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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을 공부할수록 느끼는 것은 신약이 예수의 삶을 신화화했다는 점이다.
예수라는 그 인물이 과연 존재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실존하지도 않았던
한 인물을 신격화하고 교단이 만들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보듯이 예수의 기록 자체가 이교도 신화를 차용해다가 예수라는
인물을 신격화했다.
그저 펑범하게 가다 사라진 한 인물을 온갓 신격화하려다 보니 구약의 기록도
차용하고 다른 이교도 신화들로 짜집기 해서 복음서를 창조했다.
그러니 예수는 신화다 라는 주장이 나올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활이라는
말 자체도 이교도 신화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 구조다.
우리가 이런 주장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기독교 복음서는 읽어본 사람은
많아도 다른 민족의 고대 신화를 읽어 본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
종교를 맹목적으로 받아 들이면 항상 바보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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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대부분의 책이 그렇듯이 이책도 깊은 생각을 요하는 책이지 싶다. 힘들고 지칠땐 가끔 하느님을 찾는, 또 어느땐 조용히 사색할 수있는 절을 찾기도 하는 하지만 정작은 무교인 나는 하느님이 있다는 것에 대해선 감히 부정하지 못했다. 하느님은 믿지만 기독교인의 몇몇의 잘못된 행동들로 인해 신뢰도 많이 떨어진 상태라 궂이 교회에 나가거나 하는일은 없었다. 교회라는 곳 자체에 대한 신뢰가 아예 없다고 봐야 할것이다.. 그럼에도 하느님을 믿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나로선 예수란 신화다 라는 책의제목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 나에게 한가지 죄의식을 떨쳐버릴수 있는 좋은책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예수 이야기가 수백년앞섰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이렇게 똑같은 까닭은 무엇인가? 이책은 수많은 질문을 하고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성경이 정말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 있는 예수의 신비한 행동에 대해 이책은 논리적인 질문을 한다. 오시리스 디오니소스의 신화에 나오는 기적을 똑같이 행했는데 하나는 기적이고 하나는 마법사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다. 또한 나그함마디 문서중의 하나인 진리의증언 에서 예수는 한사도에게 충고한다. 진리의 아버지인 자지마음의 사도가 되라고.. 이교의 현자들은 낮은수준의 자아인 에이돌론과 수준높은 자아인 다이몬(문자주의기독교의 영향으로 이말은 현재 악마나 악령 혹은 이교도의 신을 가리키는말이 되었다고 한다)을 동시에 지니는데 다이몬은 영혼이며 누구나하느님과 영적으로 이어진 참된자라고 일컫는다. 여러 유대인들의 모든 실질적 역사 기록 가운데 요세푸스의저서에 삽입된 위조구절, 예수의 탄생과 죽음에대한 세부기록이 서로일치하지 않는 저자불명의 네 복음서, 베드로,야고보,요한, 바울의 이름을 빌려위조한 편지들,신약이 실제역사의기록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화의진화사라는 것을 시사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오시리스 디오니소스이야기는 신화이고 예수이야기만 역사적사실이라고보는관점은 전혀근거가 없고 단지 문화적편견일 뿐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문건들 외에 내려오는 수많은 기독교의 성서들을 보면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신화와 비슷한 내용을 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저자가 중요시하는것은 그것이 아닌듯하다. 그리스도교는 초기 영지주의와 문자주의의 두 갈래로 나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교의 성경을 문자그대로 해석하는 부분은 아주 낮은수준이고 그안에 내재한 참뜻을 이해하는것이야말로 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문자주의는 성경을 문자그대로 해석하고 오로지 성경만을 믿을것을 강요하며 그외의 모든것들은 거짓이라고, 특히 영지주의자들을 비판대상으로 삼았다. 영지주의자들은 문자그대로 부활을받아들이는것을 바보들의 믿음이라고 일컬으며 사실상 부활은 인식의 변화로서 자기자신의 깨달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리스도교는 정책적 이에 맞게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를 정식으로 채택하고 이외에 영지주의나 이교도의 사상은 철저하게 짓밟혀졌다. 그리고 신화가 아닌 역사를기초로하는 종교,신화적 비유로 이해하기보다 역사적 사실로 맹신하는 종교,은밀한 미스테리아 없이 공개적 미스테리아만으로 이루어진 종교, 내용없이 형식만 남은 종교, 앎이없는 믿음뿐인 종교가 등장하게 된것이다. 예수이야기와 같은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문자그대로 사실을 기록한 역사라고 누구나 믿어야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기엔 성경에 쓰여있는 예수의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맞지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기엔 이미 멀리 와버린듯하다.. 