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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의 또 다른 이름은 인간시장이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나라의 경제에만 집착을 해서 평화시장에서는 물건이 아닌 사람의 노동력을 사고 파는 곳이 되어 버렸다. 농촌의 주민들은 꿈이 있었다. 바로 서울에서 돈을 버는 것이다. 농사는 거의 주식과 같이 심냐, 안 심냐는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잘 자라나, 못 자라나는 자신의 운이여서 풍년이면 크게 망하고, 곡식이 잘 자라면 부자가 될 수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사냐도 문제고, 풍년이냐, 아니냐도 문제가 되어서 확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서울에 가서 돈을 벌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공장은 그만큼 쉬운게 아니었다. 그 때의 공장은 일자리가 적은데 노동은 많이 해야 하고 임금조차 낮고, 창문도 없어서 뿌연 천장으로 통풍이 안되는 공간인데다가 쉬는 시간, 그리고 휴가도 없고, 노동시간만 매우 기니 그만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사실 그러면, 그만두면 되지만 그럴수 없었다. 나라 자체가 가난해서 임금이 적어도 그 벌이만이 살길이여서 해야만 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마음 때문에 돌아 갈 수 없었다. 게다가 근로기준법이 있었다. 근로기준법은 최소 9,860원은 1일당 주어야 하고, 법정근로시간은 8시간이었다. 그런 좋은 법이 있는데 그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지 못해도 신고를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해고의 위험이 있고, 그것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그렇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바보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근로기준법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잘 살아 보자는 분위기를 흐려서 주목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전태일은 뜨거운 불씨가 되어 사람들의 차가운 생각을 녹이고 세상에 근로기준법을 완전히 탄생시켰다. 원래 노동의 의미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경제 활동이다. 하지만 1970년도에는 사람들이 사장들 때문에 꿈을 꾸지 못했지만, 전태일은 자신을 희생하고 불사르며 얼어있던 그들의 꿈을 녹여 꿈을 줄 수 있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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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내일의 전태일입니다 **
NO.7 우리는 내일의 전태일입니다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전태일이 내일의 전태일들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되었네요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이 어린 동심곁으로....... 1970년 8월9일 전태일이 일기중에서 로 시작을 합니다 2005년 9월30일 전태일이 떠난지 35년만에 전태일은 '전태일 동상'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전태일 동상에 꽃도 가져다 주고, 손도 잡아주고, 목도리도 둘러주고, 사진도 찍습니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전태일 동상을 찾아왔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어린나이지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던 할머니...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시절 마추친 듯한 할머니라고... 지금 이곳에 전태일 동상이 있는 이유를 묻는데 할머니는 말을 잇지못합니다 그 이유를 전태일이 이야기 해줍니다
책가방 매고 학교 가는 아이들이 제일 부러웠다는... 전태일은 18살 평화시장의 미싱사가 됩니다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은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 소년들이었답니다 하루 15시간씩 일하는 고된 노동에 시달린 소녀들... 이렇게 힘들에 일하는 소녀들에게 힘이 되고픈 전태일은 재단사가 됩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많은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요 전태일은 아버지를 통해 노동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밤낮으로 근로기준법 책을 들여다보여... 이 좋은 법이 있는대로 이렇게 살아온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답니다 이렇게 바보회라는 것을 만들었지만 작업장의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말지요 여러 노력끝에 평화시장 노동자의 실정을 다룬 기사가 신문에 실리게 되고 사람들은 그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질 것 같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답니다 전태일은 결단을 내립니다 지켜지지도 지켜주지도 않는 있으나 마나한 근로기준법을 불태우기로... 전태일은 자신이 죽어서라도 이 불쌍하고 바보같은 노동자들은 지켜주고 싶었답니다 스스로 불꽃이 되어 외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 뒤로 크고작은 기적같은일이 일어납니다 저녁8시 돌아가던 미싱이 멈추고 작업작의 불빛도 꺼지고 작업장의 다락방도 허물기 시작합니다 그 수많았던 전태일이 없었다면 이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태일은 언젠가 자라서 노동자가 될 어린아이에게 노동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는 근로 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얘기 해줍니다 전태이로가 함께 하는 노동인권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아들 전태일의 유언은 어머니 이소선님의 삶을 바꾸어놓았답니다 아들 전태일이 죽은 후 40여년을 노동운동가로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전태일입니다 . . . 자신의 권리를 찾고 모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외치는 사람 모두가 전태일입니다" 아들의 뒤를 이어 노동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이소선님은 2011년 세상을 떠났답니다 전세계 노동자의 날 노동절의 역사와 우리나라이 노동절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전태일과 친구가 되어주세요 우리 모두의 짐을 지고 묵묵히 홀로 걸어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이 친구가 되어주길 희망합니다 -조경희 작가님이 말씀- 저 역시 노동자로 살았었고, 우리나라 일하는 사람이 모두 노동자입니다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전태일 현재 노동자의 환경이 많이 좋아진 상황이긴 하나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 같은 여자들... 