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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에 관련된 책들이 요즘 많이 눈에 띕니다. 이 책은 그림과 함께 크지 않은 사이즈로 아이들이 보기에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이 책은 신사임당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 중에 그녀의 예술과 관련된 부분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이런 부분들을 더 알고 싶거나 궁금해했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네요.
신사임당이 태어난 시대는 여성이 학문적 지원을 받거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 분위기였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약이 많았던 시대였는데 신사임당은 그런 시대에 태어났으면서도 할아버지 덕분에 여성도 배워야한다며 글공부를 할 수 있었답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그녀의 그림 실력은 두각을 나타내었죠.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데도 주변의 자연이나 곤충들을 그리는 실력이 무척 뛰어났답니다.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일화들은 잘 알려져 있는대로 곤충들이 실제로 그림을 착각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오죠.
기존의 책들이 신사임당이 이이의 어머니로서 어떠했는지 그리고 남편 이원수를 어떻게 내조했는지 등의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많이 다루었다면 이 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그녀가 예술활동을 늘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것과 풀과 벌레를 어릴 때부터 관찰하며 그림을 그려나간 그녀의 작품 세계들에 초점이 맞춰있어 아이에게는 색다른 내용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책 내용에는 현모양처로서의 삶도 다루고 있지만 그래도 예술에 좀 더 눈길이 가네요.
초등학생인 딸 아이가 흥미롭게 보는 것을 보니 아이들이 보기에 어렵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들이 눈에 더 들어오네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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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사임당의 삶에 대해서 청소년의 수준에 맞게 쓰여진 책입니다. 신사임당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책이기보다는 어린 시절에
제가 읽었던 위인전 속에 등장하는 신사임당의 삶과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권선징악적인 요소를 품고 있으며, 남편 이원수와
시어머니 홍씨 부인을 모시고 살았던 이야기, 조선의 대유학자 율곡 이이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신명화의 둘째 딸로 태어난
신사임당,신사임당은 이원수와 혼례 후 첫째 이선은 1524년에 태어났으며, 작은 신사임당이라 부르는 매창, 그리고 다섯째 율곡
이이는 1536년 중종 31년에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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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은 여성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던 조선시대에 태어나,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숨긴 채 집 안에 갇려 살아야 했습니다. 높은 벼슬에 오를수도 없었고, 남편과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삶을 마음껏 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가지 전해지는 신사임당의 그림과 시와 글씨에는 진한 감동과 울림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 '글쓴이의 말' 중에서
이 시대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신사임당의 열정
신사임당, 그녀는 남성 중심의 조선 시대에 태어나 어릴 적부터 글공부와 그림 그리기에 소질을 보였지만, 서당에서의 정식 교육 대신 집안에서 살림에 필요한 것들만 배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꾸준히 그림과 글을 훈련하며 재능을 갈고 닦았다. 나아가 그녀의 재능과 열정은 고스란히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져서 역사상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위대한 인물로 남을 수 있었다.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 사이의 둘째 딸로 태어난 인선(신사임당)은 일찌기 생원이었던 외할아버지 이사온의 글지도로 <천자문千字文>을 모두 깨우치고 <사자소학四字小學>마저 쉽게 독파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런 영특함을 보면서 외할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점이 못내 아쉬워 했다고 한다.
흔히 결혼한 여성을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혼한 여인은 친정에서 남편과 함께 사는 풍습이 흔했다. 이 풍습은 조선 때에도 어느 정도 영향이 남아 있었다. 사임당이 어린 시절을 와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결혼 풍습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남편 이원수와 결혼한 사임당이 결혼한 이후에도 친정에 머물 수 있었기에 그녀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펼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에 시댁에서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그런 평범한 아낙네였다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는 그런 창작 활동이 아마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남편이 아내 사임당의 그런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펼칠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이 신사임당의 탄생 이유가 아닐까 싶다.
외할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다
인선은 글공부, 그림 그리기, 바느질하기 등도 좋았지만, 밖에 나가서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다. 산과 들로 놀러 나가고도 싶었고, 사내아이들처럼 글공부를 하러 서당에 가고도 싶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여자가 집 밖에 함부로 나갈 수 없었고, 바깥에 나갈 일이 있을 때는 장옷이나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또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여 남성과 여성을 어렸을 때부터 구별함으로써 함께 어울려 놀 수도 없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서당에 가서 교육을 받는 대신 집 안에서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배워야 했다.