오로지 믿음만이 구원이고 부활을 할수있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믿음처럼 개개인의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것저것 다 떠나서 현재의 그리스도교는 특히 나에겐 배타적 감정을 주고있는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일부라고 하기엔 주변의 대다수의 분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지옥에가고 벌을받을듯이 그리고 다른종교는 안된다는 입장의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다. 왜 집에서 늦은밤 잠자리들기전 드리는 기도는 교회에 나가지않으면 쓸모없는것으로 간주되는걸까.. 하느님은 모든이를 굽어살피신다는데 교회에 나가지 않는사람은 아무리 주를 외쳐도 소용이 없다는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교회자체의 이득을 얻으려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게 사실이다.. 부자들이 즐비한 동네에 커다란 교회.. 그리고 수많은 교회표시.. 그러나 깊고깊은 산골짝 소수를 위한교회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책에 대해 그리스도교도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궁금해 살펴봤다.. 어떠한이는 작가가 학자가 아님을 내세우고 또 어떤이는 문자주의 답게 성경의 말을 인용하고 믿음을 흔드는 작가와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책이 역사적인 예수의 존재를 문제화했다면 역사적으로 반박해야할 자료가 제시되어야 하는게 맞는데 대부분의 책은 믿음으로 반박하는것 같다. 정말로 정말로 믿음이 아닌 진실로, 역사적으로의 예수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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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실존한 메시아의 전기가 아니라, 이교도의 여러 유서 깊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하나의 신화라고 우리는 확신하게 되었다. - p.10 원래는 남편에게 선물할 책이었다. 문득 책읽고 싶은 것 없느냐고~ 내가 사주겠노라고 남편에게 물으니 생각 좀 해보자~ 하고서는 이 책을 사달라고 하더라. 나도 그렇지만 내 남편도 기독교를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이라 굉장히 놀랐었다. 그래서 책을 받은 김에 나도 한번 읽어볼 요량으로 집어들었던 이 책은 생각외의 내용이 들어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게 되어버린 책이다. 이 책은 아주 예외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라고 하는 존재가 이교도의 신화라는 것이 바로 그 예외적인 주장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책들이나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예수]라고 하는 인물이 실재로 존재했었다고 주장하는 것들을 보아봤다. 그렇기에 오히려 [예수]는 정말 존재 했을 것 같다 - 라고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를 아주 싫어하고 종교라고 하는 것을 되도록이면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 또한 [예수]는 정말 존재했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예수]는 기독교가 배척하고 있는 이교도의 신화를 바탕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The Jesus Mysteries Thesis)” 라고 명명하고 있었다. 책에서 예수와 비교하고 있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정말 예수 이야기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동일성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나조차도 깜짝 놀라서 그 신화들을 자세하게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더라. 사실 디오니소스야 술의 신이라는 사실만을 기억할 뿐 다른 것들은 잘 모르겠고 오시리스도 이집트의 신이라는 것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아직까지 그들이 찾아낸 유사성이 진실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지만 그들의 설득력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굉장히 흥미진진해 하며 책을 읽었었다. 그들은 당당하게도 자신들의 주장을 철저하게 분석하기를 원하는 독자(혹은 더 자세하게 알기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아주 친절한 주석들을 달아놓았다. 그 주석들이 있는 페이지들만 해도 책의 약 28%(155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양도 많다. 그리스도교는 신성하고 유일무이한 종교이며, 이교도의 신앙들은 원시적이며 악마적이라고까지 말하는 서양 쪽에 속한 사람들이 이런 주제를 내놓다니…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다. 