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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저자의『벽과 담쟁이』는 모임을 통해 선물로 받은 책이다. 저자의 책은 네 권째 만났다. 처음 만난 작품은 『흙의 문화를 꿈꾸며』이고 이어서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과『고래가 바다로 간 이유』를 읽었다. 네 번째 만난 이 책에서 받은 인상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옛 친구를 만나듯 편안한 책이다. 저자와 직접적인 대면은 거의 없었으나 실상은 자주 만난 사이다. 저자는 자신이 그날그날 느낀 마음을 담아 지인들에게 메일로 보냈는데, 나도 그 글을 받아보는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포함해서 앞의 세 권은 그렇게 매일같이 저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글을 엮은 것들이다.
저자의 얼굴은 잘 모르고, 인품 역시 알지 못하지만 글은 그 마음의 얼굴이라고 하지 않는가? 매일같이 만나서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는 미운정 고운정이 들게 마련이다. 저자의 글은 내게 있어서 그렇다. 1여 년 동안 천여 편의 글을 읽었고, 그것을 다듬어서 엮은 책을 세 권이나 읽었다. 더구나 글로서 만나는 지인과 얼굴을 붉힐 일이 있을 수 없으니 저자와 쌓인 정분에 미운정은 없다. 이 책이 편안하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서 편안하게 읽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저자의 글은 한 이야기가 3쪽을 넘지 않는다. 한 자리에서 두세 시간을 읽을 수도 있지만, 여유가 있을 때마다 5분 정도 시간을 내서 짬짬이 읽을 수도 있다. 글마다 주제와 소재가 다르니 연이어 읽지 않아도 되지 부담이 전혀 없다.
저자의 글이 편안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인터넷문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문체란 산문을 이어 쓰지 않고 줄바꿈을 자주하여 마치 운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이다. 이것은 모니터를 통해 읽는 독자의 불편함을 고려한 배열로 혜민 스님 등의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줄바꿈을 자주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바꾸는 것이 아니다. 문장 성분의 구성이나 운율을 고려하여 독자가 쉴 곳에서 줄을 바꾸니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10여 년 동안 이런 형식의 글을 쓴 저자이다. 때로는 해박한 한문지식이나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온 무거운 주제도 있으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인터넷문체와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고전의 깊이와 현대의 멋을 구비한 책이다. 저자는 한문을 전공한 후 한문교사로 교단에 섰다가 지금은 컴퓨터로 전과한 후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고전이야 한문학을 연구하면서 자연히 익힌 것일 것이고, 현대에 대한 감각은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교사가 되기 위해 연수를 하면서 쌓였을 것이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한문교사가 국어교사로 전과를 한 경우는 더러 보았지만, 컴퓨터교사로 전과를 한 경우는 저자가 유일하다. 한문학을 통해 얻은 고전의 지혜와 컴퓨터를 통해 얻은 현대의 문명은 저자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어서 이 책의 가치를 더해주는 듯하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읽힐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나의 편견인지는 몰라도 과거와 현대를 함께 체험한 세대의 독자에게 더 큰 공감을 주지 않을까 싶다. 젊은 세대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