이러한 시대적 관습이 오히려 그녀의 재능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녀의 서당은 외할아버지가 거처하는 방이었고, 그녀가 뛰어놀 수 있는 바깥 세상은 오죽烏竹, 즉 검은 대나무가 숲을 이룬 뒤뜰이었다. 여기서 만나는 꽃, 나무, 풀, 새, 곤충 등은 그녀의 훌륭한 벗이었다. 신사임당의 유명한 조충도鳥蟲圖도 이런 배경 하에 탄생할 수 있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사임당의 그림 선생이 되다
어릴 적 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한양에서 살았다. 사임당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친정어머니의 병환을 치료할 목적으로 시댁을 떠나 친정인 강릉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신명화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기 위해 강릉을 찾았다. 한번은 그림 그리기에 온통 정신이 팔려 아버지가 오는 줄로 모르는 사임당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땅바닥에 그린 그림은 사마귀였다. 정말 잘 그렸다. 딸의 뛰어난 재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양으로 다시 올라가야 할 날이 다가오자 신명화는 사임당에게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그려보도록 했다. 이는 외할아버지 방에 걸려 있던 것인데, 안평 대군이 신선이 사는 아름답고 신비한 도원을 여행하는 꿈을 꾸고 나서, 최고의 산수화가인 안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리게 한 그림이었다. 딸 사임당에게 붓과 종이를 건네주고 그는 곁에서 조용히 먹을 갈았다.
"아, 아버지. 역시 대가의 그림이라 그런지 따라 그리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치마폭에 포도를 그리다
사임당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사임당의 붓이 치마폭 위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감탄을 쏟아 냈다. 사람들은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이 광경을 입을 쩍 벌리고 서서 구경했다. 어느새 음식 자국이 남아 지저분하던 치마폭 위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탱글탱글한 포도송이가 달린 포도 덩굴이 뻗어 있었다.
시어머니를 봉양하다
현룡(율곡 이이)이 여섯 살 때, 한양의 시어머니 홍씨 부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나이가 들어 살림하기가 어려우니 돌아와서 며느리 노릇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그녀는 여전히 병환 중인 친정어머니를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간의 시어머니 배려를 생각하면 바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대관령을 넘어 한양으로 향했다. 이때 남긴 시 한 수를 살펴보자.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이후 사임당은 상경한 다음 해에 막내아들 우를 낳았다. 서른아홉의 노산 탓에 몸이 몹시 쇠약해졌다. 한양 생활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가난한 형편이라 하인 한 명 없이 집안의 대소사를 홀로 처리해야만 했다. 남편 이원수는 다정다감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며 음주를 즐기는 사람이라 집안은 아예 돌보지 않았다. 그녀의 건강은 더욱 나빠져갔다. 남편은 아침에 나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귀가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름대로 벼슬을 구걸하려고 당시 우의정인 당숙집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이에 남편의 행동이 몹시 걱정이 되어 한 마디 한다. 착한 심성의 남편도 이를 감사하게 수용한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는다면 그 힘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눈앞의 벼슬에 눈이 멀어 큰 실수를 할 뻔 했소. 부인의 말이 맞소"
율곡의 장원급제, 남편의 벼슬
현룡이 열세 살이 되던 해, 아이로는 유일하게 과거장에 들어섰다. 정성껏 쓴 답안은 장원 급제자로 발표되었다. 소문이 삽시간에 온 마을로 전해졌다. 한편, 과거에서 번번히 낙방해 벼술자리에 오르지도 못한 남편 이원수는 어린 아들의 급제가 기특하고도 뿌듯했다. 2년 후, 이런 남편에게도 희소식이 생겼다. 수운판관水運判官에 임명된 것이다. 이는 지방에서 한양으로 세곡을 실어 오는 일이었다. 이때가 사임당은 마흔일곱, 이원수는 쉰살이었다.
두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남편과 아들이 함께 떠나자 집은 너무나도 적막했다. 그녀의 건강은 날로 안좋아졌다. 그녀는 자리에 누워 꼼짝 못하고 앓은 지 사흘리 지났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그녀는 딸을 불렀다. 곁에는 매창이 간호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모두 호출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녀는 어두운 밤으로 빠져들었다. 마른여덟의 나이였다. 일곱 명의 아이들을 모두 어질고 똑똑하게 키움으로써 그녀는 후세 어머니의 롤모델이 되었다.