비판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자료들을 증거로 한 주장이기에 근거없는 억측이나 비난과는 틀린 아주 재미있는 논문을 보는 듯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기독교분들께서는 책의 내용을 읽고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들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 말하고 싶다면 검증된 자료를 제시하고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면 된다. 외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믿음만을 강요하는 지금까지 내가 봤던 우리 나라의 기독교 교단들에게는 굉장히 기분 나쁘고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설득력있게 들리는 내용들이었다. 책에서 나온 것처럼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예수 이야기의 유사성이 “악마의 모방(diabolical mimicry)”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은 이 책을 읽지 마시기를 권유한다. PS: “악마의 모방(diabolical mimicry)”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예수 이야기보다 몇백년 앞서있기 때문에 초기 교부(敎父 : 유스티누스, 테루틸리아누스, 유레나리우스 등)라는 사람들이 악마가 앞서 미래를 내다보고 사악하게 모방을 했다는 주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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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JESUS MYSTERIES]이다. 예수는 신화일까 역사일까 미스테리다라는 의미와 그 당시 존재하던 이교의 가르침과 의례들을 ‘미스테리아’로 칭하면서 논하는 서이기에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제목이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한국어 제목 자체가 도발적이기에 이후 [예수는 역사다]와 [예수 신화? 예수 실화!] 등에 제목의 저작이 잇따라 출간되기도 한 모양이다. 나로서는 본서가 있다는 사실을 안 시일이 얼마 되지 않아 그런 내용을 알지 못하다가 본서를 검색하다 보니 여러 유사 제목의 책들이 출간되어있는 걸 알게 되었다.
본서는 예수 이전 시대부터 예수의 수태와 탄생과 생애, 죽음과 부활, 그 가르침까지 예수라는 존재의 전부가 예수 탄생 이전부터 존재하던 이교의 신적 존재의 역사와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예수는 실화가 아닌 신화였다는 내용이 근간을 이루는 책이다. 본서를 보면 예수라는 존재의 전승 하나하나의 원본 텍스트를 제시하고 있고 본문에서는 매끄러운 서술을 하기 위해 빠르게 전개하고 있지만 (본문만 390쪽에) 120쪽에 이르는 후주가 존재하는 책으로 그 하나하나의 근거가 무언지 깊이 천착하며 공부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내용이다.
이미 [성서의뿌리 구약편]과 [성서의 뿌리 신약편], [법화경과 신약성서] 등을 통해 예수를 믿는 종교가 그 이전부터 오랜 역사를 통해 존재해온 다른 종교의 내용과 가르침을 표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과거에도 [제2의 성서 아포크리파],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이것이 영지주의다], [유다복음서, 진실 혹은 거짓?] 등의 책과 방송을 통해 영지주의와 그 원류가 되는 가르침에 대해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이토록 예수는 표절이며 신화일 뿐이다라는 논지를 전개하는 책이 참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긴 세월을 예수는 실존했고 그의 생은 역사이며 실제라고 믿어왔었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본서는 예수를 믿는 종교의 전제인 예수 자체가 신화의 짜깁기이지 실체가 없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초기에서부터 신약성서가 갖춰지며 교세가 안정되기까지의 역사도 서술하고 있다. 예수의 생존 당시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시대의 문장가들, 학자들은 누구 하나 예수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주장하는 예수의 실존 증거라며 내세우는 기록들은 모두 그리스도교의 교세가 확장된 이후 로마의 학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어 남긴 것뿐이라고 한다. 이는 실제로는 총독이었던 적이 없고 로마에서는 그저 사령관이었던 본디오 빌라도를 그리스도교가 로마에서 확산한 이후 그리스도교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총독으로 기록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예수 사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나 본디오 빌라도가 사령관이 아니라 총독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이다. 