출산휴가 육아휴직도 눈치보게 되는... 아직도 남아있는데 미래의 노동자 우리 아이들은 노동을 통해서 삶이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고 살았음 하네요 전태일이 지키고자 했던 노동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음 합니다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 감사드립니다 ** 도치맘 관련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된 솔직후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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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전태일이 내일의 전태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기계처럼 일하던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태일 열사의 삶을 조명하고 1960 ~ 1970년대 고도의 경제 성장 뒤에 가려진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쉽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읽어내려갔답니다. 이 이야기는 다리 위헤 세워진 전태일 동상이 한 아이에게 자신이 평화시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됩니다. 왜 어린 나이에 학교에 가는 대신 평화시장에 나와 일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곳의 작업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근로 기준법 책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사른 이유는 무엇인지... 저는 전태일하면 영화의 장면이 너무나 뚜렷하게 떠올라요. 어린 10대 봉제공들이 하루 15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열악한 현실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분신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분신자살의 장면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인상이 깊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더랬어요. 전태일은 일한 만큼의 임금지급, 근로작업장의 환경개선, 적정한 휴식, 근로조건의 개선, 노동조합의 인정 등을 위하여 사업주와 투쟁을 하였으나 이를 거절 당하고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답니다. 어찌보면 지금 우리가 당연히 느끼고 있는 주 40시간제라던가 최저임금제 등 각종 노동법상 근로자의 권익은 전태일로 인해 보장되었다고 보면 될거 같아요. 언론도 정부도 기업도 사회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그 시절... 당시 평화시장에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을 하는 어린 소녀들이 많았어요. 그들은 창문이나 환기 시설이 없는 작업장에서 화장실도 제때 가지 못하고 잠 안 오는 약을 먹어가며 하루에 15시간이 넘도록 일을 해야 했어요. 소녀들이 열심히 일할수록 나라와 사업주는 부유해졌지만 정작 이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온갖 직업병에 시달려야 했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초기에 만들어졌을때에는 꽤 좋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민군정시절 미국의 것을 본떠 만들었기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정권때 성장을 위해 근로자를 희생시킨 것이지요. 요즘 시국이 참 불안정하고 좋지 않은 뉴스가 가득합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은 고 전태일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가 늘 품고 산 말씀이라고 합니다. 좋은세상... 바로 지금 절실해 보입니다.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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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노동운동을 하다 분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 이 한 줄이 책을 읽기 전 알고 있던 전태일이란 사람에 대한 사전 정보였어요.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다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등 60~70년대의 시대상을 학교에서 배울 때에도 사건의 진싱을 파악하기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었던 거죠.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기적적인 성장을 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배웠지만, 그 성장의 이면에 어떤 노력과 슬픔과 희생이 있었는지는 잘 몰랐던 겁니다. 이 책은 평화시장의 미싱사로 일하던 전태일의 짧은 생을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전쟁 후에 피난민들이 동대문 주변에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옷을 만들어 평화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갔답니다. 가난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 많은 소녀들이 일당 50원이라도 벌기 위해 이것에 모여들고 '시다'의 삶을 살아가게 되죠. 아직 나이 어린 소녀들이 일하던 환경은 너무나 열악해서 온갖 병을 앓고, 잠이 안 오는 약까지 먹어가며 밤새워 일까지 하는 일도 다반사였답니다. 일당이 너무 적어 차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끼니도 거른 소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열악한 환경이지만 반세기 전에 우리땅에서 벌어지던 일이었네요. 이런 상황 속에서 소녀들을 조금씩 도우며 온정을 베푸는 것에 한계를 느낀 전태일은 재단사가 되면 조금 나을까 싶어 도전해 보지만 주인 아저씨의 핀잔만 늘 뿐이었죠. 그러던 중 '근로기준법'을 접하고, 사람들을 모아 '바보회'를 만듭니다. 그렇게 활동을 한 까닭에 해고를 당하고 그곳을 떠날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곳에서 계속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삼동회'를 조직해 시청, 노동청, 방송국의 문을 두드리는 적극적 활동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 근로시간 조정, 다락방 철폐, 환풍기 설치, 조명시설 개선, 건강 진단, 월급 인상, 휴일 보장 등의 내용을 보장받기 위해 노동자들을 계몽하고, 외부에 알리는 일에 힘쓰게 되죠.