"항상 겸손하고, 옳지 않은 길은 쳐다보지도 말고 가지도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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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창고]예술을 사랑한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
언제 어떻게 배웠던것이였는지 그 기억은 가물가물 한데 오만원권에 초상이 실려있는 신사임당이
율고이이의 어머니라는 사실과 그림재주가 뛰어난 현모양처의 표본이라는 사실은 언제부터 기억하고 있었던 것인지
내머리속에 콕 박혀있네요..... 때마침 요즘 티비에서 이영애의 신사임당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되고 있지요~
호기심 가득해서 눈에 익숙한 인물이 예쁜 영상과함께 신사임당의 어린시절이야기 까지 나오니 진짜 신사임당의 이야기의
궁즘증이 점점더 깊어져 이책이 보고 싶어지게 되었어요~~
작은 사이즈에 보라색이 차분한 인상적인 표지 이네요..인자한 미소가 왠지 마음을 편하게 해주구요.
아래와같이 작은 이야기로 구분하여 신사임당의 이야기가 시작되요.
신사임당의 이름이 '인선' 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신사임당이
이름인줄 알고 있었어요...
태임은 문왕이 배속에 있을때부터 임금이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쳤다. 또한 워낙 성품이 단정하고 성실하여,
눈으로는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색깔을 보지 않았고, 귀로는 천하고 교양 없는 소리를 듣지않았으며, 입으로는 겸손하지 않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문왕을 훌륭한 임금으로 길러낸 태임의 정성과가르침을 읽고 '태임을 본받는다' 라는 의미인
'사임당' 이라는 호를 지어었어요.
어린 인선은 모르는것이 있어도 스스로 충분히 생각해 본 뒤에 잘 기억해두었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며
반드시 궁금증을 해결하는 아이였어요.
잔치집에서 치마자락에 음식을 쏟아 곤란해하던 아낙에게 치마를 벗으라하여 얼룩을 이용해 포도송이를 그려넣었어요.
사임당의 포도 그림은 '안견 다음간다'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어요. 치마폭 위의 포도 그림이 사임당의 그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사람이 금방 나타날 정도로요.
삽화가 참 사실적이고 재미있네요.
사임당은 서른셋의 나이에 검은 용 의 꿈을 꾸고 아들을 낳았어요..
남편 이원수는 '현룡'이라는 아기 이름을 지었어요. 이아이가 조선의 대유학자 율곡 이이 랍니다..
어리시절에는 '현룡'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아버지 이원수의 고향인 파주 율곡리의 경치에 반해 스스로 호를'율곡'으로 지었다고 해요.
놀기만을 좋아하여 집안 형편은 점점 기울어져 갔어요. 힘겨운 나날이 거듭될수록 사임당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고, 친정어머니가
그리워 꼬박 밤을 새우며 시를 쓰기도 했다고 해요..
어머님 그리워
산 첩첩 내 고향 천 리 이건만
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옆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흩어질락 모일락
고깃배들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릉 길 다시 밟아 가
색동옷 입고 어머니 슬하에서 바느질할꼬.
사임당의 쓸쓸함과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네요...
사임당은 집안일에 치여 피곤하고 지쳐도 늘 종이와 붓, 먹과 벼루를 가까이하며 학문과 예술에서 손을 놓치 않았고 ,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이런 사임당의 모습은 아이들이 학문을 닦고 각자의 재능을 키우는 데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어요.
사임당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저마다 사임당의 모습이 남아 있었어요..
맏딸 매창은 그림 솜씨가 뛰어났으며, 행실이 바르고 반듯했다. 이이가 나랏일을 의논할 만큼 존경해 마지않는 훌륭한 학자이기도 했다. 둘째 아들 번은 평생 과거를 보지않고 학문만 닦은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였으며, 막내 아들 우는 명필로, 또 거문고를 잘 타서 거문과 명인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이이가 조선 시대 최고의 유학자가 되었을 때에 사임당은 이이 같은 훌륭한 사람을 교육시킨 현명하고 훌륭한 어머니의 본보기로 다시 한번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며 기억되었다.
사임당은 일곱 명의 아이이드을 모두 어질고 총명하게 키워 냄으로써 어릴 때부터 스스로 태임을 본받고자 했던 자신의 꿈을 이룬것이고
여성의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사임당은 수만흔 제약을 받으면서도 '여성'이 아닌 '인간 신사임당'의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이미당은 이러한 끈기와 집념을 그리미과 시를 통해 그리고 자식들으 통해 오늘날 까지 우리에게 전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완성한 뛰어난
여성 예술가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매화꽃과 나비를 바라보는 사임당의 모습이 참 아릅답네요...은은한 느낌도 좋은데...컬러링이 되어 있는 모습이 보고 싶네요...