예수에 대한 기록도 당시 이적을 보이며 이스라엘 지역에서 선동을 하던 사람들 중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로마 기록에는 그들 중 십자가형을 받은 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처녀 수태, 생존시에 보여주는 이적,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등은 예수 이전 몇백 년 전부터 존재하던 타종교들에 신적 존재들의 내용을 그리스도교가 그대로 표절했으며, 그 가르침의 내용 역시 타종교 텍스트에서는 미스테리아로 옮기는 영지주의의 원류가 되는 이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표절한 것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를테면 원래 복음서 중 하나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 동굴에서 시신이 없어진 것을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성들이 목격했다고 부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예수가 부활하고 제자들이 확인하는 과정이 추가되었고 다른 복음서들도 그 복음서를 텍스트로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본서의 저자들은 예수를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다른 신화의 내용을 표절하며 창조된 인물로 영지주의자들이 그를 동물적 자아의 죽음과 함께 신적 자아의 각성을 은유하는 존재로 상징하려 한 것과는 다르게 문자주의자들(현재의 기독교를 전승하게 한 초기의 ‘예수는 역사다’ 주의자들)이 그를 무리하게 역사적 인물로 확정하려 갖은 모략을 써서 현재의 기독교가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베드로의 편지 등의 기록 등에서도 예수의 생애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그의 죽음만이 회자되고 있다는 것도 저자들이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리고 본서의 제목마따나 미스테리아라는 예수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영지주의의 원류가 영지주의로 계승된 후 문자주의자들과의 격돌이 있었고, 이 둘은 무수한 종파로 나뉘었는데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반강제적으로 이들 전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교 주교의 기록으로는 ‘내 안에 있는 상대의 교리를 찢어발겼으며 상대 안에 있는 나의 교리를 찢어발겼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교리상 합의될 수 있는 내용조차도 종교회의라는 그 격돌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괴되고 난자되고 만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남아있는 그리스도교는 살과 피와 신경을 모조리 해체당하고 뼈대만이 남아있는 앙상한 종교라는 말이 된다.
기독교도도 인정하는 내용 중 하나는 바울이 초기 그리스도교가 성립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와 그의 후대에도 이단을 징죄하며 그리스도교의 본체를 확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말이다. 문제는 바울이 상당히 영지주의를 중시했으며 바울이 남겼다는 영지주의 문서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CE 160~220년 생존했던 테르툴리아누스라는 문자주의자의 이단을 비판하는 기록은 후대에도 줄곧 인용되리만치 명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적극적인 문자주의자이며 이단비판자였고 여성차별주의자여서, 당시에 주교와 예식 주도자와 일반교인의 역할을 집회할 때마다 제비뽑아 결정하며 여성과 남성의 무차별까지 모든 방면에서 전혀 차별없이 진행되는 종교모임을 갖던 영지주의자들을, 주교의 권위와 남성우월주의를 유지하는데 적대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문자주의자들과 테르툴리아누스는 영지주의자들 전체를 적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논란이 될만한 것은 그도 그의 생애 후반기에는 영지주의자로 전향했다는 것이다.
본서는 예수가 실제했느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성립과정과 예수라는 인물이 설정되는 과정까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정치적 목적으로 그리스도교가 강제적으로 통합되는 과정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지주의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 영지주의가 그 당시까지 존속했던 타민족의 미스테리아를 표절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저자들의 표현으로는 차용하고 수용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문자주의자들은 이후 자신들 이전에 예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이적과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그 미스테리아와 예수 이전 시대의 전승을 모두 ‘악마의 모방’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수가 태어나서 어떻게 살고 죽을지 알고 있던 악마들이 그 이전에 그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이적을 모방해 예수의 이미지를 깎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악마들이 성스러운 대상을 전도시키려던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 문자주의자들의 주장을 이 시대에 대입하자면 500년 전 곡을 그대로 모방한 작곡가가 (예전의 아름다운 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다고 말하면 될 것을) “내가 이 곡을 작곡하려는 걸 500년 전에 미리 안 악마가 나를 표절한 것이다”라고 앙탈과 억지를 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수준의 억지라면 도둑이 따로 없어 보이고 이걸 믿는 것도 바보가 따로 없는 것 같다.
