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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25일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독재정권에 불만을 품고 혁명을 일으켰지만 혁명 성공 후 오랜 세월 독재로 쿠바를 다스린 인물로 유명한 ‘카스트로’는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전 세계를 핵전쟁의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한 듯이 내 머릿속에는 ‘체 게바라’가 떠올랐다. 라틴아메리카 여행 중 자본주의에 맞서 사회주의 혁명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한 아르헨티나 청년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는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 혁명가의 삶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9년 쿠바 혁명 성공 당시 카스트로 옆에 있었던 중요인물이 바로 체 게바라이기 때문이다.
이후 이미 알고 있듯이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카스트로는 쿠바의 정권을 잡고 정치가의 삶을 살았지만 체 게바라는 콩고와 볼리비아 혁명에 가담하기 위해 쿠바를 떠난 뒤 1967년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고 영원히 혁명가로 불리게 된다. 두 사람은 하늘에서 재회했을까. 미국과 외교 관계를 회복한 쿠바의 현재 상황을 두고 체 게바라는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 하며 『나의 형, 체 게바라(2017.01.05. 홍익출판사)』를 읽기 시작했다.
체 게바라(에르네스토)의 막내 동생 ‘후안 마르틴 게바라 데 라 세르나’는 『나의 형, 체 게바라』에서 형의 사상과 이상을 전파하기 위한 통로(p.19)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히며 1959년 1월 쿠바 혁명이 성공했을 당시 로베르토 형과 마리아 누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에르네스토를 만나기 위해 쿠바로 떠났을 당시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형의 죽음이 상업적으로 변질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후안은 부모님의 가계, 책을 가까이한 집안 분위기 그리고 형 에르네스토가 부모님 중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점, 체가 혁명가로서 유명해 질수록 불안해했던 가족의 이야기 등을 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에르네스토가 여행을 통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주의 깊게 읽었다. 그가 처음 여행을 다녀온 뒤 쓴 일기를 소개한다.
내 마음속에 그 무엇이 무르익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문명의 폭력에 대한 증오가 나를 못 견디게 한다. 견디기 힘든 소음으로 나라를 뒤덮고 있는 민중의 무지에 나는 분노한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진정한 평화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p.115)
이후 ‘체’는 여행을 계속했고 흑인은 버스에서 앉을 권리조차 없다는 등의 수많은 불공정, 미국이 갖고 있는 그 엄청난 부와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에 바탕을 두지 않은 것(p.122) 등을 목도하며 사회참여 의지를 높여간다. 미국 사회를 압도하는 인종 차별에 극도로 분노한 체는 멕시코에서 카스트로 형제를 만난 뒤 행동으로 강력한 저항의지를 표명하는 혁명가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체 게바라가 쿠바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 미국과의 관계에서 쿠바가 처한 현재 상황 등 후안 마르틴 게바라가 전하는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행동하는 혁명가이며 진정한 프롤레타리아였던 체 게바라가 지금 생존해 있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소용없는 짓인지 알면서도 ‘체’가 쿠바가 아닌 아르헨티나에서 혁명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면 오래도록 민중 곁에서 행동하는 지도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상상하였다. 그의 이른 죽음이 안타까워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지만 분명한 사실은 책을 읽은 뒤 안도했다는 것이다. 쿠바혁명이 쿠바 사회에 가져온 변화의 열매를 확인했기 때문인데 후안은 쿠바는 확실히 대부분의 선진국들보다 가난한 나라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덜 물질적이고 평등의 기준과 공평성이 발달한 사회(p.299)라고 전한다. 사실 그동안 카스트로 때문에 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는데 체의 열정이 열매를 맺고 꽃을 피웠다니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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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의 가족으로 산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보통의 삶이 아닌 정의를 위해, 온전히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부모나 형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것 같다.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체 게바라는 혁명의 전설이며 상징이다. 검은 베레모와 단호한 표정, 그리고 시가를 피우는 모습이 떠오른다. 쿠바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정도다. 그렇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무엇이 그를 혁명가의 삶을 살게 했는지, 왜 조국 아르헨티나가 아닌 쿠바의 영웅이 되었는지. 때문에 ‘체 게바라 50주기 추모작’『나의 형, 체 게바라』는 인간 체 게바라와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해 알려줄 것 같았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체 게바라의 삶 다 말할 수도 없도 다 만날 수도 없다. 