더 아름다울거같아요...
이책의 부록처럼 책 말미에 사임당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있어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빼놓치 않고 알려주니
사임당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알수 있을것 같아요..
신사임당은 여성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던 조선 시대에 태어나,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숨긴 채 집 안에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높은 벼슬에 오를 수도 없었고, 남편과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삶을 마음껏 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신사임당의
그림과 시와 글씨에는 진한 감동과 울림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잇습니다. 바로 신사임당의 피나는 노력과 뜨거운 열정, 집요하리만치 끈질긴 의지와 집념
입니다. 뭐든지 쉽게 포기하고 눈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나약함이 더 익숙한 오늘날 ,이책을 통해 새로이 발견하게 될 '예술가 신사임당'의 참된 모습이
여러분의 꿍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길 바랍니다.
-'글쓴이의 말 '- 중에서
마중물의 역할은
스스로를 버려서 큰 일을 이루게하는 역할이랍니다.
[보물창고]의 역사를 바꾼 인물들 시리즈가 이렇게 나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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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tv 드라마의 영향 때문인지 ' 신사임당 '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된다. 그렇게 ' 신사임당 ' 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제일 많이 떠오른다. 다른 한가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탱글탱글한 포도송이를 그린 치마폭의 주인공이라는 것과 오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것을 생각하려해도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신사임당, 예술을 사랑한 위대한 어머니』
그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신사임당에 대하여 『신사임당, 예술을 사랑한 위대한 어머니』을 읽고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본명은 신인선, 신명화의 둘째딸로 태어나 글공부와 더불어 그림을 즐겨 그리며 탁월한 재능까지 겸비한 면을 보여 주게 된다.
“아, 아버지. 역시 대가의 그림이라 그런지 따라 그리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신사임당은 외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학문의 길에 들어서면서 재능을 갖추게 되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친정어머니께서는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배움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것을 굉장히 한스럽게 생각을 하셨는데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이원수를 남편으로 맞아 며느리와 더불어 딸, 그리고 어머니의 길에 들어서게 된 신사임당, 결코 여성으로서 녹록치 않은 삶의 길이 기다리고 있지만 현명한 처신으로 자식을 기르는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지금의 시대와 견주어 본다면 너무나 짧은 생을 살다간 ' 신사임당 ', 그녀의 삶을 읽으면서 딸로서, 어머니로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 보면서 나의 지나온 길을 되짚어가며 많은 생각을 해보려고 마음을 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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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예술을 사랑한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 위인전, 초등위인전, 보물창고, 여성위인, 원더우먼, 이이부모, 여성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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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여자들은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쌓여요.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겠지만...
여자가 더 많지 않나 싶어요.
세상은 변하고 여성들이 일하는 것도 많아지고 가정주부라 하지만 요즘 세상은 원더우먼을 원하는 세상이잖아요.
아이들에게나 남편에게나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들에게나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의 역할은 좀 더 많아졌다고 생각이 들어요.
많아진 여자의 역할을 잘 해내길
우리 딸이 좀 더 변화되고 합리적인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네요.
물론 남녀평등이라는 기본이 서야겠네요~
요즘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신사임당~
재미있게 보고 있네요~
급 관심이 생기기 시작^^
신사임당에 관한 책들 찾아 읽고 있어요~
아이들과 읽을 수 있는 책 만나보았네요~
신사임당, 예술을 사랑한 위대한 어머니
차례 신사임당의 어린 이름이 인선입니다.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 생각해 보았네요~ 어려서부터 고민하고 생각하고 의문이 생기면 외할아버지를 찾아가서 물어보고~
천자문도 배우고~
본인이 직접 호를 만들어 닮아 가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저도 신사임당을 닮고 싶은데...
저도 호 하나 만들어 봐야겠네요^^
조금 모자란 남편(?) 이원수를 만나 그 시대에는 양반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나랏일을 하지 못하면 그렇게 생각했나 보네요.
뒷바라지하며 살던 신사임당.
늦은 나이에 그래도 신랑이 취업도 하고 늦복이 있었나 싶네요 ㅎ
어려운 시댁 형편에 자식들까지 먹여 살리며 힘든 삶을 살았던 신사임당.
