더 큰 숙명인 지도 모른다.
나의 유년 시절에는 주의를 주는 부모님의 말씀에 납작 엎드렸던 기억이 있고,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나' 또한 내 부모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와 지내다 보면 아이를 야단치기도 했던 일.
기죽어 있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팠던 일이 떠오른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냐!!"
아이는 무엇 때문에 아버지께 야단을 맞았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어린 아기를 낳았는데, 급한 부모의 마음이 때로는 아이들 아이로 인정하지 않고
어른처럼 행동하고 판단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는지....
우리는 살아오면서 그리고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책은 위대한 스승임을 주입받았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배움의 자세를 지녀야 하며
우리가 미처 다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야 한다고 배웠다.
책은 인류의 지혜로 가득하지만 그와 함께 독도 포함되어 있다.
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그 독에 영혼을 빨리고 있는 것이다.
-p. 55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치매 진단으로 인해 우리의 삶과 정서는 새로운 국면에 처하고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남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치매라는 질환,
그 어느 누가 자신의 부모님이 치매로 고생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싶다.
노인문제가 대두되는 현대사회에는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결코 내 문제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즘 엄마는 ‘고마워’와 ‘미안해’라는 말을 홍수처럼 쏟아낸다
(엄마, 평생 그 말을 저축해뒀구나. 이제 일생을 마치기 전에 다 써버리려고 하는구나).
엄마 침대에 같이 누웠다. “엄마, 나 이제 지쳤어. 엄마도 지쳤지? 같이 천국에 갈까? 천국은 어디 있을까?”
엄마가 말했다. “그래? 의외로 근처에 있는 모양이야.”
-p. 97
예술과 신앙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밀어낸다. 예술이란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자아가 낳은 것이다.
신앙이란 자아를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예술은 거대한 진실과 거대한 거짓을 모두 품는다.
죽으면 인간성이 사라지지만, 표현된 것은 남는다.
재능이 크면 클수록 재능과 인격의 관계성은 옅어지는 것 같다.
-p. 119
요 근래에 읽은 책에서 배운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판단하고 선택한 일에는 최소한의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 소신 같은 거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모순이 있는 말이지만, 이 책 「문제가 있습니다」의 저자인 사노 요코처럼 혹시 후회할지라도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솔직하고 담백한 그녀의 일상의 모습을 부분부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 「문제가 있습니다.」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한 권 들고 시외로 나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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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의 에세이집 [문제가 있습니다]는 저자의 일상생활과 생각들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들을 묶어놓은 책이다. 외국인의 정서임에도 참 나와 닮았고, 고민하는 점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녀만의 시원하면서도 까칠한 대답을 통해 내가 고민하고 생각하던 것들을 다른 방향에서 답을 찾기도 했다. 책의 제목은 '문제가 있습니다'이지만, 책장에는 답이 함께 있어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
![]() <사는게 뭐라고> <죽는게 뭐라고> 시크한 할머니, 사노요코 !! <문제가 있습니다>에서 그녀는 일생을 두고 우리가 맞닥들일 여러 소소한 상황들에 대해 세밀한 눈으로 이야기들을 풀어준답니다. 어찌보면 사소한 일이지 싶은 소재들을 참 감칠맛나게 풀어내는 사노요코. 제목은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문제가 없는 것 같은 풀이들.. 문제가 있다고 제목에서 이야기하지만, 그녀도 사실은 문제가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에세이. 유년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시기였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가족은 중국에서 지내야했고, 풍족하지 않았고, 힘들었습니다. 사노요코는 어릴때부터 씩씩하고 건강했습니다. 오빠가 몸이 약해서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하여 그래서.. 차라리 본인이 좀 아팠으면 싶기도했고. 그래서인지.. 문학에서 너무 강한 인물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록,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닌 독자이지만서도,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보다보면,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누구나에게 자기 국가는 소중한 것이고, 시기를 지나는 이들은 힘듭니다. 침범을 했건, 침법을 당했건.. 힘듭니다. 그렇다면 왜.. 대체 왜.. 하는 질문이 남고야 맙니다. 잘 모른다고,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그녀는 에세이 내내 그리 이야기하지만, 그녀가 이야기하는 문학들, 다른 취미가 없어서 독서에 빠져들었다 하는데.. 읽었던 책들을 설명하고, 작품들과 연관되었던 이들을 설명하는 글들에.. 작가가 본인을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속셈에, 그러지 마세요! ![]() 산다는 건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그러니, 걱정일랑 하지 말고 오늘도 느긋하고 박력 있게! 시크한 할머니의 에세이, 사노 요코는, 모두에 참 시크했습니다.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시간에 대해서도 말이죠. 하지만, 그 시크함 속에 심지가 뭔가 폭 박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단수인 할머니지 말입니다. 솔직하게 그런데 가끔은 삐딱하게.. 어느 시기이건, 어느 상황이었건, 본인 인생의 주인인 할머니의 자유로움. 부드러운 듯 박력있는 일본 에세이였다 싶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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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의 冊이야기 2017-030
【 문제가 있습니다 】 : 때론 솔직하게 때론 삐딱하게 사노 요코의 일상탐구 _사노 요코 저/이수미 역 | 샘터 | 원제 : 問題があります
“천국은 의외로 근처에 있는 것 같아.”