책은 영웅 체 게바라의 죽음과 그 죽음의 진위를 확인할 수조차 없었던 가족의 안타까움으로 시작한다.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막냇동생 후안 마르틴은 혁명가 체 게바라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큰형에 대해 들려준다. 체 게바라의 삶을 동경했고 그를 지지한 사람이다. 평범한 아르헨티나 중산층 부모의 다섯 아이의 첫째로 태어난 그는 심각한 천식 때문에 유년 시절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어머니가 교육을 담당했고 집에는 항상 책이 많았다고 한다. 체 게바라의 혁명에는 자유로운 성향의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영향을 주었다고 동생은 말한다. 그렇다면 의과대학에 다니던 평범한 청년은 어떻게 혁명가가 되었을까? 어쩌면 모든 건 우연으로 시작해 운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반복된 일상에서 안위하는 게 아니라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 다른 세상을 꿈꿨던 단순한 오토바이 여행에서 체 게바라는 길가에서 만난 가난한 빈민들(강자가 약자를 무차별적으로 착취하는)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온전히 자신의 존재를 바쳐할 것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혁명가의 삶이었다.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치고 나 아닌 누군가가 할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달랐다. 바꾸려고 노력했고 끝내 바꿨다. ‘어머니, 저는 본질적으로 치유불능의 방랑자입니다. 정착민의 규범에 갇힌 의사라는 직업에 저는 그 어떤 미련도 없습니다. 제가 믿는 것이 최종 승리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신념은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저의 유랑은 언제나 우리 가족의 기대와는 반대 방향일 테고, 이 여정을 끝내겠다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139쪽) 쿠바에서 산업부장관까지 지낸 그는 멈추지 않았다. 콩고의 반군을 돕기 위해 게릴라 요원으로 활동했고 볼리비아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에게 누군가 만든 혁명은 의미가 없었다. 민중이 함께 모여 외치고 힘을 모아 나가는 것, 그것만이 진짜였다. 혁명가의 동생으로 후안 마르틴의 생도 평탄치 않았다. 좌파운동을 하다 8년 넘게 감옥생활을 한 프롤레타리아다. 그는 체 게바라가 쿠바나 볼리비아에서 하나의 상징이면서 관광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화가 나고 안타깝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체 게바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후안 마르틴이 체 게바라의 생애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 변화와 혁식이 필요한 세상에 새로운 체 게바라의 등장을 바라는 건 나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체 게바라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갖고 있다. 과연 누가 체 게바라의 사상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내 생각에, 거의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당대의 위대한 마르크스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사내가 무기를 들고 시대의 벽에 도전한 게릴라였다는 사실만이 훌륭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모험가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진리를 위해 삶을 내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은 진정한 인간이었다.’ (3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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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체 게바라 평전'이 인기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참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네요. 저는 그 책을 읽지 않았지만 혁명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여전히 살아 있었고, 반면에 상업적 이미지로도 상당한 이용가치가 생겨버린, 어느 쪽에서 보아도 매력적인 인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체 게바라? 무슨 내용일까? 신간 '나의 형, 체 게바라'를 보고 처음 느낀 의문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체 게바라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논하는 움직임은 (꽤 많이 다루어졌다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긴, 그는 그렇게 먼 시대의 사람도 아니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쩐지 체 게바라라는는 존재는 시간적 간격이라는 조건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존재 자체로 한 차원 높은 영역의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역자가 후기에서 예수와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온 것이 결코 과언이 아니라 할 만큼.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간단합니다. 