본서는 한국어 제목을 주지하고 읽으면 예수는 실제했는가 그리스도교는 신앙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종교인가라는 데 주의하며 독서하게 되고, 영문 제목에 관심이 꽂히면 미스테리아란 무엇인가 영지주의란 무엇인가에 주의하며 읽게 된다. 나그함마디 문서에 대한 이해와 고대 이교의 종교들에 대한 연구에 비교종교학적 견해가 더해져 집필된 저작이라 크리스찬이 읽게 되면 영지주의에 대한 관심까지 확장될 테고 비신앙인과 무신론자들이 읽는다면 그리스도교의 실상을 알게 된 것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카톨릭과 개신교 역시 그 역사 속 불법과 범죄들과 함께 신앙인들에게 준 마음의 평화 또한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본서에서 그리스도교 초기에 영지주의자는 구약성서는 신이 인간에게 저지른 범죄를 나열한 목록서라고 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문제 많은 신이 문제 많은 인간을 창조했고 그렇기에 인간 세계가 문제투성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 문제들을 양산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발전해 온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나도 한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단순한 주지만 시키고 인간을 세계로 내보낸 것은 바이러스나 암처럼 증식만 하라는 것과 무엇이 달랐나 싶었지만, 인간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취하고 의미를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해도 그 모든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재 자체에서 만끽하는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생육하고 번성하는 과정(살아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살아있음을 만끽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생각이 이르니 일자(신)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문제 많은 신이라는 관점도 인간이 자신의 문제 많음을 신에게 투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들의 주장으로는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를 지은 것은 그리스도교 초기의 문자주의자들이 예수의 존재함의 가치를 신앙인들이 수긍하게 하기 위해 구약을 이용할 필요와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문제 많은 시대에 문제 많아 보이던 신의 이미지가 이용되었던 것이 구약이라면 그 신을 빛이자 사랑으로 진화시킨 것이 미스테리아와 영지주의와 예수라는 상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본서는 예수가 실제했느냐 신화였느냐에 관한 의문에 대답을 얻기 위해 읽기보다는 무엇이 인간과 일자(신)를 이어주어 왔고 이어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읽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예수의 실존을 믿는다고 바보라기 보다는 예수라는 상징이 이미 바보였던 인간들을 지혜의 길로 인도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신앙인에게도 신앙이 강화되건 무화되건 간에 읽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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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유행은 인간적 예수를 찾는 것이었다. 예수를 완전한 신으로 포장한 기존 교단의 교리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역사적 실체의 인간적 예수를 찾아 헤매었다.
예를 들어 인간적인 사랑과 고통을 느끼는 예수. 이를 자극적으로 표현한 멜 깁슨의 영화는 보수교단의 집중포화를 맞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이다. 예수는 없다. 예수는 단지 상징일 뿐이다. 종교의 원형질에 가까운 신비주의의 맥락에서 해석되는 신화적 존재일 뿐이다.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삶이란 이전 수많은 이교도 신들의 신화를 차용한 것이다. 예수는 신.화.다. 마치 단군이 신화적 존재이듯이.
당혹스럽다. 책 전체에 넘쳐나는 이교의 신과 예수의 유사성을 모두 부정하기엔 그 증거가 너무 많다. 그러나 술에 취한 미치광이 신이라 여겼던 디오니소스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동일시하기엔 그간 받은 신학 교육이 용납하지 않는다.
이 책의 내용처럼 정말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아니면 기독교 교단의 주장처럼 악마의 농간으로 이후에 조작된 또 다른 거짓인 것인가?