그리고는 1970.11.13 일 근로 기준법 책을 태우러 가는 중에 형사들에게 책을 빼앗기고, 결국 책 대신 자기 몸을 불사르는 선택을 합니다. 그 후 전태일의 죽음이 불씨가 되어서 신문과 방송, 노동자와 대학생 모두가 '전태일'이 되어 근로 기준법 준수를 위해 투쟁하게 됩니다. 소수의 자본가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게 됩니다. 그래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고요. 우리는 내일의 전태일이라는 제목도 이런 뜻일 겁니다. 아프고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이 또한 한국 현대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숨기고 왜곡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사실 그대로 배우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 이야기를 다룬 [송곳]이라는 드라마를 아이와 함께 봤습니다. 평화시장과 마트라는 공간적 차이, 1970년대와 1990년대라는 시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하는 메시지는 통하는 느낌입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와 교훈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걸 알려주는 것, 어른들의 책임일 겁니다. * 출판사로부터 무상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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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 제가 태어나기 예전에 일어났던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 아이들이 배고프고 힘겨운 시간을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인간적인 대우 없이 일을 시켜야 했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그 또래 그 이상의 여자 아이들이 주로 했던 시다. 제가 크면서도 전봇대 곳곳에 붙어있던 전단지의 시다 모집이 떠오르네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 어둡고 갑갑하고 먼지 많은 곳에서 하루 14시간 이상 일해야 했던 그 곳 평화시장.
결핵에 걸려 피를 토하고 눈이 멀고, 관절과 척추에 이상도 오고... 그런 어려움을 가까이서 지켜봐야만 했던 청년 전태일. 누구보다 힘든 것을 알기에 노동 시장을 바꾸어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더 열심히 재밌게 일할 수 있도록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참으로 냉혹한 현실 앞에서 좌절해야 했던 나날들. 해고를 당하면서도 노동자의 입장에 서서 열심히 외쳤으나 권력 앞에서 무너질 뻔 했으나 분신을 하며 어머니와 많은 이들에게 그의 뜻을 전하고 떠나게 됩니다. 지금도 귓가에 기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가 들리는 듯 합니다. 요즘 현실에서도 노동 시장에서 비정규직을 비롯해 많은 분들에 저임금과 기로기준법에 어긋난 행위들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태일과 그의 어머니가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혼신을 다했음을 느끼며 모두가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전태일 다리 위의 동상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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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일의 전태일입니다 개암나무에서 나오는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한국사 그림책 7번째 이야기에서는 전태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답니다. 아이들에게 노동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이해하기 쉬운 책이 필요한 법인데, 이 책은 두께감도 적당하고 삽화도 많아 그림동화책 정도의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고, 추가적인 내용들은 따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내용의 책이라고 보여지네요. 2005년 9월 30일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전태일 이름을 따서다리 이름을 새로 짓고 동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동상으로 찾는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하면서 한 할머니가 손녀와 함께 방문해서 대화를 하는 장면을 통해 아이들에게 옛날 어릴 적 일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아이들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답니다. 그렇게 옷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에 많이 쓰였던 미싱과 시다에 대한 단어도 새롭게 듣게 되어답니다. 심부름하고 거들어 주는 시다란 말은 일본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말이었다는 것을 아이들이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하고, 요즘엔 많이 쓰지 않는 말이었지만 예전에 기술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시다 생활을 거쳐야만 했던 것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런 과정을 거치고, 봉급적으로도 부당하게 일을 했던 적도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줄 수 있었답니다. 본격적으로 동상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게 된답니다. 전태일의 어릴 적 살던 모습과 학교를 보내는 대신 재봉 기술을 배우게 했던 아버지. 그래서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다는 말이 등장을 한답니다. 지금은 누구나 학교를 다니는 시절이니 아이들은 이해가 안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렇게 시대적으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항상 신기하게 받아들이니까요. 열여덟 살에 평화시장의 미싱사가 되어 본격적으로 노동자의 길을 걷게 되고 그곳에서 수많은 여공들의 고생스런 삶들을 직접 보게 되지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우리의 아픈 현실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답니다. 그곳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환기 시설이 없는 먼지 투성이 공기, 잠을 못자게 하면서까지 일을 시켰다는 것에 정말 놀랐답니다. 