1. 책의 제목만 보면 ‘자기계발서’같다. 문제가 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러나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매우 진솔하고 때로는 톡톡 튀는 감성에세이집이다.
2. 이 책의 저자 사노 요코는 일본의 작가, 에세이스트, 그림책 작가로 소개된다. 디자인을 전공한 작가는 일본 그림책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100만 번 산 고양이』를 비롯해 수많은 그림책과 창작집, 에세이집을 발표했다.
3. “누구에게서 태어날지 아무도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운명이다. 가지고 태어난 성질의 핵심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그게 더 큰 숙명인지도 모른다.” 일본인 부모가 이주해 살고 있던 중국 베이징에서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저자는 부모, 아버지의 형제, 남매, 그녀의 가족들에 대해 진솔하다 못해 대단한 솔직함으로 그들을 묘사한다.
4. 저자가 중국에 있는 동안 1945년 8월 15일을 맞이한다. 단편적이나마 그 무렵 중국민들과 일본인들의 뒤바뀐 현실을 어린이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도 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의 가족들은 일본으로 돌아온다.
5. ‘어머니에 대하여, 아버지에 대하여’ 라는 글을 읽다보면, 가족관계에 대해 이렇게까지 쓴 글은 처음 읽는듯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열한 명의 형제 중 일곱째라고 한다. 그녀의 작은 아버지 말에 의하면 열한 명의 형제자매는 선인과 악인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녀의 표현이 이어진다. “장남은 악인이고, 장녀도 심술궂었으며, 아버지를 시골에서 데리고 간 둘째 형도 성격이 더러웠다고 한다. 아버지도 선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웃집으로 시집 간 둘째 딸은 부처 같은 사람이었다. 앗짱의 엄마다. 앗짱의 엄마는 정말 상냥했다.”
6. 작가의 책 읽기 이력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아마 태어날 때부터 활자를 좋아했을 것이다. 신문지를 재활용하여 화장실 휴지를 만들던 시절, 양다리로 버티고 앉아 지워지지 않고 남은 활자를 열심히 찾곤 했다.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랬다.” 시골에 살 때, 학교에서 집에 가려면 산길을 홀로 50분 정도 걸어야했는데, 매일 도서관에서 빌린 위인전 같은 책을 읽으며 하교했다고 한다. 강한 자외선에 피로해진 눈은 일찌감치 시력약화를 주기도 했다. 중학생이 된 후로는 전철을 타고 통학하면서 나쓰메 소세키를 읽었다. 소화시키기 힘들었단다. 그렇게 그녀의 책 읽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말년에 독서의 무위성을 이야기한다. 물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은 책을 읽어도 다음 날이면 까맣게 잊는다.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다. 옛날에 읽은 책도 다 잊었다. 멍청한 노인이 되어버렸다. 독서는 쓸데없었다. 독서만 좋아했던 내 인생도 헛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지나간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
7. 책의 제목으로 쓰인 ‘문제가 있습니다’는 베이징에서 만난 러시아 사람, 러시아 군인(로스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후, 지인의 집에 일본 문학을 공부하러 온 러시아 청년이야기로 이어진다.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그는 대화할 때 늘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고 한다. “문제가 있습니다. 팩스 용지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기름이 없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볼펜이 없습니다.” 작가는 지인과 함께 너무 뻔뻔스러운 게 아니냐고 흉을 봤다고 한다.