판단을 독자의 몫으로 돌리기엔 주제가 무겁다. 매력적이지만 결코 간단치 않은 책이다. 혼란스러움을 감당할 용기 있는 독자들에게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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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님의 자녀다. 나는 이책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읽을만한 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안에서도 세상사람보다 못한 이중적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이용해서 예수님의 선하심을 따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이용 하는 사람들...
하지만, 예수님을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안에서 기독교인이라는 무늬만있을뿐 그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저희와(그들에)불과할 뿐이다.
나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는 시간들이 있었고, 그 시간들을 아무리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지않는다.
스스로가 경험해 보지 않는 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분이라는것을 인지한다면, 어디서나 기도할수 있다.
길을걸을때에도, 잠자리에 들기위해 누워서도. 어디서나 하나님에게 말할수 있고, 그말을 듣고계시고, 그대로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것들을 경험할수있을것이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지 않으신다.
또한, 하나님을 섬김으로 경외함으로 자신의 삶이 바뀌었던 좋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현재 세계무역센터에 수석 부총재로 있는 이희돈 장로님... 이분의 간증을 인터넷을 통해 들어볼수있을것이다.
우리나라에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던 류태영박사님 .. 이분의 책을 통해 이분의 삶을 통해 정말 주님이 살아계신주님이시다는것을 알수있을것이다.
수많은 기도교인들이 있지만, 정말 자신이 노력하고, 선하게 살려고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기도교인들은 많지 않다.
예수님이 희생했던 그 희생과 참사랑을 실천하려는 사람은 많치않다.
교회안에서조차, 기도원에서 조차... 이 대한민국이라는 온실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활을 감당해야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온실 속에서 썪어가고 있다.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고. 수많은 늑대들은 양들의 피를 빨아먹고,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려힘쓰고. 마치, 자신들 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는듯이...
진리를 예수그리스도다. 우리는 이분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께로 갈수있다.
예수님이 살았던 삶 대로, 우리가 그분처럼 선하게, 정직하게, 살려한다면 우리의 삶도 변화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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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성립과정을 객관적 시각으로 밝히고 있다. 기독교 강국에서 이런 류의 책이 제대로 번역되기 어려운데 천만다행으로 역자를 잘 만나서 세상의 빛이 되었다. 어차피 동굴 밖으로 나온 소수만을 위한 책이다. 저자와 역자, 출판사에 감사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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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이다. 이 책이 사실 주장하고 싶어하는 바이다. 기독교는 유일신 - 여호와 - 를 섬긴다. 구약에서 유대부족의 신이었던 여호와는 신약에 있어서는 예수를 통하여, 그리고 기독교가 예수를 중심으로 정립됨으로써 부족의 신이 아니라 인류의 유일신이 된다. 정의상 유일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독교는 다른 신들을 이교도의 신으로 치고 결국은 사탄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이러한 기독교의 특성이 과연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하는 것을 나름대로 많은 문헌에 근거하여 파혜치고 있다. 특히, 각주가 본문의 1/3수준에 이른다는 점이 저자들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가 하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역자의 서문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민감한 책의 특성상 역자는 에필로그나 서문을 남기지 않았다.
이책은 현재 기독교의 특성을 기독교의 초기성립과정에서 성경해석에 대한 문자주의파와 영지학파의 대립에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문자주의자가 승리한 결과로 본다. 영지학파는 문자주의자와 다르게 성경이나 예수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한다기 보다는 이전의 오리시스-디오니소스의 이교도 신화(미스테리아종교)를 유대버전으로 상징화한 것으로 본다. 성경을 이루는 성령임신이나 부활, 동방박사의 방문, 마굿간에서의 탄생 등은 이미 그 당시 로마와 중동에 널리 퍼져있던 신비주의 종교인 미스테리아신화에 갖추어져 있었던 것들이고 이를 유대인들이 차용해서 성경을 만들었고 예수는 실제인물이라기 보다는 유대버전의 디오니소스-오리시스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글자그대로 역사로 해석하는 문자주의자가 기독교성립과정에서 황제와 결탁하여 권력을 잡음으로써 영지주의적 신비주의 전통을 말살라고 현재의 독점적인 기독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이고 예수는 유대인의 디오니소스라는 것이다. 이 책은 예수를 실존인물로 간주하지 않는다.