어린 소녀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을 상대로 그렇게 노동력 착취를 했다는 것을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가슴 아픈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더욱 더 느낄 수 있게 되었답니다. 다니면서 노력을 하지만 변하지 않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결국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절절한 외침과 함께 자신의 목숨을 바치게 되지요. 그 희생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평화시장의 노동 환경이 점차 개선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지요. 살아갈 수 없으니까 노동은 누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랍니다. 누구나 즐겁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상식은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답니다. 경제 상황이 어땠는지, 당시 평화시장의 노동환경에 관련된 내용들, 근로 기준법, 전태일은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전태일의 어머니 이야기, 전 세계 노동자의 날 '노동절'에 대한 것을 알 수 있게 설명문 형식으로 자료가 들어가 있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밝은 미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답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변화를 겪던 그 시절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감사히 읽어보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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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일의 전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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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 진짜예요? 전태일도 진짜
있었던 사람이예요?" <우리는 내일의 전태일입니다>를 읽고 난 아이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우리'가, '내'가 '내일의 전태일'이라는
제목을 의심이라도 하듯, 아이는 전태일의 이야기를 참 멀게 느끼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 입장에서는 창문도 없는 공장이라든지 일요일도
없이 기계처럼 일만 하는 10대 청소년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나, 불과 50~60년 전 대한민국에는 이름뿐인 근로기준법 아래, 피
토하며 죽어가는 '시다'라는 직업이 있었지요. 1960~70년대, 제 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기간에 '시다'라고 불리던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5시간씩 비좁은 작업장에서 기계처럼 일해야 했어요. 창문이나 환풍기 시설도 없고, 2,000명이 단 3칸뿐인 화장실을 나눠써야 했을
정도로 근로환경이 열악했지요.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각종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건강검진이나 보상을 받기는커녕, 아프다는 이유로 오히려
해고당했어요. 듣기만 해도, 상상만 해도 참담하지요. 열여덟 살 때부터 평화시장에서 일했던 전태일은 이런 상황을 눈 앞에서 지켜보기 오죽
괴로웠겠어요? 그래서 전태일은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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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전태일이 남긴 유언을 받들어
평생을 노동 운동에 바친 이소선은 이야기하지요. "여러분이 전태일입니다. 내 아들
전태일이라고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태일, 전태일 하고 외치니까 전태일입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무슨 전태일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권리를 찾고 모든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외치는 사람 모두가 전태일입니다."라고요. 전태일 역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준비된 노동운동가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인권이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유린되고, 사람의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가들의 비정함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태일은 처음에는 사람에 대한 소박한 믿음으로 작게 움직였습니다.
거친 옷감을 누르느라 지문이 닳아버린 4번 시다, 점심값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쥐꼬리 월급 아껴 가족에게 가져다주려고 점심을 수돗물로 채우는
2번 시다, 주인 사장이 사다 준 잠 안 오는 약을 먹어 가며 며칠씩 밤 새워 일하던 5번 시다를 위해 처음에는 온정적 재단사의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런 전태일 재단사의 따뜻함을 도리어 비난했습니다. 폐병에 걸려 핏덩이를 쏟아내는 어린 시다를 병원에 데리고 갔던
전태일, 하늘에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나요? 아버지를 통해 '근로기준법'을 알게되고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활자뿐인 법이었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 일주일에 1일 휴일"등의 항목은 철저히 노동현장에서 무시당하고 있었습니다. 전태일이 아무리 소리 높여 현실을 고발해도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목소리를 내는 가련한 노동자들을 구타하고 억압했습니다. 암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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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일의 전태일 입니다
전태일 동상이 들려주는 노동 인권 이야기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전태일이
내일의 전태일에게 전하는 이야기!