조선 법도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본인의 그림조차 법도에 맞게 그렸네요.
참 힘든 세상이었네요.
조선시대^^ 신사임당 하면 다섯째 아들 이이를 빼놓을 수 없지요.
이이의 태몽~ 검은 용이 나타났네요~
율곡 이이 9번 과거 급제^^
딸만 있는 친정에 머물다가 시어머님의 부름으로 다시 시댁 살림을 시작한 신사임당
조선의 결혼 풍습이 변화되는 시기라서 그런지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살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할 뿐이네요.
지금보다 좀 더 합리적인 결혼 풍습이지 않나 싶어요.
양가 부모님들을 두루두루 모실 수 있었다는 점에서요.
요즘은 부모님과 멀리 살아야 부모님을 위하는 것이겠지요^^
모시는게 아니라 짐이 되지 않도록^^
책을 다 읽고 역사인물 돋보기에 들어가서 신사임당이 살던 시대에 대해 읽어 보았습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심하지 않았고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집에서 살다가 후에 시댁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합니다. 유교가 점점 조선시대의 기본이념이 되면서 결혼 풍습도 남성 중심으로 바뀌어 갔네요.
신사임당의 자식들 중 율곡 이이만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요.
딸 이매창과 이우도 예술가로 자라네요^^ 신사임당이 그린 그림들은 섬세함과 우아함과 그리고 친정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여성의 삶이 녹녹지 않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 않나 싶네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는 요즘.
여성과 남성의 역할도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신사임당도 결혼 풍습이 바뀌는 시기에 딱 알맞게.
자식들에게, 남편에게, 시부모님에게, 친정부모님에게 합리적인 사람이었다는 생각도 해 보았네요.
지금 우리나라도 변화하고 있는 거 맞죠??
'본 포스팅은 보물창고로부터 신사임당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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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은 조선새대 여류화가이자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
오만원권 지페의 주인공
그리고 비단치마폭에 포도 그림을 그렸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그 분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답니다.
이번에 역사를 바꾼 인물들 시리즈로 나온 신사임당을 읽게 되었는데요.
그 분의 일대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신사임당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그림에 소질이 있었는데요.
외할아버지가 글을 가르쳐주었더라구요.
조선시대에 여자들은 집안일을 주로 맡아 했는데도
외할아버지는 외손녀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깨어있는 사람이었더라구요.
저는 신사임당의 베필을 구할 때가 흥미로웠어요.
신사임당은 학문도 뛰어나고 그림 솜씨도 뛰어나고
인품도 좋은 훌륭한 낭자로 당시에 소문이 자자했는데요.
그런 인물을 부인으로 흔쾌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많이 고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홀어머니에 성격이 좋은 이원수를 남편으로 맞아들이도록 합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남편의 무능함이 많이 드러나게 되는데요.
율곡 이이가 태어나고 과거에 급제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작은 벼슬을 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사임당이 새댁과 친정을 오가며 살림을 해나가는 모습이
절로 참으로 견디기 힘든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어요.
특히나 그림이 안견에 비길 정도로 소문이 났음에도
가난한 살림을 위해 그림 한 점 팔지 않은 점은 더욱 놀랍게 만들었답니다.
그림을 예술로 보았던 신사임당의 가치관이 새삼 놀라웠어요.
사임당은 어느 때 그림을 그렸을까요?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그림 이야기보다는 어려운 살림때문에
고생한 이야기, 친정에서 병든 어머니를 돌봐야했던 힘들었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고향집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시 두 편도 만나볼 수 있답니다.
부록을 보면 사임당이 살던 조선시대의 결혼풍습도 알수 있고
이이, 이매창, 이우라는 자식들과 사임당의 예술 세계 등에 대해 알 수 있게끔
알차게 꾸며져 있어요.
초등 중학년이상 아이들이 읽을만한 위인책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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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큰아이에게 위인전을 접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지난해이다. 세종대왕과 장영실 그리고 이순신 장군 관련 책을 접하게 해 주었다. 요즘은 같은 위인의 이야기라도 누가 글을 썼느냐에 많은 영향이 있는 것 같다. 텔리비전을 통해 '신사임당'이 드라마화 되어 방영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방송을 보진 못했지만.. 그 영향인지, 신사임당 관련된 책들이 부쩍 눈에 띄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적엔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조충도를 비롯해 비단 치마에 그린 포도송이 일화를 통해 그녀의 예술성을 접했다고 해야할까?