그는 인류가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기는 하지만 막상 실천하려 하니 본능의 한쪽에서 불편하게 여기는 - 완전한 평등과 존중, 인간애로 충만한 세상을 실제로 자기 인생에서 살아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 때문에 혁명의 지도자, 게릴라로서의 측면으로만 표출되었을 뿐이지, 가족의 눈으로 돌아본 어린 시절부터의 그의 삶에서는, 모든 방면에서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관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라는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그가 옳다고 믿는 신념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은, 소수의 폭압적인 권력자가 다수의 선량한 민중을 통치하는 시스템 -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모든 착취의 도구들 - 을 파괴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존중받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주의의 기반을 만들어, 그것을 건강히 떠받칠 수 있는 세계시민, 즉 모든 사람들이 신인류로 진화하는 데까지 이끌기 위해 바쳐졌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절제하고 노력하는 아름다움을 몸소 보여주었죠. 이 책은 다양한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매력은 넘치나 무책임한 자유로움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 품에 안아주는 다정함은 없지만 엄격한 규칙과 교육관으로 사랑을 풍성히 베풀었던 어머니, 특히 가난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중시해 항상 책으로 넘쳐나는 서재라는 환경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떤 주제나 상황이라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최선의 입장과 생각을 끌어내도록 훈련시켰던 독특한 가풍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천부적인 재능과 매력이 있었다고는 하나 '에르네스토 게바라'를 '체 게바라'로 만든 것은 이런 어린시절부터의 인문학적인 바탕의 형성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모국인 아르헨티나의 현실적인 문제, 미래 세대를 위한 하나의 기준점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체 게바라의 사상과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이를 통해 아직까지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체 게바라가 꿈꾸었던 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쿠바에서 이루었던 승리의 영광과 볼리비아에서의 좌절, 죽음 앞에서도 유머와 인간애를 잃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도 매우 흥미롭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한 편의 서사시였습니다. 오늘날 쿠바의 현실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눈에 띄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체 게바라와 관련한 다른 자료들도 계속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신인류의 세상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오히려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의 형, 체 게바라'를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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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에 대해서는 조금조금씩 들어왔으므로 그의 자세한 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그가 혁명의 선봉장이며 이시대의 혁명을 이야기 할때 그의 얼굴 포스터가 먼저 떠오르는것은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 일까 궁금했었다, 아르헨티나 사람이면서 쿠바의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바쳤고 나중에는 볼리비라의 척박한 땅에서 생을 마감한 인물,, 그의 사상을 무엇이였으며 그가 어떤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몰락한 부르즈아 가문의 장남 에르네스토는 고질병 천식으로 병약한 소년이였다, 학교조차 다닐수 없을정도로 약한 소년은 강한 성품의 어머니 영향으로 많은 책더미 가운데서 생활하며 그의 소양을 넓혀 갔다, 자유로운 영혼인 아버지 이야기는 내가 읽었을때는 그저 난봉꾼 으로 비춰졌다, 가정을 중요시 여기는것 같지도 않았고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하는 타입이 아닌 자신의 즐거움만을 쫓는 인물로 비춰진다, 일찌감치 가정을 버린 아버지 때문인지 어머니는 장남인 에르네스토에게 더욱 마음을 쏫으며 삶을 살아가는것이 보인다, 그가 오랫동안 여행을 가면 알수 없는 소식에 애 달아하고 그의 작은 소식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오랜 여행에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민중의 피폐한 삶에 대해서 에르네스토으 느낌을 전해 받을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헐벗을 사람들의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뛰어든 세상에 전하려고 했던 메세지들이 들리는듯 한다,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혁명노선은 그시대에 마땅이 나가야 할 방향으로 보였을 것이다, 혁명을 완수 했을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어떠한 보상도 취하려 하지 않고 모든것을 놓고 떠나는 모습은 보통사람이라면 과연 그럴수 있을까 하는생각을 하게 한다 요즘세대의 풍조와는 맞지 않는 모든것을 초월한 선인의 이미지 까지도 든다, 볼리비아의 차가운 땅에 못다한 혁명의 불씨만을 남겨둔채 떠난 체게바라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동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은 체게바라의 이야기는 언제나 체게바라를 응원하며 그의 약진을 기도하는 그의 가족의 심정을 그대로 전달 받을수 있었으며 체게바라의 가족이라는 명분때문에 고통받고 감금당하고 쫒기는 인생을 살수 밖에 없었던 인생의 굴곡직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수 있는 기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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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 체 게바라> - 후안 마르틴 게바라, 아르멜 뱅상 지음 / 민혜련 옮김 분노하라, 행동하라!