아이들에게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생소할거예요
학교도 가지 않고 일을 해야만 했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노동자라는 개념도 확실히 모르더라구요
이 책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기계처럼 일하던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태일 열사의 삶을 조명하고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있어요
우리 나라의 이런 역사도 알아야 할거 같아
딸램과 같이 읽어보았어요
물론 100%다 공감되고 이해는 안 가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읽어보는것 자체만으로도
아이에게 넘 좋은 시간이였어요
전태일 동상이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있는것 같이
실감이 났답니다
한 할머니가 아이와 함께 전태일 동상을 찾아왔어요
평화시장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시다 중 한명이였지요
다만 몇 푼이라도 살림에 보태기 위해
하루하루 힘들게 일하는 어린 시디들을 보면서
미싱하셨던 나는 '재단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어
재단사는 미싱사와 시다를 관리하는 일을 했거든
하지만 내가 온정을 베푸는 줄 알고 주인아저씨가 나를 못 마땅하게 여겼고
나는 그들처럼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었어
나는 성실하게 일했지만 그럴수록 주인 아저씨는
나를 더욱 심하게 부릴 뿐 내 말은 들어주지 않았어
한 시다는 아프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말았어
그 무렵 나는 아버지를 통해 '근로 기준법'을 알게 되었어
근로 기준법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노동자가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나는 근로 기준법을 들먹이면서
작업장의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평화시장을 떠나야만 했어
나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에 지쳐 평화시장을 떠나기로 했어
평화시장에세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우기로 마음 먹었지
하지만 나는 그럴수가 없었어
근로 기준법이 있는 줄도 모르는 수많은 바보들
그들을 어둠 속에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마음이 짠해지더라구요 ㅠㅠ
전태일 아저씨는 정말 착한거 같아요
법으로 나와 있는 일이면 다 지켜야 하는데
왜 전태일 아저씨를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전태일 아저씨 혼자 정말 외로웠을거 같아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서 넘 기뻤어요
라고 말하는 딸램이였네요
하지만 그후로도 전혀 개선이 되지 않았어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나는 근로 기준법 책 대신 내 몸을 불살랐어
그리고 불꽃이 되어 외쳤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자기몸을 불에 태웠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딸램이였어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사람같아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다행히 내가 죽은 뒤에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등불처럼 번져 나갔어
아이야, 너도 언젠가는 자라서 노동자가 되겠지?
누구도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노동은 우리 모두의 문제란다
나는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서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구나 즐겁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이 자리에 서 있어
전태일과 함께하는 노동인권 이야기에서는
1960~19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당시 평화시장의 노동환경
근로기준법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전 세계 노동자의 날 '노동절'에 대해 나와 있어요
아이야, 너는 내가 꿈꾸는 미래란다
너희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든
근로 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렴
모두다 즐겁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힘겹게 위험에 노출된채로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 맘 아프더라구요
근로 기준법에 나와 있는 그대로 모두다 적용 받으면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8시간 이상 일하는 곳도 많으며
수당도 못 받는 곳이 많은게 현실인거 같아요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노동을 통해 삶의 보람을 찾고
자부심을 느끼며
안전한 환경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길
저또한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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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전태일이 내일의 전태일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내가 전태일과 관련된 사실들을 알게된건 아주 오래전이다. 당시 난 중학생이었고 한편의 영화를 통해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며 근로기준법에 대한 것들을 외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은 무섭다는 것 뿐이었다. 당시 전태일이 왜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야만 했는지 영화를 보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문도없는 창고같은 공장에서 어린 아이들이 일을 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었기에 당시 상황들은 쉽게 잊혀졌다. 「우리는 내일의 전태일 입니다」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생각들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그저 무섭다 생각했던 생각들이 이젠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현재 난 워킹맘으로 일을 하고 있기에 근로기준법의 혜택들을 당연하게 받고 있다. 모든게 그의 죽음덕분에 이뤄진 것들이라 생각하니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의 죽음 이후 아들의 유언대로 40년이 넘게 노동운동을 했던 전태일의 어머니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모진 고문을 받고 탄압을 받으며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노동운동의 현장엔 그녀가 있었고, 노동운동을 하는 모든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뒷받침을 해 주었다고 한다. 나또한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그가 얼마나 큰 결심을 하고 아들의 유언을 지켰는지 마음이 느껴지는 듯 했다.
내 아이들 역시 아직은 근로기준법이 뭔지 알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당시의 상황들을 이야기 하며, 전태일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아이들 역시 나처럼 무섭다는 감정을 먼저 느꼈을 테지만 한살 두살 어른이 되어가면서 아이들역시 그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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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처음 만나는 어린이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관심을 갖도록 구성한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한국사 그림책
7번째 이야기 우리는 내일의 전태일 입니다.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전태일이 내일의 전태일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아이야, 너도 언젠가는 자라서 노동자가 되겠지?