영지주의적 기독교 전통은 소위 도마복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도마복음은 예수를 신의 유일한 독생자이자 성부와 동일한 신격으로 보지 않고 보편적인 깨달은 사람으로 보고 우리 모두가 예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구원은 우리내부의 신성을 깨달음으로 가능한 것이지 결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윤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스테리아신화는 당초 이집트에서 오리시스 신화로서 존재했었고 오리시스신화를 피타고라스가 이집트에서 공부하면서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화로 가져왔고 이후 로마에서 미트라교로서 페르시아와 로마에 유행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디오니소스신화를 결국 예수의 신화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옳고 그름을 떠나서, 기독교를 신비주의화해서 해석하는 것이 이책의 입장이며 초기에 이단 판결이 난 그노시스트(영지주의)적 입장을 따른다. 이단과 정통의 차이가 무엇인가와 우리 사고의 경직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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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출판에 반대한 것이 자신들의 나와바리가 좁아질것 같아서 그랬는지 자뭇 의심스럽기 그지 없다. 그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문자주의자들은 여기에 언급하지 말고 조용히 거룩한 자기최면에 빠져 엑스타시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살기를 바랄뿐이다. 마지막에 두 저자들은 분명히 밝혔다. 그리스도교가 잃어버린 것 즉 영지주의의 비밀을 밝혀주고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라고... 이교도 미스테리아와 그리스도교 양자의 핵심에 본질적으로 하나의 항구적 철학이 내재해 있다는 것과 그리고 전통적으로 적대해온 이 두 종교가 사실상 근친관계라는 것이다... 역사란 변화의 연속일뿐이다 ... 그리스도교는 변화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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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이런 류의 책을 볼 때마다 참 예수님은 대단한 사람이로군 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니...하는 생각이 든다.
제목도 자극적으로 "예수는 신화다"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하자면 "예수교는 밀교/신비교/기적교다"가 아닐까 한다.
종종 예수 때리기? 서적을 보면 도리어 참 "그리스도교의 입지가 확고하군"이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나는 저자들의 추론에 약간은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성서의 편집 순서에 대한 이야기인데 지금 그리스도교의 구약/신약은 구성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구약도 유대교식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구약/신약 둘다 이슬람의 쿠란 편집 방법- 긴 것에서 짧은 것으로 -을 차용한 것도 같은데 저자들은 "밀교"라는 주제에 맞추어 편집되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 주장 동의 못 하겠다.) 도리어 신약의 편집은 쉬운? 내용에서 어려운 내용으로 편집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시리스-디오니스스교와 유사하다는 지적에 관해...예수교건 뭐건 국교화하려면 그런 과정을 밟아야 하는거 아닌가? 다른 종교는 다 지우고 지워지지 않는 것은 예수교로 덮어 버린다. 결국 그런 국교화 과정을 겪으면 국교-예수교의 여러 면이 다른 종교와 비슷해 보이기 마련...
그래서 역시나 종교학 연구 내용을 일반인용으로 - 다시 말해 엄청 간단하고 또 자극적으로 - 써서 팔아먹고 있다는 느낌... 그러니 일부 그리스도교 교단에서는 이 책의 출간에 별 이야기가 없다.
그냥 자극적으로 쓴 역사서?에 가깝다고 느끼는 나는 너무 둔한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의 출간에 반대하는 그리스도교 교단도 순진한 초보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지 이 책의 내용이 밝혀지길? 꺼려서는 아닌 듯하다.
이 책을 읽고 "그래 역시 그리스도교는 믿을 게 아니야"라고 확신?하시는 분께 할 말은... 이런 영지주의적 책들을 자꾸 읽다보면 어느 순간 그리스도교인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하셔야 합니다. - 이런 류의 책과도 멀리해야 진정 그리스도교인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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