평소 띠지를 좋아하진 않는데. 이번 책은 띠지를 오랬동안 바라봤다.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늘 현재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비상을 꿈꾸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져서 외롭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어떤 사람을 향해 저질러지는 불의이건 간에 더 많은 부를 보유하고 있는 자들의 목표는 실제로 무엇일까 우리에게 제시되는 유일한 목표는 계속 더 많이 소유하라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악행을 정확히 의식하면서 성실하고 정식한 사람들이 도태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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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80년대 학번 세대 어르신들 중심으로 이른바 "(좁은 의미의)사회과학 서적"에서 자주 등장하던 걸로 이 위인이 처음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그 앞세대는 잘 모른다는 뜻). 저는 고 정운영 교수님의 여러 수상록을 읽고 이런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혁명가에 대해 처음 알았고(그 짧은 글이 워낙 잘 쓰여진 명문이라 책 몇 권 분량보다도 머리에 남는 게 더 많았네요), 이보다 뒤엔 모 출판사에서 나온 <체 게바라 평전>이 몇 달 몇 년에 걸쳐 애독되는 통에 이제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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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가 체포되어 살해당한 장소를 저자가 방문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체 게바라가 체포된 그 장소는 상업적으로 변경되어 관광가이드는 저자에게 그곳에 데려다주겠다며 돈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일흔세 살이 된 동생은 형이 죽은 뒤 47년이란 세월이 지나서야 이곳에 올 수 있었다는 데에 회한을 금치 못하는 한편, 상업적으로 변질되거나, 전설이 되어가거나, 마음대로 각색되어 변질되어 가고 있는 체 게바라의 이야기를 다시 한 인간의 이야기로 밝혀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체 게바라에 관한 많은 책들이 이미 있음에도 체 게바라의 동생인 저자는 다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영웅이 된 체 게바라나 숭고한 체 게바라가 아니라, 그저 한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큰아들이었고, 동생들에게는 보고 싶은 그러나 소식을 듣기 어려운 형이자 오빠인 체 게바라에 관한 책이다. 책은 다시 1959년 1월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멀리에서 소식을 전해오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감격한다. 6년 동안이나 생사에 대한 소식만 무성할 뿐 연락 한 번 없던 아들이 전화해 온 것이다. 쿠바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후이다. 가족은 체 게바라의 초대를 받아 쿠바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가족들은 오래전 자신들을 곁을 떠난 아들이자 형인 체 게바라가 얼마나 위엄 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으로 변모했으며, 혁명군의 사령관으로서 주변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모습은 가족이 기억하는, 가족이 기대하던 체 게바라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 책은 또다시 가족사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자유분방한 아가씨와 탱고춤에 빠진 매력적인 청년의 만남으로 체 게바라의 가족은 탄생한다. 외가의 가족 내력과 친가의 가족 내력을 다 살펴보고 체 게바라의 부모님이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만들어낸 분위기가 체 게바라와 그의 동생들에게 어떤 감성을 심어주었는지 유추해본다. 의사가 되기를 꿈꾸던 청년은 대학시절에 자주 여행을 한다. 자전거로, 혹은 오토바이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의 감성에 점점 변화를 준 것은 바로 민중들의 생활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민중의 고통과 인종차별에 대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결국 의대 학위를 딴 후에는 가족의 품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모험 길에 오른다. 책은 시간을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체 게바라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어떻게 활동했는가를 보여준다. 