누구도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노동은 우리 모두의 문제란다.
나는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서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구나 즐겁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이 자리에 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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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행복한 삶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특권층만의 권리가 아닌, 우리 모두의 권리입니다.
그것을 찾아주고자 노력하다 스스로를 불태운 전태일.
지금의 우리 사회를 책임지고 계시는 분들은 전태일 동상이 있는 곳으로 가셔서
그 분의 고귀한 정신을 배우고
오셨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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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께서 손수건을 꺼내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닦아 주십니다.
평화시장에서 일을 하셨다는 할머니께서는 열세 살 어린 나이의 아득한 추억을 떠올려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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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라 학교대신 일터로 나와야 했던 할머니는
열세 살 나이에 온갖 잔심부름을 하며 옷 만드는 일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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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환풍기도 없는 다락방에서 일하던 고된 시간들을 떠올려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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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아저씨는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이의 물음에 지금까지 바라만 보고 있던 전태일 동상이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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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동상이 들려주는 노동 인권 이야기
나는 아주 어릴 적에 6.25 전쟁을 겪었고
전쟁이 남긴 가난과 배고픔에
학교에 다닐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러 나서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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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엔 평화시장의 미싱사가 되었어요.
6.25전쟁 때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옷을 만들어 평화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렸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평화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 시장을 '평화시장' 이라고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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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하루하루 힘겹게 일하는 어린 시다들을 보면서
미싱사였던 나는 '재단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어요.
재단사가 되면 어린 시다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줄 수 있을것 같았거든.
* 시다 : 일하는 사람의 옆에서 그 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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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은 빗나갔어요.
주인아저씨는 시다들에게 온전을 베푸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주인 말 안 듣고 제멋대로 할 거면 당장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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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어린 시다들이 종종 나를 찾아와 고통을 호소했지만
결국 나는 아무런 힘이 되어 줄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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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아버지를 통해 '근로 기준법'을 알게 되었고
나는 처음으로 노동자가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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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낮으로 근로 기준법 책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비롯한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은 그 동안 바보였음을 확인했어요.
나는 근로 기준법을 알리기 위해
바보들의 모임인 '바보회'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작업장의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나는 해고 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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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았어요.
근로 감독관에게 평화시장의 열악한 실태를 글로 써서 찾아갔어요.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감독하는 사람이니
틀림없이 도와주리라 여겼지요.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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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회 회원들도 나처럼 해고 당할까봐 두려워서 모두 흩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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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졌어요.
"폐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 주세요."
"제가 일을 안 하면 식구들이 굶어 죽어요."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고
주인 아저씨가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힌 근로 기준법이 있는 줄도 모르는 수 많은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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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갔어요.
이번에는 제대로 해 보자는 생각으로
틈나는 대로 서울 시청, 노동청, 방송국 문을 두드렸어요.
모임의 이름도 '바보회'에서 '삼동회'로 바꾸었어요.
삼동은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시장의 세 건물을 뜻하는 말이에요.
우리는 더 이상 바보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노력한 끝에 평화시장 노동자의 실정이 신문에 실렸어요.
금방이라도 평화시장에 드리워진 어둠이 걷힐것만 같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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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요구 사항 중 개선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어요.
그저 조그만 참고 기다려 달라는 얘기만 들여왔어요.
봄과 여름이 가고 가을과 겨울이 가고 다시 새봄이 왔지만
수많은 여공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미싱은 멈추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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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나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어요.
있으나 마나 한 근로 기준법을 불태우기로요!
하지만 우리의 계획을 눈치챈 형사들이 달려와 책을 빼앗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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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 노동자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 하나둘 돌아섰어요.
'저 바보들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저 바보들에게
근로 기준법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알려 줄 수 있을까.
아, 내가 죽어서라도 저 바보들을 지켜 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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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내가 죽은 뒤에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어요.
모두 '전태일'이 되어 외치기 시작했어요.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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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신념은
결코 변하지 않을것만 같은 횡포와 무력도 무너뜨릴수 있습니다.
이것을 전태일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나라와 사업주만 부자로 사는 나라가 아닌,
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도 다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나라가
우리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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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작성하는 솔직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