8. 작가의 엄마는 향년 93세의 생을 누렸다. 죽기까지 10년 이상 치매였다고 한다. 이미 작가 나이 일흔에, 평생 불화를 겪는 자신과 엄마의 관계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에세이 〈시즈코상〉을 출간했다. “엄마가 병에 걸리기 전엔 나와 엄마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죽은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다.” “요즘 엄마는 ‘고마워’와 ‘미안해’라는 말을 홍수처럼 쏟아낸다.” (엄마, 평생 그 말을 저축해뒀구나. 이제 일생을 마치기 전에 다 써버리려 하는구나) 치매에 걸린 엄마. 모녀가 나누는 대화에 마음이 짠해진다. 엄마 침대에 같이 누웠다. “엄마, 나 이제 지쳤어. 엄마도 지쳤지? 같이 천국에 갈까? 천국은 어디 있을까? 엄마가 말했다. ‘그래! 의외로 근처에 있는 모양이야 (있는 것 같아)’”
#문제가있습니다 #사노요코 #일상탐구 #샘터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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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을 때에 꾸밈없이 솔직담백한 것이 좋다. '나도 이런 생각 해본적 있어'라든가, 어디 이야기하기 구차해서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한 이야기를 누군가의 글에서 읽었을 때 소리없이 엄지척 해줄 수 있는 그런 글이 좋다. 사노 요코의《문제가 있습니다》는 속시원한 에세이다. 나는 과연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면서, 저자의 솔직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사노 요코.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2010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세하게 살피는 자세가 드러나는 사노 씨 글의 그 세세한 부분이 좋다. 하고 싶은 말 사이에 끼어 있는, 리듬을 주기 위해 넣은 듯한 그 세세한 부분이 내겐 거의 본체다. (270쪽 해설 中 나가시마 유)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뉜다. 하지만 장의 나뉨은 별 의미가 없다.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 '의외로 근처에…', '책 처리법', '절규하지 않는 '절규'', '냉이는 저리 비켜', '고양이한테 금화', '나는 몹쓸 엄마였다' 등의 글을 만나볼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그에 대한 생각을 담백하게 표현해냈다.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노 요코의 에세이가 더 마음속에 파고든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저릿한 무언가를 느낀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보는 가족이 아니라, 현실의 가족을 맞닥뜨리는 느낌이다. 생생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재작년 여름, 향년 93세의 나이로 엄마가 죽었다. 죽기까지 10년 이상 치매였다. 엄마가 병에 걸리기 전엔 나와 엄마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죽은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다. 치매란 생과 사를 잇는 다리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는 점점 다른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걸 인격이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엄마가 정신을 놓은 후 우리는 평생의 갈등과 화해했다. (40쪽)
저자는 말로 내뱉기는 민망한 무언가를 시원하게 풀어낸다. 독서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고, 풍족하게 사는 누군가가 생각없이 하는 행동에 대해 속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내비쳐질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진솔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저자의 글에 믿음이 간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민망해하며, 글을 읽어나간다. 책은 인류의 지혜로 가득하지만 그와 함께 독도 포함되어 있다. 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그 독에 영혼을 빨리고 있는 것이다. (55쪽) 어느 날 그 여자가 도시락을 열자마자 "엄마는 참. 내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하고 닭고기 오븐구이를 쓰레기통에 던졌을 때 나는 달려가 주워 먹고 싶었다. (153쪽)
절규하지 않는 '절규'라는 글에서는 저자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해본다. 저자는 20년쯤 전에 자율신경 실조증이라고 의사가 이름 붙인 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귀신 들렸다거나 미쳤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근시인데도 멀리 있는 물체의 윤곽이 또렷이 보였다. 가을 산의 수많은 단풍잎이 한 장 한 장 보이면 정말 피로하다. 피로하지만 아름답다.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는 경험한 적도 없으리라. 노송나무가 있었다. 그 노송나무를 봤을 때 '앗, 고흐는 노송나무의 굴곡을 강조하여 그린 게 아니라 자기 눈에 그렇게 보였던 거다'라고 깨달았다. 노송나무가 내 눈에 고흐가 그린 노송나무와 똑같이 보였다. (184쪽)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뭉크의 <절규>. 그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제목은 <절규>인데 절규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포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몸속에 묻어두기 위해 목소리를 외계에서 빨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186쪽)
산다는 건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그러니, 걱정일랑 하지 말고 오늘도 느긋하고 박력 있게! (책뒷표지 中) 이 책을 읽다보면 사는 것이 거창하지 않게 느껴진다. 다 자신만의 소소한 일상이 누적되어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 때 그 때의 생각을 놓치지 않고 글로 잡아두는 것,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 무언가 생각하게 만든다면 커다란 의미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이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들려주는 것으로 오히려 커다란 의미를 던져준다. 세상 일이 주는 문제의 크기는 그날 나의 마음에 있지 않겠는가. 저자의 글을 읽으며 힘을 얻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드는 책이다. 솔직담백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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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신청글을 쓰고 리뷰어클럽 서평단에서 책을 받아보았다.