체 게바라의 혁명활동을 다룬 다른 책들도 많으니 체 게바라의 혁명활동에 대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천식 때문에 허약한 체 게바라가 여행을 통해 자신의 한계점을 천천히 극복해가면서 자신감을 회복해가는 이야기, 영민하던 중산층의 젊은이 체 게바라가 어떤 과정으로 혁명가가 되었는가를 알게 해준다. 혁명가가 된 체 게바라를 바라봐야 했던 가족의 조마조마 함, 안타까움 등을 알 수 있고, 체 게바라의 가족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탄압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인간으로서 보이기 힘든, 삶과 추구하는 바의 일관성. 정신이 추구하는 바를 오롯이 실천해가는 삶의 모습이, 아름다운 청년 체 게바라를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의 혁명을 향한 불꽃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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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급 부상한 인물이 여럿 있다. 그 중 하나가 체 게바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염증을 느꼈던 것일까. 많은 이들은 그의 이상을 좇는 삶에 열광했다. 쿠바 혁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혁명의 완수를 위해 떠난 이 인물의 매력은 무궁무진했다. 심지어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강인한 인상까지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의 인생을 다룬 책이 숱하게 쏟아졌고, 급기야 그의 모습을 그려넣은 각종 제품들이 시장을 도배했다. 자본주의에 대항한 인물이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이 되어 소비되는 야릇한 모습을 체 게바라가 접했다면 과연 어떤 평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유명인의 혈육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건 마냥 행복한 일이 아니다. 유명 운동선수의 자녀는 제 부모를 뛰어넘지 못해 작아진다. 형제 중 하나가 뛰어나다면 그의 재능을 살려주기 위해 다른 이들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 <나의 형, 체 게바라>라는 책의 저자 이름 중 하나가 후안 마르틴 게바라이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임이 분명함에도 ‘게바라’라는 성만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 성 때문에 그가 겪어야 했던 곤혹이 한둘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 독재가 판을 치던 시절, 형을 잃고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장기간 수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때에도 항상 그는 감시 당하는 듯한 느낌을 감수해야만 했다. 형의 명성에, 형이 지녔던 고귀함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진 않을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그에겐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껏 나온 체 게바라에 관한 많은 책들은 찬양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는 했다. 근데 이 책은 조금 다른 관점을 취했다. 제3 자가 아닌 동생으로서 제 형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천식으로 어린 시절부터 고생했던 형은 자유분방한 태도를 고수했다. 공부를 등한시 한 건 아니었으나, 장기간 여행 등으로 인해 집을 비운 적이 많았다. 어쩌면 그의 부모는 장래가 보장된 의사라는 직업을 아들이 포기하진 않을지 노심초사했을 것도 같다. 대학 졸업까지는 의지를 갖고 완수했지만 이후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의대 졸업생의 삶과는 전혀 달랐다. 조국 아르헨티나도 아닌 타국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목숨을 건 아들에게서 연락이 끊어질 때마다 가족들은 애가 탔다. 이따금 도착하는 편지만이 그들에게 짧은 위안을 선사했다. 마침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들이 느꼈을 행복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버지는 체 게바라의 아버지로서 마땅히 자신이 누릴 지분이 있다는 식의 태도를 고수했다. 쿠바에서 그들은 영웅이었고, 어딜 가도 대접받을 수 있었다. 아마 이는 현재에도 비슷할 거 같다. 혹자는 피델 카스트로가 체 게바라를 배신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둘은 서로 역할이 달랐을 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델은 쿠바에서, 체 게바라는 아직 모순이 극복되지 못한 다른 곳에서 같은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을 따름이다. 쿠바는, 체 게바라가 꿈꿨던 세상은 구 소련은 분명 아니요, 북한은 더더욱 아니다. 장담할 순 없지만 이른 죽음이 아니었더라면 세상은 오늘날과는 약간일지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본다.