우리나라 화폐에는 위인들의 초상이 담긴 화폐들이 많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화폐는 오만원 권으로 신사임당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그만큼 신사임당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보물창고를 통해 만나게 된 신사임당은 '예술을 사랑한 위대한 어머니'다.
어릴 적 기억에 읽었던 신사임당을 보면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라는 말이 크게 와 닿았지만, 그녀의 남편이었던 '이원수'는 그녀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만난 신사임당을 보면서... 그녀의 능력을 알아봐 준 친정 아버지가 보였다. 현명한 그녀의 아버지가 있었기에, 더욱 그녀가 빛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그녀의 작품이 많지 않아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어머니로써의 신사임당보다는 예술을 사랑한 신사임당의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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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시작한 신사임당의 주인공으로 산소같은 피부를 갖고 있는 이영애씨가 주인공으로 나오니 더욱이나 관심을 갖고 시청 중에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허구성을 많이 갖고 있어서 실제 역사에 바탕으로 된 신사임당을 만나보고 싶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현모양처이자 훌륭한 어머니상인 신사임당에 대해선 많이들 알고 있는것 처럼 닮고 싶은 점이 많은 분이라는 걸 알고있지만 이번 보물창고에서 출판된 예술을 사랑한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을 읽고나니 어린 시절부터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는 모습까지 위인전 식으로 나와 있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게되었다. 초등 중학년이상 되면 읽을 수 있는 내용인지라 아이들도 충분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릴적 인선이는 외할아버지로 부터 '천자문'과 '사자소학'을 배웠고 총명한 머리로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없었던 인선의 집에서는 인선이가 아들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되었지만 열아들 부럽지 않을만큼 인선을 키우기 위해 외할아버지는 많은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주로 외할아버지가 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그림을 그리거나 천 조각에 수를 놓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릴적 부터 호기심도 많았고 총명하며 효심도 깊었다.
아버지 신명화는 한양에서, 어머니 이씨 부인은 강릉에서 아프신 친정엄마를 돌보며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어느날 한양에서 내려오신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땅바닥에 사마귀를 그리고 있는 인선을 보니 그림에 타고난 재주가 있는걸 알게된다. 마음껏 그려보라며 한양에서 붓,먹, 종이와 벼루를 구해준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인선이가 재능이 있는걸 알면서도 딸이라는 이유로 집안 살림만 가르치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깨어있는분들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인선의 아버지 신명화는 한양에 올라가기전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만 하기에는 인선의 재능과 총명함을 아쉬워하며 네 길을 찾았다면 네 삶의 등대가 되어 줄 스승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아야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고 이야기 해준다.
아버지가 한 말씀을 이해하기엔 어렸던 인선은 여러날 고민하며 지내던 차에 중국의 유명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엮은 열녀전을 읽게 된다. 역사를 바꾼 훌륭한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고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의 이야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훌륭한 어머니가 되고 싶고 지혜롭고 현명한 어머니가 되고자 '태임을 본받는다'라는 의미로 인선의 호를 '사임당'이라고 스스로 호를 짓기도 한다.
총명하기도 하고 재능도 있으며 겸손하기까지한 신사임당의 인품들을 다 어디서 배웠을까 집안의 부모로 부터 눈으로 보고 느끼며, 훌륭한 책들을 읽으며 배웠을거다. 신사임당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편찮으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남편 신명화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직접 행동으로 보이고 몸소 실천함으로 자식들을 가르쳤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아버지 신명화는 인선의 결혼을 서두르고 인선의 예술적인 능력과 인선이 공부하는 것을 싫어해서는 안 되는 사윗감을 고르기에 열의를 다했다.
아버지를 일찍여위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넉넉하지는 못한 살림이지만 성격이 좋고 예의를 갖고 있고 마음이 너그러운 '이원수'라는 사람과 짝을 맺어준다. 이원수는 사임당과 결혼한 후로도 사임당의 재주를 감탄하고 격려하며 아껴주었다. 하지만 학문엔 관심이 없었던 이원수가 걱정이 되어 한양에 올라가 십년동안 학문에 정진하라고 한다. 하지만 10년동안의 한양에서 공부하기엔 이원수의 의지가 너무약해 계속 되돌아 오고 되돌아 왔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시집에 편찮으신 친정엄마의 간호와 일곱명의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나가는 신사임당은 투정한번 없이 시댁과 친정을 향한 효심과 겸손한 신사임당의 인품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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