이변은 없었다. 매사에 까칠하고 솔직하게 '문제가 있다'고 투덜대는 글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는 게 뭐라고"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와 시리즈라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문체도 내용도 매우 비슷하다. 저자가 스스로 이야기하듯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인지 다른 책에서 읽었던 에피소드가 이 책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중국에 있던 전쟁 중과 전쟁 후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가난'했던 이야기가 주구장창 나온다. 치매 걸린 엄마나 '자손(아들)'에 대한 이야기, 외딴 곳에 마련한 집에 대한 이야기도 전작에 비해서는 드물지만 등장한다.
그 와중에 저자가 이번 책에서 새롭게 다룬 소재라면 '독서'에 대한 내용이 있다. 다독하지만 마치 배경 음악 같아서 다 잊어버리고 만다는 사노 요코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장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는' 독서 방식이 묘하게 공감되었다. 본인은 '별다른 취미 생활이 없어서' 그렇게 읽어댔고 지금도 뒹굴거리며 읽을 수 있는 할머니라서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이해도 못하고 의미 없이 읽느라 청춘이 지나가버린 게 아쉽다며 소녀들에게는 책 읽지 말고 즐기라고 말하는 그다.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읽기만 할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저자는 책의 한 장을 할애하여 여러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 중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http://blog.yes24.com/document/57584 때문에 알게 된 (아동)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가 이 책에도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둘이 대담하고 책을 출간했을 때는 1996년, 즉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큼직한 두 사건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살포 사건과 한신대지진이 있던 다음 해이다. 그때를 계기로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옴진리교 피, 가해자와의 인터뷰를 묶은 책)"를 내기도 하고 소설에서도 좀 더 사회에 참여하는 내용을 담는 등 스스로 '디태치먼트'에서 '커미트먼트'로 작가이자 인간으로서 삶의 방향을 변모시키는 계기로 삼는다. 그런 변화의 계기에서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와 깊이 대담했던 경험은 분명 하루키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테다. 이 책 "문제가 있습니다"에서 사노 요코 역시 가와이 하야오를 극찬하고 있다. 평범하지 않고, 진정한 어른이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꼰대처럼 '내가 다 알아, 내가 다 해봤기 때문이야'라며 주변 경험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소한 부분에도 크게 놀랄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회상한다. 아마도 이 글은 가와이 하야오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쓴 글인 듯해 보였다.
올 겨울에는 유독 일본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기분이다. 일본 탐방 때 우치다 타츠루 신간 "어른 없는 사회"를 굳이 들고 가서 생생하게 읽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 본인은 '어른'인지, 스승으로 모실만 한 분인지 검증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테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몸에 배 있으시고 잘 웃으시고 무릎 꿇고 책에 사인을 해주시던 선생님. 갑자기 그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책 아래 내용에 '노가쿠(能樂)'가 나오기 때문이다.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도 노가쿠를 하신다고 들었다. 개풍관에서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의 언어를 듣고 모습을 직접 보면서 공간을 소중히 여기시고 몸을 어떻게 쓸지를 성찰하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런 분이 노가쿠를 즐겨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처럼 해맑고 건강해보이셨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강렬하게 인상이 남은 부분은 너무나도 솔직하게 '똥' 이야기를 쓴 부분이다. 원래 자신은 배변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사람이라 자신의 똥으로 히라가나 50음도 쓰기에 도전했던 적도 있다느니, 아프고 나서부터 '이상한 똥'을 배출하기 시작했다느니, 문득 똥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도 디테일하게 스스로 기뻐하면서 하고 있다. 사소한 일에도 놀랄 줄 아는 어른 가와이 하야오 선생을 멋있다고 생각했듯 자신도 어떤 사람이고 싶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를 인텔리라 여기며 잘난 척하는 작가는 도저히 쓰지 않을 내용인데, 종이 책에서 이런 의외의 글을 만날 때 스릴러의 반전을 보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어디 잡지에 가벼운 심정으로 기고한 수필 같은 느낌이다. 읽다 보면 한 가지 불편한 부분은 블로그 포스팅처럼 한 문장 한 문장마다 계속 줄바꿈을 하는 글들이 있다는 점이다. 문단이란 생각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종이에 얹는 글은 '엔터'를 그렇게 남발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1인이라 읽는 내내 안절부절 못했다. 다시 말하면 사노 요코 스스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 한 편 안에서도 앞과 뒤 문맥이 다른 부분이 있을 정도로 계획적인 구조와 거리가 먼 글쓰기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