오랜 기간의 침묵을 깨고 형에 대해 말하기로 결심한 저자 덕에 체 게바라라는 인물을 다시 한 번 조명해 볼 수 있었다. 형으로 인해 달라진 인생이다. 형 때문에 제약이 참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에게 형 체 게바라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폭력에는 반대한다고 했다. 방식은 다르나 형이 떠난 세상에서 그가 형이 꿈꿨던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중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움이 물론 가장 크겠지만, 그 감정을 한 꺼풀만 벗기면 왠지 그로부터도 꿈꾸는 리얼리스트의 향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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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의 형, 체 게바라 이 책을 읽기 전, 나에게 체 게바라는 그저 혁명가라고 알려진 유명인에 불과했다. 체 게바라라는 이름은 자주 들어서 알고있었지만, 그가 어떤 혁명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체 게바라가 본명인줄로만 알고있었기에 처음 책을 읽을 때 '에르네스토'라는 본명이 자꾸 헷갈렸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자, 체 게바라라는 별칭보다는 '에르네스토'가 더 익숙해지기도 했다. 체 게바라의 막내동생이 바라본 형의 모습을 작성한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자세히 알지 못했던 그의 인생사와 행적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책의 맨 첫장은 막내동생이자 저자인 후안 마르틴 게바라가 형의 마지막 자취가 남아있는 유로 계곡에 다녀온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체 게바라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책을 읽으며 체게바라가 참으로 뜨거운 피를 가진, 열정적인 혁명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바의 독립을 위해, 쿠바인들도 체게바라처럼 열정적이기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혁명에 뛰어드는 결정을 한 그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많은 사회의 모순들에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는 나와는 달리, 그 모순들을 바꾸고자 먼저 나서는 체 게바라의 모습을 보며, 내가 너무 소극적으로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비록 체 게바라처럼 혁명을 이끌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체 게바라를 보며 지금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무릎을 꿇느니, 서서 죽는 것을 택하겠다." 라며 마지막 전투까지 이긴 체 게바라. 비록 단명한 혁명가이지만, 그의 자취는 영원히 기억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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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순수했던 남자 그리고 정열적이고 혁명적이었으며 자신의 신념을 굳건하게 지켰던 남자 지금도 그 이름을 계속해서 회자하고 있습니다. "체 게바라." 하지만 처음부터 이름이 체게바라는 아니었습니다. 에르네스토라는 남자가 살았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오토바이 하나에 의지한 채 남미 대륙을 횡단하던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런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그 당시에는 선진국이었으며 잘 살았습니다. 그런 선진국에서 의사를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에르네스토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사회의 모순점을 보기 시작했으며 위에서 말한 여행 중에 이런 생각을 품게 됩니다. "내 마음속에 그 무엇이 무르익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문명의 폭려겡 대한 증오가 나를 목 견디게 한다. 견디기 힘든 소음으로...(생략)" 이 말은 예전부터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들렸습니다. 억압과 착취를 넘어 차별과 편견의 세상을 꺠고싶어하던 체게바라의 순수한 이성이 남아있었던 것일까요? 그런 불공정한 사회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표되던 미국에서도 존재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쿠바를 지배하고 있던 바티스타 정권에서도 그런 영향이 있었습니다. 당시 바티스타 정권은 친미국적인 정책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권은 아래서부터 위까지 부패가 만연하기로 소문이난 정권이었습니다. 결국 체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의 "그란마호(이 배의 이름은 할머니라는 혹은 아주머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에 승선한 28명의 혁명전사가 되었습니다. 체게바라는 혁명전사로 상륙하여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28명으로 어떻게 그 큰 정권을 전복시킬 수가 있는가? 라는 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만 그 당시 부패한 정권에 대하여 회의를 가진 장교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렇게 상륙한 혁명전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쿠바에 파견된 미군 2명도 체게바라의 혁명전선에 가담을 하여(사실 이 미군들은 자신들의 흥미를 위해서 싸웠었습니다. 체게바라가 꿈꾼 혁명이념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으며 그 두명은 도중에 하차를 합니다.) 싸웠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체게바라라고 하면 별이 달린 모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별이 달린 모자는 피델 카스트로(최근에 타계했는 인물입니다.)가 체에게 선물한 별입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별을 달고 다닙니다. 그 후 혁명에 성공한 게바라는 쿠바은행 총재 그리고 상공부 장관 등 요직을 거치면서 북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 사절로 자주 파견되고 했었습니다. 훗날 피델 카스트로의 회상에서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었습니다만 체 게바라의 거침없는 발언은 주요 국가의 빈축을 사게되었으며 결국은 쿠바에서 떠나 볼리비아의 혁명전선에서 자신의 정열을 다시 한번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난항과 주변의 배신으로 결국은 볼리비아의 어느 학교에서 체포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손 두발이 묶인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